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에 다니는 처제가 준 오쿠다 히데오의 <무코다 이발소>(북로드). 한두장 넘기다가 다 봐버렸다. 홋카이도의 쇠락한 옛 탄광촌에서 벌어진 몇가지 에피소드를 엮어 이야기거리로 만드는 작가의 관록이 돋보인다. 

한때 탄광촌으로 번성했던 홋카이도의 시골마을 도마자와. 주인공 50대 남성 무코다는 도시의 광고회사에 다니다가 귀향한 뒤 가업인 이발소를 물려받아 25년째 운영하고 있다. 도시로 떠났던 아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귀촌을 해서 가업을 이어받겠다고 나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별로 변화가 없는 쇠락한 시골마을에 크고작은 사건들이 등장하면서 마을 주민들의 대응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중국인 신부과 40대 매력적인 술집 여주인이 등장하고, 영화촬영과 이곳 출신 청년이 사기사건을 일으켜 이곳으로 숨어드는 장면까지.

책을 읽다보면 '무라(村)사회'라고 불리는 일본 촌락공동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어렴풋이 그려진다.

인구가 얼마 안되는 시골이다 보니 주민들이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밖에 없는 '익명성 제로'의 사회. 게다가 변화나 외부의 자극이 거의 없다보니 조그만 일 갖고도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사생활 제로의 분위기가 싫은 이들이 한때 사람들을 피하면서 갈등을 키우기도 하지만 이내 중재자-이 소설에선 무코다-가 나타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해서 다시 사람들과 어울리며 서로 도와가며 즐겁게 늙어간다. '오이라쿠(老い楽)'의 세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 - 경제학자 김기원 유고집
김기원추모사업회 엮음, 김기원 지음 / 창비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의 유고집이다. 블로그 등을 통해 틈틈이 쓴 글을 지인들과 후학들이 책으로 냈다. 실제 책을 읽어보면 단순 블로그글이라고 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김교수의 혜안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그는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에 나타나는 타성적 사고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거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노동귀족’의 문제를 방치할 게 아니라 적극적인 해법을 모색하려는 그의 치열함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책 내용에서 참고할 만한 대목을 그대로 옮겨놓는다. 

(산별노조 왜 안되나)한국에서도 산업별 노조를 만들려고 오랫동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헛수고입니다. 이미 거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격차가 굳어진 상황에서 임금수준을 비슷하게 만드는 산업별노조를 거대기업 노동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요. 이는 노동자들이 석가, 공자같은 성인이 아닌 한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임금(복지)을 높여서 실질적인 생활격차를 줄이면 됩니다. 그러면 중소기업 노동자의 근속연수가 늘고 숙련도가 향상돼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거대기업과의 교섭력이 커지고 아예 세계시장을 사대로 사업을 벌일 수도 있지요. (40p)

2012년 일본에서 출간된 <북유럽모델>에서는 스웨덴과 일본을 비교하면서 스웨덴에서 고부담(고세율)이 가능했던 이유로 다음의 세가지를 제시합니다. 1)조세와 사회보장 시스템이 지방분권형으로 돼 있기 때문에 수익과 부담의 관계가 알기 쉽게 돼 있다. 2)복지는 고령층에 편중되지 않고 현역세대에도 혜택을 주는 구조로 돼 있다. 아동수당, 육아휴업급부, 실업수당 등 3)정치와 정부에 대한 신뢰감이 높다. (48p)

(사회적 신뢰)사회적 신뢰가 높으면 거래비용이 적게 듭니다. 거래비용이란 시장거래에 소요되는 비용, 즉 재화와 서비스의 직접적 가격이외의 비용을 의미합니다. 신뢰정도는 거래비용만이 아니라 복지사회의 작동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만약에 정부의 복지급여에만 기생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면 정부는 그 재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52p)

(타락한 직업윤리)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신자유주의 타령’이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를 논할 수 없던 1970년에도 비슷한 남영호 참사가 일어났으므로 신자유주의는 이런 참사의 필요조건이 아닙니다. 아울러 한국보다 신자유주의가 더 극성을 부리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은 걸 보면 신자유주의는 참사의 충분조건도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타령’ 대신에 오히려 타락한 직업윤리 문제를 따져보는게 더 의미있을 것입니다. (55p)

