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 진다 - 전후 70년, 현대 일본을 말하다
우치다 타츠루.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우주소년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우치다 다쓰루와 시라이 사토시의 대담집을 오늘 읽었는데 무척 흥미진진했다. 국내에 소개된 일본 책들 중에 이런 방식의 대담집이 꽤 있는데, <사쿠라진다>는 대담집의 유용함을 특히 잘 드러낸 책인 듯하다. 학자들이 정식 논문이나 저작물에서는 쓰기 애매한 내용들, 즉 논증하기 어려운 썰이나 가설, 에피소드들이 마구마구 등장하는데 이것이 일본의 현상을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면 아래의 대목.
고질라는 일본의 죄책감과 자기처벌 욕망을 형상화한 존재이지요. 고질라는 되풀이하여 일본을 습격하는데 근대 일본 시스템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적 억압, 죽은 자들의 원한, 잃어버린 전통, 더럽혀진 산하와 같이 일본인이 내버린 것들의 복수담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근대, 반중앙, 반도시, 반문명 등 다양한 반(反)이 고질라 형상을 빌려 근대 일본을 파괴하기 위해 등장합니다. 따라서 심성사(心性史)의 흐름속에서 보면 고질라는 메이지 이래 일본인이 만들어온 것을 때려부수고자 했던 '반란군'과 기능적인 측면에서 닮았습니다. (56페이지)
이 책에는 메이지 유신직후인 1868~69년의 보신전쟁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보신전쟁에서 많은 피를 흘린 사람들이 도호쿠 사람들이다. (우치다 집안도 도호쿠 출신이다). 도호쿠 사람들은 메이지 이후 계속 차별을 받아왔고, 그래서 반권력, 반중앙의 정념을 간직해왔다. 그런데 군부에서 '삿초(지금의 가고시마와 야마구치) 파벌'이 쇠퇴한 뒤 육군이 실력과 능력 위주로 재편되면서 도호쿠의 자제들이 군으로 대거 들어왔다.

이들이 유입된 군부가 만주사변, 2.26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무모한 대미 전쟁에 나선 것은 일본의 국익증대나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라, '삿초파벌'이 만들어낸 메이지 체제를 일거에 바꾸고 무너뜨리려는 생각, '이런 나라는 망쳐도 좋다'는 허무주의를 품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게 두 사람의 생각이다.
일본의 자멸적 전쟁에는 '파국원망' 즉 스스로 파국을 바라는 정념 같은게 있었다는 것이다.
언뜻 황당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그럴 법 하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서 제목을 <사쿠라 진다>로 지은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탁월한 선택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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