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없는 사람을 그리는 아이들
후지와라 토모미 지음, 김소연 옮김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요즘 닥치는대로 자녀교육책들을 읽고 있다. 우리집에 쌓여있는 자녀교육 관련 서적들을 남들이 본다면, 내가 자녀교육에 목숨이라도 건 여자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몰아쳐서 자녀교육서를 읽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자녀교육서 한두권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기 위함이다.

자녀교육서들을 읽기 훨씬 이전, 아니 아이들을 낳기 훨씬 이전에도, 내 나름의 자녀교육관 같은 건 분명 있었다. 일부러 정리한 적은 없지만 그저 머리 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던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지나치게 물질적으로 풍요하거나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아이들에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아이들은 실컷 놀면서 커야한다.' '아이들은 때가 되면 스스로 자라게 되어있다.' '공부는 스스로 해야 배운 것들이 자기 것이 된다.' 등등....  이런 생각들은 자녀교육서 따위를 읽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한 거였다. 나와 내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직접 깨달은 사실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부모의 세계로 들어서보니... 이 곳엔 전혀 새로운 가치 체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 곳의 지배적인 가치는 "..할수록 ...하다" 라는 가치였다. 엄마가 많이 안아줄/수/록/ 아이가 정서적으로 발달한다. 말을 많이 걸어줄/수/록/ 언어가 발달한다. 일찍 가르칠/수/록/ 두뇌가 발달한다. 비싼 돈을 들여 과외를 할/수/록/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 할수록, 할수록, 할수록.....

이쯤되면 부모가 아이가 자라는 걸 도와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만드는' 수준이다. 다그치기만 하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식이다. 그 수많은 풍문들은 부모를 몰아치고 아이들을 몰아친다. 부모도 죽어나고 아이들도 죽어난다. 수많은 엄마들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나쁜 엄마라고 몰아세운다...... 그러나, 정말일까? 부모의 노력과 비례해서 아이가 훌륭하게 자라는 걸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부모없이 훌륭히 자란 수많은 인물들은 외계인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팔 없는 사람을 그리는 아이들>은 전문가가 쓴 책이 아니다. 일본의 유명 유아교육원에서 발견한 '팔없는 사람들'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은 작가가 동료 편집인과 함께 그 원인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적어놓은 책일뿐이다. 전문가적인 견해라고 할수도 없고, 어떤 확실한 결론을 얻어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전문가들의 책보다 더 중요한 핵심을 짚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과잉육아의 문화에 익숙한 부모들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그런 문제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은 요즘 거의 맹신적으로 떠받들여지고 있는 '스킨쉽 육아법'에 심각한 반론를 제기하고 있다. 접촉하고 안아주고 속삭여줄수록 아이가 잘 자란다는 믿음과 거기에서 파생된 육아법들이 결국은 아이들을 망칠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나치게 육아에 전념하는 '압박육아'나, 집이나 교육기관을 전전하는 '밀실육아' 가 최소한의 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비정상아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요즘 이런 사례가 빈번하게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책은 일본에서도 2005년에 출판된 최근 책이다.) 이쯤되면 육아가 학대의 수준으로 넘어가게 된다.

특히 엄마가 전업주부일수록, 육아시간이 길어질수록 문제의 소지가 크다는 주장은 충격적이다. 나역시 오랜 직장생활을 접고 출산과 함께 전업주부가 된 터이므로. (나, 한때 잘 나갔었다. 흑흑 T.T ... 나 역시 스킨쉽 육아문화의 영향으로 일을 접었다.) 하지만, 이건 전업주부 엄마와 맞벌이 엄마가 네가 옳네 내가 옳네 편가름할 성질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과잉육아의 문화는 이미 각 가정의 선택의 문제를 떠나 사회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밀실에서 밀실로, 또다른 밀실로.... 엄마건 할머니건 그 누군가가 24시간 아이들의 매니저이자 감시자 노릇을 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아이들 세계의 해체가 시스템화 되어가는 것이다. (물론 성급하게 일반화시키면 안되겠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대도시 문화에서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본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진다. '많은 부모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정성을 들이면 들일수록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란 사실.'

책장을 덮으면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서글픔. 어쩌다 이렇게 비이성적인 문화 속에서 아이를 키우게 되었을까. 어쩌다 아동기를 박탈하는 문화 속에서 내 자녀들이 자라게 되었을까. 그 서글픔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하나.....(그렇지, 책 한권을 읽었으니 주먹 불끈 쥐며 뭔가를 또 결심해야겠지^^)  내가 할 일은 아이들에게 뭐 하나라도 더 해줄까 안달복달하는 것이 아니라..... 과잉육아, 과잉교육의 광풍 속에서 아이들의 아동기가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란 생각. 그러나, 요즘같은 세상에선 아이들의 아동기를 복원해주는 것이 수학영재, 영어영재 만들기보다 더 어려운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난 아이에게 왜 이것밖에 못해줄까 피눈물을 흘리는 수많은 엄마 아빠들,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우리들의 자식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 열정, 시간투자, 경제적 희생..... 분명 제동을 걸어야만 한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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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평으로도 충분했는데
    from 뒤죽박죽 뒹굴뒹굴 2010-01-11 16:46 
    스밀라님의 서평을 보고 책은 안 봐도 되겠다, 생각했다. 주제가 충격적인데, 그 추적과정이 굉장히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이 아니라면 책을 모두 읽을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계속 누군가에게 이 책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읽어보자고 샀다.   나는 너무 게으른 엄마라서, 어떤 방식의 육아에 대한 조언이 들어오더라도, 내 편한 방식만 수용한다. '아이의 매니저가 되어야 한다'는 언명이나, '아이는 엄마하기 나름이다'라는 식의 언명은 다 들은
 
 
반딧불,, 2005-10-3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아라는 부분은 어떻게 정답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 서글픕니다.
무조건적으로 결과로만 보여진다는 것이...한번의 실패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바로 남은 인생의 모든 것과 연결된다는 것이요.

비올라 2005-11-06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공감가는 생각이십니다. 요즘 저의 문제를 제대로 짚은 부분이기도 하구요.저의 문제기기도함니다만, 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다른 엄마들의 행동이기도하구요. 요즘 한참 숨이 턱에차게 힘들어하고있던 중이거든요. 글 일부분, 제홈피에 가져가도 되겠지요? 육아의 압박이 밀려올때마다 한번씩 들여다보게요. 수다떠는 맘으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