(경제독재 해법)우리사회의 경제독재에는 크게 노동측면과 자본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노동의 측면에서는 거대기업(공공부문 포함) 정규직이 집단적 지배력으로 중소기업 노동자 및 비정규직에 비해 부당하게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걸 말한다. 자본의 측면에서는 재벌체제 문제가 그 핵심이다. 재벌체제는 재벌 외부적으로는 재벌그룹이 중소기업을 포함해 나라(경제)를 갑의 지위에서 멋대로 주무르고, 재벌 내부적으로는 총수의 왕조적·세습적 독재체제를 지속하는 ‘이중적 독재체제’다. 재벌의 외부적 독재체제를 바로잡으려면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공정거래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대리점이나 하청업체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단체협상력을 제고하든가, 부당거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강화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복지강화도 포함된다. 사회적 복지가 강화돼야 중소기업 노동자의 근속연수가 늘어나 숙련도가 향상된다. 또 사회적 복지는 중소기업이 부당거래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66p)

(순환출자)만약에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지분이 외국자본에 넘어갈까 걱정되면 삼성의 경우처럼 우호적 회사를 찾으면 됩니다. 또는 국민연금이나 한국 기관투자가에 그 지분을 넘기면 되는 일입니다. 물론 이건 재벌에게 귀찮은 일입니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갖고 있으면 장차 총수의 황제경영에 제동을 걸 수도 있으니까요. 민주주의가 독재자에게 귀찮고 또 제동을 거는 세력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82p)

(한국노동귀족의 등장)바로 1987년 민주화시기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저는 민주화를 계기로 독재적 정치권력 대신에 등장한 새로운 권력인 재벌·관료·검찰·언론의 문제를 여러 자리에서 언급했는데, 사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도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힘을 갖게 됩니다. 대기업 정규직은 중소기업 노동자및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점점 확대해가는 노동귀족으로 변모해갑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노동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수구세력으로 돼 가고 있습니다. (103p)중소기업에서도 경영상황에 따라 해고가 일상적으로 일어나지만 그로 인한 대립은 별로 치열하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힘이 미약하기도 하지만 노동자가 다른 회사로 취직하면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잃을게 크지 않지요. 이에 반해 대기업 노동자는 해고당하면 특권을 상실합니다. 다른 대기업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이고 중소기업에 취직하니 예전과 처지가 크게 달라지지요. 그래서 격렬하게 저항합니다. 경영상 고용조정이 불가피할 때도 막무가내입니다. 우리의 진보파는 이런 고용조정에 대해 신자유주의 운운하면서 비판합니다. 하지만 경영상황이 악화됐는데도 고용을 그대로 유지하라는 건 사회주의 기업처럼 이윤이나 손실따위를 무시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104p)

(유연안전성 모델)복지를 확대해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처지를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복지를 확대해 이런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을 올려줘서 대기업 정규직과의 격차를 줄이는게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 가계의 지출 중 교육비·의료비·주거비 지출을 줄여주고 노후 안정을 도모하는게 복지의 확대입니다. 재벌기업과 부자들 뿐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에게도 세금을 더 많이 거두고 이를 통해 사회복지를 혹대하면 노동자 사이의 실질격차가 줄어듭니다. 이리되면 경영상황에 따른 고용조정에 대기업 노동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하는 일도 줄어들 겁니다. 이게 바로 노동유연성의 증진이고 이는 자본측에도 좋은 일입니다. (중략) 정규직의 유연성이 증가하면 비정규직을 사용할 필요성이 줄어듭니다. 따라서 정규직·비정규직의 구분도 희미해지지요. 요컨대 복지확대→노동자 사이의 실질격차 축소→노동유연성 향상→비정규직 사용축소라는 선순환이 가능해집니다. 유연안정성 모델의 구체적인 실현방안은 우리 사정에 맞춰야 하겠지만, 시장의 효율성과 삶의 안정성을 결합하려는 그 정신은 배울 바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는 바로 우리 정규직 문제해결에도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106p)

