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팔레스타인 1 -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역사 아! 팔레스타인 1
원혜진 지음,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여우고개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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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군가산점제도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마다 항상 주고받는 뻔한 내용들이 있다. 한쪽에서는 왜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에게만 가산점을 주느냐, 여자들은 가고 싶어도 못가지 않느냐, 등의 주장을 펼치고, 다른 쪽에서는 몇 년을 희생하는데 그 정도의 보상도 못 받느냐, 그렇다면 가산점을 줄 테니 여자들도 군대를 가라, 라는 식의 끝없는 이야기들이 뒤엉킨다. 그러면서 여자들도 군대를 가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들이미는 사례 중 하나가 이스라엘에 관한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의무병 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그들은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여성들도 그 의무를 함께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나라가 가지는 특수한 상황-항상 전쟁에 노출되어있다는…-이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아는 것이 없던 난 그저 이렇게 이해했다. 아, 그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남녀 구분이 없구나, 훌륭한 민족이고 훌륭한 나라이겠구나, 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그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확실한 듯하지만, 그들의 나라 사랑이라는 것을 다른 민족이나 다른 나라를 -스스럼없이, 그리고 잔인하게!- 죽이는 의미로도 해석 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에 관한 영화는 많다. 그중에서도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를 다루는 영화 또한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 중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등의 영화를 보며 나치들이 행한 잔인한 폭력과 그것을 뛰어넘는 광기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전해지는 인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유대인에 대한 한없는 동정심이 생기기도 했다. 아, 불쌍한 유대인들이여, 그대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모진 일을 당해야 했나! 뭐,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유대인 희생자가 줄어들면 홀로코스트로 인한 전 세계의 유대인 동정여론이 감소할까봐, 유대인 희생자들의 구조를 반대한 것이 또 유대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또한 나치가 학살한 것은 유대인만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숫자로만 본다면 유대인보다 더 많은 집시들이 나치에게 학살당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정 여론은 모조리 유대인의 몫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뭔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보다 더 위험할 때가 있다. 수많은 사례로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스라엘과 그들과 항상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사실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팔레스타인에 관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많은 이들이 무신경하게 TV를 통해서나 보는, 그래서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테러, 보복 테러, 그리고 폭격, 전쟁 등등의 이야기들…. 누가 잘하는 것인지, 누가 잘못한 것인지는 전혀 알려고 하지도 않지만, 영화에서 봤듯이 그저 유대인은 불쌍한 민족이었다는 느낌들…. 알지만 또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위험하다. 그러니까 알아야 한다. 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를…. 그렇게 나는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역사, 『아! 팔레스타인』을 만났다. 몰랐기에, 아니 극히 단편적인 것들만 알았기에 궁금했던 팔레스타인을 언젠가는 한번쯤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더군다나 만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부담감 없이 다가설 수 있었다. (물론, 그 마지막은 또 다른 생각들로 복잡해졌지만….)

 

 『아! 팔레스타인』은 지은이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2000년 9월 30일 열두 살 소년 라미 자말 알두라는 아버지와 함께 중고차 시장에 다녀오다가 시위대를 진압하던 이스라엘군과 맞닥뜨리게 되고, 맨몸인 그들에게 총구를 겨눈 이스라엘군에 의해서 살해 된다. ‘세상에서 인간이 목격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장면’ 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던 그 상황을 보고 충격을 받은 지은이는 팔레스타인을 직접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후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다시 팔레스타인을 찾은 그녀는 그곳에서 팔레스타인의 역사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것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성서에 나오는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는 팔레스타인의 이야기, 그들의 민족주의와 독립에 대한 열망, 영국의 위임 통치 아래에서의 이야기, 그 속에서 시작되는 시오니즘,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이야기, 그리고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이스라엘 건국과정의 수많은 폭력들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박노자가 추천사에서 그랬듯이, 이 책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다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할까?! 물론, 이 책을 읽고 난다면 결론적으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되지만….

