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훤이라 불러다오
이도학 지음 / 푸른역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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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훤이라 불러주마
 

원래는 견훤이 아니라 진훤이 맞는 거라더군. 요즘이야 甄을 견이라고 읽지만 당시대의 문헌을 살펴보니 당시에는 이 글자를 견이 아니라 진이라고 음을 달았다더군. 사람 이름이야 고유한 것이니 진훤이 맞겠지. 그런데 문제는 이름 틀리게 부른 데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야. 진훤에 대한 통념이 아주 잘못 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라는 거지. 진훤에 대한 악인이라는 이미지는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를 거치면서 그렇게 되었을 거야. 말하자면 승자의 역사인 셈이지. 승자인 왕건은 선인이 되고, 진훤은 악인, 궁예는 추인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나간 셈이지. 이러한 당대에 역사를 왜곡한 사례는 비일비재하거든. 유명한 『삼국사기』도 그러하고 『삼국지』도 마찬가지지. 승자의 역사뿐만 아니라 잣대를 유학이나 촉한에 들이 댈 때에도 역사는 왜곡되었던 거지. 그런데 당대의 역사 왜곡은 아주 나쁜 놈으로 몰아버리니까 왜곡이 아니라 아예 날조 수준으로도 볼 수가 있겠군. 하기야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저술하고 나서 참조하였던 이전의 사서들을 모두 폐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니 왜곡이야 기본 아니었겠냐고. 더구나 당시로서는 책을 만드는 일은 거의 국가의 사업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말이지. 당시 진훤이 내세웠던 백제 계승이라는 것은 단지 정치적 명분이 아니었을까? 후백제의 세력 안에 있던 지역의 백성들은 물론 지지를 보냈겠지. 명분도 백제를 계승한다니 그럴 듯하고 말이지. 그런데 그들은 신라에 대해 불만이 높았던 것이지 백제에 대해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을까? 대한민국 역사의 다섯 배가 넘는 시간이 흘렀을 텐데 말이다. 오늘날 삼국과 후삼국을 지나치게 가르는 것은 또 다른 왜곡과 조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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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사랑 - 김소진 마지막 짧은소설집
김소진 지음 / 솔출판사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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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3
 

요즘 나는 매일 키를 잰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장롱 옆에 난 좁은 공간이 키를 재는 은밀한 곳이다. 느즈막이 일어나 점심을 대충 차려 먹고는 책과 연필과 줄자를 가지고 좁은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벽면에 뒤꿈치와 엉덩이와 등을 바싹 붙이고는 힘껏 몸을 편다. 그대로 숨을 멎은 채 책을 모로 세워 벽면에 붙여 서서히 머리로 내린다. 그러고는 책모서리를 더듬어 연필로 표시를 한다. 살며시 바깥으로 나와서는 책 모서리를 표시에 대고 적당한 길이로 선을 긋는다. 그런 다음 줄자의 끝을 발로 밟고 그 길이를 잰다. 벽에 난 표시들은 마치 감방에 갇힌 죄수가 날짜를 계산한 것처럼 정성스럽게 보인다. 17층 감방에 갇힌 죄수의 소명이다.