(거대기업 노조의 노동귀족화 문제)해법은 두가지 방향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는 재벌개혁이고 다른 하나는 복지확충입니다. 부당한 갑을관계 해소를 포함한 재벌개혁을 통해 중소기업들의 수익이 향상되면 자연히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거대기업 노동자들 사이의 부당한 격차도 줄어듭니다. 이게 경제민주화이지요. 사회적 복지를 확충하면 역시 거대기업 노동자들과 여타 노동자들 사이의 실질적인 생활격차가 줄어듭니다. 예컨대 거대기업에서는 작원 자녀의 대학등록금을 회사에서 내줍니다. 그런데 만약 사회 전체적으로 대학등록금이 내려가면 여타 노동자들도 혜택을 보겠지요. 그리하여 자연히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사회적 임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복지확충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합니다. 재벌총수 뿐 아니라 거대기업 정규직으로부터도 세금을 더 거두면 이것도 노동자 사이의 격차축소에 기여합니다. (115p)

사회적 복지확충은 또한 ‘좀비’중소기업을 정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는 사회보장이 취약해서 정부가 중소기업을 제대로 구조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복지가 확충되면 중소기업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이것이 바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켜 줄 것입니다. (116p)

(초과노동 규제)초과노동시간에 대한 규제도 격차해소에 기여합니다. 예전에 토요일·일요일의 특근은 주당 12시간이라는 잔업시간 제한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현대·기아차에서는 평일에 잔업을 2시간씩 하고 추가로 토·일요일에 특근을 했던 것입니다. 만약 이 시간을 잔업에 포함시키면 자연히 현대차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노동자들사이의 격차도 줄어들게 됩니다. 정규직의 줄어든 노동시간을 채우기 위해 다른 노동자들을 고용한다면 일자리 늘리기에도 도움이 됩니다.(117p)

(노동·자본 양측반발에 대한 해법)노동계의 반발에 대해선 점진적으로 특근을 줄여나가는 방식을 취하면서 반발에 대처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재계의 반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대안을 내놓으면 어떨까요? 예컨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르바이트를 동원해서 공장을 돌리면 노동자 고용을 늘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아르바이트에 대해서는 350%의 특근수당을 줄 필요가 없으니 금전 부담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이 아르바이트는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선 훨씬 대우가 좋을 것이니 대학생이나 대리기사 등 지원자는 많이 몰려들 것입니다. 혹시 그런 미숙련자로 공장을 돌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자동차 공장들이 노동자들의 여름휴가 때 이런 아르바이트를 동원해 공장을 돌리는 걸 보면 우리라고 못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11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흑의 대륙 - 20세기 유럽 현대사 커리큘럼 현대사 1
마크 마조워 지음, 김준형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식구의 권유로 보게 된 책 <암흑의 대륙>(마크 마조워). 세계사는 개설서만 대략 훑어본 적이 있고 유럽사는 개별사안을 다룬 책을 파편적으로 읽어본 터라 20세기 유럽의 통사는 사실상 처음이다. 


너무도 방대한 내용의 이 책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는 것은 무리임에 틀림없다. 다만 내가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른 대목들은 정리해둘 필요가 있겠다. 


1.  우선 전간기(1차 세계대전 직후와 2차 세계대전 사이) 유럽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극심한 염증과 혐오감이 팽배했다는 점이다. 


 1918년이후 유럽국가들에서는 평균 1년이상 지속된 내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평균 8개월, 이탈리아에서는 5개월, 1931년 이후 스페인에서는 4개월도 버티지 못했다.(41p) 


민주주의가 공격받는 가운데 행정부는 권위주의로 나아간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행정부는 히틀러 직전에는 거의 권위주의에 거의 다가섰다. 반민주주의 사조는 1차 세계대전을 경과하면서 '폭력의 복음'으로 부를 정도로 나아간다. 


프랑스의 우익 청년 드리외 라 로셸은 <청년유럽>에서 "세상의 어떤 것도 피를 흘리지 않고는 이룰 수 없다. 나는 피의 숙청을 고대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44p) 앙리 드 몽테를랑은 부르조아의 무기력한 '추석한 눈동자'와 파시스트 '신체혁명의 수혜자'로서 잘 훈련받은 권위주의자의 활력을 대조하고 있다. 자유주의가 이기적인 개인들을 미화하는 데 반해서 전체주의는 자기희생과 복종,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을 제시했다.(45p)


1930년대에 들어서면 의회 민주주의는 거의 파탄상태에 놓이게 된다. 재정균형과 금융우위의 경제운용 방식이 의회주의와 결합한 것도 이런 경향을 심화시켰다. 



