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1
천계영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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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이 만화를 순정만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이 만화의 장르가 무어냐 묻는다면 나는 감히 '엽기 만화'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아름다운 그림체, 소녀들의 혼을 빼어놓는 꽃미남들의 등장, 양념처럼 들어가는 묘한 동성애 코드.. 등은 이 만화를 '거의' 순정만화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이 만화의 엽기성은 회를 거듭할수록 더해가는데, 요즘은 이 만화를 '코믹 만화'로 정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할 정도이다. 유머와 의외성, 기발함이 넘쳐나는 이 만화는 덕분에 한국식 순정 만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셈이다.

물론 재미난 스토리가 이 작품의 강점이지만, 난 여전히 작가 천계영의 매력만점 그림체가 참 좋다. 국내 만화가들에게 가장 아쉬웠던 점이 그들이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체' 특히 일본만화의 그림체를 많이 답습한다는 점이었는데, 천계영의 그림체는 무척이나 독창적이다. 게다가 최근의 유행 감각을 신선하게 잡아내는 그녀의 솜씨란!

특히 순정만화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남성 독자들에게도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그대들도 분명 이 만화를 사랑하게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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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1
아다치 미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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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가게 아저씨가 '이거 꼭 읽어야돼요, 이거 정말 재미있어요.'하며 <터치> 1권을 꺼내 들었다. 책장을 후루룩 넘기며 훑어보니 '이거 완전 애들 만화잖아?'싶었다. 어렸을 때 보던 독고탁 출연 만화같기도 하고.... 명랑 만화같은 그림체가 왠지 맘에 안들었지만, 워낙 거절 못 하는 성격이라 아저씨가 떠넘기는 10권을 다 받아들었다. '후회 안 할거예요!' 아저씨의 마지막 한마디.

그렇다면 결과는? 그날 앉은 자리에서 받아온 10권을 다 읽어버리고 결국은 아다치 미츠루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다음날 마지막권까지 다 빌려서 단숨에 읽어버리고....

놀라운 것은 다 읽은 후에 내가 얼마나 그의 그림체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어쩐지 아기 얼굴같아 못마땅했던 주인공의 얼굴들, 그러나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는지! 또한 그들이 잡는 포즈 하나 하나는 또 얼마나 깊은 이야기를 표현하는지! 아다치 미츠루는 그림을 '정말로 잘'그리는 만화가이다.

모두가 칭찬해마지 않는 그의 화면 연출 역시 압권이다. 나는 만화 주인공의 뒷모습, 아니 뒷통수가 이처럼 많은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아직 '터치'를 못 읽어본 분들은 꼭 주인공의 뒷통수 씬을 눈여겨 보시길.. 작가가 얼마나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인지 담박에 알아 차릴 것이다.

내가 이토록 그의 그림체에 열광한다고 해서, 이 만화의 줄거리가 그림체만 못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아다치 미츠루의 그림체가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표현력이 전체 줄거리를 너무 잘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나 너무도 평범한 주인공들이 꾸며가는 건강한 이야기들은 연신 독자들을 킥킥거리게 만든다. 하지만, 눈물나도록 웃다보면 어느새 엉엉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터치'를 읽던 도중 갑자기 책을 덮고 통곡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얼마나 난감해 하던지....

정말 강추!! 이처럼 멋진 만화를 찾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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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지 주노 양군과 함께 한 1036일
최진열 지음 / 명상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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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코리아 닷컴 ID만 봐도 알수 있듯이 나는 서태지의 팬이다. 이미 30대 초반을 훌쩍 넘어선 나이때문에 팬클럽에 가입하거나 공연에 참여해서 함께 해드뱅잉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그의 음반을 즐겨듣고 그의 관련 기사라면 꼭 챙겨보는 성실한 팬이다.

이 책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 매니저가 그들과 지냈던 시절을 회고하는 내용을 구술 정리한 책이다. '서태지는 좋지만 서태지팬은 싫다'는 이야기들이 종종 들려오는 요즘, 어떤 이들은 '이것도 책이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태지 팬들에게는 무척이나 정겨운 책이다.

이 책에는 태지 보이스와 함께 했던 날들에 대한 소탈하고 무척이나 세세한 기록들이 가득하다. 그들이 무얼 먹었나, 그들이 쉬는 날엔 뭘 하고 놀았나, 음반 준비로 잠수했을 때 무얼했는가,그들과 팬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등... 어찌보면 하찮아 보이는 일들의 기록이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미처 모르고 있던 태지 보이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재미난 기록들이다.

