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2만리 1 - 개정판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2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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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 고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집에 굴러다니고 있는 이 책을 집어들고는 이틀만에 독파했다. 1,2권 합해 700페이지 가량되니까 꽤나 장편인데 소설 줄거리 자체도 흥미진진하지만 쥘베른의 박물학 지식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마 이책에 언급된 바다생물의 종류가 족히 1000종은 될텐데, 이 생물들의 분류는 물론, 과거 역사적 에피소드까지 줄줄이 꿰고 있는데 입을 딱 벌릴 수 밖에 없다.  

책을 읽다보면 제주도 앞바다에 잠수정을 타고 바다속을 들여다보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대왕오징어, 향유고래, 크라켄 등 바다괴물들과 싸우는 장면도 생생하다. 바다해양에 대한 지식은 물론, 노틸러스호를 타고 전세계 2만 해리를 돌면서 마주치는 각 지역의 식생에 대해서도 상세히 소개돼 있다. 소설이 아니라 박물지 같은 느낌이 든다.  

 19세기 유럽은 세계로 팽창하는 제국주의 시대였고, 이국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대중적 호기심이 상상이상이었던 것 같다. 자연과학, 지질학, 생물학 등을 아우르는  쥘 베른의 저작이 인기를 끌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덧붙여 이 책을 번역한 역자에 박수를 보낸다. 그 천여종이 넘었을 다양한 생물들을 일일이 번역해내기 쉽지 않은 작업일텐데, 200개에 가까운 역주로 책에 등장하는 각종 인물과 지리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읽는 내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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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경제 - 금융위기와 한국경제
유종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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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획회의 최근호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세계적 금융회사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된 금융위기가 6개월을 넘어서면서 세계 경제질서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금융자본주의의 총아로 각광받던 투자은행(Investment Bank)과 헤지펀드들이 줄줄이 붕괴되고 실물경제 전반에 디레버리지(신용수축)와 수요감소에 따른 경기침체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금융위기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치유될 것이라는 낙관론은 자취를 감췄고, 사회주의적 해법인 은행 국유화가 신자유주의의 본고장인 미국과 영국에서 유력한 해법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상도 아이러니다.
 1970년대 중반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와 가치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는 이 대 혼란기를 어떻게 봐야할 것인지, 신자유주의가 붕괴하고, 이를 대체할 경제질서가 도래할 것인지 등의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최근의 경제위기의 개요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2차 대전이후 기축통화인 미 달러화가 베트남전과 오일쇼크 등으로 발행이 늘어나면서 가치가 하락한다. 미 행정부는 달러를 일정량의 금으로 바꿔주도록 한 금태환 체제를 정지한다. 이후 전세계적으로 통화가 실물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경제체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화폐를 대거 발행하면서 신용팽창이 빚어졌고, 여기에 규제완화가 금융버블을 키웠다.  

 실물경제 지원이 본연의 역할이던 금융이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가 되면서 문제점은 증폭됐다. 거품들은 주기적으로 가라앉았다가 부풀어오르는 과정을 반복했다. 모든 기업의 가치가 주가에 의해 평가되는 산업의 '증권화'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금융이 실물경제를 짓누르고 왜곡하는 현상이 보편화됐다.
 이런 과정에서 부동산 대출채권을 증권처럼 사고 팔던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부동산 가격하락으로 급격히 부실화됐다. 세계를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어놓은 금융의 세계화 때문에 미국에서 발생한 부실이 복잡한 회로를 타고 전 세계로 번졌고, 이는 금융의 파산은 물론 실물경제의 위기까지 초래했다. 부동산과 주식같은 자산(資産)들의 가치가 반토막나는 등 빚으로 빚어낸 금융의 세계화는 종막에 다다르고 있는 중이다.