유럽전체의 근본적인 문제는 전쟁으로 정부가 노동자들과 농민들에게 더욱 높은 생활수준을 약속하게 된 반면, 부르조아는 전쟁 이전의 안정상태로 돌아가려는 욕구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귀환 병사들을 위한 주택제공'은 금본위제로의 복귀와 모순적이었으며 그 결과 민주주의는 혼란을 겪었다.(162p)

각국 정부들이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줄곧 논란거리였다. 대부분은 통상적인 방법대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공공지출을 줄여 투자자들의 신뢰가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직접적인 정책은 없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불황인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면 이것이 부채로 이어져 국가의 경제운용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163p)




2. 중동부 유럽 거의 전역에서 인종에 대한 편견과 배제(특히 유대인)분위기가 광범위하게 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을 통틀어 민주주의든 권위주의 체제든 상관없이, 근대 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엘리트들 사이에선 반유대주의가 자연스럽게 퍼져갔으며, 결국 이런 배경을 이용해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된다. 당시에는 나치 정권이 특별히 비정상적인 정권이 아니었으며 인종청소라는 정책을 최초로 시도한 정권도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이런 경향을 극단까지 몰고 갔으며 그때까지 존재했던 동화정책에 조종을 울렸을 뿐이다. (93p)



3.유럽에서 전후 부역자에 대한 추방과 배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철저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냉전체제가 조성되면서 경찰 등 행정에 있던 부역자들은 이른 시기에 컴백했다. (하지만 핵심부역자들 상당수는 처형을 비롯해 엄벌에 처해졌으니 한국 상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인적청산이 이뤄졌음엔 틀림없다.)  


 1945~1946년쯤이 되면 일정한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립정부는 고위 정치인이나 작가, 배우들을 공개재판에 세우고 부역자를 대상으로 한 전면적인 수사에 착수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바라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했다.(기업가들은 대개 가벼운 처벌로 끝났다). 다층적 재판체계가 만들어졌으며 새로운 죄목들이 정해졌다. 그러나 중벌이 선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1946년이 되면 이런 과정 전체에 대한 환상이 점차 깨졌다. 첫번째 사면이 이뤄진 이후 연이어 다양한 사면이 이뤄졌다. 1950년대 초가 되면 대부분의 사법수사가 사라졌다.(316p)


대체로 서유럽정부들은 처벌보다 연속성을 선택했다. 일부 공무원들은 징계를 받았지만 국가 권력의 보루, 특히 경찰은 대부분 수사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드골이 새로 공화국보안대를 창설한 것은 예외적인 경우였다. 서유럽에서 좀더 전형적인 모습은 이탈리아의 카라비니에리나 그리스의 방위대처럼 1943년과 1946년 사이에 같은 사람이 제복만 갈아입는 식이었다.(318p)


4.동유럽 인민민주주의 정권수립은 온전히 '소련의 사주'가 아니었고, 그 정세에서 가장 인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거버넌스였다.


비록 동유럽국가들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돌이켜보면 진행양상은 유사했다. 연립정부가 있었고 그 안에서 공산당의 영향력이 강했으며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난 뒤에 다른 정당들과 연립정부 밖에 남아있는 분열적인 집단을 주변화하고 철저하게 억압했다. 마지막은 선거였는데 득표율을 보면 연립정부가 폴란드에서는 89퍼센트, 루마니아에서는 98퍼센트, 불가리아에서는 79퍼센트를 획득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947~48년 무렵에는 민주적 정치환경에서 공산당 헤게모니를 가장 위협하는 세력이었던 농민당들과 사회민주당들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사전에 신중하게 계획된 마키아벨리식 전략이었을까?(중략)사건의 실제 과정을 보면 -적어도 1947년까지는-소련은 훨씬 망설였고 확신이 없었다. 


이밖에 역자인 김준형(한동대 교수)가 후기에서 지적하듯 '1989년 사회주의 붕괴는 자본주의가 경쟁에서 이긴 타살이 아니라 소련 자체의 모순으로 인한 타살'이었다는 점, 전간기 파시즘의 공세를 막아낸 일등공신은 자유주의가 아닌 공산주의였다는 분석도 특기할 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벌거숭이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 <벌거숭이들>. 집에 있길래 별 생각없이 들춰보다가 끝까지 읽어버렸다. 사실 이 작가의 책은 처음인데 생각외로 재미있었다. 가족과 결혼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관계맺기가 품은 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을 느꼈다고 해야할까. 


