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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힐링과 위로의 말들을 담은 책들이 계속해서 쏟아지는 요즘, 너무 한쪽으로만 이야기들이 치우치는 것 같아 의도적으로 그런 이야기들을 기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런 것들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어떤 생각에서 그것을 좋다, 싫다 하든 말든 궁극적으로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설사 잠깐일지라도- 위안을 얻고, 다시 새롭게 힘을 내어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히 할 일을 해낸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에 변화를 준 것이 바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책 속에 길이 있고, 답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항상 그곳에서 찾았던 것은 답을 찾기 위한 머나먼 길이었기에, 혼란스러운 나에게 명확하게 답을 들려주진 못했었다. 때로는 힘들게 찾은 답이 내가 원하는 것과는 기본적인 상황이나 그 방식이 다르기도 했었다. 어쩌면 내가 답이라는 것을 제대로 찾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 속에서 요즘의 내가, 오늘의 내가 하던 고민들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누군가가 슬쩍 던져주는 답은 이미 답으로써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라 생각도 했었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적으로 -비록 짧은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어제의 나와는 다른 오늘의 나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 첫 번째 걸음
마음이 바쁘면 그 바빠하는 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마음이 짜증을 내면 짜증내고 있음을 알아채고
화가 나면 화내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알아챔은 바쁨, 짜증, 화에 물들어 있지 않아
아는 순간 바로 그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는 작용 자체는 본래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그런지, 직접 해보세요. -P42
언제부터인가 짜증이 부쩍 늘었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짜증내고 화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짜증내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 또 짜증내고 만다. 짜증이 또 다른 짜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 안에서도 짜증은 전염되는데, 함께 일하는 이들을 비롯해 그저 내 주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되는 이들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된다 싶으면서도, 짜증을 멀리해야겠다는 교훈을 얻기보다는, 한없이 좁아터진 마음을 가진 나를 발견하고서 또다시 거기에 머무르고 만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순간 욱! 하고 올라오는 짜증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그 마음을 알아채고,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기 위해 노력했다. 뭐 그런다고 그런 상태에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겠어?, 라는 마음과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하는 마음이 함께 존재했지만 그렇게 해본다고 손해 볼 건 없었으니까 계속해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짜증을 그저 지켜보며 웃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좋은 출발이었다.
- 두 번째 걸음
몸을 구겨서 지하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앞뒤, 옆, 사람이 꽉 찼네요.
이 순간 우리 마음은 짜증을 부릴 수도 있고
헤헤, 손잡이 잡지 않아도 된다고 재미있어할 수도 있습니다. -P38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평소 조용하던 시간에만 지하철을 이용해서 그랬던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것이 그다지 상쾌하게 느껴지진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문뜩 생각났다. 혜민 스님의 ‘헤헤’ 정신(뭐, 내 마음대로 이름 지었다!)이….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머리로는 항상 생각하면서도 마음에서는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일 텐데, 그 중의 하나에 불과한 내가 마음으로 해낸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인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역시 놀라운 한 걸음이 아닌가?! 어쩌면 이런 생각도 습관의 일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습관이라는 이름이 될 ‘헤헤’ 정신을 기억하며, 또 한 걸음을 내딛어 본다.
- 세 번째 걸음
사람 때문에 입은 상처는 사람에 의해 다시 치유된다는 말,
절대로 틀리지 않아요.
하지만 그 전에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나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 시간 없이 바로 새 사람을 만나면
새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잘못하면 이용하는 것이 됩니다. -P185
평소에 하던 생각을 글로 만나니 반가움이 앞섰다. 사람에게서 입은 상처는 그래도 다시 사람을 통해서 치유될 수 있다고, 결국에는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하지만 나의 생각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뭔가를 더 생각하고 행동을 이어나가야하는데 나는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혜민 스님은 나의 그것보다 한 걸음 더 깊숙한 곳까지 생각이 닿아있었다. 자동적으로 나에겐 좋은 배움과 반성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다른 사람을 통하기 전에 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항상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마음 속 깊이 새겨 넣었다. 그렇게 또 다른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 가야할 길, 하나
위로받겠다는 생각을 자꾸 하니
삶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요?
자꾸 위로받겠다는 생각을 하면
그 누구도 내가 만족할 만큼 위로를 해주지 못해요.
차라리 마음 굳게 먹고
내 기도를 통해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남도 위로해줘야지,
마음먹으세요.
