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한때 내 인생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걸 죽은 후에야 깨달았다.” - P376

 

나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평가 할 수 있을까?! 좋다, 나쁘다 정도의 순간순간 느낌에 따라 평가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평가하고 돌아본다면 지금의 내 삶을 훨씬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텐데 그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럼 나를 죽여 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은, 수많은 고민을 떠안으며 점점 삶에 지쳐가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끔씩 쉬어가면서 자신의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권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물며 단순한 휴식으로는 더더욱 힘들 것이다. 그럴 때 나를 죽여 보는 것이다. 나를 죽이고 나면 내 삶이 똑바로 보일 것이다. 헛소리 하지 말라고?! 안타깝게도(?!) 『빅 픽처』의 주인공 ‘벤’은 자신을 죽인다. 그러고는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자 이제, 자신을 죽인 한 남자의 이야기가 『빅 픽처』에서 펼쳐진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된다. 매일 특별한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일 뿐이다. 이런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 내 삶의 뭔가가 어긋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일상이라는 이름의 늪에서 나도 모르게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발버둥을 치게 된다. 하지만 그 발버둥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게만 할 뿐이다. 어느새 그것마저도 지쳐가고, 나는 발버둥이라는 일상에서의 탈출을 위한 최소한의 행동마저 접어둔 채, 머리로만 뭔가를 생각하고 머리로만 뭔가를 갈구하게 된다. 이런 어긋남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혹은 내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제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원한다는 생각이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혹은 삶에도 게임처럼 리셋 기능을 한 번쯤은 부여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하곤 할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 한번쯤은 해봤을 생각이다. 아니, 한번쯤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도 계속해서 하고 있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가!! 그것들 또한 깊이가 헤아려지지 않는 늪의 깊은 곳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단순한 생각만으로 그치고 있지는 않은가?!

이 모든 생각은 나에 대한 불만족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나를 원한다는 생각을 다르게 표현하면, 지금의 내가 불만족스럽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불만족의 시작은 어디일까?! 내가 원하는 삶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때 다가오는 것이 불만족이라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는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현실 앞에서 주저앉아 그 일과는 다른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그럴 때마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는 생각에 금방 현실로 되돌아오고는 한다. 대부분이 이런 끊이없는 생각들을 반복하지만, 만약 현실로 돌아오기 힘든 일이 발생해버린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겠는가?!

『빅 픽처』의 주인공 벤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자의 반, 타의 반이지만……. 그는 꿈이 있으나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했다. 그저 계속해서 갈망할 뿐이다. 그랬던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사고로 인해 지금까지 원했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된다. 새로운 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으로 말이다. 조금만 운이 따라준다면 내가 원하는 삶은 쉽게 펼쳐진다. 어쩌면 그것은 운이 아니라 시작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단지 그 시작을 하지 않았기에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고, 그저 운으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벤을 통해서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당연한 결과물인지 운인지 모를 것들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다시 일상이 되어버린 새로운 나에서 또 다른 나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한 번 빠지면 계속해서 빠지게 되는 중독처럼……. 그것을 리셋 증후군이라고 표현 해야 하나?! 게임을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시작해버리면 된다는 생각이 게임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빅 픽처』는 전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지 예상은 된다. 정말 단순히 말하자면 끝이 보이는 뻔 한 스토리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 그 자체가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 또한 들게 될 것이다. 벤이라고 해야 할지, 게리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이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고,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기위해서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 한순간의 분노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지고, 그 사고를 계기로 또 다른 삶을 강요당하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한 남자. 그 남자와 그를 둘러싼 상황들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남자가 되어가는 것, 그래야만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이런저런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결국에는 마치 오랜 꿈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깨어나는 듯 한 느낌을 가질 수 있으리라.

 

“내 말 잘 들어, 친구. 인생은 지금 이대로가 전부야.
자네가 현재의 처지를 싫어하면, 결국 모든 걸 잃게 돼.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가 지금 가진 걸 모두 잃게 된다면
아마도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을 거야.
세상일이란 게 늘 그러니까.” - P119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아쉬워한다. 그러고는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생각은 마지막이기에 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 진짜 삶을 마지막까지 몰고 가면서 나를 새로운 길로 안내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런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빅 픽처』에서 반복되는 삶의 마지막, 그리고 새로운 삶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을 보게 된다. 결국 우리는 소설을 통해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우리는 삶의 큰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빅 픽처』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마무리된다. 결국, 꿈속의 이야기 같은 느낌을 안겨주는 『빅 픽처』에서는 마무리 또한 기억이 날듯 말 듯 한 꿈과 같은 흐릿함으로 어떤 선택을 던져준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언제까지나 새로운 나를 원하며 살아갈 것인가 라는……. 혹은, 지금 내 삶의 초점을 내가 원하는 나에게로 맞춰나가는 삶을 선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것에도 정답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뭔가에 이끌려가는 삶이 아닌 내가 끌어가는 삶이 되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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