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바다는 왜? - 대한민국 IT는 왜 세계적인 스타를 만들지 못하는가
김태훈.양정환 지음 / 현실문화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랜선’으로 불리는 광통신망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의 어느날. 사무실 동료를 통해 ‘소리바다’라는 사이트를 알게 됐다. 자신이 보유한 파일을 인터넷을 통해 주고받는 P2P방식의 이 서비스에 흠뻑 빠져 며칠동안 밤낮으로 음악을 다운받던 기억이 새롭다.   2000년 5월 등장한 소리바다는 4개월 만에 가입자가 75만명, 이듬해에는 600만명, 3년만에 2000만명을 기록했다. 음반이 절판돼 유통되지 않는 음악, 제3세계 음악 등 기존의 유통망에선 구할 수 없는 음악을 소리바다를 통해 공유하게 되자 네티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소리바다는 그저 평범한 인터넷 음악서비스의 하나일 뿐이다. 지난 10년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리바다는 왜?>(현실문화)는 이 과정을 추적한다.  P2P서비스는 대중들에게는 환영받지만 음반제작자들과 저작권자들에게는 용서못할 존재였다. 이들은 소리바다를 불법 서비스라며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법정공방을 포함해 집요하게 몰아붙였다. 네티즌들이 소리바다를 옹호하기 위해 뭉쳤고, 소리바다도 권리자들과의 상생방안을 찾아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 음악서비스 시장은 거대 이동통신사들의 승자독식을 위한 장으로 변질됐다. 정부도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규칙을 만들면서 소리바다를 규제했다.  소리바다가 추진해왔던 서비스 혁신은 결국 좌초됐다. 세계시장을 목표로 삼성전자와 함께 추진하려 했던 모바일 전용 음악서비스 사업은 2007년 10월 서울고법의 ‘소리바다5’ 서비스 중단 판결로 접어야 했다. 한달 뒤 노키아가 거의 같은 서비스를 ‘컴즈위드뮤직’이란 이름으로 출시해 유럽 시장을 장악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범정부 차원의 지원으로 한국은 세계최고 수준의 초고속통신망을 갖췄고, 이를 기반으로 혁신적인 인터넷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소리바다의 좌절이 보여주듯 국내 디지털 콘텐츠 사업은 활력을 잃어갔다. 이동통신사와 몇몇 대기업들이 수익 극대화를 위해 중소기업과의 경쟁을 차단하고, 소비자들에게 불합리한 서비스를 강요하면서 변화의 싹을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디지털 콘텐츠는 통신망이 아니면 유통되기 힘든 상황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진 망 사업자들이 콘텐츠를 팔도록 하는 불공정 행위마저 허용됐다. 이통사들은 심지어 벨소리와 통화 연결음 같은 자잘한 사업까지 싹쓸이하며 국내 모바일 생태계를 고사시켰다. 이런 환경에서 중소벤처기업이 창의력과 아이디어로 승부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소리바다를 둘러싼 일련의 분쟁 과정을 다룬 이 책은 우리나라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일그러진 과거를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 이 책 후반부에 실린 소리바다 양정환 대표의 지적은 음미할 만 하다.  “미국은 냅스터가 사라진 이후에도 구글이라는 걸출한 서비스가 등장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혁신 서비스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네이버 이후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취약하다. 모바일이든 인터넷이든 대기업이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어 중소기업과 개인 개발자들에게까지 기회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켓 3.0 - 모든 것을 바꾸어놓을 새로운 시장의 도래
필립 코틀러 지음, 안진환 옮김 / 타임비즈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아웃도어 신발과 의류를 생산하는 팀버랜드는 모든 제품에 성분을 기록한 라벨을 부착한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생산됐는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의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소비재 생산 다국적 기업인 프록터 앤드 갬블(P&G)은 물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저소득 주민들에게 식수정화용 분말을 봉지단위로 싸게 판매한다. 한 봉지 사면 10ℓ의 물을 정화해 마실 수 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다농푸즈는 ‘한 컵의 요구르트로 세상을 구하자’는 취지로 저렴한 유제품을 만들어 빈민들에게 공급한다. 공정무역, 환경경영의 아이콘이었던 영국기업 바디샵은 빈곤국의 농산물을 제값을 주고 사들여 제품을 만든다.