그때 위로가 되고, 그때 힘이 납니다. -P27
요즘 유행(?!)이라서 그런가, 이런저런 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중얼거린다. 힐링이 필요해, 힐링이 필요해…. 대세를 따르지 않겠다는 주관도 아닌 얄팍한 자존심을 앞세우면서도 정작 내가 했던 일은 힐링이 필요해를 외치면서, 그저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주지나 않을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나 자신을 위로하고, 가끔씩 내 어깨를 토닥여줄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만난 이 책, 이 글들은 뜻밖의 위로로 다가왔다. 나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없이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준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정작 혜민 스님은 자신은 스스로가 위로해야한다고 한다. 나 스스로를 위로해야한다고 배우면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은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것이 나쁘지만은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위로를 받으면서, 그 힘으로 다시 나 스스로를 위로할 힘까지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직은 쉽지 않은 길이기에 나 자신을 위로하기보다 위로받기를 원하지만, 꼭 가야할 길 중 하나일 것이다.
- 가야할 길, 둘
무조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모든 일이 자기 원하는 대로 쉽게 되면
게을러지고 교만해지며, 노력하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 어려움도 모르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은
내 삶의 큰 가르침일지 모릅니다. -P118
가끔씩 꿈을 꾼다.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모든 이들이 나의 뜻대로 움직이고, 모든 것들이 나의 필요에 따라 공급되는 세상을…. 하지만 역시나 깨고 나면 나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세상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 무조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만은 않는 세상 속에…. 어쩌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좀 더 부지런해지고 겸손해야하며, 노력하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적어도 이제부터는, 당장 오늘뿐만이 아니라 내일 다가올 어려움도, 매일 얻게 되는 가르침 하나하나로 남겨질 것이다. 꿈속에서 헤매는 것이 아닌 현실 속에서 나를 마주하며 매일매일의 가르침 속에서 당당히 걸어갈 것이다.
- 가야할 길, 셋
나를 배신하고 떠난 그 사람,
돈 떼어먹고 도망간 그 사람,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나에게 했던 그 사람,
나를 위해서
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서
정말로 철저하게 나를 위해서
그를 용서하세요. -P51
요즘 가장 큰 걱정이자, 가장 절실하게 해답을 찾아 헤매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물질적인 것을 떠나서, 내가 베풀었던 마음을, 결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짓으로 돌려줬던 누군가로 인해서 겪게 되었던 실망, 배신감, 그로인해 겪게 될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두려움들 속에서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해왔던 것. 이렇게 깔끔하게 결론을 내려도 되는 것인가 싶은 만큼 심플하면서도 명확한 대답을 만난 것이다. 분명, 간단명료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은 일임은 확실하다. 그래도 그런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직 100%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용서’ 라는 그 온전한 위대함에 도달해있는 나를 만나게 되길 소망해본다.
- 그리고, 여전히 가야할…
마음을 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이들이 많아요.
‘마음을 비워야지….’ 하고 마음먹고 마음을 비우려 하면
오히려 더 마음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왜냐하면 ‘비워야지….’ 하는 것도 사실은
비워야 할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을 쉬어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요?
정답은, 올라오는 그 생각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돼요.
지켜보는 순간, 생각은 쉬고 있습니다. -P191
내 마음에 귀기울여본 적이 있었던가? 방법을 몰라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닿지도 않는 심장가까이에 귀를 가까이 가져가보기도 했던가? 하지만 문득, 내 마음을 제대로 알기위해서는 그 이전에 마음을 비워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잠시 멈추고, 우선적으로 마음을 비우기 위해 노력해봤다. 역시 쉽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비워야지, 비워야지,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글귀를 보고 다시 시도해봤다. 올라오는 생각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을….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생각은 쉬고, 나는 졸고 있었다. 휴….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싶은 생각이 앞섰다.
아직은 마음을 비운다는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확실하지만, 작은 것들부터 한걸음 두걸음, 벌써 내딛었고, 또 다른 걸음, 아직 가야할 걸음을 앞두고 있기에 오히려 더 설렌다는 느낌도 든다. 인생은 미완성이기에 더 아름답다는 말이 오늘처럼 절실하게 느껴졌던 일은 없었던 듯하다. 미완성이기에 완성을 기대할 수 있고, 그 완성을 위해 살아가는 오늘과 내일은 더없이 설레고 흥분되는 날들이 아닐까 싶다. 그런 설렘과 흥분이 가득한 날들에 ‘멈춤’은 앞으로의 날들을 보다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만 바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도 많은 이들이 가끔은 ‘멈춤’의 지혜를 떠올려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또한 나 자신도 가끔씩은 멈추어 서서 내 주위 많은 것들이 보여주는 놀라움에 감사하고 행복해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