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꺼기
톰 매카시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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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다. ‘하늘에서 돈벼락이나 떨어지지 않나….’ 하는 심정으로… 가만히 지갑 속에 고이 모셔둔 종이 쪼가리를 손에 꼭 쥐어본다. ‘이번 로또에서는 1등을 해야 할 텐데….’ 라는 심정을 담아… 『찌꺼기』라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생각이 돈에 관한 것이었다. 책의 소개가 ‘사고 보상금으로 100억이 넘는 거금이 생겼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말이다. 단 한 문장으로 다른 복잡한 생각들은 잠시 접어두고 즐거운 상상 속으로 빠져본다. ‘나에게 100억의 돈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까?! 체계적으로 관리?! 쳇… 관리는 무슨… 복잡한 것들은 때려치우고 단순하게, 앞으로 50년을 산다고 가정하고, 1년에 2억씩 쓴다고 생각하면.. ㅎㅎㅎ’아주 잠깐의 즐거운 상상에서 그냥 그런 현실로 돌아온다. 한 숨 한 번 내쉬고,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종이 쪼가리를 만지작 거려본다. 그래, 일단은 이 책으로 아쉬움이나 달래보고자 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펼쳐진다. 돈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ㅡ.

 



 

『찌꺼기』에는 이름도 없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ㅡ. 그는 의문의 사고로 어느 순간의 기억을 상실한 인물이다.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것들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그 사고로 인해 우리의 주인공은 85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액수의 보상금을 받게 된다. 단, 조건은 자신이 겪은 사고의 본질과 세부 사항에 대해서 절대 언급하거나 기록으로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어길 경우 전부를 잃고, 이자까지 챙겨간단다. 이쯤 되면 보통의 사람이라면 지난 사고가 무엇이든, 잃어버린 기억이 무엇이든 그냥 훌훌 털어내고 850만 파운드라는 돈으로 룰루랄라 신나는 날들을 보낼 텐데, 이름 없는 우리의 주인공은 지난 기억에 집착하게 된다.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닌가 보다. 하긴, 처음 850만 파운드 이야기를 듣고, 8의 완벽함에는 만족하지만, 50이라는 100만의 절반에서 느끼는 어수선 함에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에서부터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ㅡ.

주인공이 우리가 생각했던 보통 사람이 아닌 만큼, 그의 행동들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기억의 조각들-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을 따라 재연 극을 해나가게 되고, 그 재연 극은 점점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잃어만 가게 된다. 주인공의 어떤 집착은 결국에는 광기, 그 이상의 상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는 결국, 돈이라는 권력의 또 다른 이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돈이, 아니 권력이란 놈이 얼마나 심각하게 사람을 코너로 몰고 갈 수 있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인공이 계속 집착하는 진실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진실을 추구하면서 오히려 현실과 상상,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왜 진실만을 쫓아가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진짜가 될 수 있고, 또 왜 진짜여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을 해보게 된다 ㅡ.

『찌꺼기』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 빈 칸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보라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단순히 이 주인공을 바라보며, ‘저 자식 왜 저러는 거야?!’혹은 ‘미친놈인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라는 생각으로 넘어간다면 이 책을 읽은 의미마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나 혹은 당신, 아니 인간이라는 존재 모두가 하는 행동이 또 다른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짓으로 보일 수 있다면?! 지금 바로 이 순간 그러할 수도, 아니 이미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지금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확실할 수 있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지금 이세상은 과연 진실인가?! 대답은 결국 자신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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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깨달음 -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
혜민 (慧敏)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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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란 것은 미완성이기에 더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젊음들을 향해, 젊은 날에 삶의 모든 것들을 깨우치라고, 혹은 그래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삶의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젊음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것이 더 멋진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문제는 삶을 어떻게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지식을 배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경험으로 세상을 배우고 바라보는 것이 있을 것이고, 그에 더해서 타인의 시선으로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 세상을 경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지금의 내가 있는 공간과는 다른 곳에서 이전에 내가 미처 하지 못한 생각들을 만나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젊은 날의 깨달음』이라는 이 한 권의 책이 가져다주는 많은 생각들은 더없이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ㅡ.

