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한창 미시마 유키오 에세이 번역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내년 출간할 책들을 검토하느라 여유로운 연말은커녕 평소보다 더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시를 쓰는 소년>을 읽어주신 독자님들의 책 소개를 읽으며 바쁘고 힘든 마음이 환해졌어요.

늘 시와서를 응원해주시는 독자님들의 책 리뷰 소개합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처음이라고 하신 독자님이신데 왜 이제야 이 작가를 읽은 건지 너무 후회스럽다고 하셨어요. 몇 번을 다시 읽어본 문장도 많았고 단편 전체를 낭독하며 읽으시기도 했다는데 단편을 낭독하며 읽은 건 처음이라고 하십니다. 

함께 공감하고 즐겨주시는 독자님을 접하는 것만큼 책 만드는 사람에게 기쁘고 반가운 건 없는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오래오래 좋은 책으로 함께할게요.

아래는 독자님의 리뷰입니다.


몽상은 나의 비상을 단 한 번도 방해하지 않았다. 나는 일찍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비상을 하고 있었다. 몽상에 잠긴 겉모습만 보고서, 내가 얼마나 광활한 내면의 하늘을, 별자리에서 별자리로 날개를 펼치고 날아다니는지 알 길이 없는 그들은, 나를 휘감고 있는 반짝이는 거미줄을 억지로 걷어버렸지만, 거미줄로 보인 것은 사실 아지랑이처럼 여리고 아름다운 나의 날개였다.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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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것은 고독한 작업이고, 소설을 쓰는것도 고동한 작업이다. 활자를 매개로 하여 우리의 고독은, 본적도 없는 타인의 고독속으로 스며 들어간다.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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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나에게 한마디의 말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의 문장은 이미 너무나 완벽했고 내가 덧붙이려던 말은 어떤 작은 긁힘도 만들어내지 못할것이라 생각되었다. 그저 그가 만들어낸 단어, 문장 하나하나를 수긍하는 굴복으로 이어질 뿐이라는 생각. 기가 막힌다라는 말이 절로 새어나오며 나를 무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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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많이 아끼는 출판사 시와서.

조용하고 정갈하지만 이번에도 가장 우아하게 내마음을 제대로 깊숙히 겨누었다. 그리고 예외없이 나를 쓰러뜨렸다. 일본문학을 참 좋아하는 내게 시와서는 늘 가장 충실하고 평화롭게 나의 가장 간절한 욕망을 제대로 충족시켜주는 곳이다.

왜 이 작가의 작품을 이제서야 읽게 된건지..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 문장들, 그랬더라면 분명 아주 오랜시간 머물렀을 그의 세계들, 그 사이를 건너뛰고 이제야 도착한 나의 시간들이 아까워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숨을 죽이며 기다렸던 작가가 만들어놓은 위대한 덫에 걸려서 움직이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멍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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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며, 여러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이름. 작가라는 부르는 것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다 담아낼수 없는 많은 영역을 가로질러 예술과 광기를 드러내내고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 천재.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이 바로 이러한 다양성이 한데 모인 작품집이었기에, 더 그의 매력에 빠져 버린지도 모르겠다.

자전적 색채가 짙게 배인 ‘시를 쓰는 소년’, ‘의자’, 작가가 지니는 지독한 예술적 광기와 외로운 균열이 그대로 드러났던 ‘황야에서’, 그리고 내가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꼈던 ‘우국’까지.