 최근 출판가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서와 경제 대안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현재의 경제질서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돼 왔는지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책들이 아무래도 무게감을 갖고 있다. 전후 세계질서가 미국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전개돼 왔던 만큼 불가피한 점이 있다.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대안을 다룬 책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래를 말하다>(폴 크루그먼 지음, 현대경제연구원)와 <슈퍼자본주의>(로버트 라이시 지음, 김영사)다. 두 책 모두 2007년에 출간됐고, 국내에 지난해 소개됐지만 미국과 세계가 당면한 위기에 대한 통찰력있는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은 ‘뉴딜’을 시대구분의 기준으로 삼아 미국 현대사를 재해석한다. 경제학자인 크루그먼이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놀랍게도 정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이 완화됐던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를 회고한 뒤 보수파들이 보수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유포시키고 종교세력과 인종주의 세력을 동원해 권력을 장악하는지를 파헤친다. 아울러 사회적 양극화를 핵심으로 하는 미국사회의 문제를 풀기 위해 케인즈주의적 처방, 즉 의료제도 개혁, 감세정책 폐기, 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법제정 등을 제안한다.  
  <미래를 말하다>는 정권이나 연방의회권력의 변화, 즉 정치적 역학관계의 변화가 소득불평등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을 논증함으로써 한때 밀려났던 것처럼 보이던 정치경제학적 방법론이 현 경제위기의 본질을 해석하는 데 유력한 방식임을 보여준다. 또 진보적 가치가 여전히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책은 미국에 진단과 분석, 대안을 담은 책이지만 ‘미국의 실패’를 답습하려는 우리 현실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라이시의 <슈퍼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침식해 들어가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국면을 지배하게 된 현상을 ‘슈퍼자본주의'라 정의한다. 라이시는 레이건의 탈규제, 신기술의 발달, 세계화 현상 때문만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힘을 잃은 대신 투자자와 소비자로서의 권리만 중시하게 된 우리들 자신도 슈퍼자본주의의 ‘공모자’임을 지적하고 있다.
 냉전구도속에서 정부가 개발한 신기술들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활용되면서 기업들간의 경쟁이 더 치열해졌고, 권력이 소비자와 투자자들로 이동하면서 자본주의의 힘이 강력해져 민주주의를 갉아먹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불공평하고 잔인한 과정이기도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은 우리 대부분의 안에 두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와 투자자로서 우리는 더 좋은 거래를 원한다. 그러나 시민으로서 우리는 그런 거래에서 비롯되는 많은 사회적 결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는 균형의 수단이 없다. 대개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우리의 욕망이 우세를 보인다. 시민으로서의 우리의 가치관은 사실상 적절한 표현 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30쪽)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라이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간에 경계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제의 규칙을 만들어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침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기업의 영향력을 줄이고, 기업이 게임의 규칙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라이시는 지적한다. 기업을 의인화시켜 사람들의 권리와 의무를 빼앗는 것을 막아야 시민의 가치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의 두책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에 대한 고찰과 대안제시에 초점을 맞췄다면 <뉴캐피탈리즘>(리처드 세넷, 위즈덤하우스)은 신자유주의 이후 노동과 사회가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다루고 있다.
 세넷에 따르면 막스 베버의 관료제적 질서하에서 자신의 노동과 삶을 '서사'적으로 구성할 수 있었던 노동자들의 삶은 신자유주의의 등장이후 불확실성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됐다. 관료제 혹은 피라미드식 공장질서 속에서 등장했던 ‘장인’적 노동자상은 주변적인 것으로 밀려나고, 대신 맥킨지의 컨설턴트 직원들처럼 다방면에 흥미를 보이지만 결코 담아두지 않는 인간형이 요구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한다. 전원이 공급되는 동안에만 데이터를 기억하는 ‘디램’식의 재능이 우월적인 인재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회사경영 자체보다 자신의 투자수익에만 관심을 갖는 주주들이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주주가치 확산, 합병과 구조조정 등이 활발해지는 금융우위의 자본주의 질서구축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세넷은 범위를 넓혀 현대의 정당들이 왜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있고, 특히 진보정치에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원인에 대해 영국의 신노동당 사례를 통한 분석을 시도한다.
 <뉴캐피탈리즘>은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노동이 어떻게 해체돼 가는지를 독창적인 분석틀을 통해 보여주고 있지만 대안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안을 열망하는 독자들에겐 결말부분이 다소 아쉽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 책의 미덕은 노동소외 현상에 대한 통찰력있는 분석에 있다. 