『젊은 날의 깨달음』
이라는 제목에 솔깃해 관심을 기울인 이 책에는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이라는 소제목이 있다. 처음에는 이 소제목 때문에, 어떤 책인지 제대로 살펴봐야 겠다는 생각에 앞서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젊은 날의 깨달음』이라는 꽤 심오하면서도 순수할 것만 같은 제목의 책에 ‘하버드’라니… 뭔가 모순적이지 않은가?!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일단은 책을 살펴보게 되었다. “미국 최초 한국인 스님 교수”라는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약력에서부터, 뉴욕, 북경, 오사카, 티베트, 산티아고데 콤포스텔라 등을 배경으로 한 스님의 글이라니 궁금증이 더해만 갔고, ‘하버드’따위는 일단 제쳐놓고서라도, 그가 들려주는 깨달음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로 인해 많은 생각들과 함께 보다 풍부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ㅡ.

『젊은 날의 깨달음』
은 혜민 스님이 계를 받고 난 후 지난 10년 동안 일상의 곳곳에서, 혹은 여행지 곳곳에서 생각한 바를 글로 옮긴 에세이들의 모음집이다. 어떤 특별함이 아니라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을 바탕으로 혜민 스님의 날카로운 성찰을 더한 글들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책의 시작이기도 한, 프롤로그에서 스님은‘하버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려와는 달리, ‘성공’이라는 말과 동일시되는 ‘하버드’라는 말을 부제로 사용하겠다는 출판사 측의 제안에 그 스스로도 당혹스러워했고, 적잖이 우려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하버드’가 아닌, 내용이라는 사실을 스님에게 직접 다짐(?!)받으며, 역시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세부적인 어떤 내용보다 스님의 큰 생각들을 보다 쉽게 보여주는 것이 표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뉴욕 성베드로 성당에 앉아있는 스님의 모습을 담은 표지 말이다. 언뜻 그런 생각이 들것이다. 스님이 성당에..?! 하지만 전혀 어색해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자연스러운 어울림으로 많은 생각들을 담아서 보여주는 것 같아 그 어떤 표지보다도 마음에 들고, 그 모습으로 전해주는 생각들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더 마음에 든다 ㅡ.

이 책에는 유려한 문장도, 드라마틱한 성공 신화도 없다고 혜민 스님 스스로가 이미 밝히면서 시작한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더 중요한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다. 유려한 문장도, 드라마틱한 성공 신화 없이도, 담담하고 따뜻한 문장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만으로 충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으면서도 큰 울림을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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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드라이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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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을 때가 있었다. 이왕 하는 생각, 좋은 생각들만 했으면 좋았으련만,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였다. ‘그땐 왜 그랬을까?!’, ‘그러지 않았어야 했는데….’ 따위의 생각들… 그마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한상상, 아니 망상에 빠져있었다. 지나고 보면 그마저도 후회되는 순간들인데 말이다 ㅡ.

 



 

사람들은 후회를 할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 후회가 반성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오히려 후회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바쁜 경우에 이르기도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날의 드라이브』에 나오는 주인공인 노부로 역시도 그렇다. ‘마키무라 노부로’는 택시 기사이다. 그냥 택시 기사도 아닌, 하루하루 할당량을 채우기에도 버거운 ’초보’ 택시 운전기사 ㅡ.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행맨이었던 그는, 지점장에게 했던 단 한 번의 반역으로 좌천을 당하고는 당당하게 사표를 쓰고 나와 버렸다. 자신만의 호기로 인해 영웅주의에 취해있기도 했던 그가 현실에서 선택하게 된 것이 바로 택시 기사이다. 문제는, 택시 기사를 하면서도 여전히 그는 영웅주의를 쉽사리 버리지 못하고, ‘인생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 그리고 ‘다시 한 번, 인생을 달리 살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만으로 현실과 상상 속을 오가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ㅡ.

노부로는 현실에 지쳐만 가고, 점점 과거의 삶을 살게 된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그때의 좋았던 기억들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가 유별나게 더 좋았다기 보다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고픈 생각이 더 강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집안에서 떳떳한 가장의 노릇도 못하고, 택시 안에서도 누군가를 계속 모셔야(?!)하는 입장이다 보니 더더욱 벗어나고픈 생각이 간절했으리라 ㅡ. 그나마, 당연한 결말이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노부로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끝임 없는 망상에서 다시 조금씩 현실을 찾게 되고, 결국에는 그 스스로를 찾게 되는 것이다.