  

 이 책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 뜬금없이 팔레스타인이냐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왜 굳이 그 먼 나라의 이야기로 머리 아프게 하냐고! 이 책 속에서 중간 중간에 지은이가 팔레스타인과 우리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식민 지배를 받고, 유엔의 관리를 받고, 강대국에 의해서 분단되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의 반이스라엘 저항운동)가 시작된 그 해 우리도 6월 항쟁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처음 접할 때 받았던 충격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았을 때 받았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과 같은 느낌까지…. (나 역시도 그랬다….) 그렇다면 다시…. 왜 우리가 팔레스타인을 알아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들을 통해서 다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춰 볼 수 있기 때문에, 라는 대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팔레스타인이 되었든, 이스라엘이 되었든, 분명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할 것들이 많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배울 것은 분명 배우고, 반대로 버릴 것은 확실하게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런 선택을 위해서 우선 알아야 할 것이 그들의 이야기인 것 또한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회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많은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게 되어서인지,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정리가 되지 않고 그저 두서없이 끼적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팔레스타인의 근대사까지 들려준 1권에 이어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2권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오늘날 그들의 모습을 보고나면 좀 더 정리가 된 나를 만날 수도 있을까?! 벌써부터 2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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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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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바텐더이다. 선술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적당히 말을 맞춰주며, 적당히 팁이나 받으며, ‘나서지 말고, 조용히 하고, 단순화하고,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고, 자신이 가진 것을 즐겨라.’라는 나만의 철학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런 ‘평범한’ 바텐더이다.

 

 사실 지금은 바텐더의 생활에 만족하며 하루하루 평. 범. 하. 게. 살고 있지만, 한때는 탐욕스러울 정도로 -나의 집 한쪽 벽이 책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미리 밝히면서…-  책을 많이 읽었고, 또 한때는 글을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 글을 쓸 수도 없었다. 사 년 전, 아니 정확히 삼 년 십 개월 사 일 전이라는 시간은, 나의 약혼녀 ‘바바라’가 혼수상태에 빠진 시점이기도 하다. 그녀는 나에게서 약혼반지를 받고서 불과 한 달 만에 그런 모습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집, 나의 곁이 아닌 요양소에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나의 직장인 이름 없는 선술집과 바바라가 있는 요양소를 오가며 여전히 나만의 철학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평범하다고만 생각했던 나의 삶에 평범하지 않음을 선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누군가가 나의 차 와이퍼 밑에 한 장의 쪽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이 쪽지를 경찰에 가져가지 않아서 그자들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내퍼 군 어딘가에 있는 학교의 사랑스런 금발머리 여선생을 살해하겠다.

이걸 경찰에 가져간다면, 여선생 대신 자선 활동을 하는 할망구를 살해할 것이다.

 

결정할 수 있도록 여섯 시간을 주마.

선택은 네 몫이다.”

 

 이 무슨 장난이란 말인가. 뜬금없이 남겨진 쪽지 한 장을 보고 뭔가를 선택하라니. 그것도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말이다. 나는 뭔지 모를 찝찝함에 친구 같은 형이자, 보안관 대리인 ‘래니 올슨’을 찾아가 이야기하지만 그 역시도 별 뾰족한 수는 없어 보였다. 결국에는 그냥 누군가의 조금 심한 장난이라 결론 내린다. 하지만 다음 날 여선생의 시체가 발견되고, 나에게는 두 번째 쪽지가 찾아온다.

 

“만약 경찰에게 달려가지 않아서 그들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어느 누구 하나 서운하게 여기지 않을 미혼 남자를 살해하겠다.

만약 경찰에 신고한다면, 아이 둘이 있는 젊은 엄마를 살해하겠다.

 

결정할 수 있도록 다섯 시간을 주마.

선택은 네 몫이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어느 누구 하나 서운하게 여기지 않을 미혼 남자와 아이 둘이 있는 젊은 엄마 사이에서, 어떻게든 뭔가 하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또다시 누군가의 장난일 것이라 생각하며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겠는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야 말 것인가. 난 어떻게든 뭔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느 선택도 최선이 될 수는 없겠지만, 결국에는 경찰에게 달려가지는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이런 생각부터가 끔찍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보다는 아무래도… 흠…. 이 쪽지와 마주하는 순간, 그리고 내가 뭔가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이 게임(혹은 악몽?!)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선택이라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고 남겨지며….

 

 경찰에 찾아가지 않은 나의 선택에 따라 -안타깝게도-‘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어느 누구 하나 서운하게 여기지 않을 미혼 남자’가 살해된다. 하지만 그 남자… 그 남자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에 엮이게 되는가?! 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끊임없는 궁금증과 압박감이 나를 조금씩, 그러면서도 빠르게 갉아먹는다.

