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냐가 열린책들 세계문학 101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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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케냐AA’로 커피 한잔을 준비해본다. 잘 볶은 원두를 핸드밀로 갈아서 드리퍼 안의 종이 필터에 고르게 담는다. 물을 끓이고, 그 물을 드립포트에 옮겨 담는다. 물론, 서버와 커피 잔의 예열도 빠뜨리지 않는다. 드립포트를 통해 커피가루를 골고루 적시고, 뜸들이기를 하고, 정성껏 한 잔의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한 잔의 커피를 만들기 위한 시간은 불과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이 짧은 시간을 통해 얻은 한 잔의 커피를 맛보며 그 시간이상의 즐거움으로, 가보지도 못한 케냐라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동물의 왕국에서나 봤을법한 그곳의 모습들을 말이다. 그런 좋은 상상도 잠시, 훌륭한 한 잔의 커피에서 느껴지는 좋은 기운들만이 상상 속에서 그려지면 좋을 텐데, 커피의 묵직함 만큼이나 무거운 느낌의 뭔가가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느껴지는 그 짓누름은 아마도 ‘키리냐가’의 시작이자 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의 제목이기도한 ‘키리냐가’는 22세기를 배경으로 이야기되는 유토피아의 이름이다. 인구 과잉, 공해, 위험과 질병으로 들끓고, 심지어 동물조차 찾아보기 힘든 지구의 케냐에서 벗어나 키쿠유 부족은 자신들의 전통 문화를 지키기 위해 지구 밖 소행성으로 떠난다. 그 소행성의 이름이자, 그들의 유토피아가 될 곳이 바로 ‘키리냐가’인 것이다. 그 중심에 키쿠유 부족의 주술사, 문두무구가 되는 코리바가 있다. 그렇게 ‘키리냐가’의 시작부터 그 마지막이자 또 다른 시작이 되는 시점까지의 이야기를 10편의 연작소설로 담아낸 것이 이 책, 『키리냐가』이다. ‘22세기’혹은 ‘지구 밖 소행성’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미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이 소설은 SF소설이다. 참고로, 『키리냐가』는 SF 역사상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며, 이 소설의 저자 ‘마이크 레스닉’은 2009년 [로커스] 지가 선정한 [현재까지 존재했던 최고의 SF 단편 작가] 1위, [현재까지 존재했던 최고의 SF 작가] 4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굳이 상의 권위를 빌려 말하지 않더라도, 멋진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SF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아프리카의 케냐가 등장하고, 그 속에 아프리카의 전통부족인 키쿠유 부족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어쩌면 신기하게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 말이다. 어쩌면 단순한 신기함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성급한 결론인지도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느껴지던 신기함을 넘어선 어떤 괴리감 같은 것들이 다시 이 소설의 마지막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하면서 읽어나가면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마지막에는 역시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고 해야 할까?! 

 

키쿠유 부족은 현실-그래도 결국은 22세기이다-인 케냐를 벗어나 ‘키리냐가’를 선택하고, 그들의 전통에 따라서 삶을 영위한다. 그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바로 코리바이다. 키쿠유족이 전통을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그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중심을 잡아준다. 처음에는 역시 키쿠유족의 문두무구라는 이름에 걸맞게 참으로 현명하게 그들을 이끌고, 키리냐가를 이끌어 나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동시에 또 다른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통이란 무엇이고, 결국 그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들 말이다. 그들의 존재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존재가 아닌 것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들 말이다.

전통과 정체는 서로 다른 거예요, 할아버지. 