‘…했다면’, ‘…라면’ 이라는 가정 ㅡ. 지금도 혹시 이런 가정으로, 과거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왜 우리는 현실이 아닌 과거를 살아가는 것일까!? 어떤 대답을 얻기도 전에,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이런저런 많은 후회들을 한다. 그런 후회는 계속해서 또 다른 후회만을 남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후회 없는 삶을 살자’ 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고자 하지만, 현실에서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절대 쉽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후회가 아닌 반성으로, 어제가 아닌 오늘을 살아야함을 머리로는 하는데 말이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후회가 반복되는 날들이 아닌, 즐거움이 가득한 행복한 하루하루를 그려나가는 것은 어떨까!?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이 아닌, 하루하루가 새롭게만 느껴지는 날들을 말이다 ㅡ.

“나, 다시 돌아갈래!”가 아닌 “난, 지금이 행복해!”를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나를 그려본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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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이장욱 외 지음 / 작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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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에는 많은 책들이 고이 모셔져 있다. 물론 읽은 책들도 많이 있지만, 아직까지 나의 손길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책들도 많이 있다. 아마 지금 있는 책들만 해도 한동안은 책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넘쳐나는 책 욕심으로 여기저기 재미있는 책들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것들을 보기도 하고, 주워듣기도 하다 보니 우습게도, 제대로 읽어본 작품도 없으면서 많은 작품들의 제목과 그 작품을 쓴 작가의 이름들이 상당히 친밀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익숙하지만 그들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생각으로는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책들에 묻혀만 가게된 것이다. 그렇게 익숙했지만 아직 제대로 접하지 못한 작가들을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속의 단편을 통해서 이제야 만나게 된다 ㅡ.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은 제목 그대로, ‘작가’가 선정한 2010년의 단편소설 일곱 편과 작품집 일곱 권을 담고 있다. 먼저, 「오늘의 소설」에는 선정과정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이장욱의 〈변희봉〉이라는 단편을 시작으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 신경숙의 〈세상 끝의 신발〉, 김숨의 〈간과 쓸개〉, 김애란의 〈벌레들〉, 김중혁의 〈유리의 도시〉, 배수아의 〈무종〉, 그리고 앞서 말했던 ‘언젠가는 읽어봐야지’의 1순위에 올라있는 편혜영의 〈통조림공장〉까지 모두 일곱 편이 있다. 「오늘의 소설」은 단편이다 보니 전부를 담아 놓았는데 반해, 「오늘의 소설집」은 그 작품들의 간단한 소개 정도만 담아놓았다.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전성태의 《늑대》에서부터, 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 한유주의 《얼음의 책》,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김재영의 《폭식》, 그리고 김이은의 《코끼리가 떴다》까지 일곱 권의 책을 이야기한다 ㅡ. 또한 이 책의 마지막에는 세 명의 평론가가 여기에 실려 있는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2010 오늘의 소설 좌담」이 있어, 다양한 각도로 작품을 바라보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ㅡ.

이 중 인상적인 작품 몇 개만 이야기하자면, 가장 먼저
신경숙의 〈세상 끝의 신발〉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신발’이라는 소재로 삶과 죽음, 사랑을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려준다. 역시 ‘신경숙’ 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만의 먹먹한 느낌에 담긴 따뜻한 위로가 그 어느 때와 다름없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오늘의 소설」 선정 과정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는 이장욱의 〈변희봉〉이라는 작품도 기억에 남는다. 특이하게도 배우의 실명을 제목으로 한다. 우리의 현실과 소설 속 현실을 묘하게 비틀면서 특이한 재미를 안겨준다. 이와 같은 듯 하면서도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편혜영의 〈통조림공장〉역시도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한 번은 꼭 만나고 싶었던 작가였는데, 또 다른 작품들을 만나도 후회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이 외에도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길만한 작품이 없었다는 사실에 즐거움과 뭔지 모를 설렘이 가득한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ㅡ.

