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영화화 된 작품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영화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뭔가 이국적이고 낯선 그 영화의 분위기로 인해 책을 읽게 되었다. 두 권으로 된 책을 보면서, 처음에는 영화보다 지루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영화보다도 더 세밀하게 묘사된 주인공의 행동들, 성격, 그리고 여행 과정이 때로는 오싹함을 때로는 따뜻함을 전해주었다. 콜레라로 인해 사람을 사람같게 여기지 않게 된 그 삭막함이란 너무도 무시무시했다. 낯선 이방인을 무조건 가해하는 마을 사람들의 행위에서 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귀족 청년인 앙젤로가 도피 중 폴린을 만나 이탈리아로 향하면서 겪게 되는 과정에서 비정한 세상 속에서 피어난 한 '인간'과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 기뻤다. 또한 앙젤로와 폴린이 서로 사랑하지만, 어떤 선을 넘지 않는 그 모습 또한 인상깊었다. 육체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있지 않지만, 그를 대신할 만한 것이 있다면 폴린의 마을에 다 와가서 죽음의 문턱에서 그녀를 살리게 한 앙젤로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어떤 육체적인 사랑보다도 숭고해 보였다. 인간 속에 그간에 숨겨있던 비정함과 이기심이 밖으로 튕겨나오면서 발생한 그 혼란한 사회에서, 이들이 보여준 사랑 속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 부족한 휴머니즘이 곁들여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작품은 내가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해서 쉽게 손에서 떼내지 못했던 몇 개 되지 않은 작품 중의 하나다.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이라는 소재는 끊이지 않고 다뤄져왔고, 다루어질 것이다. 이 작품은 그렇게 흔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은 어느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다. 두 주인공인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는 각기 독특한 성격을 지닌 인물들인데, 그 두 인물 성격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절제'일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절대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환희의 감정도 그대로 드러내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그들이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또 나름대로 그 감정들을 표현하는 과정에서도 줄곧 절제된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재밌게 이들을 지켜보게 했던 이유이다. 또한 그들의 만남, 헤어짐, 어렵사리 이루어진 그들의 사랑 스토리가 너무도 재미났던 작품이었다.
이 책은 누구보다 국문학 또는 한국 문학과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접하고 읽어 보았을 만한 책이다. 현재 계속해서 문학사에 대한 개론서들이 출판되고 있지만, 그러한 책들과 다른 이 책의 강점은 비전공자들이라도 쉽게 이 책을 읽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고전문학부터 현대문학이 망라되어 있어서, 그 규모도 방대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시나 소설에 치우치지 않고, 그 간에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장르의 작품들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또한 대표적인 작품은 이야기 식으로 줄거리나 평가가 되어 있어서 나름의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작가인 조동일 님이 고전문학을 전공하신지라 고전문학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기술의 기준에 따라 체계적으로 내용이 정리되어 있는 반면, 현대 문학 부분은 조금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조동일 님이 좋아하고 그 평가를 높이 하는 사람, 작품과 그렇지 않은 사람, 작품은 그것을 다루는 말투가 극히 상이하다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거친 말투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점도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김동인의 소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소설 속 세계를 좌지우지 하는 건 작가이고, 작가가 만든 인형들의 세계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은 대부분 현실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보다는 조작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그러한 인물들이며, 그들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의 영향으로 무참히 파괴되어 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권씨'역시 그러한 인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작품을 읽으면서 슬몃 슬몃 들곤 했다. 그러나 작품을 읽으면서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에서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여 전과자가 되고, 공장에 들어가 다시 한 번 변모하는 그의 모습은 이러한 나의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즉, 그가 왜 그렇게 변해가는지에 대해서 작품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아내의 병원비를 위해 어설픈 강도가 되었고, 죽음 시도했으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 권씨는 원하지 않았지만, 공장에 취직도 되었다. 그러나 권씨는 변했다. 그 변화에 대해, 그의 변화된 모습 이후의 일에 대해서 작가가 다 털어놓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모습에 나는 희망을 걸어본다. 그가 자신의 자존심의 상징인 아홉켤레의 구두를 버리면서 다짐한 표면에 다 드러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말이다.
법정 스님이 저자라는 이유만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스님의 글이 늘 그러하듯이 읽기에는 그지없이 평범해 보이지만, 소소한 일상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는 지혜가 묻어난다. 이 책은 비록 류시화씨가 엮었다고는 하지만, 그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 또한 한꺼번에 읽으려 하면 역시 체하고 만다는 것. 나는 이 책을 주로 집과 학교를 오고가는 지하철 안에서 읽었는데, 그 곳이 만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 속에서 내내 빙긋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은 이 책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