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20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
그러므로 내 삶은 삶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거리를 유지하는 긴장으로써만 지탱해 왔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의 거리밖에서 지켜보기를 원한다....
...어느 날 나는 지나간 일기장에서 '내가 믿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긴 목록을 발견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는다 말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면체로서 언제나 흘러가고 또 변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의 삶 속에 불변의 의미가 있다고 믿을 것이며
또 그 믿음을 당연하고도 어이없게 배반당함으로써
스스로 상처를 입을 것인가.
무엇인가를 믿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그 일기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삶을 꽤 심각한 것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은희경, <새의 선물> 중에서..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
사람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이 두 가지의 나를 갖게되는 걸테지요.
의식적으로든 의식하지 않든간에...
글 속에서 보여지는
12살 어린아이의 삶에 대한 냉소어린 시선들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같지 않은 아이라고들 했지만
내가 봤던건
더이상 세상에..삶에..
상처받고 싶어하지 않는
여리디여린 주인공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리고 약한 내면 속의 나가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찾아낸 건
내 내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그래서 삶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거리를 유지하는,
바로 삶.에.거.리.두.기.였지요.
그녀처럼 20년 습관은 아니어두
내 삶에서 한발짝 물러서
저만치서 떨어져 바라보는 것..
담금질에 지쳐있다면
가끔씩은 그런 삶의 거리두기도
나쁘진 않을거 같단 생각이 드네요..
- 2002/08/14
있는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꺼안기에는
세상은, 삶은, 그 생채기가 너무 아프다.
幼弱하여 솔직할 수 없음으로
차라리 나를 닫아 둔 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일.
거.리.두.기.
요즘의 내가 자꾸 떠올리는 말.
지금의 난 삶의 담금질에 지쳐있는가..
그런가.. 그러한가
무엇을 얼마나 겪어보았다고, 해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