집에 들어앉은 후 얼마 동안은 좁은 집안을 뒤지고 다녔다. 하루는 부엌을 뒤졌다. 혹시 아내가 숨겨둔 돈이 있지나 않을까 기대하며 싱크대 이곳저곳을 열어보고 냉장고에 든 내용물을 확인했다. 다음날은 거실을 탐색했다. 장식장 서랍을 빼서 물건을 다 끄집어내기도 하고 신발장을 잡아당겨 바닥에 떨어진 게 없나 살펴보기도 했다. 또 다음날은 방을 살폈다. 의자를 높고 장롱 위를 훑기도 했고 장롱을 열고 옷에 난 주머니들을 뒤져보기도 했다. 침대 아래에 손을 디밀어 형사처럼 바닥을 쓸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자 이도저도 소용없었다. 집안은 상자만큼이나 좁아터져서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모든 것을 점령해버렸다. 그러나 사실 내가 점령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공간은 서재로 쓰는 작은 방이었다. 그 방은 아내와 내가 쓰는 책상이 두 개 있었고, 창이 없는 양쪽 벽은 책장이 차지하고 있다. 진득하니 책상머리에 앉아 책이라도 읽어볼까 싶었지만 도무지 안정이 되지 않았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몰랐고 흥미를 끌 만큼 손 가는 책도 없었다. 책장에는 늘 보던 책들이 꽂혀 있었다. 마치 그 방에 있는 책들을 죄다 읽은 듯 시시하게만 보였다.
  아내의 책상 위에는 첨보는 귀걸이가 있었다. 흑수정인 듯한 검은 보석이 달려 있는 촌스러운 귀걸이였다. 교정을 보다 만 원고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회사일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받아서 하는 일이었다. 언젠가 아내는 그 원고를 내게 내밀며 짬짬이 훑어보라고 했지만 머리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내는 야근이다 약속이다 하며 늦게 들어와서는 매일같이 그 원고를 잡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보라는 뜻인지 보다 만 부분이 펼쳐져 반듯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난 빨간색 플러스펜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아내가 이미 교정을 본 원고들을 들추며 이런저런 품평을 했다. 이따위 글을 써놓고 작가입네 하겠지, 이 작자는. 이건 ‘로서’가 아니라 ‘로써’를 썼어야지. 이 부분은 그럴듯하게 고쳤군. 이 제목 서체는 좀 촌스럽군. 자간을 더 주어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시시콜콜 따지며 또 며칠을 보냈다.
  이 짓도 시들해졌을 즈음 책장 위에 얹혀져 있는 두꺼운 사진첩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옛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사진첩으로 손을 뻗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손끝조차 닿지 않았다. 뒤꿈치를 살짝 들어서 사진첩을 집어 내렸다. 불현듯 이게 아니다 싶어 다시 책장 위로 손을 뻗어보았다. 기억대로라면 손끝은 윗모서리까지 닿아야 했다. 그러나 닿지 않았다. 까치발을 해야 닿을 수 있었다. 불이라도 난 듯 책과 줄자와 연필을 찾았다.

지금 내 키는 정확히 168센티미터이다. 석 달 전 처음 키를 재었을 때는 171센티미터이다. 작년 정기검진 받을 때 본 키는 176센티미터였으니까 무려 그 사이에 5센티미터나 줄어든 셈이다. 그리고 지난 석 달 사이에 3센티미터가 줄어든 셈이다. 은밀한 나의 벽면 기록계에 의하자면 한 달에 1센티미터씩 줄어들었다. 지난달부터는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매일 키를 잰다. 초등학생이 관찰일기를 쓰듯이, 죄수가 하루하루 시간을 계산하듯이.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뼈에 칼슘이 빠져나갈 나이도 아닌데 왜 키가 작아지는지 그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단 말이다. 미치겠다. 한동안은 자고 일어나면 배게 맡에 머리가 수북이 빠져 있어서 그게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키가 작아지는 증상 때문에 머리털은 빠지든 말든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작은 출판사에 다니는 아내는 매일 밤늦게 들어왔다. 혹은 밤늦게 나가곤 했다. 야근이다 중요한 약속이다 하며 늦게 들어왔다. 일찍 들어온 날도 작가라는 작자한테서 전화를 받으면 부리나케 나갔다. 하루는 새벽 두시가 다 되어서야 아내는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왔다. 다음날 부스스한 꼴로 나오는 아내를 보자마자 다그쳤다.
  “당신 도대체 뭐야. 한밤중에 남자가 불러내서 나가더니 술이 떡이 되서 새벽에야 들어와?”
  여전히 잠이 덜 깬 얼굴로 아내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두시도 안 됐던데, 뭘. 그리고 중요한 작가였단 말이야. 원고 받는 일이 앉아서 되는 줄 알아?”
  “뭐? 중요한 작가? 중요한 작가가 부르면 잠옷바람에라도 네 하고 뛰쳐나가야 되냐? 그런 일이라면 당장 때려쳐!”
  대수롭잖다는 아내의 말투에 갑자기 뜨거운 것이 끓어올라 소리를 질러 버렸다.
  아내는 퍼뜩 정신이 든 듯 갑자기 소리를 질러댔다.
  “뭐라고? 때려치라구? 때려치면, 때려치면 뭘 먹고 살 건데? 둘이서 벌어도 빠듯한데 나보고 때려치라고? 그래 둘이서 손가락 빨고 있으면 보기 좋겠다. 당신이야말로 도대체 뭐야. 그 알량한 자존심으로 회사 때려치고 지금 몇 달째 놀고 있는 거냐구!”
  “내가 놀고 싶어서 놀아, 지금?”
  “그 알량한 자존심 부려서 짐 싸서 나오더니 어디든 잘도 들어가겠다. 아니면 일이라도 해얄 거 아냐. 내가 시간나면 보라고 갖다논 원고는 손도 안 댔지? 남는 게 시간이면서 그거도 못 보냐. 그거도 당신 자존심에 걸리는 일이야? 아니면 게을러져서 일도 하기가 싫은 거야?”
  “에이 씨...”
  밤새 잠을 못 이뤄 머리가 지끈거리는 탓인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담배갑을 채서 베란다로 내빼버렸다.
  “담배라도 끊어서 담뱃값이라도 아끼든가!”
  나는 모가지를 뒤로 틀어 아내를 노려보고는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거칠게 닫아버렸다.