  최근 흐름중 하나는 '미네르바'로 대표되는 인터넷 경제논객들이 온라인을 벗어나 오프라인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중서점엔 <똑똑한 돈>, <공황전야> 등이 나와 있다.  <똑똑한 돈>(나선, 이명로. 한빛비즈)은 현대경제의 위기는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 신용화폐에 의한 신용팽창과 수축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다음 아고라 등에서 명성을 쌓아온 저자들은 신용팽창과 수축의 메커니즘은 금본위제가 복원되지 않는 한, 그리고 중앙은행에 의한 신용화폐 제도가 존속하는 한 무한히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특히 이들은 디플레이션이 인류 역사의 후퇴가 아니라, 지난 20년간의 통화정책의 실패가 반영된 결과이며 모든 곳에서 가격이 제대로 평가돼 가는 과정이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이 책은 대안서라기 보다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시스템에 관한 이해를 돕는 교재적 성격이 강하다. 경제위기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될지, 이런 혼란속에서 자신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등 실용적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면 읽어볼 필요가 있다.
 <공황전야>(서지우, 지안)는 한국경제가 전세계 금융위기에 쉽게 휩쓸리게 된 원인에 대한 본격적인 진단을 시도한다. 공학도 출신의 인터넷 논객인 저자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후 한국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이 왜 유독 불안한 흐름을 보였는지에 대해 학자나 금융전문가 이상으로 정밀한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이후 국내 은행들에 의해 시도된 무분별한 자산 부풀리기가 금융시장의 출렁임을 키웠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언론보도에서 등장하는 알쏭달쏭한 용어들, 예를 들면 신용부도스와프(CDS),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대해서도 간결한 설명을 담고 있다. 저자는 해법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대폭 올려 은행들이 자본을 자연스럽게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위기의 경제>(유종일, 생각의 나무)는 대표적인 현실참여파 경제학자인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전세계 금융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문제점,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민주화 방안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는 현재의 위기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규제완화나 감세가 아니라 경제민주화를 이뤄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회의 평등을 심화시키고, 자원이 효과적으로 배분되도록 재벌과 정부개혁을 추진해야 하고 필요한 규제는 하되 투명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성장을 위해 분배를 희생하고 안정을 해쳐 위기를 재생산하는 일을 막기 위해 경제민주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책의 미덕은 성장지상주의로 치닫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대안을 일목요연하고 간명하게 제시한데 있다. 앞서 다룬 <미래를 말하다>에서 폴 크루그먼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 즉 ‘문제는 정치에 있다’는 인식을 저자가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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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계급사회 우리시대의 논리 11
손낙구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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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라는 괴물이 전세계 경제를 습격하면서 몇 년 간 호황을 누리던 글로벌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의 외환시장은 전쟁시기  환율을 방불케 할 정도의 급변동을 보이고 있고 연내 3,000포인트를 찍을 거라던 이명박 대통령의 호언과 달리 주식시장도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첨단금융의 전위대들인 투자은행InvestmentBank들이 줄도산을 하자 정부가 재정을 들여 이들을 ‘국영화’하는 아이러니도 등장하고 있다. ‘시장에 의한 규제를 죽기보다  싫어하고, 정부의 규제는 악의  근원’처럼 여기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의 기운이 뚜렷해지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곧바로 나타나 세계 경제질서를 바꿀 것이란 기대는 아직 어렵다. 

