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소년>의 맨 첫 작품 <곶 이야기>에 대해---


개인적으로 무척 아끼는 작품인데 수록작 중 가장 빨리 발표된 거예요.
미시마 나이 스물한 살 때로 1945년 한여름, 전쟁이 거의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입니다. 학교는 문을 닫고 미시마는 학생 근로동원으로 군수 공장에서 생활했는데, 나날이 공습이 격해지며 하루하루 앞날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약 한 달 반에 걸쳐 이 작품을 썼습니다. 유년 시절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을 모티프로 한 작품입니다.

스물한 살에 이런 글을 쓰다니... 작업 내내 든 생각이었는데, 비극적이지만 이런 아름답고 낭만적인 작품을 공습 속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암울한 상황에서 쓴 셈입니다.
작품 속 배경과 현실 속 바깥은 똑같이 찬란한 여름의 한복판이지만 참으로 극과 극의 상황입니다. “유작이라는 심정으로 썼다”라고 한 미시마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작가가 머문 시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으면 좀 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 집필 중에 일본은 패전을 맞이합니다.

스물한 살 때 쓴 이 작품은 미시마가 죽기 2년 전에 호화 양장본으로 그림과 함께 아름다운 책으로 복간되었어요. 약 300부쯤 찍었다고 합니다.
책 속 그림을 그린 화가는 당대의 유명한 삽화가 후키야 고지인데, 미시마가 꼭 이 화가의 그림을 넣고 싶다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후키야 고지는 소녀만화의 원조격인 작가라고 보시면 돼요.

아래 그림이 <곶 이야기> 복간본에 실린 소녀 그림입니다. 작품을 읽은 분들은 소설 속 소녀를 저마다의 모습으로 상상하셨을 텐데 후키야 화가가 그린 소녀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제가 상상한 모습과는 좀 다르네요..🤭



미시마는 아주 기뻐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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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지닌 덧없고 섬세한 아름다움과 우수, 시대에 뒤처진 듯한 기품, 쉽게 퇴색해버리는 청순함, 그리고 어딘가 은은히 감도는 ‘이 세상에 대한 거부’, ‘인간에 대한 거부’ — 이 모든 것이 <곶 이야기>의 여성상에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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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읽은 일본 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후키야 고지의 그림들입니다.




맨 마지막 사진은 소설 속 배경이 된 곶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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