작품에는 다양한 연애관계가 등장한다. 우선 채팅으로 만나 동거까지 이르게 된 50대 후반의 커플이다. 여성은 57세의 '카즈에'로 남편을 사별했고, 딸이 결혼해 아이 넷을 둔 주부이다. 딸은 물론 손녀에게도 '할머니'가 아니라 이름을 부르라고 하는 특이한 캐릭터이고, 집 2층은 여대생 2명에게 세를 주고 있다. 이 여성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두세살 연상의 남자(야마구치)와 만나 사랑에 빠졌고, 이 남성은 아내와 20대의 딸이 있는 집을 나와 이 집에 와서 동거하게 된다. 7개월쯤 동거하던 중 여성이 갑자기 숨지는 변을 당한 뒤에도 이 집에 당분간 눌러살게 된다. 구조조정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된 뒤 별 직업이 없는데다 아내에게 집과 재산을 다 넘겨주고 떠나왔기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36세의 치과의사(모모)와 그의 절친인 가정주부(히비키)를 동시에 사귀는 9살 연하의 구두회사 직원(사바사키)이다. 모모는 6년간 교제하던 남자(이시와)와 뚜렷한 이유없이 헤어진 뒤 사바사키와 본격적으로 사귄다. 사바사키는 모모의 절친인 히비키에게 색다른 감정을 느껴 접근한다. 아이넷과 남편을 건사하느라 '이중턱'이 돼버린 평범한 주부 히비키에 사바사키는 묘한 매력을 느끼고 열중한다. 모모는 그런 사바사키에 대해 불안을 느끼면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관계를 유지한다. 한편으로 헤어진 이시와와 다시 만난다.  


마지막은 모모의 언니인 40대 초반의 요우로 프리라이터로 일한다. '연애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채 셰어하우스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남녀 술친구가 많다. 하지만 술친구로 시작한 사바사키의 직장상사이자 유부남인 나라하시와 어느새 연인이 된다. 


등장인물은 대체로 감정에 충실하지만, 작품에서는 감정의 생성, 변화, 소멸이 극도로 담담하게 그려진다. 작가의 글쓰기가 원래 그런건지, '남녀관계는 다 쿨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심지어 가정주부 히비키가 사바사키와 관계를 맺은 사실을 단 한줄로 가볍게 처리해 버리기까지 한다. 다른 소설 같으면 법썩을 떨 장면이었을텐데도. 


모모 자매의 모친인 유키는 일본의 전통적인 가정주부로 보수적인 연애관과 결혼관을 유지하고 있다. 딸이 제돈으로 반지를 사서 끼는 것 조차 질색하는 타입이지만 남편(에이스케)의 생일잔치에 유부남 남친을 데려온 큰 딸을 받아들인다. 오랜 기간 딸을 이해하지 못해온 유키는 만찬을 통해 '화해'를 시도한다.     


작가는 연애관계에만 주목하지는 않는다. 카즈에가 죽은 뒤 어쩔 수 없이 그 집을 지키고 있던 야마구치가 세들어 사는 여대생(아스미)의 고향집에 가서 농사를 도와주고, 그것을 계기로 새 인생을 찾아내는 과정을 보여주는가 하면, 반항기에 접어든 초등소녀 미쿠(히비키)가 아스미의 방으로 놀러가는 장면을 마지막에 등장시킨다. 모모가 헤어진 남친의 여동생과 여전히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다양한 유형의 연애를 보여주는 '연애박람회장'같은 전개속에서 작가가 강조하려는 것은 가족과 결혼이란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관계맺기의 긍정성인 듯 하다. 좀 구태의연한 평이지만 인구감소에 비혼이 만연한 가족해체 시대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쿨하게 헤쳐나갈 필요가 있다는 게 작가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의 세계사 히스토리아 문디 5
윌리엄 맥닐 지음, 신미원 옮김, 이내주 감수 / 이산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윌리엄 맥닐의 <전쟁의 세계사>(이산). 고대와 중세 시대의 전쟁방식, 무기의 발달과정 등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일단 책을 잡았지만 단순한 전쟁방식이나 무기에 관한 저서가 아니었다. 무기와 전쟁이 어떻게 역사를 움직여왔나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무기와 전쟁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책이 고찰하는 범위는 제철업, 해운업, 선박금융 등 사실상 산업전반에 걸쳐있다.  



