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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울고 꽃은 핀다. 중요한 건 그것밖에 없다.

절망할 수 없는 것조차 절망하지 말고...... (카프카)

 

 

 

 

 

 

 

 

 

 

 

 

 

 

 

 

 

어떤날...또 어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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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天上의 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물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주리

 

여름 내내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하여

계곡을 올리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얼어붙어 있다

계곡과 계곡 사이 잔뜩 엎드려 있는

얼음 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 있다

결빙의 바람이여,

내 핏줄 속으로

회오리 치라.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나의 전신을

관통하라.

점령하라.

도취하게 하라.

山頂의 새들은

마른 나무 꼭대기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들은 마른 씨앗 몇 개로 남아

껍데기 속에서 도취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빗방울과 입맞추던

뿌리는 얼어붙은 바위 옆에서

흙을 물어뜯으며 제 이빨에 도취하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하여

스스로 기쁨에 떨고 있다

 

보라, 바위는 스스로의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허나 하늘은 허공에 바쳐진 무수한 가슴

무수한 가슴들이 消去된 허공으로

무수한 손목들이 촛불을 받치면서

빛의 축복이 쌓인 裸木의 계단을 오르지 않았는가

정결한 씨앗을 품은 불꽃을

天上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시간은 오히려 눈부신 성숙의 무게로 인해

침잠하며 하강하지 않았는가

밤이여 이제 출동명령을 내리라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나의 핏줄을 나의 뼈를

점령하라, 압도하라

관통하라

 

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성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의 존재의 處所에 뿌려진 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서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 조정권, 산정묘지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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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을 흰색으로 칠해주오
작은 장미꽃송이와 함께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릇 소리만
초인종으로 달아주오
천정엔 하늘과 구름, 그리고 바람
추억을 담은 단지도 예쁜 것으로 해주오


내 방을 흰색으로 칠해주오
작은 장미꽃송이와 함께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릇 소리만
초인종으로 달아주오


시간의 고동소리 이제 멈추면
모든 내 방의 구석들은 아늑해지고
비로소 텅빈 것을 꼭 껴안아
한없이 편안해지네

돌덩이가 된 내 슬픔이 내려앉으면
꽃이 되어버렸다고 말을 하겠지

시간의 고동소리 이제 멈추면
모든 내 방의 구석들은 아늑해지고
비로소 텅빈 것을 꼭 껴안아
한없이 편안해지네...

- 김창완, 내 방을 흰색으로 칠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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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이문재, 푸른곰팡이-散策詩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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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이 우체통을 오래 문지른다
그 안의 소식들 따뜻할 것이었다...."

그 구절이 참 좋다 했다.
그 두 줄이 참 마음에 든다했다.
바알간 노을빛 쬐 온기품은 우체통..
가만가만 그 안에서 따뜻하게 익어갈 사연들..


강변 퇴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녀의 나지막한 읊조림에
그 풍경, 눈에 그려지는 듯해서
오는 길, 나도 잠시 따뜻했다.
그 따뜻함에 물기가 어렸다.

시인의 '우체통'에 대한 詩語의 첫기억은
내게 그렇게 남아있다.

그게 언제쯤이었을까...
작년.. 아님 재작년...
봄밤, 아니 가을의 초입쯤이었나...

저물녘 차 안에서 들었던
싯구절 하나....

가만가만 차오르던
마음의 풍경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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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어느 별에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 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 정호승, [서울의 예수]

 

정호승 詩, 안치환 曲, 우리가 어느 별에서 

 

 

 

 

 

 

 

 

 

눈 내리는 보리밭길에 흰 첫별이 뜰 때부터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에
푸른 마지막 별이 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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