만약 할아버지께서 전자의 이름으로 취향과 행동의 변화를 제약한다면  

단지 후자를 택하는 것일 뿐이에요.” - p237

 
단순히 전통과 정체 사이에서 오는 혼란이라고 해야 할까?! 문화와 문화 사이에서 오는 충돌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식민지화라는 과거-혹은 현실이기도 한-의 크나큰 상처로 인한 방어 심리 때문일까?! 유럽식 문화를 거부하는 코리바. 그 행동양식을 키쿠유족에게도 제안하고 강요하는 코리바. 하지만 우스운 것은, 정작 그 자신은 그 행동양식들을 유럽식 문화를 사용해 이루어나간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 「트루먼쇼」에서 트루먼의 진짜 삶을 가로막는 트루먼쇼 제작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영화 속 그 인물처럼 상업성이 아닌 개인의 가치관 문제이기에 코리바를 나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아쉬울 뿐이라고 해야 할까?!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느꼈다면,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그 사고에 유연성도 충분히 주어져야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은 전통이 아니니까 안 돼, 저것도 전통이 아니니까 안 돼. 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오히려 반대로 그 전통들은 과연 어떻게 형성되어 온 것일까를 생각해보면 정답은 쉽게 나올 텐데 말이다. 크게 봐서, 인류의 삶을 코리바의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커녕, 인류의 존재 또한 불투명하지 않을까?!

유토피아에는 여러 가지 다른 정의가 있단다. 

키리냐가는 키쿠유족의 유토피아지.” - p188


같은 키쿠유족이라도 그 개개인의 정의마저 다를 수 있는데, 단지 한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유토피아는 더더욱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유토피아라는 그 자체가 결국에는 토머스 모어가 만들어냈을 때의 그 유래처럼 ‘어디에도 없는 나라’라는 뜻으로밖에 남겨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지금 당장의 현실이야 어떻든,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유토피아를 꿈꾼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꿈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아닐까?! 코리바가 꿈꾸던 ‘키리냐가’는 끝이 났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키리냐가’, 나아가 모두가 함께 꿈꾸는 ‘키리냐가’를 현실로 끌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고 살아가지 않으며, 나와 다름을 인정-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을 것이다-하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틀림없이 가능한 세상의 우리 모두의 ‘키리냐가’가 아닐까?! 

 

『키리냐가』는 ‘열린 책들 세계문학’의 101번째 책이다. ‘열린 책들 세계문학’이라는 이름을 통해, 우리가 꼭 접해야 할 고전 문학만을 생각했었는데, 여기에서 SF를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보면 『키리냐가』만큼 열린 책들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열린 책들’을 통해 미처 생각지 못한 SF 를 접하고, 그로 인해 ‘열린 마음’으로 한 걸음 다가가면서 진짜 우리의 ‘키리냐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결코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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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새 박스/새 봉투 인증샷 찍고 적립금 받자!

【알라딘 새 박스/새 봉투 인증샷】을 찍어보자~!! ^^

새 박스는 예쁜데 운송장이 너덜너덜, 찢어나가면서 박스도 상처가…
조금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가장 큰 박스!! 이 안에는 무엇이..?! 

 . 

.

.

 

두둥~!! 박스 안에 봉투와 또 다른 박스가..!! 

 

그렇다!! 박스는 또 다른 박스를 낳는다..!! 

 

음.. 원래 박스는 그 속을 가득 채운 책들로 꾸며야 하지만..
지금의 주인공은 새 박스와 새 봉투니까..!!
주인공이 당당히 주인공으로 대접받는 뭐.. 그런.. ㅡ,.ㅡㅋ
 

결론적으로 알라딘 새 박스와 새 봉투!!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꾸며졌다.
맘에 든다는 이야기쥐.. 뭐, 무슨 말이 더 필요해?! ^^ 

 

이상..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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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문학동네가 쏜다!!』가 다시 돌아왔다!!
당첨의 확률보다도 그저 책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바구니 결재는 그저 따라오는 것일 뿐. (음.. 그래도 좀 따라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ㅎㅎ)  

 

자, 이번에 공개할 나의 장바구니는...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조지 오웰 

29편의 에세이를 통해 오웰 삶의 각 국면에 대한 세세한 이해를 해볼 기회이다. 정치적 입장, 현실에 대한 작가로서의 태도 등 인간 오웰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라는 책 소개에서 만나는 오웰의 입장은 정말 공감되고 맘에 든다. 왠지 이 책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
 

 

 

 《폐허에 바라다》사사키 조 

 <경관의 피>로 유명한 경찰소설의 베테랑 작가 사사키 조의 작품으로 여섯 편의 단편이 결국에는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지며 커다란 그림을 완성시킨다고 한다.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고 하는데, 나오키상은 물론이고 일본의 권위 있는 모든 상을 석권한 일본 최고의 작가라고 하니,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간다.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우타노 쇼고 

