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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훤이라 불러다오
이도학 지음 / 푸른역사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진훤이라 불러주마
원래는 견훤이 아니라 진훤이 맞는 거라더군. 요즘이야 甄을 견이라고 읽지만 당시대의 문헌을 살펴보니 당시에는 이 글자를 견이 아니라 진이라고 음을 달았다더군. 사람 이름이야 고유한 것이니 진훤이 맞겠지. 그런데 문제는 이름 틀리게 부른 데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야. 진훤에 대한 통념이 아주 잘못 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라는 거지. 진훤에 대한 악인이라는 이미지는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를 거치면서 그렇게 되었을 거야. 말하자면 승자의 역사인 셈이지. 승자인 왕건은 선인이 되고, 진훤은 악인, 궁예는 추인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나간 셈이지. 이러한 당대에 역사를 왜곡한 사례는 비일비재하거든. 유명한 『삼국사기』도 그러하고 『삼국지』도 마찬가지지. 승자의 역사뿐만 아니라 잣대를 유학이나 촉한에 들이 댈 때에도 역사는 왜곡되었던 거지. 그런데 당대의 역사 왜곡은 아주 나쁜 놈으로 몰아버리니까 왜곡이 아니라 아예 날조 수준으로도 볼 수가 있겠군. 하기야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저술하고 나서 참조하였던 이전의 사서들을 모두 폐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니 왜곡이야 기본 아니었겠냐고. 더구나 당시로서는 책을 만드는 일은 거의 국가의 사업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말이지. 당시 진훤이 내세웠던 백제 계승이라는 것은 단지 정치적 명분이 아니었을까? 후백제의 세력 안에 있던 지역의 백성들은 물론 지지를 보냈겠지. 명분도 백제를 계승한다니 그럴 듯하고 말이지. 그런데 그들은 신라에 대해 불만이 높았던 것이지 백제에 대해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을까? 대한민국 역사의 다섯 배가 넘는 시간이 흘렀을 텐데 말이다. 오늘날 삼국과 후삼국을 지나치게 가르는 것은 또 다른 왜곡과 조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