 이들 기업은 ‘사회적 비지니스 기업’으로 분류된다. 사회와 인간, 문화, 환경에 대한 보호와 공존의 책임을 소비자와 함께 짊어지는 것을 핵심가치로 삼는다. 이런 기업들이 주류가 되는 시대를 마케팅 분야의 석학 필립 코틀러는 ‘시장 3.0’으로 정의한다.


 코틀러의 <마켓 3.0>(타임비즈)은 시장 3.0시대의 기업경영은 뿌리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우선 소비자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와 네트워크의 성장으로 기업의 제품과 평판을 더욱 쉽게 간파하게 됐다. 기업 광고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 보다는 동료 소비자들의 경험과 견해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저렴한 컴퓨터와 휴대전화, 저비용 인터넷, 오픈소스 등의 기술이 이런 변화를 추동했다.


 시장 1.0시대는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기만 하면 팔렸고, 시장 2.0시대엔 물건을 팔아 남은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조금 돌려줬다. 하지만 3.0시대에는 소비자의 영혼에 호소하는 진정성 있는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게 코틀러의 메시지다. 예를 들어 말로만 환경을 앞세우며 폐기물 처리를 소홀히하는 기업들은 시장 3.0시대에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제품의 사용가치는 물론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외면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존경과 청렴을 핵심가치로 내세우면서 속으론 회계부정을 저지른 엔론은 망했고, 반 환경기업의 대명사인 듀폰은 소비자의 냉대를 계기로 환골탈태했다. 기업도 기업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맞추려는 능동성이 요청된다.


 코틀러가 제시한 기준으로 우리 기업들을 본다면? 삼성의 홈페이지엔 ‘사람과 환경을 존중하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실천합니다’라는 글귀가 쓰여있다. 하지만 수십년째 노조결성을 막고,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집단 백혈병 사태를 은폐하는 ‘표리부동’으로 치면 3.0은 커녕 2.0에도 미달하지 않을까. 소비자의 눈을 속이거나 하청업체의 팔을 꺾다가도 연말만 되면 작업복 차림으로 달동네에서 연탄을 나르는 기업, 수출품과 내수품을 다르게 만들어 국내 소비자를 차별하는 기업들을 보며 이건 좀 아니다 싶다가도 “기업이 원래 저렇지”라고 체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성찰해 보려는 기업인들도 보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단의 경제학 - 성장과 안정의 이분법을 넘어
조지프 스티글리츠 외 지음, 노승영 옮김 / 시대의창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미셸 캉드쉬. 한국인을 트라우마에 휩싸이게 하는 이름이다. 국가 부도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1997년 캉드쉬 총재는 한국에 초긴축 정책과 구조조정 등 감내하기 힘든 조건들을 요구했다. 연 20%대의 살인적인 고금리에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대량해고 사태를 몰고 왔다. IMF의 처방에 대해 당시에도 가혹하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캉드쉬 총재와 협상했던 임창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우리나라는 물가가 안정돼 있고 재정도 건전해 고금리 정책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호소했지만, 캉드쉬는 “고금리 정책은 IMF의 전통적 처방이라 뺄 수 없다”며 강경입장을 보였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6월초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가 “당시 어떤 실수가 없었다고 말하지 않겠다”며 한국 외환위기 당시 IMF의 정책에 일부 잘못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캉드쉬가 IMF 총재로 있을 때 한국에 외환위기가 왔으며 당시 IMF는 일방적인 룰을 일괄적으로 적용하고 초긴축 정책을 취해 한국 국민이 많이 어려웠다”고 지적한 데 대한 화답인 셈이다.