자꾸만 어떤 상의 수상에 집착하는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작품의 작가인 우타노 쇼고는 본격미스터리 대상을 두 번 받는 사상 최초의 작가이다. “죽이고 싶은 인간이 있어서 죽인 게 아니라 써보고 싶은 트릭이 있어서 죽였지” 라는 문구가 보여주듯이 이 작품의 살인은 이유가 없기에. 추리소설의 극한까지 밀고 나간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끔은 지긋한 도덕 따윈 던져버리고 추리, 그 자체로 책을 즐겨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복어》조경란 

재미있는 책 없냐는 나의 질문에 누군가가 조경란의 <혀>라는 작품을 추천했었다. 이름만으로는 벌써 수백 번은 읽었어야 마땅한 작품이며, 그만큼 익숙한 작가인데, 안타깝게도 아직 인연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새롭게 나온 《복어》라는 책으로 이렇게 만남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는데… 우리의 인연은 아직 인가보다. 언제쯤 첫 만남이 시작될지…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조지 오웰 - 16,200원
《폐허에 바라다》사사키 조 - 12,420원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우타노 쇼고 - 11,700원
《복어》조경란 - 9,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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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결제 예상 금액 50,2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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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1월에 읽을 주목할 만한 신간 도서 - 소설】 

10월에 주목할 만한 도서들을 추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11월로 넘어왔다.
10월에 출간된 책들 중에 어떤 책들이 재미있을까.. 요리조리 둘러본다.. 그리고 생각~ ^^ 

 

 《울프홀1,2》 

16세기 튜더 왕조의 음모와 계략을 생생하게 그려낸 흥미로운 역사소설이다. 노벨문학상·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이자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2009년 맨부커상을 받은… 상당한 분량의 책이지만, 그 분량에 대한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재미를 던져줄 것 같다.
 

  

 

 《아름다운 집》 

평소 눈여겨보던 시리즈 중 하나가 ‘일루저니스트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에 처음으로 국내 작가의 작품이 선정되었다는 사실에 관심이 간다. 이 소설은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까지 아우르며 우리 현대사를 장식한 굵직한 인물들의 행적과 우리 민족이 걸어왔던 길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한다.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그 속에서 ‘아름다운 집’으로 표현되는 앞으로의 우리 모습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토마토 랩소디》 

제목만으로도 맛있어 보이는 소설이다. 이탈리아 음식과 전원 문화에 대한 팩션이자 로맨스 코미디라고 말할 수 있다는데... 역사적 사실들에 상상력과 로맨스가 더해지고 코미디까지 더해진 소설이라... 제목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상당히 맛있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 

<사신 치바>, <골든 슬럼버>의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새로운 작품이다. 대타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수많은 고독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성장의 이야기라는데… 개인적으로 평소 좋아하는 야구를 인생과 비교하며, 그 공통점 뽑아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거기에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작품은 연재소설이었는데 매회 소설의 시점을 바꾸는 등의 문학적 실험에 도전했고, 결과적으로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즐거움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새로운 책을 둘러보고 고른다는 것은 항상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출간된 많은 책들 중 몇 권만 추려낸다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 저 책 모두 날 자꾸만 당기니까… ^^ 11월 신간평가단의 선정 도서는 어떤 책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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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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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한때 내 인생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걸 죽은 후에야 깨달았다.” - P376

 