 

 

 흠….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가 싶을 것이다. 이 장난 같은 쪽지들로 도대체 뭘 시작하고, 뭘 선택한다 말인가, 싶을 것이다. 물론 나의 실제이야기가 아닌 소설 속 주인공 ‘빌리’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빌리가 아닌 ‘나’로 이야기를 시작해봤다. 당연한-혹은 정반대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장르의 소설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주인공이라는 이름의 ‘빌리(혹은 그)’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주인공이 되어서….

 

 『벨로시티』는 어느 선술집에서 네드라는 사람과 이방인과의 대화로 시작된다. 그리고 바를 담당하는 빌리가 조금씩 이야기 속에 섞여 들어가면서 차츰 중심은 그쪽으로 옮겨간다. 이야기의 제 삼자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가는 짧은 순간은 평범함을 좀 더 강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아닌 단역, 혹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행인이라도 어딘가에서는 결국 주연이라는 -단순하지만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생각들을 글로 옮겨놓은 것 같아 ‘평범한 일상에 닥쳐온 사건’이라는 기본적인 배경과 무척 잘 어울리는 시작이라 생각된다. 또한 이런 ‘평범한 일상에 닥쳐온 사건’이라는 설정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할 것이라 생각된다. 당장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래서 이야기에 집중도 더 잘 할 수 있게 되고 말이다.

 

 이 이야기의 최대 궁금증은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과 그와 동일 선상에서 도대체 이런 일이 왜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닌- 빌리에게 일어났는가, 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범인은 밝혀지지만, 왜 하필 빌리인가, 라는 질문에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어진다. 그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악이 존재하고, 그 악으로 인해 고통을 받으면서, 그리고 그 악을 제거하면서도 왜 하필 빌리(혹은 나)인가, 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내기란 힘들었던 것이다. 단순히 개연성의 부족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아쉽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면서, 어쩌면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삶에서 왜 하필 나인가?! 라는 질문보다는 뭔가 또다른 질문이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벨로시티Velocity’ 속도라는 의미에 방향성이 더해진 의미라고 한다.) 속도감 있게 달려 나간다. 살인이 시작되고, 살인을 위한 선택-자의든 타의든-이 이어진다. 그 단계별 속도는 점점 빨라만 지고, 그 속에서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의심 또한 커져만 간다. 하지만 그렇게 이어지는 사건들을 통해서 누군가를 의심하기에는 단서도 부족할뿐더러, 그럴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조차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이것이 ‘벨로시티’의 전부냐?! 그렇지 않다. 앞서 ‘벨로시티Velocity’는 속도에 방향성까지 더해진 의미라고 했다. 솔직히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저 속도감에만 집착하면서 달려 나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 방향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사람이 -사실 그리 평범하지만도 않은 것이 빌리 아니던가?!- 전혀 평범하지 않은 모습으로 어려운 순간들을 헤쳐 나가는 것은 결국 한 방향, 한 사람을 향해서 나가는 것이었다. 바로 바바라라는 사랑의 방향으로…. 자신 보다 더 소중한 사람인 바바라를 위해 달려 나가는 것이다. 그저 단순한 생존본능에 의존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그를 평범하지 않은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 내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들도 어느 정도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험한 일을 겪고도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 그 순간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말이다.

 

“죽음은 인간이 티격태격하는 것들을 보다 큰 관점에서 보도록 하죠.” -P23

 