다행히 저자는 태지 보이스를 지나치게 영웅시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여느 청년과 같았던 모습, 그러나 남달리 열정적이었던 모습들을 과장되지 않게 전하고 있다.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가던 그 시절, 그들이 여전히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젊은이였다는 사실은 왠지 커다란 안심을 가져다 준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의 손톱의 반달 모양까지 관심이 가지 않던가? 다만 태지의 팬들에게는 그 애정의 대상이 서태지라는 인물일뿐. 그가 뭘 먹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한다고 해서 '한심한 X'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기성세대의 지나친 우려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은 이미 대부분의 태지 팬들로부터 기성 세대로 취급받을 나이지만, 그들의 매니아적인 열정은 아름다워 보인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 '열정'이 있기에.

내가 태지 매니아들과 같은 수준의 열정을 활활 불태웠던 건 이미 16-7년 전이다. 그 당시 내 열정의 대상은 외국의 어느 팝 가수였다. 16,7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열정이 과연 내 인생에 어떤 해악을 주었던가? 결코 '아니다.' 무엇엔가 미칠 수 있는 경험을 그때 처음 배웠을 뿐. 그 이후에 다른 일에 미칠 때에도 당시의 기억 덕분에 결코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을 뿐. 태지 매니아들에 대한 기성 세대의 우려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지나친 자기 방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가슴 가득한 애정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이 책 안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분야에 너무도 충실했던 어느 건강한 젊은이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다. 정말로 해맑은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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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불변의 법칙 마케팅 거장 알 리스, 스페셜 에디션 3
알 리스, 잭 트라우트 지음, 박길부 옮김 / 십일월출판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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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케팅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마케팅 팀과 함께 일을 하는 경우도 있어 마케팅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내가 일하는 분야의 서적이라면 비장한 자세로 읽었겠지만, 그저 알아두면 재미있겠다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선은 마케팅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이란 것, 그리고 마케팅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에게도 아주 재미있게 읽힐만한 책이라는 것이다. (온통 우리가 알고 있는 브랜드들의 성공담과 실패담이므로)

마케팅 분야처럼 변화무쌍한 분야에서 과연 불변의 법칙이란게 통할까 싶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제시하는 법칙들 가운데 상당수가 수긍이 가는 내용들이었다. 저자들은 책 속에서는 '소비자'나 '고객'이라고 이름붙여진 '일반 대중'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꽤뚫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얼마나 단순함을 선호하는지, 그들이 얼마나 고정관념에서 못 벗어나는지, 그들이 얼마나 집단적으로 행동하는지.... 그런 것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 장사꾼들이 밥 굶을 일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 제시된 불변의 법칙들은 결국 큰 틀만을 제시한다. 현실에서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응용은 결국 각각 마케터들의 몫일 것이다. 다만, 이 책의 법칙을 제대로 숙지한 마케터라면 시작부터 황당하게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그런 큰 실수는 피할 수 있지 않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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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상 - 비밀 노트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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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이름난 국내 소설가의 -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독서 리스트에서 이 소설을 우연히 발견하고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아마 재작년인가 이 소설을 처음 접했는데, 그 이후 수많은 소설을 읽었어도 이 작품만큼 지독하고 동시에 매혹적인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은 이 책이 품절이라고 하니 너무나 아쉽다. 보다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의 매력에 빠졌으면 하는 마음인데...)

이 소설 속에서는 아동학대, 도둑질, 살인, 강간, 수간 등 인간의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사건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마구 벌어진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사건들에 한탄하고 눈물 흘리는 식으로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저 극히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사건의 전달만이 있을 뿐...

처음부터 이 소설은 '의견이나 생각을 배제한 채 일어난 일만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기로 한 어느 쌍동이 형제의 비밀노트'라는 형식을 띈다. 두 쌍동이가 정해 놓은 전제 조건 때문에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메마른 문체로 사실만을 전한다.

비정하고 끔찍한 현실, 그리고 그보다 더 비정한 짧은 문장들때문에 이 소설은 마치 악의적으로 쓰여진 우화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끔찍한 상황들이야말로 가감없는 현실의 모습 그대로라는 생각이 찾아온다. 우리가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은 사실들로 이루어진 세상, 그것이 정말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아동학대, 도둑질, 거짓말, 살인, 강간 같은 것들이 어디 이 소설 속에서처럼 전쟁 국가의 국경지대에서만 벌어지는 일들이겠는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에서도 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현실인 것을.

소설 속 사건들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꾸며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건조한 문장들 하나 하나가 전체를 이루며 하나의 아름다운 상징을 이룬다. 유럽의 어느 비평가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작품을 '검은 다이아몬드'에 비유했다고 한다. 정말 정확한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매혹적인 빛을 발산하는 그런 작품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처럼 지독한 작품을 다시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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