 이런 현상을 ‘강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볼 처지는 아니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의 금융시장이 미국에 철저하게 종속돼 있어 태평양 건너 벌어지는 이벤트들을  하루하루 조마조마하며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이런 외부 요인  외에 내적으로도 여러 문제에 짓눌려 있다. ‘경제살리기’의 구호를 내걸고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정부와 경제팀이 우리 경제를 빈사상태로 몰아가고 있는것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명박 정부 경제팀은 개발파시즘과 신자유주의의 나쁜 면만  섞어놓은 정책들을 잇따라 구사하면서 우리 경제를 나락으로 몰고 있다. 정권초기 인위적으로 원화가치를 떨어뜨리며 환율폭등을 초래했고 그 파장이 세계적인 유가와 곡물가격 상승추세와 맞물리면서 물가폭등, 내수침체 등의 후폭풍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의 핵심원리는 수출 대기업과  부유층이 잘되면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떡고물이 돌아간다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낙수 또는 적하효과라고도 한다) ’이다. 하지만 이는 외국에서 이미 현실에 맞지 않아 폐기되다시피 한 정책이다. 오히려 지금은 소비성향이 높은 서민들이 경제활력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할 상황이라는 게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생각이다. 

 정부의 잇단 정책오류와 바깥에서 불어오는 금융위기 폭풍이 한국경제의 앞날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시중 서점에는 한국경제를 진단하는  서적들이 적지 않게 나와 있다. 『거짓말 경제학』(최용식 지음,  오푸스)과 『대한민국 경제 빈곤의 카운트 다운』(김재인 지음, 서해문집)도 한국경제가 처한 현실을 출발점으로 하는 책들이다. 

『거짓말 경제학』은 “MB노믹스부터 ‘나쁜 사마리아인들’까지  성장의 가면을 쓴 구라 경제학 전격해부”라는 도발적인 부제를 달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환율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출발, 현재 한국경제가 당면한 위기의 징후들을 소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저자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 말고도 사실은 세 차례의 알려지지 않은 외환위기가 있었다는 점 등은 눈길을 끄는 대목들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시도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우석훈 박사에 대한 비판은 부제만큼 강렬하지만 정연하지는  못하다.
 

 예를 들면, 장 교수가 1950년대 이후 유럽의 복지국가를 ‘자본주의 황금시대’라고 표현한 것을 비판한 대목(69쪽)은 납득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 표현을 두고 “(장 교수가) ‘국가개입주의의 성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과학자로서 할  일이 아니다. 정치적 혹은  이념적 선동가나  할 일”이라고 비판한다.  국가 개입주의가  실제로 1960년대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는 점에 대해 치밀한 논거를 들어 반론을  제시하지는 않고 장 교수의 어휘 선택만을 비판하는 격이어서 당혹스럽다. 

 저자는 또 신자유주의에 대한 장 교수의 비판을 반박하면서 “최근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사민주의를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으로 전환했다”(61쪽)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독일과 프랑스의 복지지출은 여전히  영·미형 국가들에 비해 현격하게 높고, 사르코지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금융자본주의의 실패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과다한 복지지출을 효율적으로 ‘미세조정’한 사례이지 국가 운영방식이 신자유주의로 쏠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웬만한 독자들이라면 아는  내용들이다(사실 이 문제만 놓고도 책 한 권 분량의 해설이 필요할 것이다).
 

