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오따쓰 -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
앨런 와이즈먼 지음, 황대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온갖 갈등과 모함, 시기, 질투, 원한, 욕심으로 가득하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마치 일부의 특권층만이 누리는 것 같아 그렇지 못한 자신을 자책한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일은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 쉽지 않다. 빈부의 격차와 계급, 좌우의 대립 속에서 살면서 평화와 행복을 논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예부터 어떠한 국가가 가장 이상적이냐 하는 논란이 있어왔지만, 항시 현실의 ‘영민함’속에서 철학의 진부함은 그저 학문으로나 남기 일쑤였고, 규모가 성장하고 인구가 늘어나면 국가의 통치는 더 힘들어져서 몇 명의 철학자가 말한 이상적인 국가정치는 점점 더 멀어져왔다. 자유와 민주는 내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옥탑 방이나 지하에서 거처하는 많은 서민들의 삶과는 영영 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논쟁과 실험의 날들을 겪고 난 일부는 ‘공동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규모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규율과 구성원의 책임, 원칙을 강화하는 일부 공동체는 꾸준히 그 역량을 강화하면서 속세와 분리된 듯 그렇게 오늘을 살고 있다. 그들의 성향과 추구하는 이상은 모두 다를지 몰라도 함께 해서 마음의 안정과 평화, 궁극의 행복을 누리기 위한 ‘모임’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에메랄드 보석과 커피로 유명한 나라는 어딜까? 하나 더, 마약생산국으로도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나라는. 콜롬비아. 남미대륙에 위치한 태평양 너머 그 나라의 사정은 우리로서는 알기 힘들지만 가끔 세계뉴스에 등장하는 것이나 미국영화에서 소개되는 그 나라의 면모만 보더라도 저런 곳에서 어떻게 사나 싶을 정도로 황량한 느낌이다.


가난한 이미지의 대명사 아프리카와 같이 식량재배와 식수공급의 어려움도 있거니와 좌와우로 대립되는 반군과 정부군이 서로 총을 겨누고 사람을 집단으로 죽이고 불을 지르고 처형하고 하는 것이 일상화 된 곳. 마치 전쟁영화의 상황같다. 그렇다면 그곳이 바로 ‘전쟁이 일상화 된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극악의 범죄라 일컫는 ‘납치’가 산업화되어서 단체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농민들의 생계를 위해서 코카를 재배하는 곳. 그곳에서 공동체로 살아남기. 가능할까. 마치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파란 떡잎의 새싹이 돋아나는 광경을 본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과 같은 생존일 것이다. 그 기적 같은 공동체의 생존이 존재하고 그들은 그 곳을 ‘가비오따쓰’라 부른다.


그곳에서 피어난 희망의 새싹이 오늘날 세계의 희망이 되고 있다. 사막 한 가운데 울창한 숲을 가꾸어내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약탈과 처형 속에서 다른 소규모 도시와 달리 상하지 않고 자립화된 에너지와 생태적인 환경 시스템을 구출하는데 그 어느 곳보다 ‘성공적’ 모델이 되기까지는 시련의 연속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별다른 시도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여기에 또 다른 형태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한 일로 부자가 되기는커녕 언제 돈을 받을지도 모르는, 연대에 기반을 둔 삶이지요. 그저 살아남는 것일 수도 있지만, 최선의 삶으로서의 생존이지요. 나누고 섬기는 존재로 살아남는 사람들 말입니다. 서로 도와가며 사이좋게 지내고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 그 누구에게도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은 그저 좋아서입니다. 가비오따쓰에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경쟁이나 위계질서와는 다른 어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만족스럽게 살아갑니다. 이것을 무엇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됩니다.”-p.156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변변한 것 없이 온갖 시련과 역경만 가득한 그곳에서 그들이 연구하고 바꾸려고 하는 노력이 미래에 결실을 볼 것이라는 믿음을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미풍을 에너지로 바꾸는 풍차와 식수를 위해 지하수를 태양열로 가열해 소독해 멸균하는 주전자, 수경재배를 통한 식량의 자급, 아이들 놀이기구인 시소를 이용해 지하에 흐르는 물을 끌어올려 사용하는 초효율의 펌프. 이러한 모든 것이 ‘꿈’을 꾸는 그 곳의 구성원의 노력의 결실이다. 이러한 에너지 자립적 ‘기계’에 의해 그곳의 미래에 동참하고자 편안하고 안락함을 버리고 그곳에 몸을 던지 여러 사람들.


그들은 사바나에서 나무를 심어 키운다. 도저히 불가능 할 것 같았던 일들이 자연을 믿고 신뢰하는 그들의 생각에 부응하듯 자라게 하고 크게 만든다. 소나무가 부쩍 자라 숲을 이루자 그들은 소나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한다. 펄프로도 집을 짓는 건축재로서도 활용이 불가하자 그들은 화장품, 약품 등의 원자재로 들어가는 수지가공에 나선다. 나무의 진액을 받아서 가공하는 것.


책이 쓰인 1996년 이후 10년을 기념한 개정판에서 저자의 그곳에 대한 묘사에는 야자유 가공이 한창이라 한다. ‘그곳의 인구 200명이 인근지역의 2000명을 먹여 살린다.’ 비어 있는 공간에 창조된 생태도시 가비오따쓰. 태양열시스템과 자전거 도로 네트워크. 옥상 농장과 나무심기 등의 일들이 이곳의 미래를 밝힌다.


1970년대에 시작되었던 가비오따쓰 프로젝트. 변화를 꿈꾸던 그 시대의 동지가 모여 시작한 작은 힘이 그 꿈을 같이 꾸길 희망하는 여럿을 모으고 오늘의 큰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이들이 겪어온 역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꿈꾸는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씨앗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넘치는 이산화탄소로 말미암은 재앙이 우리에게 주는 불안 속에서도 말이다.


   
 

“우리는 계속 꿈꾸어야 하오. 만약 꿈을 꾸지 않는다면 당신은 잠들어 있는 것이오. 진정으로 위기는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상상력의 부족이오.”

그의 눈에 다시 광채가 감돌았다. “한번 상상해 보시오.” 은빛 수염사이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만약에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의무적으로 한 사람당 적어도 세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