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5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그저 겁을 집어먹었을 때만 위험할 뿐이지요.
p135
...사실 아무런 죄도 없었다. 소송이란 그가 종종 은행을 위해 이득을 내면서 마무리지었던 사업고 ㅏ같은 것에 불과하다. 그런 사업에는 늘 그렇듯이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 위험을 막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무슨 죄에 대한 생각 같은 것에 휘말려서는 안 되고 딜 수 있는 대로 자기 이익에 대한 생각에만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주 빨리, 될 수 있으면 빨리 오늘 저녁에 변호사에게 변호의뢰를 취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
p228
...여자들은 큰 힘을 가지고 있어요. 만약에 제가 아는 몇몇 여자들을 저를 위해 공동으로 일하도록 움직일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법원은 거의 모두가 난봉꾼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p240
...법원은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이 오면 받아들이고, 당신이 가면 내버려둘 뿐입니다.
p271
...차장으로 하여금 내가 완전히 끝장났다는 믿음을 갖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무실에 편안하게 앉아 있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의 마음을 불안하게 해놓아야 한다. 그로 하여금 될 수 잇는 대로 자주 내가 아직 살아 있으며, 비록 지금은 위험하지는 않더라도 살아 있는 모든 인간들처럼 어느 날 새로운 능력으로 그를 놀라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때때로 카는 이런 방법으로 싸우는 것은 오직 자기의 명예를 위한 것뿐이라고 혼잣말을 했따. 왜냐하면 자기가 약한데도 계속 차장에게 맞서봤자 그의 권력에 대한 의식만을 강화시키고 ,그로 하여금 현재의 정세를 관찰하게 하여 그것에 따라 정확히 조치를 취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는 자기 태도를 전혀 바꿀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기만에 빠져 있었으며, 때때로 그는 자기가 이젠 안심하고 차장과 대적할 수 있다고 확신할 때도 있었다. 가장 불행한 경험에서조차 그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모든게 한결같이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그는 열 번 시도해서 실패하면 열한 번째는 관철 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런 대담을 하고 난 후에 그가 지쳐서 담에 젖은 채 멍한 상태로 남게 될 때면, 자신을 차장에게로 급히 가게 만든 것이 희망 때문이었는지 절망 때문이었는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번에 그가 차장의 사무실 문으로 서둘러 달려갈 때는 아주 분명하게 희망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p283
사람들은 카프카의 작품을 꿈같은 환상문학으로, 수수께끼 같은 비유적인 작품으로, 유대교의 카발라 세계를 반영한 작품으로, 아버지와 아들간의 심리적 갈등 문제로, 아니면 현대 인간의 실존적인 불안과 소외 문제로, 문명 세계의 비판이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 인간 사회의 권력과 욕망의 구조, 해체주의적 형식주의로, 초현실주의 세계의 반영으로, 극단적으로는 '병적인 작가 개인의 망상'을 반영한 작품으로까지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물론 독자 개개인의 각기 다른 읽기 방식에 연유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카프카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p284
예전의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들은 언제나 정신과 육체 영혼과 자연, 이념과 물질, 꿈과 현실, 죽음과 삶, 무의식과 의식이 하나로 통일되었던 보편적인 세계 속에 살아 왓고 또한 그것을 꿈꾸어왔다. 그러나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통일된 두 세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생겼다. 꿈과 환상, 정신과 영혼, 그리고 무의식과 상상력이 머물던 정신세계는 멀리 사라져버렸고, 권력과 욕망, 물질과 의식, 그리고 메커니즘화되고 이데올로기화된 현실세계만이 우리 인간을 지배하는 것 같다. 이렇듯 괴리된 정신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의 모순 관계를 카프카는 자신의 잠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자유로우면서도 얽매여 있는 지상의 시민이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지상을 활보할 수 있는 길이의 쇠사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지상의 경계를 넘어설 수 없는 길이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역시 자유로우면서도 얽매여 있는 천상의 쇠사슬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제 지상으로 가려 한다면, 천상의 목걸이가 그를 죄어올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느끼고 있다.
p286
...'세인'으로서의 인간에게는 정신, 영혼, 사랑, 인간다움 등은 거부된다. 즉 '세인'들에게는 정신, 영혼, 사랑, 인간다움 등은 거부된다. 즉 '세인'들에게는 개인적인 것, 사적인 것, 정신적인 것은 일상에 불필요한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물이 된다. 그것들은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뜩한 것, 낯선 것, 그로테스크한 것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자신의 지위에 의해 호칭되고, 등급이 매겨지며, 그 등급에 따라 존재 가치가 평가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필연적인 실존방식이 된다.
그러나 카프카에 따르면 이런 '세인'에게도 가끔은 꿈과 잠을 통해서 혹은 고독한 명상의 순간이나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저 망각된 정신세계나 연혼의 세계가 유령처럼 찾아온다. 카프카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그것을 자신의 서술기법에 적용한다. 그는 권력적인 것, 물질적인 것, 현상적인 것에만 집착해 잇는 인간들이 잠이나 꿈, 혹은 순간적으로 방심한 사이에 그들이 망각했던 정신세계와 영혼의 세계를 마술적으로 침투시킴으로써 그들을 충격과 혼란에 빠뜨린다.
카프카에게 있어 꿈이나 잠 혹은 무의식의 세계는 숨어 있던 '정신적인 것', '영혼적인 것'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며, 그로 인해 인간들이 기계적으로 복속되어 있어서 전혀 전망할 수 없는 일상생활의 상태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카프카는 <소송>에 관한 한 유고 단장에서 이것과 연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잠과 꿈속에서, 적어도 깨어 있는 상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무한한 정신이 현존하거나 혹은 영혼에 대해서도 현실에서보다 더 나은 준비태세가 되어 있어서 눈을 활짝 뜨는 순간에도(...) 현재 존재하는 모든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깨어 있는 순간에도 이러한 것들이 하나의 진기한 것으로 다가올 수 있다.
p289
...일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 경제적 가치체계에 얽매여 있는 '세인'들에게 무의식적인 것, 정신적인 것, 영혼적인 것은 낯선 이미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낯선 이미지가 바로 섬뜩한 해충으로 빗대어 표현된 것이다. 한편 변신된 해충의 시각- 무의식적 또는 정신적 시각에서 보면, 가족들이나 직장동료들이 그에게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잠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직장생활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희생적이었으며 비인간적인 것, 폭력적인 것이었는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가족들이나 직장 상사들은 이제 경제적 기능과 가치를 상실한 채 내면세계에 머물러 있는 '잠자'를 한 개인으로서가 아닌 무가치하고 혐오스러운 동물로 느낄 뿐이다. 개인적인 것, 사적인 것, 정신적인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존 자체를 이협할 수 있는 흉측하고 공포스러운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잠자'라는 해충은 이중의 시각으로 조망되고 이중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바로 여기에 카프카 작품의 난해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