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미싱 판타스틱 픽션 화이트 White 2
체비 스티븐스 지음, 노지양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언젠가, 내가 추리나 스릴러 장르의 글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수많은 장소와 수많은 상황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에는 그래도 내가 잘 아는 것들을 배경으로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도달했다. 나 자신에게 가장 두려운 일을 바탕으로 어떤 이야기라도 해야지,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도 그런 감정을 보다 선명하게 전달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각을 생각에서만 그친 것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 있었다. ‘체비 스티븐스’!! 그녀의 데뷔작이 바로 『스틸 미싱』이다. 그냥 데뷔작도 아닌 놀라운 데뷔작! 평범한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했다는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무섭고 끔찍한 일을 상상하던 중에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상상했기에 나에게도 이토록 그런 감정들이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더 깊게 빠져들 수밖에 없던 책이 『스틸 미싱』이고….

 

 『스틸 미싱』은 밴쿠버 섬의 클레이턴폴스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했던 ‘애니 오설리번’이 정신과 상담의를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이미 그 지역에서는 유명한 사람이다. 아쉽게도(?!) 좋은 것으로 인한 유명함이 아니라 납치당했던 이력이 있는 여성으로서 말이다. 그렇다. 그녀는 납치되었다가 살아난 특별한(혹은 무서운) 경험이 있다. 몸은 실종되었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그녀의 정신은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냥 그렇게 아파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결심이 섰고, 상담을 원하게 된 것이다. 상담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의 조언 따윈 필요 없는, 그저 그녀의 담담한 어조의 회상이 시작된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섭고, 아프고, 슬프고, 그리고 놀라웠다….

 

 어느 날, 애니는 퇴근 무렵에 오픈 하우스에서 한 남성에게 납치되고, 그가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따위는 전혀 모른 채,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 감금당한다. 사이코패스와의 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그녀는 -당연하게도!- 그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사이코패스다운 남자만의 방식으로 가하는 성폭행과 모든 것들 통제당하는 매 순간은 공포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그 잃어버린 시간을 그녀 스스로 조금씩 조금씩 드러내놓으며, 나름의 치유를 해간다. 하지만 자신의 납치와 감금에 가려져있던-혹은 함께 뒤섞여있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

 

 『스틸 미싱』은 무엇보다도 구성이 참 흥미로운 소설이다. 총 26회의 상담이라는 시공간을 빌려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신기하게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상담을 받고 있는 애니의 목소리뿐이었다. 상담의가 끼어들 여지도 없이, 오직 그녀의 목소리만 울려 퍼진다. 처음에는 별 생각도 없이 읽어나갔는데, 어느덧 그 목소리가 나를 끌어들이는 힘은 결코 무시 못 할 수준이 되었다. 상담의는 아니지만 마치 내가 그녀 곁에서 그녀의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 받고 있는 느낌이랄까?! 더군다나 작가 부여한 애니의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이며, 직설적인 언어들은 그 느낌을 한껏 더 실감나게 만들어줬다. 그저 그런 ‘사이코 패스의 납치, 감금’ 스릴러 중 하나가 아닐까 걱정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 정도라면 그냥 보통의 그런 이야기였다고 해도 그리 나쁠 건 없다고 생각이 들만큼 그 흡인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스릴러가 그렇듯이- 『스틸 미싱』이 가진 반전이 더해지면서, 만만히 볼 데뷔작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을 굳혔다.

 

 일 년에 몇 번 씩 이런 책을 만난다. 독서의 슬럼프가 찾아올 때쯤, 그 슬럼프를 극복하게 만들어주는 책.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하루에 한 두 페이지 넘기기도 힘들 날들 속에 갑자기 나타나서 밤새 날 옭아매는 책. 밥보다도 우선순위에 두는 잠을 한순간에 밀어낸 책. 그런 나만의 책 목록에 새롭게 올라온 작품 『스틸 미싱』이다. 이런 즐거움-물론 내용상 마냥 즐겁게 읽을 만한 책은 아니지만…-을 함께 하고자 한다면, 그대도 『스틸 미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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