실제로 저자는 이 책의 주제를 '전쟁의 상업화'와 '전쟁의 산업화'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전쟁의 상업·산업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000년으로 잡되 최근 1~2세기 동안 걷잡을 수 없이 속도가 붙었다고 본다. 


먼저 중국. 저자는 중국이 제철및 해운에서 유럽의 기술적 성과를 먼저 달성했지만 이 성취가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부의 명령구조는 맹아단계의 시장경제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때로는 위태로운 적도 있었지만 결코 근본적인 통제력을 잃지 않았다. 제철업자나 조선업자도 다른 모든 사회구성원과 마찬가지로 끝내 한번도 자율성을 갖지 못했다"(75p) 


결국은 민간의 자율성이 작동토록 하는 사회구조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시장'대신 '명령'에 의한 체제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의 상업과 공업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자기촉매적인 성격 같은 것은 중국에서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76p)


 결국 정허(鄭和)제독이 원정(1405~1433년)에 나섰을 당시 함대규모는 15세기말 포르투갈에서 인도양까지 갔던 바스코 다 가마 함대의 기함규모(300톤)의 5배에 달하는 크기였고 선박조종술, 내항성도 콜롬버스나 마젤란 시대의 유럽인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았음에도 15세기 중반에 명나라 조정이 내린 해금(海禁)조치에 의해 중국의 해양기술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반면 유럽의 경우 시장지향적 행동양식과 군사지향적 행동양식이 놀라울 정도로 융합을 이뤘다. 이는 그리스도권이 통일돼 있지 않고 다양한 정치체제로 분열돼 끊임없이 불화했으며 영토권이나 재판관할권에 대한 분규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서 14세기부터 용병군대가 등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시장지향적 행동양식이 발달한 국가가 전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게 된다. 영국이 16세기말 해상강국으로 떠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다시 정치에도 영향을 미쳐 '전쟁을 경영'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치구조를 형성시켰다. 그러고 보면무기와 전쟁이라는 주형(鑄型)속에 정치와 경제, 사회가 담겨 형상화돼온 것이 유럽의 역사였던 셈이다. 


"근세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에 나타난 근본적인 차이는, 아시아에서는 명령에 의한 동원이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1차집단적 패턴을 보존하는 데 기여했으며 동시에 그 보존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결국 복종하는 자는 오랜 기간에 걸친 친밀한 접촉을 통해 잘알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잘 복종하기 마련이다. (중략) 시장을 매개로 하는 사회관계는 이와 반대로 인간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전통적이고 국지적이며 1차집단적인 성격을 해체하고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방인들은 각자 시장의 유인에 반응함으로써 종종 자기도 모르게 협력하게 되었다."(157p)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이 대 프랑스 전쟁에 대비한 정부의 대대적인 개입으로 인해 촉진되고 발전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예컨대 증기기관의 개량을 가능케 했으며, 제철업에 대한 전시의 자극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좋은 조건속에서 철도나 철선과 같은 결정적인 기술혁신이 일찌감치 실현될 수 있도록 했다."(284p)


'전쟁의 산업화'로 불릴 수 있는 이런 추세는 1880년대 해군을 중심으로 한 군비경쟁 과정에서 '군산복합체'의 등장으로 정점을 맞이하고 결국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경제학에서 일컬어지는 '구성의 오류'인 셈이다. 


"가장 큰 역설은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경영하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이 모든 개별적인 측면에서는 위대하고 인상깊은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시스템 전체는 제어불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399p) 이 상황은 불행히도 현대에까지 계속되고 있다. 


어찌보면 '전쟁으로 본 거시경제사'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은 무기의 발달과정에 대한 디테일한 서술에도 있다. 전차의 보급, 석궁과 축성술, 머스킷및 라이플총, 대포의 발전과정, 군대편제의 전술의 변화 등에 대해서도 꽤 상세히 기술돼 있어 '밀덕'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