이런 책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던 작가들이나, 그의 작품들을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어서 좋은 시간들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한 권의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하지만
더 큰 행운은 이런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서 또 다른 작품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큰 행운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설레게 만든 원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설렘을 그대로, 이제 해야 할 일은 큰 행운을 꼭 움켜쥐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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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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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渴望) ㅡ. 작가의 말에서, 《촐라체》와 《고산자》, 그리고 이 소설 《은교》를 작가 스스로가 ‘갈망의 삼부작’ 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갈망이라는 단어보다는 욕망이라는 단어를 보다 먼저 떠올렸다. 욕망이라는 것은 갈망에 비해 육체를 향한 것에 보다 잘 어울리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감각으로 빚어낸 사랑을 보며 욕망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절망으로 옮겨가고 있는 ‘원함’에 한 단면만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갈망(渴望)이라는 한 단어로 다시 소설을 곱씹어본다 ㅡ.

  



고요하고 쓸쓸하다는 뜻을 가진 ‘적요(寂寥)’라는 이름-필명이다-을 가진 시인이 있다. 이십대는 사회주의 운동에 빠져 있었고, 삼심 대에는 그 영향으로 감옥에 있었다. 그리고 사십대에서 그의 생(生) 마지막까지는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인물이다. 변호사 Q는 시인 ‘이적요’의 1주기 즈음, 그의 유언에 따르기에 앞서 이적요의 마지막 노트를 펼쳐보게 된다. 그 노트를 읽은 변호사 Q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노트에는 어린 은교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와, 자신의 제자 서지우에 대한 살인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시인 ‘이적요’와 그의 제자 ‘서지우’, 그리고 그들의 중간으로 파고들어 새로운 관계-결국에는 사랑을 놓고 하는 삼각관계-를 가지게끔 하는 17살 소녀 ‘한은교’ ㅡ. 『은교』는그들의 관계 속에서 얽히고설키는 사랑과 증오, 그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인간 내면의 갈망을 이야기 한다 ㅡ.


『은교』는 함부로 꺼내놓기 힘든 인간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가슴 아픈-그래! 아프다고밖에 표현 할 수 없으리라- 사랑을 이야기한다.

 
“나는 2009년 이른 봄에 죽었다.” - p7


『은교』의 첫 문장은 상당히 낯설다. 어떤 글의 어느 문장이라도 그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않는 경우는 없지만, 그 영향력에 있어서만큼은 첫 문장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책의 질과 상관없이, 무수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 세상에서 글을 시작하는 첫 문장이 상당히 인상 깊게 다가온다면 더없이 좋으리라.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은교』의 시작은 그런 좋음을 뛰어넘어 엄청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문장으로 온몸에 퍼져있는 감각들을 한 곳으로 집중시킨다. 단 한 문장으로……. 그래서 더 낯설다.


“‘밤에만’ 쓴 소설이니, 독자들도 ‘밤에만’ 읽기는 바라고 있다.”
- 작가의 말 中에서…

 
그 무엇보다도 작가의 말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밤에만 읽었다. 그러면 한 층 더 은교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은교와 이적요, 서지우 모두에게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페이지를 덮은 지금, 나는 과연 어디를 향해서 다가갔는지조차 모를 만큼 모든 것이 희미해져온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기에, 그저 인간이라는 그 근원에 한 걸음 다가갔기에 -아니 다가갔다기보다 한 발을 푹 빠뜨렸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뚜렷한 뭔가가 아니라 그저 희미하게 뭔가가 만져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희미한 뭔가, 그것은 갈망이었다. 깊은 정말에 뿌리를 둔, 간절함이었다.

 

“남자에게 연애는 감각으로부터 영혼으로 옮겨단다.”  - p202

 

이적요 시인은 사랑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참된 연애라는 것은 영혼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었던 그가, 지금까지는 하나의 부수적인 것으로 여겼던 감각이라는 것을 통해 그 믿음을 다시 쓴다. 그동안의 생각들은 실체 없는 관념이었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고, 그만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고유명사를 탄생시킨다.

