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모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모 비평가가 은희경에게, 지금까지 통속적인 작품으로 일관한 것이 아니냐, 너무 가볍게 글을 쓰는 것은 아니냐는 물음에 그녀의 대답이 너무도 당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통속적인 작품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그녀의 반문,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통속적인 작품이라니까 재미는 있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경험한 만큼 재미도 느낀다는 말을 실감한 작품이다. 나의 학창시절과는 다른 학창시절을 보내고, 사회 생활을 시작한 남자들의 삶. 남의 삶을 엿보는 재미와 더불어 여성이기에 도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남자들의 삶을 엿보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단지 웃음을 자아낸 작품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 작품 이면에 흐르는 우울한 회색빛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정확히 그것이 무엇으로 인해 빚어진 것인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분단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분명 선을 그어 두 개의 색을 등장시키기 마련이다. 그리고 두 개의 색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설정하고 그들의 삶을 그려넣고는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기존의 분단소설과는 다른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나름의 충격이었고, 흥미로움이었다. 이러한 시각을 역사학자의 강의에서, 또는 글에서 접하게 되었다면 그 시각은 참신하게 느낄 수 있으나 지루함을 떨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소설이기에, 그리고 그 작가가 황석영이기에 나는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느끼며 이 작품을 접했던 것이다. 분단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시각의 참신함과 더불어 이 작품의 구성이 우리나라 굿의 한마당을 빌어왔다는 점 또한 작품이 지닌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존의 황석영이 고수하던 리얼리즘과 조금은 다른 리얼리즘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하지만, 보다 전통적인 냄새가 짙은 리얼리즘이라고 할까.
김원일은 소위 대표적인 분단작가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그가 즐겨 다루는 문제 중 하나가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비극적인 삶, 가족사이기 때문이다. <노을>이라는 작품 또한 이 큰 가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한 후 단지 서로 지향하는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동족의 피를 흘리게 만들었던 시대, 내가 알 수 없는 시대이기에 누구의 입장도 쉽게 편들수 없었다. 다만, 이 작품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조금은 미흡한 소년이었다는 점과 아버지의 행동들로 인해 입은 상처들을 거진 한 세대가 지난 뒤 치유해 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다른 분단소설과 달리 좌익사상을 선택하고 그에 따라 맹목적으로 행동한 소년의 아버지는 지식인이 아닌 가장 천한 신분의 백정이었다는 점이다. 소년의 아버지가 왜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는가라는 질문은 소년이 가진 질문이자 독자가 작품을 읽어가면서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이 소년이 마주서기 꺼려하던 문제들을 풀어가는 열쇠가 된다고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분단의 문제에 접근하기 보다는 가슴으로 접근한 점, 이것이 이 작품이 지닌 미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가급적 단편이나 중편을 모은 창작집을 집어들지 않는다. 대신 장편소설집을 선택하는 나에게 이 책은 단편소설이 장편소설보다 더 독자를 몰입하게 할 수 있는 힘을 지닐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이 책의 어떤 점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했을까? 그것은 긴박하게 진행되는 사건들과 군더더기 없는 표현들이었다. 이는 단편이라는 장르가 지닌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아사다 지로라는 작가가 지닌 재담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이 책이 지닌 매력은 각각의 단편들이 각기 다른 분위기를 지닌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악마>라는 작품의 분위기가 매우 독특하다. 이외에 <철도원>과 <러브레터>는 영화화 된 작품들인데, 특히 <러브레터>가 원작인 영화<파이란>은 그 원작과 작품의 배경이나 주인공의 직업, 결말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8편의 작품 중에서 <츠노하즈에서> 와 같은 작품은 우리 나라 정서와 잘 통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8편의 작품들을 모두 헷갈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 중 하나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맛나는 이야기의 진수를 느끼고는, 아사다 지로의 다른 작품들을 다시 집어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