 어떻게 보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악과 선의 구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죽음과 어둠을 몰고 다니는 그 악이라는 것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퍼져나가는 것인가는 지금 이 순간에서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빌리가 보여준 많은 행동들이 죽음, 그리고 어둠을 통해서 역설적이게도 삶과 밝음을 발견하는 과정들이 아니었을까?! 빌리(그리고 딘 쿤츠…)가 보여준 평범한 인간적인 모습들과 -그와 정반대인- 초인적인 모습들이 결국에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 그리고 가장 원초적이면서 절대 필요한 것들을 찾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바바라를 향하고 있던 사랑과 같은 소중하지만 잊고 살아갈 수도 있는 어떤 것들을 찾아가도록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책하고 또 누군가를 원망하며 주저앉거나, 주저앉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빌리의 모습들을 좀 더 자세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답도 주어지지 않을 물음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이 아니라, 이런 순간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순간 속에서도 작은 빛을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도록 말이다. 『벨로시티』를 통해서, 빠르다는 ‘속도’가 전부인 것만 같은 요즘의 세상에서 나는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인지 자신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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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사랑 - 다섯 영혼의 몽환적 사랑 이야기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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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 년 전, 강한 욕망에 이끌려-그때는 분명 그랬다!- 책을 구입해놓고, 지금에 와서는 내가 이런 책도 샀던가? 나에게 이런 책도 있었던가? 혹은 제목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잊고 있었던 내가 그 당시 이 책에 끌렸던 이유가 도대체 뭘까? 싶을 정도로 오랜 시간 방치되어있었던 것들을 며칠 전 쌓여있던 책 정리를 하면서 발견(?!)했다. 그 중에 한 권이 바로 『새빨간 사랑』이다. 이미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된 이 소설을 지금에서야 읽고, 이런 글을 남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잊혔었지만, 그대로 잊혔으면 아쉬울 뻔 했던, 그대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면 아쉬울 뻔 했던 책이기에….

 

 『새빨간 사랑』은 ‘슈카와 미나토’가 도쿄소겐사의 잡지 《미스테리즈!》에 게재 했던 다섯 편의 중단편을 한 권의 책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잡지에 게재되었던 것이 2004년에서 2005년,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된 것이 2007년. 한 두 해만 더 지나면 10년을 채우는, 호러라는 장르에 있어서는 이미 그 내용이 가지고 있을 놀라움이 어느 정도는 퇴색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의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되는 지금에 와서야 출간이 몇 년이니, 햇수가 몇 년이니 따지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저 각 각의 이야기에 빠져있기에도 충분히 바빴으니까 말이다.

 

 인상 깊었던 작품 중 하나는 첫 번째 이야기이기도 한 〈영혼을 찍는 사진사〉이다. 제목 그대로 영혼을 찍는 사진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주인공은 사진사가 아니다. 스물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동생(유리카)을 쉽게 보내지 못하는 사나에. 그녀는 그녀의 애인 하루키를 통해서 시신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장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동생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그 장의사에 의뢰하게 된다. 사진사는 놀라운 기술로 유리카의 사진을 찍게 되고, 사나에는 기대만큼 -정말 살아있는 것 같은- 생생한 모습의 사진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들려온 의심스러운 이야기. 그 진실은 놀라웠다. 죽은 자를 보내지 못하고, 욕심이라도 부려서 스스로를 위로하고자하는 마음과 그런 모습을 노리고 돈만을 취하는 자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필요하게끔 만드는 성도착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새빨간 사랑』이 어떤 책인지 감을 잡지도 못한 시점에서 만난 첫 번째 이야기인지라 가장 놀라움이 컸던 탓도 있었겠지만, 내용 자체에 있어서도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나와서인지 다양한 관점에서의 인간 심리를 엿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의미가 많은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유령소녀 주리〉이다. 자살을 해서 이제는 유령이 된 소녀 주리가 제일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갖고 있는 것인데, 그 누구에게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 유령으로 나타나서 우리에게 그 당연함이라는 이름으로 잊힌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사소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이런 메시지를 전하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게 또 사람이다. 그러니 항상 들으면서 잊지 않아야 한다. 들을 때마다 혹은 누구나 지적을 해줄 때마다 항상 마음 깊이 새기면서…. 특히나 이 작품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슬프고, 가슴 먹먹했기에, 그 아픔과 함께 전해져 오는 진리가 더 가슴 속 깊이 와 닿는다.

 