 
 

“나는 그렇게, 나의 지옥으로 걸어 들어갔다.” - p151

사람들은 알면서도,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위험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반드시 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무서운 상상, 즉 의심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은밀한 욕구불만과 그 분출에서 시작된다. 스스로 지옥이라고 인식하는 사랑이라는 곳으로 걸어들어가게 되면서 시인의 은밀한 욕구와 그 분출이 시작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사랑, 의심, 질투 ㅡ. 이들의 서로를 쫓는 질투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조차 애매하게 느껴진다. 서로를 은교에게 빼앗기고 싶은 않은 것이지, 아니면 은교를 서로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인지, 혹은 또 다른 질투인지… 이들 당사자들도 그렇고,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나마저도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아름다운 별’이라는 건 그의 생각이 아니라
세상이 그에게 주입한 생각이었다.
정말 무지한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주입된 생각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맹신하는 자야말로 무지하다.” - p30

  

인식되는 것을 일방적으로 믿는 건 위험한 거야.
인식된 사물이 때로는 그 사물 자체와 얼마나 다른지
너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낱말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가 천차만별이듯이.” - p95


사랑, 의심, 질투 그리고 근본적인 인간 욕망의 이야기는 다른 것들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우선, 문학이라는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 중에서 특히, 어떤 사물에 대한 생각은 인상 깊었다. 그것은 단지 문학에 대한 생각이 아닌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냉소적인 비웃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을 한 번에 뒤집을 만큼의 힘을 가진 것이기에 감히 반박하지도 못할 만큼의 차갑지만 정말 화끈한 비웃음 말이다.

 
“너희가 지금 누리는 달콤한 인생을 누가 주었느냐고,
어디로부터 온 것이냐고,
마음대로 너희들만 누릴 권리는…… 없다고.” - p135

 

또한, 나이 듦을 통해서도 그 이갸기는 나타나게 된다. 청춘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한 때 저랬었지’ 따위의 생각이 아닌, 뭔지 모를 억울함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 억울함에 소리치고 싶은 욕망을 가슴 속으로 삼키면서 그것을 미친 상상에 불과했다고 자신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며 차라리 소리쳐 토해내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은교』에는 수많은 시들이 인용되어있고, 그 것들 역시도 작가의 또다른 표현 방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잘 몰라서, 그래서 나에게는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시(詩)이지만, 그런 시들이 중간 중간에 끼어들어 당사자들의 감정과 그때의 상황들을 적절히 담아냄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어려우면서도 애매하고,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뭔가 느껴진다. 이해가 될 듯 말듯하면서도 머리로는 아니지만 가슴으로는 찌릿한 뭔가가 느껴지는 듯한 기분들이 나를 휩쓸고 지나간다고 해야 할까?! 그런 것들 중에서도 진정으로 나를 전율로 몰아넣으면서도 유쾌하게 했던 한 대목이 있었다. 바로 「헌화가」 가 나오던 그 부분 ㅡ. 헌화가의 주인공이라도 된다는 듯이 암벽을 타서 은교의 손거울을 주워오던 이적요의 모습에 이르러서야 정말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그의 사랑은 나에게 있어서 욕망이 아닌 갈망이 되었다. 

 

“사랑의 발화와 그 성장,
소멸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  - p12
 



낯설게 시작해서, 단지 평범한 사랑-사랑은 나이와는 관계가 없다는- 진부한 이야기만을 늘여 놓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어떤 결말로 마무리되어질지 내심 궁금했었다. 수많은 생각만을 던져주고 희미하게 마무리 되는 것은 아닐지……. 다행스럽게도 모든 결론은 홀로 남겨진 은교가 내린다. 사랑, 질투, 그리고 한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갈망 ㅡ. 어쩌면 그 갈망도 마지막이었기에, 생의 마지막이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그런 마지막선물을 자기 부정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이적요에 대해, 은교는 이적요의 나머지 것들을 태워버린다. 그녀가 태운 것은 단지 아까운 몰스킨 노트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태우고 싶었던 것은 이적요 시인의 어리석은 -갈망을 넘어선-욕망이 아니었을까?! 시인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던 마지막 한줌의 사랑의 선물을 그녀는 타오르는 불꽃으로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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