나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평가 할 수 있을까?! 좋다, 나쁘다 정도의 순간순간 느낌에 따라 평가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평가하고 돌아본다면 지금의 내 삶을 훨씬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텐데 그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럼 나를 죽여 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은, 수많은 고민을 떠안으며 점점 삶에 지쳐가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끔씩 쉬어가면서 자신의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권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물며 단순한 휴식으로는 더더욱 힘들 것이다. 그럴 때 나를 죽여 보는 것이다. 나를 죽이고 나면 내 삶이 똑바로 보일 것이다. 헛소리 하지 말라고?! 안타깝게도(?!) 『빅 픽처』의 주인공 ‘벤’은 자신을 죽인다. 그러고는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자 이제, 자신을 죽인 한 남자의 이야기가 『빅 픽처』에서 펼쳐진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된다. 매일 특별한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일 뿐이다. 이런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 내 삶의 뭔가가 어긋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일상이라는 이름의 늪에서 나도 모르게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발버둥을 치게 된다. 하지만 그 발버둥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게만 할 뿐이다. 어느새 그것마저도 지쳐가고, 나는 발버둥이라는 일상에서의 탈출을 위한 최소한의 행동마저 접어둔 채, 머리로만 뭔가를 생각하고 머리로만 뭔가를 갈구하게 된다. 이런 어긋남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혹은 내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제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원한다는 생각이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혹은 삶에도 게임처럼 리셋 기능을 한 번쯤은 부여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하곤 할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 한번쯤은 해봤을 생각이다. 아니, 한번쯤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도 계속해서 하고 있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가!! 그것들 또한 깊이가 헤아려지지 않는 늪의 깊은 곳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단순한 생각만으로 그치고 있지는 않은가?!

이 모든 생각은 나에 대한 불만족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나를 원한다는 생각을 다르게 표현하면, 지금의 내가 불만족스럽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불만족의 시작은 어디일까?! 내가 원하는 삶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때 다가오는 것이 불만족이라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는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현실 앞에서 주저앉아 그 일과는 다른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그럴 때마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는 생각에 금방 현실로 되돌아오고는 한다. 대부분이 이런 끊이없는 생각들을 반복하지만, 만약 현실로 돌아오기 힘든 일이 발생해버린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겠는가?!

『빅 픽처』의 주인공 벤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자의 반, 타의 반이지만……. 그는 꿈이 있으나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했다. 그저 계속해서 갈망할 뿐이다. 그랬던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사고로 인해 지금까지 원했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된다. 새로운 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으로 말이다. 조금만 운이 따라준다면 내가 원하는 삶은 쉽게 펼쳐진다. 어쩌면 그것은 운이 아니라 시작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단지 그 시작을 하지 않았기에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고, 그저 운으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벤을 통해서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당연한 결과물인지 운인지 모를 것들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다시 일상이 되어버린 새로운 나에서 또 다른 나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한 번 빠지면 계속해서 빠지게 되는 중독처럼……. 그것을 리셋 증후군이라고 표현 해야 하나?! 게임을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시작해버리면 된다는 생각이 게임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빅 픽처』는 전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지 예상은 된다. 정말 단순히 말하자면 끝이 보이는 뻔 한 스토리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 그 자체가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 또한 들게 될 것이다. 벤이라고 해야 할지, 게리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이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고,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기위해서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 한순간의 분노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지고, 그 사고를 계기로 또 다른 삶을 강요당하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한 남자. 그 남자와 그를 둘러싼 상황들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남자가 되어가는 것, 그래야만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이런저런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결국에는 마치 오랜 꿈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깨어나는 듯 한 느낌을 가질 수 있으리라.

 

“내 말 잘 들어, 친구. 인생은 지금 이대로가 전부야.
자네가 현재의 처지를 싫어하면, 결국 모든 걸 잃게 돼.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가 지금 가진 걸 모두 잃게 된다면
아마도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을 거야.
세상일이란 게 늘 그러니까.” - P119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아쉬워한다. 그러고는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생각은 마지막이기에 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 진짜 삶을 마지막까지 몰고 가면서 나를 새로운 길로 안내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런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빅 픽처』에서 반복되는 삶의 마지막, 그리고 새로운 삶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을 보게 된다. 결국 우리는 소설을 통해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우리는 삶의 큰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빅 픽처』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마무리된다. 결국, 꿈속의 이야기 같은 느낌을 안겨주는 『빅 픽처』에서는 마무리 또한 기억이 날듯 말 듯 한 꿈과 같은 흐릿함으로 어떤 선택을 던져준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언제까지나 새로운 나를 원하며 살아갈 것인가 라는……. 혹은, 지금 내 삶의 초점을 내가 원하는 나에게로 맞춰나가는 삶을 선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것에도 정답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뭔가에 이끌려가는 삶이 아닌 내가 끌어가는 삶이 되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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