 우석훈 박사에 대한 비판도 독자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저자는  우 박사의 책들이 신자유주의를 배척하자는 단순한 명제를 위해 다양한 소재들을  이 책(『88만원세대』)에 담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의 흥미를 끌만한소재들을 끌어모았을 뿐이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 소재들은 인기영합주의의 산물에 불과하다”(87쪽)고 비판했다. 하지만 우 교수의 책들이 왜 인기 영합주의인지를 논증하고 있지 않다. 국내  경제학자의 절대다수가 미국박사인 현실에서 우 박사는 드물게 유럽형 경제학(본인은 생태경제학이라고 부른다)을 공부해 딱딱한 수치와 원론적 설명에 신물이 난 독자들에게 ‘경제학적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우 박사는 『88만원 세대』에서 한국경제는 계층간 양극화의 문제 외에도 개발독재 시대 경제성장의 수혜를 입은 4-50대 세대와 그렇지 못한  1-20대 세대간의 양극화라는 특별한 현상에 주목했던 것인데, 저자는 우 박사에게 “경제학자라면 당연히 아일랜드가 어떻게 성공을 거뒀는지를 연구해서 불안감과 절망감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위안시켜주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89쪽)라고 연목구어緣木求魚식 지적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 빈곤의 카운트 다운』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미국의 몰락, 석유에 의존해온 글로벌 경제의 어두운 미래가 한국 경제와 우리의 삶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를 차분하게 정리했다. 경제성장의 잠재력마저 훼손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오류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의 대안으로 제시한 몇 가지 대목은 의문을 갖게 한다. 저자는 북한을 이야기하며 자원전쟁 시대에 자원매장량이풍부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경쟁력을  갖춘 노동력과 대륙 전진기지로서 지리적 위치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남북간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은 대공황 이후 1930년대 일본 군국주의의 만주진출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약탈적 성격이 강한  신자유주의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국내에서  축적위기에 몰린 자본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북한을 경략해야 한다는 제국주의 논리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논리모순을 범하고 있다. 

 마지막 단원인 ‘희망 잃은 자들을 위한 마지막 나침반’도 한국경제의 위기해소를 위해 각기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반성하고 대의를 위해 소아를 희생해야 한다는  ‘경제도덕론’을 펴고 있다.
“치과의사들은 우리나라 중산층마저도 선택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임플란트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부를 확대하고 이를 해외 휴양지와 유학용  아파트에 쏟아부을 것인지, 아니면 이가 없어 한평생 고통받을 이웃들에게 씹는 행복을 전해주는 진정한 의사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225쪽)

 이윤추구를 당연시하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삶의 작동방식을 생각한다면 이런 당위론적인 해법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막가파식 정책운용 하에서 살아가는 독자들은 좀더 총체적이고 정밀한 대안을  열망한다. 노무현 정부의 집권 5년이 좌파에 대한 혐오감을 키웠지만 지금 국면은  다시 좌파의 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시민+복지  기획위원회가 엮어낸 『한국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산책자)은 주목할만한 기획으로 평가된다. 특히 조세 및 재정정책, 건강보험 문제 등 복지국가와  관련한 의제들에서 좌파의 약점이었던 ‘디테일의 부족’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공동저자인 이상이, 정세은은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재정 및 조세개혁의 모색’에서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돈의 문제’에 대해 해법을 제시한다.  그의 해법은 국민의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와 동맹을 역사적으로 형성해나가는 복지국가 전략을 위해  ‘선 복지 확충, 후 조세개혁’을 제안하고 이를 위해 상당기간 적자재정 편성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진보진영이 그간 복지국가의  실현을 주장해왔지만 ‘돈의  문제’에서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구호에 힘과 지지를 싣지  못했던 점을 감안할 때 이런 논거는 좀더 논의를 발전시켜야 할 대목들이다.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과 부동산 세제 완화  등 이명박 정부의 ‘토건국가’적 본색이  점차 노골화하는 가운데 『부동산계급사회』(손낙구 지음, 후마니타스)도  일독이 필요한 책이다.
민주노동당에서 심상정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던 저자가 한국경제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와 부동산이 한국경제를 어떻게 위기에 빠뜨렸고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갈라놨는지를 방대한 통계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정부가 주거복지  비용을 민간 건설업체에 떠넘기고 민간 건설업체는 분양가를 높여 결국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한국형  아파트 분양제도’의 왜곡된 주거복지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 부동산 정책 전반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을 구체적인 통계와 함께 배울 수 있다.
 

※이글은 기획회의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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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8-10-31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노이에자이트 2008-10-3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서평으로 미루어 보면 최용식씨는 반 뉴딜파 비슷한데요.요즘 이상돈 씨도 뉴딜 비판을 열심히 하던데...그런데 이런 학자들은 경제위기의 원인을 무조건 "자유시장경제론을 신봉하지 않고 정부가 규제를 많이 해서 그렇다"고 단정하더라구요.