아내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출근하자 잠이라도 잘까 싶어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 지렁이 수백 마리가 꿈틀대는 듯했다. 일어나 서재로 들어가 아내의 자리에 앉았다. 내 입을 틀어막아 버린 그 원고뭉치가 여전히 책상 위에 있었다. 미국의 심리학자가 에세이 형식으로 쓴 보고서였다. 출판사 쪽에서는 단순히 심리 에세이라는 말에 검토도 않고 출간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더구나 정신과 전문의가 에세이 형식으로 쓴 책이 주목을 받으면서 너도나도 심리 에세이 쪽 책을 출간하려는 마당이었다. 번역도 보름 만에 급하게 했다더니 역시나 엉망이었다. 외주를 맡긴 출판사 쪽에서는 불필요한 - 흥미를 떨어뜨리는 - 부분을 과감히 삭제해서라도 부담을 주지 않을 만한 230쪽 정도 분량이 되도록 주문을 한 모양이었다. 저자와 독자 모두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책을 절름발이로 만드는 행위이다.
  그러나 나는 내 입을 틀어막아 버린 그 원고를 보기 시작했다. 아내가 앞서 본 그 수위에 맞추어 아무런 생각 없이 봐나갔다. 나흘 동안은 키 재는 일도 잊고 교정에만 매달렸다. 사흘 동안 아내는 유난히도 일찍 들어왔고, 오랜만에 뚝배기에 된장찌개를 끓여 저녁을 차렸으며, 일하는 내게 과일을 깎아 내오기도 했다.

교정을 시작한 지 나흘째 되는 날 원고를 털었다. 원고 뭉치를 챙겨서 아내가 있을 회사로 향했다. 아내가 다니는 회사로 가려면 버스에서 내려서도 십여 분을 걸어야 한다. 회사와 꽤 떨어진 곳에 커피숖이 하나 있었다. 저기 들어가서 얼마 남지 않은 아내의 퇴근을 기다리면 되겠다 싶었다. 오랜만에 외식을 하자고 하리라.
  열려 있는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오른편 안쪽 구석진 곳에 눈에 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그 둘은 옆으로 바싹 붙어 앉아서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의 어깨에 걸치고 있던 손으로 여자의 반대편 옆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때 여자의 귀에서 검은색 귀걸이가 달랑거렸다. 짧게 머리를 친 큰 머리의 사내도 눈에 익었다. 나흘 동안 꼬박 교정을 본 원고를 맡긴 출판사의 사장이었다.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숨을 죽이고 조심스레 커피숖에서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손에는 그 망할 원고 뭉치가 쥐어 있었다. 뭉치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검은색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노려보며 한참을 넋 놓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줄자와 연필과 책을 들고 은밀한 공간으로 갔다. 평소보다 더 신중하고 느린 동작으로 키를 쟀다. 아주 정확하게 167센티미터였다. 좁은 공간에 웅크리고 앉아 눈금이 쳐진 벽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벌써 1센티미터가 줄어들었구나. 이번 달은 더 이상 키가 줄지 않을 것이다. 다행이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남은 날 동안은 괜찮겠구나.

