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 행복을 일구는 사람들 이야기 박원순의 희망 찾기 1
박원순 지음 / 검둥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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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변호사. 약자와 소외받고 있는 사람을 위해 발로 뛰고 목소리를 높이는 인권변호사에서 변신했다. 이제 그는 변호사로 불리기보다 ‘소셜 디자이너’로 불리길 원한다.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 사회가 가진 가능성을 키우는 일에 열중해 왔다. 박원순의 희망 찾기 1탄.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는 그가 최근 3년간 찾아다닌 ‘희망’의 증거이다.


그는 전국을 다니면서 ‘지역’과 ‘농촌’이야 말로 21세기 한국이 가진 블루오션임을 깨달았다 한다. 스러져 가는 농촌에 무슨 희망이 있단 말인가. 혹 그가 너무 ‘낭만적’이라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귀농 5년째에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많았던 나로서는 의혹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발견했단다. 2006년 4월 희망제작소의 창립과 함께 다닌 전국 구석구석에서 ‘답’을 얻었다고 한다.


   
  모두가 떠나간 농촌의 폐교에서 그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 ‘위장 전입’을 할 정도로 교육 부흥을 이룩한 교사들, 거듭된 농정의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선 농민 가운데서도 창의적 발상과 남다른 노력으로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농민들, 개인의 고난과 마을의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으로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이끈 이장들, 활동가들, 지역주민과 지역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일부 지방 자치 단체의 장과 지역 관리들이 바로 그런 희망의 제작자들이었다.-서문 중
 
   

 


과연 그러한가. 진안군 마을 간사를 하면서 마을 사업 운영 사례에 대한 모범사례들을 보기위해 숱한 견학을 다녀 봤지만 그곳에서 내가 봤던 것은 한없는 불투명성이었다.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싸움. 혼자 온 짐을 떠안고 파탄나는 가정과 이웃과의 관계. 아무리 들여다 봐도 곧 펼쳐질 환한 신세계나 유토피아 속에 활짝 핀 꽃동산은 떠오르지 않았다. 같이 다닌 동료들의 반응도 좋지 못했다. 실상 마을에서 ‘마을만들기’의 주체가 되면서 겪는 시련과 갈등의 해결이 너무나 높고 두꺼운 벽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내‘절망’의 실마리는 마을에 있었다. 마을의 구성원인 농민들, 그들의 평생 직업인 농업에 대한 태도였다. 그들은 ‘농약’의 해로움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농약을 사용하였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항변이었다. 그럼 돈을 지불하고 그들의 약을 사서 먹는 소비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더욱 어두운 것은 젊은 농민들의 경영이었다. 대부분 수천 만원은 기본이고 몇 억씩 되는 가계부채를 떠안고 매년 그 빛을 탕감하는 데에 그들의 젊음을 다 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생태와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을 할 겨를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겐 그나마 땅을 늘리고 기계화하는 것이 그 해답이었다. 그래야 자식들 공부시킬 만큼의 수입이 유지되는 것이 농사다. 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좁은 땅과 경사지를 개간해서 땅을 넓히고 기껏 트랙터를 이용해 경작한들 그들의 ‘땅’과 ‘기계화’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수입개방화로 우리 농업은 결국 경쟁불가로 판명될 것은 뻔 한 일이다.


비판적인 마음으로 글을 읽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과연 ‘희망’이라 할 것도 있고 이걸 희망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농촌마을의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더러 ‘회사’도 있고, 도시의 마을도 있다. 그들 모두는 모두 주변의 편견과 무시를 딛고 일어서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얼마간의 성과를 통해서 주변에 알려진 곳이었다.


그들 중에 내 마음을 울린 -저자가 먼저 감동했을- 몇 이야기가 내 ‘가슴’에 남는다.


   
  결국 소농을 없애고 규모화 하느냐, 아니면 잔뿌리들을 키워 강화시킬 것이냐가 문제다. 규모화는 미국이 키워놓은 시장에 똑같은 방법으로, 미국이 바라는 방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김의열 총무는 미국이 아니라 독일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경상도 고추장과 전라도 고추장 맛이 다른 걸 보면 소시지 강국 독일처럼 고추장 강국은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농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제도적, 행정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인다._충북 괴산 솔뫼농장  
   

 


이게 답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쿠오카 마사노부와 같이 이웃 일본에서 수십 년에 걸쳐 실행해온 선지자들이 있고, 미국과 같은 농업선진국의 곁에서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쿠바의 도시농업이 그 증거다. 이것을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실천하는 이 땅의 농장이 있다. 바로 그 곳에서 멀고 험하지만 우리의 ‘희망’이 싹트고 있다.


   
  사실 유기농이면서도 맛도 좋고 크기도 크고 때깔도 나야한다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추다 보니 에너지가 투입되고 가격도 올라가게 되었다. 원래 유기농은 에너지가 투입하지 않고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생산 농가도 중요하지만 유기농을 받아들이는 소비자도 중요하다. 둘 사이에 협력이 이루어지면 다국적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종자들 대신 토종 종자를 써도 될 것이다._충북 괴산 ‘흙살림  
   

 


농업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어려움 속에서 유기농자재를 생산하고 우리 땅에서 이루어지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이야기하는 흙살림도 어려움 속에서 묵묵히 올바름의 가치를 실천하는 농부들 곁을 지킨다. 수입자재밖에 없던 효소를 최초로 만든 것도 그곳의 대표였다.


   
  두부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전통 방식으로 맛있는 두부를 만들어 냈다. ‘무엇을 할지’를 해결하고 나니 판로가 걱정이었다. 조촐하게나마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처음에는 여성농민회 회원들끼리 스스로 두부를 만들어 먹는 걸로 만족할까 했는데, 원주 한 살림에서 구매해주겠다는 의사를 전달해왓다. 이에 자극을 받아 내친김에 좀 더 규모 있게 해보자고 의기투합해 ‘영농조합법인 텃밭’을 만들어버렸다._강원 횡성 ‘텃밭’  
   

 


농민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자급자족이 이미 불가능한 오늘날의 삶 속에서 채소, 곡물을 생산해서 ‘삶’을 유지하기가 힘들 때 그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가공이다. 가공품을 혼자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지역 공동체의 힘이 필요하다. 손과 발을 잘 맞추어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해서 소비자들에 직접 전하는 방법이 가장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여러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할 수 있는 시설이야 기본이지만 운영주체와 주민 스스로 각자의 역할을 맡아 주는 체계가 선행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조성, 올해로 16년째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마을장학회가 있다. 1991년 7월 뜻있는 주민 10여명이 2천 390만 원의 기금을 모아 출범한 이 장학회는, 설립 다음 해인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기금의 이자를 이용해 성적이 우수한 73명의 마을 학생들에게 4천 165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_충북 청주 금천동 마을 장학회  
   

 


이런 일이 있다고 읽는 우리는 매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와 대단하다' 그리고 그게 끝이다. 지금 나와 우리가 그런 흐뭇한 일을 할 수는 없는 걸까. 뜻이 모이면 ‘일’이 난다. 내가 즐겁고 너도 즐겁고 그래서 ‘우리’가 흥이 나는 곳. 신명나게 한 판 벌일 수 있는 곳. 바로 ‘마을’이다. 작년 봄에 마을 중앙에서 피어올랐던 불길, 달집태우기가 내가 경험했던 그것이었다.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박원순/검둥소/1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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