아지 2008-10-31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어쨌건 현재의 금융위기는 시장의 실패라고 보는게 대세이니까요.
 
괴물의 탄생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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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글쎄. 생각보다 그저그랬다. 그만큼 우석훈의 책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일까. 책을 덮은 후에도 '머 이런 정도'라는 느낌외에 묵직한 울림이 없다. 사실 그의 다른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한번씩 해왔던 이야기들을 종합해 놓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기대를 걸었던 대목은 정부와 시장의 간극을 메워줄 수 있는 비공식경제, 혹은 '제3부문'였는데, 맛뵈기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그의 후속작을 기대하거나 아니면 그의 화두를 넘겨받는 누군가가(혹은 우리가) 완결지어야 하는 '현재진행형'의 숙제일 것이다.(책 한권에서 100% 해법을 구하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 수 있겠다)

 하긴 하나의 사안에 대한 예리한 문제제기와 분석, 그리고 해법제시까지 알아서 다해주는 'XX카 서비스보험'같은 책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의 책을 읽으며 인문학, 특히 예술과 경제학을 이렇게 잘 버무릴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괴물의 탄생'을 읽으면서 또 들었다. 계량경제학(맞나)과 미국유학파가 학계와 관계를 주름잡고 있는(심지어 진보학계까지) 경제학계(사실 모든 학문이 그렇게 못쓰게 되고 있는거 아닌가)에서 유럽이 대안일 수 있다는 생각을 얼핏얼핏해보긴 하지만 넘 멀고 잘 모르는게 현실 아닌다. 그런 점에서도 이 책은 충분히 들여다 봐야 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암튼 재밌었다. (재미로만 그리고 명랑으로만 끝나선 주제가 넘 무겁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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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8-10-07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은 것만으로 뿌듯해하며...기대기대 하고 있었는데 ^^;; 여튼, 아지님 눈높이가 좀 높은거 아님까. 그래도 추천 눌러드리는 건, 서재 오픈 겸사겸사 ㅎㅎ (근데, 마눌 동원해서 호객을 하셔도 되는검까..ㅋㅋ)
 
박치기 - 할인행사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 사와지리 에리카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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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박치기를 처음 본 것은 2004년 겨울 무렵 일본 도쿄의 유라쿠쵸(有樂町)의 영화가에 있는 시네콰논에서였다. 그 전에 가끔씩 만나던 일본신문 기자가 내게 "박치기란 영화가 나왔는데 재일조선인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길래 관심이 갔다.

 당시엔 연예계에 진출한 재일조선인들에 대해 흥미를 갖던 때다. 가수 소닌이 성선임이란 동포(조총련계 고교까지 나왔다고 함)였고 일본 방송계의 대모격인 와다아키코(和田明子)가 김정일의 처 고영희와 단짝동무였고, 올리비아 핫세와 결혼했던 후세 아키라(2005년 홍백에서 ‘소년이여"라는 노래를 불렀음), 심지어 기무라 타쿠야도 한국계라는 구전을 접하면서 일본사회에서 ’재일‘의 자취를 더듬던 때였다. 도쿄대 강상중교수의 자전적 에세이인 ’재일(在日)‘도 그즈음 읽던 참이었다.

 일본기자와 만난 며칠뒤 아사히 신문 광고란에 큼지막하게 ’박치기‘에 대한 강상중 교수의 추천사가 실린 것을 보고는 바로 극장으로 향했다. 시네콰논 극장을 들어서자 눈에 띄는 것은 50대 안팎으로 보이는 중년관객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당시 엄청난 인기그룹이었던 ’더 포크 크루세더즈"의 배경음악 등이 그들 분위기에 딱이었다. 사실 관객들의 거의 대부분이 그 연배였다. 일본은 최근 20~30대 관객들이 별로 없고 대부분 50대 관객들이 많다고 한다. 영화는 이런 점을 겨냥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기대만큼 재미있었다. 극장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도 적당한 효과음으로까지 들릴 정도였다. 