개인적으로는 ‘곶 이야기’와 ‘시를 쓰는 소년’, 그리고 ‘우국’이 가장 깊이 남았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작가의 시간뿐 아니라,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언어로 옮긴 번역자의 시간을 자주 떠올렸다.. 넘칠 듯 풍부하고도 섬세한 표현들은 한편으로는 친절함으로 다가올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언어들을 총동원하고 내가 가진 감성들을 다 쏟아내야 읽어낼수 있었던 작가의 문장들을 그 감성 그대로 옮겨낸다는 일은 또 얼마나 힘든 과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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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읽다 보면, 우리는 결국 작가의 삶이 그 속에 투영되어진다.. 다양한 작품 세계만큼이나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작품의 곳곳에서 깊은 방황과 고독의 숨결로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치열했던 문장들.. 눈이 부시게 찬란했지만 눈이 멀어버린것처럼 또 지독하게 고독한 문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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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정갈하고 깨끗한 한지 위에 소박한 여러 색깔의 물감을 떨어뜨린다. 한쪽 끝에 내려앉은 작은 점들은 더디지만 가장 고운 그리고 경쾌한 보폭으로 종이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스며들기 시작한 그 작은 방울들은 마침내 먼 귀퉁이까지 완전하게 자신의 색깔들로 물들이며 뿌듯해한다. 작가의 글은 한여름날의 갑작스러운 세찬 빗줄기를 닮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 하늘의 문이 열리듯 퍼부어대는 빗줄기는 마음 한가운데 오래 닫혀 있던 협곡의 문을 단숨에 열어젖히고, 가슴 한복판에 간절히 필요했던 수로를 힘차게 만들내어 거칠지만 그러나 아름답게 내 마음 구석구석을 힘차게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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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삶은… 오케스트라의 가장 화려한 순간보다 그 직전에 찾아오는 결정적인 쉼의 순간에 더 소중한것들을 깨닫게 한다. 숨이 멈춘 듯한 그 짧은 시간이 지나고 , 다시 미세하게 바이올린의 첫 음이 진동하며 울리는 그때.. 올것 같지 않았지만 결국 오고야 마는 새벽의 붉은 빛처럼 어둠을 가르고 울리는 그 가냘픈 음 하나는 주변의 모든것을 감싸안으며 최고의 절정의 순간을 보란듯이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의 글들이 내겐 새벽의 붉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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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춘 나의 쉼의 시간에..그 기다림의 시간에 이 책과 함께 할수 있어 너무나 풍성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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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과 연민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이처럼 부드러운 감정의 양면이었다. 종종 멀리 숲에서 올빼미가 우는 소리를 잠자리에서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어린 나는 동물 세계의 자유에 대한 동화적인 동경의 마음과, 어두운 숲속 나무 구멍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계속 노래해야 하는 저 작은 ‘생명’을 향한 연민의 마음을 함께 느꼈다.
...


- <시를 쓰는 소년> 중 <나팔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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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득한 절벽 아래로, 신비스러울 만큼 고요한 물기슭이 보였다. 그것을 물기슭이라 부를 수 있을까. 울퉁불퉁한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푸른 바다가 더한층 짙은 색으로 끓어오르는 절벽 아래쪽이, 저 멀리 펼쳐진 평온하고 희미한 바다 수면보다 더 고요해 보이는 것은, 조금 전에 경험한 것과 똑같이, 소리가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리라. 세밀하고 또렷하게 찍힌 작은 사진처럼, 그 풍경은 너무도 작아서 별세계의 그림처럼 보였다.

- <시를 쓰는 소년> 중 <곶 이야기>에서

🌱
제가 미시마의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묘사 하나하나가,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의 감정이든 눈앞에 펼쳐지듯 선명하고 생생하게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무척 아끼는 단편 중 하나인 <곶 이야기>를 번역하면서 마치 제가 소년의 눈이 되어 아득한 바다를 보고 현기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소녀가 백합을 내밀 때는 꽃향기가 페이지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번역을 하면서도 이런 감정이 드는 저 자신이 놀랍기도 하고... 어쨌든 문장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문학을 번역하면서 종종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번 작품들에서는 더더욱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가끔은 너무 정교하고 논리적이라 담백한 나의 사랑 소세키의 문장이 그리워지기도 해요🤭)

오늘 어느 독자님이 이 책을 읽고 미시마의 표현력에 감탄하시면서 “바다를 묘사하면 그곳의 햇살과 공기마저 스며드는 듯하다”라는 멋진 감상을 써주셔서 저도 미시마의 문장에 대한 생각을 한번 써봤습니다.

언젠가 미시마의 문장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논리적이고 치밀하고 철저한 문장이고, 생생하고 선명한 묘사가 특징이라고 했어요.
이런 글을 쓰려면 일단 글의 소재와 주제에 대해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것으로는 절대 쓸 수 없다는 겁니다. 에세이 <소설가의 휴가>에서 미시마는 예술가의 명민함은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소재(주제)에 대해 구석구석까지 음미하고 잘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금각사를 쓸 때는 교토로 날아갔고, 풍요의 바다 시리즈를 쓸 때는 인도로 날아가서 철저히 보고 느끼고 구상하고... 또 그걸 묵혔다가 다시 생각하고... 작가는 그런 과정을 거쳤어요.

문장의 힘이 참 대단한 게 시각적, 청각적 요소 없이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이 감각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상상하게 한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 문장을 쓰기가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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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좋은 문장을 만나서 작품 전체를 사고 싶을 때도 있고, 한 줄의 나쁜 문장을 만나서 작품 전체를 없애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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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작업 중인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 중 한 문장입니다.
저야 작가는 아니니 작품 전체를 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좋은 문장 하나로 작품 전체를 사고 싶다는 말에는 너무나 공감합니다.

작업하면서 어떤 문장을 만나면 말 그대로 가슴이 떨릴 때가 있어요.
<시를 쓰는 소년> 작업할 때도 그런 문장을 많이 만났는데 오늘은 <시가데라 고승의 사랑> 속 저를 설레게 한 문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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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하얀 손은 새벽빛 속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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