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를 기다리지 말자
로버트 마셀로 지음, 김명이 옮김, 홍기영 사진 / 천년의시작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얼마전 모사이트에서 ‘개나 소나 작가가 될 수 있다’라는 글을 읽었다. 비약이 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지만, 글을 쓴 다는 것이 대중적으로 ‘유행’을 타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서점 한쪽에 버젓이 차지하는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너도 쓸 수 있다’를 외치며 망설이는 당신에게 당장 집어가기를 종용한다. 이러한 ‘유행’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인터넷이라는 소통환경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몇 년 전 유행하던 ‘미니홈피’는 글과는 거의 상관이 없었다. 사진을 주로 하고 있었고, 그야 말로 ‘적은’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상에서 주고받은 ‘사진들로 교류하는 법’이 최근에 자신이의 생각이나 생활의 노하우, 정통하고 있는 고급정보들을 소개하는 ‘블로그’로 옮겨 오면서 이를 읽는 대 다수의 독자들이 자신도 대중에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음이다. 이를 위해 대중이 호응할만한 기술이 필요한데 포토샵과 편집기술은 부가적인 것이고 가장 고급에 속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이다.


사진과 정보는 잘 다듬어진 글을 바탕으로 효력을 얻게 된다. 소위 ‘잘 나가는’ 블로거들의 편집, 디자인도 화려하지만 숨겨진 ‘글발’도 한 몫하게 된다. ‘미니홈피’나 ‘블로그’나 방문자수에 연연하게 되는 것은 자신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당연한 마음이다. 이를 위해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뭐? 그렇다. ‘글쓰기’의 기술이 되는 것이다.


‘글쓰기’는 과거엔 없다가 생긴 ‘유행’은 아니다. 엄연히 조선시대 선비들은 ‘글발’로 먹고 사는 것 아니었는가. 서신부터 서책까지 두루 그 세계에서 교류하기 위한 방법으로 글씨체까지 신경써가며 썼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쓴 다기 보다 ‘두들기는’ 행위를 지칭하게 되었으니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활동이 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글’이라는 것은 '말‘과 달라서 잘만 보관하면 영구히 보관할 수 있고, 후세에 길이 남아 조상의 ’얼‘을 되새길 수 있는 역사로 활용되는 것이었다. 한편 써서 보관하기 전에 온전하게 다듬을 수 있고 지우거나 찢어서 폐기할 수 도 있으니 말보다 더 편안한 의사소통수단이 되는 것이겠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것은 어렵다. 이 시대가 자랑하는 대작가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는 몇 명만이 글로 밥을 먹고, 대부분은 다른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아발현’을 위한 고상한 활동으로서 ‘쓰기’를 택하게 된다.


한편, 글쓰기는 ‘배설’의 수단으로 훌륭한 역할을 한다. 내가 이야기 하지 못한 것, 가족이나 친구, 주변인이나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유명인에게도 말을 걸 수 있는 대화의 창이기도 하다. 물론, 꼭 응답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도 쌓였던 울분을 토하듯 글을 쓰면 마음이 후련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유명한 작가들의 일부는 그렇게 자신의 한(恨)을 내쏟는 글로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포털의 이야기 방에는 불우하거나, 불운한 자신의 처지를 주변에 내 쏟는 글에 대중의 반응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위로하고 싶고, 격려하고 싶은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자신보다 못한 상황에 있는 이들을 통해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극도로 흥분해 있거나 울분이 가득할 때 밖으로 배출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배출하지 못하고 쌓게 된다면 그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갈대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신하의 이야기를 생각해봐도, 속에 가진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으로서 필요한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쓸 수가 없다. 그냥 막 쓰자니 두서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내가 봐도 무슨 내용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기도 한다. 위로나 칭찬의 말을 듣고 싶었는데 돌아오는 것은 맞춤법과 접속사에 대한 지적들뿐이라면 그 상처가 얼마나 클 것인가.


일기를 쓴다.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누가 들으라고 또는 보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일기를 쓰지 말라고 단호히 이야기한다.


   
  ‘일기를 쓰는 것은 단순한 핑계 혹은 실제로는 일하지 않으면서 일하는 것처럼 자기 스스로를 위한하는 방편 중 하나이다. 종이만 낭비하고 있으면서 뭔가 작가로서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스스로에게 각인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일기를 쓰지도 않고, 작가도 아니다. 고로 책의 저자가 첫 번째로 이야기하는 행동의 변화를 피해가며 느긋하게 읽을 수 있다. 일기를 쓰는 대신에 편지를 쓰라고 한다. ‘생각을 하게 만들고 편집, 수정, 그리고 보완을 하게끔 유도하는‘ 편지가 일기에 쓰는 ’웅얼거림‘ 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그 외의 조언은 작가가 되고 싶거나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용할지도 모르는 조언들이다. 동의어 사전을 버리고 작업 중의 작품을 입 밖으로 내지 말며, 스타벅스를 그냥 지나치라는( 가끔 스타벅스에 가면 노트북을 펴놓고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저자가 지양하는 스타일의 작가이거나 학생일 거다) 조언들이 있다.


영민한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딱딱한 원제(Robert's Rules of Writing)를 바꾼 제목은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저작에서 가져온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이는 글쓰기는 ‘노동’을 통해서 영감이 떠오른다는 ‘시간’과 ‘노력’을 이야기한다.


   
  ‘뮤즈를 기다리지 말자. 뮤즈는 워낙 고집센 친구라서 우리가 아무리 안달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날마다 아홉시부터 정오까지, 또는 일곱시부터 세시까지 반드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뮤즈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중
 
   



열심히 계속 쓰면 ‘그 분’이 오신다? 흠 과연 한번 작가들에게 물어볼 일이다.


이밖에 책이나 글을 쓰기 위한 자세, 행동양식, 습관, 글감과 주제, 인물, 스토리텔링 기법, 위기극복 등 작가로서 저자가 경험한 총체의 경험을 나름 유머러스하면서 거부감을 최소화 하는 방법으로 설파하고 있다. 작가 지망생보다는 오히려 ‘현업작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노하우들인데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겠다.


   
 

‘피가 끓고 있다. 노여움이 머리끝까지 뻗친다.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이다. 단 일초도 더 기다릴 수 없다! 불꽃처럼 핏줄을 타고 흐르는 불후의 단어들을, 끝없이 흐르는 생각들을, 그 열정이 단 한 줌이라도 빠져 나가기 전에- 하느님, 이것을 다 쏟아내면 기분이 좋지 않겠습니까!― 책상에 앉아 휘갈겨 쓰려는 참이다. 이것이 모든 창작 관련 책과 교수법이 항상 말하는 것인가: 열정을 쏟아내라고?


좋을 대로 하라- 당신이 조절할 모든 열정을 총동원하여 글을 써라-그러나 글 글이 훌륭한 글이 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말자.


노여움이나 분개, 사랑이나 욕정, 슬픔이나 증오 같은 열정은 뜨겁게 활활 타오를 멋진 연료이지만 불꽃 조절이 쉽지 않다. 이런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는 생각을 똑바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쓰는 것도 힘들다. 그것은 날 것 그대로이며, 심사숙고 되지 않은 것을 종이 위에 쏟아 놓는 것과 같다. ‘

 
   




흥분과 긴장은 글을 쓰게 해주는 추진력을 준다. 하지만, 좋은 글은 글쓴이의 흥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이가 흥분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글스기는 작가든 지망생이든 또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한번 쯤 들어둘만한 글쓰기에 대한 이해와 고민들을 압축해 놓았다. 물론, 뼈아픈 창작의 고통은 가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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