담뱃갑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과연 하늘이 높긴 높구나. 내 키가 줄어들수록 하늘은 점점 높아지겠구나. 귀가하는 차들과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발 밑은 점점 가까워지고 하늘은 점점 높아져갔다. 불현듯 베란다 난간을 괴고 있는 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 아니던가. 잊었던 내 번뇌와 열망이 되살아난다. 나는 까마득한 발 밑을 내려다보며 어디 한번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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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천왕기 1 - 형제
이우혁 지음 / 들녘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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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2716년, 동북아시아의 재구성

 

치우라는 이름은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가 내보인 캐릭터 이미지로 유명해졌다. 그후 치우가 한민족의 조상인가 아닌가를 두고 관심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우혁의 『치우천왕기』에서는 치우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설정하였고, 중국의 조상을 헌원으로 두고 있다.

치우를 소재로 한 이 소설은 기원전 2716년 태산 회의로부터 시작한다. 고조선 건국이 기원전 2333년이니까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의 역사이다. 치우에 관해 전해지는 기록들은 아주 적을 뿐만 아니라 과장과 상징이 심해 해석하는 데도 힘이 든다. 또한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의 생활상을 해석하는 문제도 남는다. 환타지 소설을 표방한다고 해도 이러한 고증의 문제는 피해갈 수 없다.

극히 적은 사료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당시의 생활상을 찾아서 고증한 사실. 또한 나름대로 우주관을 8계로 만들어서 하나의 유기체화한 세계를 머릿속에 만들어놓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다소 속도가 느려서 지루한 감도 있긴 하다. 하지만 전해지는 사료의 최소한의 내용이나, 역사적으로 정리된 당시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에 관한 지식을 갖고 본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겠다. 그 자료들이 저자 나름대로의 상상력에 의해 구체화된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한 대로, 역사적 자료를 소재로 하고 그것을 재구성하여 짜임새 있는 소설로 만들었다고 하나 역시 환타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이를 두고 사실로 믿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아야겠다. 저자도 이를 우려했는지,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의 과정을 같이 보이고 있다.

같은 시대와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현세 만화 『천국의 신화』와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다음 권을 읽기 위한 메모..>
치우를 쌍둥이 형제로 설정하였다. 치우를 주신국 사울아비 출신으로 보았다. 주신국의 수장은 환웅이며 당시 동북아시아의 최강국으로 나온다. 주신국의 위치는 대략 오늘날 만주지역이며, 당시 문명이 가장 발달한 유일한 나라이다. 다음의 강국(나라의 개념은 아님)은 지나족이다. 지나족은 여러 부족을 합해서 부른 통칭이며 아직 나라를 건설하지는 못하고 있다. 수장은 염제 유망이며, 다음의 집권자이며 국가를 만드는 이가 바로 치우와 대립관계에 놓일 황제 헌원이다. 환웅, 염제, 단군, 풍백, 우사, 운사 등은 관직 혹은 지위의 통칭이지 한 인물의 이름이 아니다. 헌원의 출생은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치우의 출생은 사울아비의 자식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이전 환인, 신농 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다. 당시를 청동기 초기철기시대로 설정하고 있다. 철기는 아직 사용되지 않고 있으나 치우의 탁록전투에서는 아마 철기가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3권까지의 내용에서는 아직 철기가 등장하지 않으며, 청동기도 주신과 각 부족의 높은 지위에서만 사용했을 뿐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다. 치우, 헌원, 환웅, 유망 등의 관계나 출생 등과 도구 사용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천국의 신화』와 다른 해석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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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미소 - 김소진 유작산문집
김소진 지음 / 솔출판사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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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에 번지는 아버지의 미소
 

김소진은 1997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일 년 뒤, 김소진이 남긴 산문과 기사, 시, 소설 등을 한데 묶어 ‘아버지의 미소’란 제목으로 책을 내었다.
그동안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비롯하여 『고아떤 뺑덕어멈』『자전거 도둑』등의 단편집과 짧은 소설집 『달팽이 사랑』을 읽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김소진의 유작 산문집을 읽었다.