 이 외에도, 성적 욕망과 영혼의 결합으로 인한 색다른 경험, 그리고 영혼의 성적 욕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레이니 엘렌〉과 절단된 육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인 ‘아크로토모필리아’를 다루는 〈내 이름은 프랜시스〉, 그리고 어쩌면 한 편의 잔혹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상관없을 만큼 섬뜩하면서도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를 담은 〈언젠가 고요의 바다에〉가 이 책에 함께 하고 있다. 저마다의 특징을 가진 독특한 작품들의 공존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바로는, 이 작품들이 단순히 그냥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레이니 엘렌〉의 경우 앞의 이야기인 〈유령소녀 주리〉를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들었던 궁금증(혹은 상상?!)을, -마치 나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했다는 듯, 놀랍게도!- 그 상상 그대로 또 다른 이야기에서 풀어낸다. 〈유령소녀 주리〉와 〈레이니 엘렌〉의 연결고리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시점에 연재되었던 이야기들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 듯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또 다른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표지에는 ‘다섯 영혼의 몽환적 사랑 이야기’라는 글귀가 있다. 그 글을 보면서 처음에는 몽환적인 사랑 이야기를 어떻게 호러라는 장르로 풀어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충분히 가능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호러’라는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공포는 분명 없었지만 또 다른 느낌으로 그만큼의 전율을 전해준다. 거기에다가 슬프도록 아름다운, 아름다워서 슬픈, 혹은 슬프기 때문에 아름다운 건지도 모를 수많은 감정의 교차로 강한 여운까지 남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저 깊은 곳을 찌르는 냉혹함과 더불어 한없이 따뜻해질 수 있는 사랑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것이다. 이런 것들을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인간의 본능, 뒤틀린 욕망, 하지만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업, 같은 것들이 과연 사랑일까?!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보통의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적당하게, 그들처럼 그냥저냥 하는 것이 사랑일까?! 오히려 인간의 깊은 곳에 숨겨진 것들을 꺼내어 은밀하게나마 풀어내는 그들이 더 제대로 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들만큼 열정적이기는 했던가!?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이야기들이, 그 끝에 와서는 그 이상의 생각들을 던져준다. 나의 욕망을 지배하던 수많은 인습들이 여전히 나를 묶어두고 있기에 결론은 무슨 모범답안을 그리듯 이렇게 밖에 나지 않겠지만….

 

 이야기의 중심일 것 같은 이들의 뒤틀리게 보이는 사랑에서 벗어나-사랑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싶은 사랑이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의 사랑에 눈길을 돌려본다고…. 내가 쉽사리 꺼내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그들만의 사랑이라는 모습들까지도 감싸 안는 또 다른 그들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껴본다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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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미싱 판타스틱 픽션 화이트 White 2
체비 스티븐스 지음, 노지양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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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 내가 추리나 스릴러 장르의 글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수많은 장소와 수많은 상황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에는 그래도 내가 잘 아는 것들을 배경으로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도달했다. 나 자신에게 가장 두려운 일을 바탕으로 어떤 이야기라도 해야지,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도 그런 감정을 보다 선명하게 전달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각을 생각에서만 그친 것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 있었다. ‘체비 스티븐스’!! 그녀의 데뷔작이 바로 『스틸 미싱』이다. 그냥 데뷔작도 아닌 놀라운 데뷔작! 평범한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했다는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무섭고 끔찍한 일을 상상하던 중에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상상했기에 나에게도 이토록 그런 감정들이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더 깊게 빠져들 수밖에 없던 책이 『스틸 미싱』이고….

 

 『스틸 미싱』은 밴쿠버 섬의 클레이턴폴스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했던 ‘애니 오설리번’이 정신과 상담의를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이미 그 지역에서는 유명한 사람이다. 아쉽게도(?!) 좋은 것으로 인한 유명함이 아니라 납치당했던 이력이 있는 여성으로서 말이다. 그렇다. 그녀는 납치되었다가 살아난 특별한(혹은 무서운) 경험이 있다. 몸은 실종되었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그녀의 정신은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냥 그렇게 아파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결심이 섰고, 상담을 원하게 된 것이다. 상담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의 조언 따윈 필요 없는, 그저 그녀의 담담한 어조의 회상이 시작된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섭고, 아프고, 슬프고, 그리고 놀라웠다….

 

 어느 날, 애니는 퇴근 무렵에 오픈 하우스에서 한 남성에게 납치되고, 그가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따위는 전혀 모른 채,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 감금당한다. 사이코패스와의 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그녀는 -당연하게도!- 그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사이코패스다운 남자만의 방식으로 가하는 성폭행과 모든 것들 통제당하는 매 순간은 공포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그 잃어버린 시간을 그녀 스스로 조금씩 조금씩 드러내놓으며, 나름의 치유를 해간다. 하지만 자신의 납치와 감금에 가려져있던-혹은 함께 뒤섞여있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

 