 어려움에 처한 개발도상국에 IMF가 구제금융을 해주는 대가로 내세운 경제정책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위기를 촉발시키며 경기침체를 불러왔다는 비판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낮은 인플레이션과 긴축재정, 민영화와 자유화를 강조한다. 급전을 받는 나라들은 경제체질을 바꿔야 한다. IMF 구제금융 이후 한국사회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는 경제관료와 학계 전반에 걸쳐 경제철칙으로 군림해왔다. 구제금융 직후의 처방에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경제정책에 대해 체계적인 반론을 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이단의 경제학>(시대의창)은 워싱턴 컨센서스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경제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2000년대 중반 정책대화구상(IPD)을 결성해 수년간 진행한 논의 결과를 정리한 책이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와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사무차장, 리카르도 프렌치-데이비스 칠레대학교 교수 등이 참여했다.


 책에는 기자가 가져왔던 통념을 뒤집는 대목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재정적자를 줄이면 투자가 늘어나 경제의 활력이 회복된다’는 통설이 개발도상국에서 효과를 발휘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특히 금리인상론을 ‘보수파들이 인플레이션 위협에 대처하는 상투적인 정책’으로 규정한 대목은 충격이다. 6월 한국사회에서 금리인상론자들은 개혁진영이고, 보수진영이 금리동결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만저만한 인식의 착종(錯綜)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모범답안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 책은 경제정책 수행과정에서 대화와 소통을 주문한다. ‘장기적인 사회후생을 공평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극대화하는’ 경제의 본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주체들과의 협치(協治)가 중요함을 일깨운다. 이 책에 비춰본다면 본다면 4대강 사업 등을 의견수렴없이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부하에서 ‘경제정책’이라고 할만한 행위는 없는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루이코노미 - 저탄소 녹색성장의 미래
군터 파울리 지음, 이은주.최무길 옮김 / 가교(가교출판)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환경위기 시대에 대안모델로 제시되는 ‘녹색산업’이 미덥지 않은 것은 생산과 소비, 소비 이후의 전 과정에서 지속 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화학세제를 대체하기 위해 야자유 지방산으로 개발된 생분해성 세제를 보자. 이 세제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인도네시아의 광활한 열대우림이 야자수 농장으로 바뀌면서 오랑우탄의 서식지가 파괴됐다. 녹색산업은 또 환경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기업에는 더 많은 투자를, 소비자에게는 더 많은 지불을 요구한다.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경기침체기에는 더 주목받기 힘들다.


 <블루 이코노미>(가교출판)를 쓴 저자 군터 파울리는 생분해성 세제를 생산하는 에코버에서 일하면서 산업계가 생태계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경제의 비효율적 사이클을 생태계의 논리에 따라 전환하려는 혁신사례들을 분석해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로마클럽 보고서로 채택되기도 한 <블루 이코노미>는 이런 혁신기술과 실천의 성과들이 생생하게 소개돼 있다.


 콜롬비아의 오리노코 강 서쪽의 가비오타스 지역은 황무지로 변한 사바나 지역이다. 쓸모없어 보이던 이 땅에 파울로 루가리는 카리브 소나무의 묘목을 균근균이 풍부한 묘포에 심었고, 그 결과 황무지가 숲이 우거진 비옥한 땅으로 변신했다. 부활한 우림지역에서 생산된 물은 수도 보고타의 부자들에게 비싼 가격에 공급된다. 


 얼룩말의 흰 줄무늬 위의 공기온도는 검은 줄무늬 위의 공기온도보다 낮다. 검은 줄무늬 위의 덥혀진 공기가 위로 상승하면서 아래쪽의 흰 줄무늬 위의 공기와 기압차이를 발생시키며 공기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천연 통풍장치로 표면온도가 10도가량 낮아진다. 일본 센다이의 사무용 건물 다이와 하우스는 이 얼룩말의 원리를 활용해 외벽을 검은색과 흰색으로 칠했다. 그 결과 여름철 건물 온도를 5도가량 낮춰 20%의 에너지 절감효과를 거뒀다.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 있는 10층 규모의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는 에어컨 대신 공기의 자연적 순환을 이용해 냉난방을 조절한다. 에너지 사용이나 복잡한 화학적 방법 없이 열기를 막고 신선한 공기를 실내로 들여오도록 하는 흰개미의 건축술을 응용한 것이다. 일본 규슈공업대학의 시라이 요시히토 교수 팀은 곰팡이균을 이용해 음식쓰레기에서 모은 전분에서 플라스틱 원료인 폴리락트산을 추출해냈다.


