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곳에
도로시 B. 휴스 지음, 이은선 옮김 / 검은숲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도로시 B. 휴스’ 라는 이름은 나에겐 상당히 낯선 이름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그녀가 여성으로는 다가가기 쉽지 않은 하드보일드와 느와르의 장르를 아우르며 ‘느와르의 여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은 관심은 물론 호기심을 가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에다가 슬쩍 바라본 성분 함량표-검은숲 브랜드에서 출간되는 작품에는 ‘고전의 반열, 대반전, 속도감, 캐릭터, 논리정연, 선정성’이라는 각각의 항목에 점수를 주어서 책의 특징을 표현하기도 한다.- ‘고전의 반열’ 항목에 5점 만점에 5점을 나타내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관심과 호기심… 뭐, 시작은 그렇게 했다.

 

 『고독한 곳에』는 세계 2차 대전 직후 미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그려진다. 퇴역 군인인 ‘딕스 스틸’은 외국으로 떠났다는 친구의 집에서 살고 있다. 자신의 경찰 친구인 ‘브루브’와 그의 아내 ‘실비아’에게는 소설을 쓰는 중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뚜렷한 직업도 없이 친척에게 조금씩 돈을 받아 생활을 하는 처지이다. 문제는(?!) 그런 그가 연쇄 살인범이라는 사실이다. 갑자기 왜 범인부터 밝히냐고, 스포일러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작가가 노리는 것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범인을 모르지만, 독자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설정-이 설정부터가 특이하다는 사실도 이 책에 끌렸던 이유 중 하나이다-인 것이다. 보통 이런 장르를 보면 범인이 누구인지, 어떤 동기로, 어떤 방식으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추측하는 재미를 찾아갈 수 있는데 반해서, 『고독한 곳에』에서는 범인을 미리 알려주고 시작함으로 인해서 그런 재미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재미를 찾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범인을 추적하는 입장에서 벗어나서, 나 스스로가 범인이 되어보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어떤 방법으로 살인을 하는지 딕스 스틸을 그대로 따라가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끝에 가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었는지는 다시 확인해 봐야겠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그동안 이런 장르의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너무 반전이나 선정성에만 집착해왔던 것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고독한 곳에』에서는 반전이나 선정성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뭐, 이미 성분 함량표를 들여다봤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예상외의 반전도 없고, 분명 살인사건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 어떤 자세한 묘사도 없는 것이 『고독한 곳에』인 것이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이 장르의 특성을 살리고 있는 것도 작가만의 능력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사실이 마냥 만족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반전이나 선정성 없이 특징을 잘 살려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다는 사실은 맞지만, 문득 이것이 과연 내가 기대했던 장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 소설이 ‘연애소설’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그렇다. 연애소설… 연쇄 살인범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도 좋지만, 그의 머릿속이 그저 연애질이라는 한군데에만 집중하고 있다면?! 외로우니까 사람과 사랑이 필요하고, 그런 사람을 만났으니까 집착하고, 그러다가 스트레스 받고, 다시 또 어쩌고저쩌고… 여자 앞에서 보이는 당당한 행동과 그 이면에 감추어진 초조함과 불안함의 공존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 것은 독자들을 너무 지치게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반대로 연쇄 살인과 관련된 많은 것들은 안개 속에 꼼꼼하게 감춰둔다. 답답할 정도로… 이런 저런 기울임으로 장르적 혼돈도 겪게 되고, 결국에는 균형 잡기에 실패한 것은 아닌가 하는 나름의 결론까지 내리게 된다.

 

이 소설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있어서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앞서 언급했던, 소설 속 등장인물은 범인을 모르지만 독자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안다는 설정은, 큰 무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혹은 지금까지 어떤 작품에 입맛을 길들여왔느냐, 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범인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진짜 내가 그 범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맛보고 충분히 만족한다면 이 책이 마음에 들것이고, 반대로 반전이나 속도감 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또한 전자에 속한다면 또 하나 넘어야 할 산이 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범인인 ‘딕스 스틸’의 심리를 너무 깊숙하게, 그래서 너무 쓸데없는 곳까지 엿보는 느낌이텐데, 그것을 어떻게 지우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후자에 속하는 듯하고, 전자에 속하기 위해 노력도 해봤지만 범인의 범행 동기 및 그 시작에 대한 이해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그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할까!? 어느 쪽에 속할지, 어떤 쪽으로 생각할지는 결국 개개인의 독자가 해야 하겠지만….

 

 하지만 이런 선택이나 취향의 차이보다도 보다 의미 있게 생각되는 것은,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도로시 B. 휴스’ 식 접근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하는 것이다. 그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스쳐지나갈 만큼의 그런 작품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일까?! 아직 확신은 못하겠지만, 이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드는 것을 보니 아직은 발견하지 못한, 혹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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