 『스틸 미싱』은 무엇보다도 구성이 참 흥미로운 소설이다. 총 26회의 상담이라는 시공간을 빌려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신기하게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상담을 받고 있는 애니의 목소리뿐이었다. 상담의가 끼어들 여지도 없이, 오직 그녀의 목소리만 울려 퍼진다. 처음에는 별 생각도 없이 읽어나갔는데, 어느덧 그 목소리가 나를 끌어들이는 힘은 결코 무시 못 할 수준이 되었다. 상담의는 아니지만 마치 내가 그녀 곁에서 그녀의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 받고 있는 느낌이랄까?! 더군다나 작가 부여한 애니의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이며, 직설적인 언어들은 그 느낌을 한껏 더 실감나게 만들어줬다. 그저 그런 ‘사이코 패스의 납치, 감금’ 스릴러 중 하나가 아닐까 걱정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 정도라면 그냥 보통의 그런 이야기였다고 해도 그리 나쁠 건 없다고 생각이 들만큼 그 흡인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스릴러가 그렇듯이- 『스틸 미싱』이 가진 반전이 더해지면서, 만만히 볼 데뷔작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을 굳혔다.

 

 일 년에 몇 번 씩 이런 책을 만난다. 독서의 슬럼프가 찾아올 때쯤, 그 슬럼프를 극복하게 만들어주는 책.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하루에 한 두 페이지 넘기기도 힘들 날들 속에 갑자기 나타나서 밤새 날 옭아매는 책. 밥보다도 우선순위에 두는 잠을 한순간에 밀어낸 책. 그런 나만의 책 목록에 새롭게 올라온 작품 『스틸 미싱』이다. 이런 즐거움-물론 내용상 마냥 즐겁게 읽을 만한 책은 아니지만…-을 함께 하고자 한다면, 그대도 『스틸 미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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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인문학 강의 - 전 세계 교양인이 100년간 읽어온 하버드 고전수업
윌리엄 앨런 닐슨 엮음, 김영범 옮김 / 유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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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뭔가를 걱정하고 고민하며 살아간다. 언제나 생각(그것이 단순한 걱정이든 고민이든)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라는 것은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지금까지 겪어왔던 짧은 경험이라는 한계 속에 머물러있다. 그러니 생각이라는 것이 커다란 발전도 없이 계속해서 빙글빙글 맴돌고만 만다. 하나의 생각에서 또 다른 하나의 생각으로 넘어가다가도 다시 이전의 생각으로 돌아가 있고, 어느 때는 이런저런 과정 따윈 다 뛰어넘어 저 끝에 가있기도 한다. 정리는 되지 않고, 이리저리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내가 해 왔고, 할 수 있고, 앞으로 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아무런 기초 작업도 없이 그저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며 폼만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다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면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발전이라는 것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인문학으로 자꾸만 기웃거리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열린 인문학 강의』라는 제목만으로도 끌렸던 것이 이 책이다. 관심 있는 인문학 강의인데, 게다가 열려 있다고 하지 않나! 그 열린 문틈 사이로 나 하나 지나가지 못할까 싶은 생각에 과감하게(?!)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열린 인문학 강의』 ‘하버드 고전(Harvard Classics)’이라는 총서의 51번째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51번째 책은 ‘하버드 고전’이라는 50권을 완간하고 나서 고전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하려고 기획된 강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독자들이 고전을 읽을 때 느끼는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하는 교육적 배려에서 출발한 강연인 셈입니다. -역자 후기 中에서…

 

 제목도 ‘열린’이고, 고전을 처음 접하는 ‘일반인’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고 했기 때문일까, 쉽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전적으로 나의 착각이었다. 결코 쉽지 않았다. 분명 입문서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싶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내가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제대로 갖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인문학에 다가서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그런 마음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싶어서, 욕심과 나도 모르게 남아있는 편견 따윈 버리고, 처음부터 무조건 완벽하게 알아간다는 강박감이나 부담감 따위도 지워버리고 인문학 입문에 다가서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럼에도 어려워서 단 한 두 페이지를 읽는 데에도 몇 번이나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도 또 다른 욕심이겠지만….) 그러다가 문득, 욕심을 버리는 순간, 인문학의 정신(!?)에 비로소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말해서,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인문학으로의 입문 자세를 잡아나갈 수 있었다, 고 한다면 너무 성급한 이야기일까!?

