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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지 주노 양군과 함께 한 1036일
최진열 지음 / 명상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내 코리아 닷컴 ID만 봐도 알수 있듯이 나는 서태지의 팬이다. 이미 30대 초반을 훌쩍 넘어선 나이때문에 팬클럽에 가입하거나 공연에 참여해서 함께 해드뱅잉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그의 음반을 즐겨듣고 그의 관련 기사라면 꼭 챙겨보는 성실한 팬이다.
이 책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 매니저가 그들과 지냈던 시절을 회고하는 내용을 구술 정리한 책이다. '서태지는 좋지만 서태지팬은 싫다'는 이야기들이 종종 들려오는 요즘, 어떤 이들은 '이것도 책이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태지 팬들에게는 무척이나 정겨운 책이다.
이 책에는 태지 보이스와 함께 했던 날들에 대한 소탈하고 무척이나 세세한 기록들이 가득하다. 그들이 무얼 먹었나, 그들이 쉬는 날엔 뭘 하고 놀았나, 음반 준비로 잠수했을 때 무얼했는가,그들과 팬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등... 어찌보면 하찮아 보이는 일들의 기록이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미처 모르고 있던 태지 보이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재미난 기록들이다.
다행히 저자는 태지 보이스를 지나치게 영웅시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여느 청년과 같았던 모습, 그러나 남달리 열정적이었던 모습들을 과장되지 않게 전하고 있다.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가던 그 시절, 그들이 여전히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젊은이였다는 사실은 왠지 커다란 안심을 가져다 준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의 손톱의 반달 모양까지 관심이 가지 않던가? 다만 태지의 팬들에게는 그 애정의 대상이 서태지라는 인물일뿐. 그가 뭘 먹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한다고 해서 '한심한 X'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기성세대의 지나친 우려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은 이미 대부분의 태지 팬들로부터 기성 세대로 취급받을 나이지만, 그들의 매니아적인 열정은 아름다워 보인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 '열정'이 있기에.
내가 태지 매니아들과 같은 수준의 열정을 활활 불태웠던 건 이미 16-7년 전이다. 그 당시 내 열정의 대상은 외국의 어느 팝 가수였다. 16,7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열정이 과연 내 인생에 어떤 해악을 주었던가? 결코 '아니다.' 무엇엔가 미칠 수 있는 경험을 그때 처음 배웠을 뿐. 그 이후에 다른 일에 미칠 때에도 당시의 기억 덕분에 결코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을 뿐. 태지 매니아들에 대한 기성 세대의 우려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지나친 자기 방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가슴 가득한 애정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이 책 안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분야에 너무도 충실했던 어느 건강한 젊은이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다. 정말로 해맑은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