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사랑 - 다섯 영혼의 몽환적 사랑 이야기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 강한 욕망에 이끌려-그때는 분명 그랬다!- 책을 구입해놓고, 지금에 와서는 내가 이런 책도 샀던가? 나에게 이런 책도 있었던가? 혹은 제목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잊고 있었던 내가 그 당시 이 책에 끌렸던 이유가 도대체 뭘까? 싶을 정도로 오랜 시간 방치되어있었던 것들을 며칠 전 쌓여있던 책 정리를 하면서 발견(?!)했다. 그 중에 한 권이 바로 『새빨간 사랑』이다. 이미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된 이 소설을 지금에서야 읽고, 이런 글을 남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잊혔었지만, 그대로 잊혔으면 아쉬울 뻔 했던, 그대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면 아쉬울 뻔 했던 책이기에….

 

 『새빨간 사랑』은 ‘슈카와 미나토’가 도쿄소겐사의 잡지 《미스테리즈!》에 게재 했던 다섯 편의 중단편을 한 권의 책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잡지에 게재되었던 것이 2004년에서 2005년,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된 것이 2007년. 한 두 해만 더 지나면 10년을 채우는, 호러라는 장르에 있어서는 이미 그 내용이 가지고 있을 놀라움이 어느 정도는 퇴색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의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되는 지금에 와서야 출간이 몇 년이니, 햇수가 몇 년이니 따지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저 각 각의 이야기에 빠져있기에도 충분히 바빴으니까 말이다.

 

 인상 깊었던 작품 중 하나는 첫 번째 이야기이기도 한 〈영혼을 찍는 사진사〉이다. 제목 그대로 영혼을 찍는 사진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주인공은 사진사가 아니다. 스물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동생(유리카)을 쉽게 보내지 못하는 사나에. 그녀는 그녀의 애인 하루키를 통해서 시신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장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동생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그 장의사에 의뢰하게 된다. 사진사는 놀라운 기술로 유리카의 사진을 찍게 되고, 사나에는 기대만큼 -정말 살아있는 것 같은- 생생한 모습의 사진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들려온 의심스러운 이야기. 그 진실은 놀라웠다. 죽은 자를 보내지 못하고, 욕심이라도 부려서 스스로를 위로하고자하는 마음과 그런 모습을 노리고 돈만을 취하는 자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필요하게끔 만드는 성도착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새빨간 사랑』이 어떤 책인지 감을 잡지도 못한 시점에서 만난 첫 번째 이야기인지라 가장 놀라움이 컸던 탓도 있었겠지만, 내용 자체에 있어서도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나와서인지 다양한 관점에서의 인간 심리를 엿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의미가 많은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유령소녀 주리〉이다. 자살을 해서 이제는 유령이 된 소녀 주리가 제일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갖고 있는 것인데, 그 누구에게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 유령으로 나타나서 우리에게 그 당연함이라는 이름으로 잊힌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사소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이런 메시지를 전하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게 또 사람이다. 그러니 항상 들으면서 잊지 않아야 한다. 들을 때마다 혹은 누구나 지적을 해줄 때마다 항상 마음 깊이 새기면서…. 특히나 이 작품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슬프고, 가슴 먹먹했기에, 그 아픔과 함께 전해져 오는 진리가 더 가슴 속 깊이 와 닿는다.

 

 이 외에도, 성적 욕망과 영혼의 결합으로 인한 색다른 경험, 그리고 영혼의 성적 욕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레이니 엘렌〉과 절단된 육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인 ‘아크로토모필리아’를 다루는 〈내 이름은 프랜시스〉, 그리고 어쩌면 한 편의 잔혹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상관없을 만큼 섬뜩하면서도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를 담은 〈언젠가 고요의 바다에〉가 이 책에 함께 하고 있다. 저마다의 특징을 가진 독특한 작품들의 공존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바로는, 이 작품들이 단순히 그냥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레이니 엘렌〉의 경우 앞의 이야기인 〈유령소녀 주리〉를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들었던 궁금증(혹은 상상?!)을, -마치 나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했다는 듯, 놀랍게도!- 그 상상 그대로 또 다른 이야기에서 풀어낸다. 〈유령소녀 주리〉와 〈레이니 엘렌〉의 연결고리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시점에 연재되었던 이야기들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 듯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또 다른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표지에는 ‘다섯 영혼의 몽환적 사랑 이야기’라는 글귀가 있다. 그 글을 보면서 처음에는 몽환적인 사랑 이야기를 어떻게 호러라는 장르로 풀어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충분히 가능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호러’라는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공포는 분명 없었지만 또 다른 느낌으로 그만큼의 전율을 전해준다. 거기에다가 슬프도록 아름다운, 아름다워서 슬픈, 혹은 슬프기 때문에 아름다운 건지도 모를 수많은 감정의 교차로 강한 여운까지 남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저 깊은 곳을 찌르는 냉혹함과 더불어 한없이 따뜻해질 수 있는 사랑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것이다. 이런 것들을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인간의 본능, 뒤틀린 욕망, 하지만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업, 같은 것들이 과연 사랑일까?!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보통의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적당하게, 그들처럼 그냥저냥 하는 것이 사랑일까?! 오히려 인간의 깊은 곳에 숨겨진 것들을 꺼내어 은밀하게나마 풀어내는 그들이 더 제대로 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들만큼 열정적이기는 했던가!?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이야기들이, 그 끝에 와서는 그 이상의 생각들을 던져준다. 나의 욕망을 지배하던 수많은 인습들이 여전히 나를 묶어두고 있기에 결론은 무슨 모범답안을 그리듯 이렇게 밖에 나지 않겠지만….

 

 이야기의 중심일 것 같은 이들의 뒤틀리게 보이는 사랑에서 벗어나-사랑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싶은 사랑이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의 사랑에 눈길을 돌려본다고…. 내가 쉽사리 꺼내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그들만의 사랑이라는 모습들까지도 감싸 안는 또 다른 그들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껴본다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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