 

『열린 인문학 강의』는 역사, 철학, 종교, 정치경제학, 항해와 여행, 희곡, 그리고 시까지 모두 일곱 개의 분야로 구성되어있다. 각 분야에서도 ‘들어가는 말’을 통해 전체적으로 그 분야에 대해 살펴보기가 가능하게 만들었고, 각 분야별로 그 속에 세부 주제를 정해서 한 단계 더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책을 제대로 보기 전에는, 강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라서 각 분야별로 한 명의 교수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각 분야에서도 세부적으로 들어가 각각의 교수, 그러니까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교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수준 높으면서도 다양성까지 충족시키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처음 책을 보면서 누구나 그렇듯 목차부터 살펴보는데 구성 자체가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을 이야기하면서 역사, 철학, 종교, 정치경제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행과 항해, 희곡, 시와 같은 주제들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이런 말을 하면 수준이 낮은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뭐 사실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내가 인문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아무런 개념도 없이 덤벼든 것인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놀라웠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런 놀라움은 끄덕거림과 또 다른 놀라움으로 바뀌어 갔다. 특히나 희곡 같은 경우 크게 관심이 가는 분야가 아니었는데, 그 생각이 조금은 바뀌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희곡을 바라보는구나,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렇게 희곡을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실 언젠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다가 몇 번이나 포기한 적이 있었다. 고전 읽기의 시작으로 삼았던 책인데 처음부터 힘들어했으니…. 덕분에 나의 목표는 방향을 잃고 그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사라져버렸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용기 내어(!?)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느끼고, 또 이야기하다보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놀라움(?!)은 희곡에서뿐만 아니라 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단순히 시를 통해서 철학을 이야기할 수도 있구나 싶은 정도로만 머물렀으나 시가 아주 긴밀하게 인문학과 연계시켜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앞으로도 여전히 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살아가지 않았겠나 싶기도 하고, 또다시 누군가가 시를 통해서 철학을 이야기한다면 그때도 역시 그저 단순한 생각으로만 머물러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의외의 발견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놀라움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철학종교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들이 찾아왔다. 평소에 가끔씩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도 좀 창의적이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마구마구 생산해내고 싶다고…. 그러면서도 어떤 노력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만 했다. 저이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났을 거야, 라며….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원하는 것이 힘들지만, 분명 힘들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선은 상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저 상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해방시키고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 있는 훨씬 타당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철학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으며, 그래서 철학에 (그것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다면 나 역시도 충분히 그런 기준으로 정신해방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사물에 대한 최초의 자유로운 호기심까지 회복할 수 있다면 더 괜찮을 것이라는 가르침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종교를 이야기하면서 신을 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신이 그저 종교의 산물이라고 한다. 그 역시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아니 사실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놀라웠다. 그러고보니,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그로인한 새로운 흥분을 던져주는 것이 이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고전이 애초에 만인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며, 또한 고전은 최고의 작가가 그 시대에 닥친 가장 어려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 해법을 제시한 책이기에 고전에 다가서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렵다 어렵다, 하기 전에 작은 호기심으로 다가선다면 분명 그 어려움도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알던 세계와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물론 그 시각이 달라진 것이겠지만…)는 놀라움을 가지게끔 해주는 계기가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테고 말이다.

 

지금은 고전을 읽어야 할 시간인 셈입니다. 고전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간 군상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을 배울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시대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 인간답게 사는 법(humaniter vivere)을 정리할 수 있다면, 고전을 읽는 수고를 마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고전을 읽을 때, 의지하고 참고할 만한 자료가 있다면 다가가기가 훨씬 쉬울 겁니다. -역자 후기 中에서…

 

 이 한권의 책으로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크나큰 욕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그저 인문학에 다가서기위한 하나의 발판으로 생각해야 맞을 것 같다. (실제 이 책의 의도도 그런 것일 테고…) 전체적으로 훑어보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 속에서 흥미를 조금씩 키우면서, 하버드 고전 도서 목록을 하나씩 찾아가며 그것들을 읽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목표를 둔다면, 이 책은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책을 부르는 책이랄까!? 중요한 것은, 한 권의 책으로 인해 또 다른 많은 책들을 알아가고 싶다는 호기심의 발로야말로 진정한 인문학의 정신에 부합되는 것이 아닐지…. 인문학이 열려있기를 기대하기보다 내가 먼저 열린 마음이 되도록 만들어 주고, 그런 생각으로 한걸음씩 걸어 나가게 만들어 주는 책, 『열린 인문학 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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