장면과 가사 하나하나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위트와 감동, 그리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재일조선인들이 적지나 다름없던 곳에서 살아오면서 쌓아간 방어본능이 체육선생의 "너희들은 죽는 각오로 해라"는 구령으로 나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경자가 코스케에게 "조선사람이 될 수 있겠냐"고 한 질문은 오히려 당시 상황에선 "동포2세"의 힘있는 자기표현(1세들에겐 찾아보기 어려운)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또 눈에 띈 것은 조선고 학생들의 끈끈한 우애였다. 처음에 여학생이 봉변을 당하자 전교생이 몰려오는 장면은 그 자체가 만화스럽기까지 한 코믹장면이지만 마스크 여학생(강자)가 옥상위에서 진로문제를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볼링장에서 강자와 재덕, 방호가 나누던 대수롭지 않은 대화속에서도 형제처럼 서로 아끼는 마음들이 녹아있음을 엿볼 수 있다. 안성이 포경수술한 방호에게 딸기를 먹이기 위해 공중전화를 터는 장면도 엽기스럽지만 북송을 앞두고 한 형제나 다름없는 친구를 향한 마음이 느껴진다. 방호가 포경수술을 한 뒤 안성의 엄마한테 보여주는 장면도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함께 의지하며 견뎌낸 재일조선인들의 공동체적 분위기를 풍긴다. 실제로 조선학교는 초중고 일관제 학교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10년이상 같이 지낸다고 한다. 우애가 남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 조연들은 ‘혁명의 이상’이 사람들을 달뜨게 만들던 당시 분위기를 생동감있게 전달해준다. 짤릴 걸 각오하고 상급자를 두들겨 패면서까지 청취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틀고 마는 '좌파' 라디오 PD, ‘혁명적"이란 단어가 늘 입에 붙은 모택동주의 고교교사, 어느 영웅적인 투쟁에 참가했다는 거짓말에 방호일행을 보는 시선이 존경의 눈빛으로 바뀌던 좌익학생 시위대의 표정, 자유와 해방을 느껴보려 스웨덴까지 다녀온 뒤 히피가 된 술집 종업원…. 좌파가 풍미하던 일본내에서도 가장 공산당세가 셌던 교토에서 있었을 법한 캐릭터들이다.

영화는 밑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재일동포들의 모습에도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전체적인 톤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간결하게 처리한다. 재덕의 장례식 신에서 재일조선인들의 고단했던 삶에 대한 반추장면이 나오지만 더 나가지 않고 이 장면을 마지막 반전의 모티브로 삼는 자제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재일동포들을 무심하게 비추고 지나간 장면들이 뇌리속에서 재구성되면서 "그들이 이렇게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한번씩 하게 만든다.

영화에서 일본인 배우들의 한국말 솜씨는 형편없고 어색하지만 그 판단도 우리기준일지도 모른다. 실제 재일조선인들도 별로 더 잘하지도 못한다. 나서부터 모국어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여왔던 그들에게 한국은 모른척 했고 북한이 오히려 교육자금을 댔던 역사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북한식 발음과 어법은 그들의 탓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호쾌한 폭력신(더러는 지나친 장면도 있지만)과 주옥같은 음악, 청춘배우들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청춘이 그 자체로 아름다움‘임을 웅변하고 있다. 조연과 단역들의 연기도 흠잡을데 없다. 한 시대를 아름답게 추억하는데 더할 나위없는 영화다. 다만 영화에서 군데군데 드러나듯 한국과 일본, 북한의 관계, 재일조선인들의 문제는 당시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는 현재진행형이란 점에서 한번 보고 잊어버릴 영화는 아닌 것 같다. 

PS : 영화에 흐르는 자 포크루세다즈(The Four Crusaders)의 노래중에 'あのすばらしい愛をもういちど(아노 스바라시이 아이오 모오 이찌도)'란 노래는 일본의 교과서에도 실려있다고 한다. 한번쯤 들어보시면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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