사실 책날개에서 극찬한 것처럼 우리시대를 대변하는 소설가이며 한국 문학계의 희귀한 성취인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흡입력도 느끼지 못했고, 마약 같은 중독성도 없었다. 그럼에도 몇 권을 더 읽은 것은 삶에 충실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김소진도 말했듯 소설 쓰기는 새로운 이야기의 창작이 아니라 기억의 재구성이었다. 단편들의 주제와 인물은 지나치리만치 그 범위가 확연하다. 그리고 각각의 단편들은 묘하게도 인물의 과거나 장소 등등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바로 삶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는 작업이 곧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김소진이라는 작가의 생각을 짐작해 보고 싶었다. 그뿐이다.

애초에 가족, 동네는 단순한 소재였다. 기억을 재구성하는 글쓰기를 통해 의미가 부여되었다. 가족과 동네의 살아옴은 그것 자체가 역사의 한 조각이었고, 역사를 이루는 구성체였다. 이는 아버지를 부정과 긍정의 과정을 거쳐 결국 이해하게 된 것과 짝을 이룬다. 아버지의 삶이 곧, 격동기의 산 역사이며, 그 역사 속 아버지는 고단한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이다. 어느 새인가 자식을 바라보는 작가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번진다. 바로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미소이다.

궁핍한 우리의 삶을 대변한, 90년대를 뜨거운 실천으로 살다간 작가. 이러한 수식어는 당시대에 한정되어 있다. 당시대에 읽었으면 나 역시 극찬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90년대에서 멎을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애석하게도 그는 90년대 후반에 갇혀 있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점점 코드가 빨리 변해가는 세상, 그에 대한 기억은 점점 사라지거나 혹은 90년대 후반이라는 틀 속에서만 회자될 수밖에 없겠다. 애석하지만, 한편 그것이 순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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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건국사 - 되찾은 주몽신화의 시대
김기흥 지음 / 창비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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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되살아난 주몽신화
 

주몽의 건국신화가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 기존의 연구 내용에 의문을 가진 것이 고구려 건국신화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이며, 아울러 그 내용을 보다 자세히 책으로 풀어쓰게 된 동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적 사실관계와 건국신화를 연결지어 봤을 때, 신화가 자연스레 발생했든 조작되었든 간에 건국 이후 수백 년이 지난 뒤에야 체계화되었다는 주장을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고구려는 초기부터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고구려 제3대 왕인 대무신왕 3년에 동명왕묘가 세워지면서 주몽이 고구려의 시조신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그에 관한 기본적인 신화가 체계화되었다. 그러니 대무신왕 이전부터 건국신화의 체계화 작업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건국과정에서 형성되었으며 정치적으로도 신화를 이용했던 것이다.
또한 고구려의 신화시대는 왕실이 정체성을 확보하게 됨에 따라 서서히 무너져갔다고 본다. 국가로서의 체제가 견고해지는 과정과 맞물려서 나타난 현상인 셈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신화를 복원하는 작업도 해놓았다. 『동국이상국집』「동명황편」을 주된 텍스트로 삼아 『삼국사기』「고구려본기」나 중국측 사서들을 참조하였다. 이들 텍스트 간에도 내용의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조합해 놓아도 서술과정에서 취사선택한 듯 이가 빠진 부분이 있다. 때문에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신화의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을 시도한 것이다.

신화를 역사적 사실과 가깝게, 즉 그럴싸하게 해석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신화에 가미되거나 왜곡된 신비화한 내용을 역사적, 고고학적 자료로 최대한 현실화하는 작업은 거꾸로 당시의 생활상이나 고대인들의 사고를 복원하는 작업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우리의 사고를 벗어나 고대인들의 사고로 유추해야 하는 어려움과 한계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사고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사고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 이 사실은 몇천 년 전 고대인들의 사고와 현재 사람들의 사고가 무엇으로든 이어질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설명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것을 인문학의 사명이라 한다면, 바로 그 여지에 고대사를 연구하는 즐거움과 의의가 있지 않을까.  

고구려 건국신화도 신화라 하고, 그리스로마신화도 신화라 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서로 다른 성질이 있는 듯하다. 고구려 건국신화는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였으므로 역사적 자료가 되는 반면, 그리스로마신화는 역사적 자료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건국신화는 인간을 높이기 위해 신이라는 절대자를 빌려왔다. 그러나 그리스로마신화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때문에 내포된 상징성이 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허구의 이야기가 아닐까. 마치 환타지 소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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