 인간은 화학적 방법을 쓰지만 생태계는 물리학을 활용한다. 파울리는 “물리학의 기본원리를 활용하면 압력과 온도, 수분함량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유전자 조작과는 비교할 수 없이 우아하고, 단순하며, 효율적인 생산물을 창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생태계의 원리를 활용해 지속 가능하면서도 이윤까지 창출할 수 있는 경제모델이 파울리가 말하는 블루 이코노미다.


 본문에서 소용돌이가 강물을 정화하는 원리를 서술한 대목은 국내 독자들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강물의 소용돌이를 통해 발생하는 압력은 물속 박테리아의 세포막을 파열하고 기포를 제거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물속 바이오매스가 무기질로 바뀌면서 물속이 정화된다. 소용돌이의 결과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강은 그래서 신선하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강을 직선으로 펴는 4대강 사업으로 우리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천연 수질정화 기능을 상실할 처지가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엔 다르다
케네스 로고프 & 카르멘 라인하트 지음, 박영란 외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2007년의 기억을 잠깐 떠올려보자.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어서자 증권사들은 한국증시가 1980년대 일본과 흡사한 대세 상승기를 맞았다는 등의 리포트를 쏟아내며 투자를 부추겼다. 한 자산운용사가 내놓은 펀드에 가입하려는 투자자들이 길게 줄을 서는 일도 드물지 않은 풍경이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회사들이 하나둘씩 파산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 IT 거품붕괴가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우려들도 조금씩 흘러나왔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낙관론에 묻혀 버렸다. 

금융위기는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의해 빚어진다. “이번엔 다르다”는 신드롬은 여기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역할을 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에도 이번엔 다르다는 논거들이 지배했다.

①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만하고 혁신적인 금융시스템과 가장 큰 자본시장을 갖고 있다 ②개발도상국들은 자신의 자금을 안전하게 투자할 장소를 찾는다 ③글로벌 금융통합으로 자본시장은 더욱 발전했고 각국 정부가 더 많은 부채를 조달할 수 있게 됐다 ④새로운 금융신상품들은 새로운 채무자들이 모기지(주택대출)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했다. 

하지만 이런 논거들은 미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면서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이후 투자은행이 자본금의 3배까지 빌릴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규제를 푸는 등 미 금융감독당국의 직무유기들이 확인됐다. 미국의 회계시스템이 불투명하다는 점들도 지적됐다. 그보다는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위험성이 뒤늦게 부각된 것에 불과하다.

1929년 대공황 이상으로 세계경제에 타격을 준 미국발 금융위기는 과다한 차입에 의해 쌓아올린 경제는 반드시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다는 진리를 재확인시켰다. 지속되는 경기 호황이 거품을 낳고, 낙관에 기초한 과도한 부채 증가가 금융위기로 이어진다. 하지만 금융전문가와 고위관료들은 늘 과거의 실수로부터 충분한 교훈을 얻었다고 강조하면서도 “지금의 호황은 과거와 달리 기술 진보와 훌륭한 기반 위에 세워졌고 구조개혁이 완성됐다”며 당대의 거품을 합리화한다.

금융위기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 특유의 산물이 아니라 은행이 처음 등장하던 13세기부터 세계사 곳곳에서 출몰해왔다. ‘이번엔 다르다’는 신드롬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위기의 장식물이다. 예를 들면 1929년 대공황 직전 미국의 한 신문광고에는 “1917년의 미시시피 버블과 같은 공황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투자하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와 카르멘 라인하트 메릴랜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800년간 66개 국가에서 일어났던 금융위기들을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입증한 책이 <이번엔 다르다>(다른세상)이다.

이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다. 금융위기에 대한 설명적 접근보다는 풍부하고 다양한 데이터들을 통해 지난 800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쓰여졌기 때문이다. 대신 금융전문가들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국가 채무 데이터 등 귀중한 자료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은 읽어둘 필요가 있다.  

저자인 로고프 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금융위기가 수년내 재발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며 “사람들의 기억속에 최근의 위기가 너무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사람들의 뇌리에 위기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10~15년쯤 후에는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