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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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화가의 작품을 보고 그에 대해 비평 읽기 외에도 화가의 삶을 살펴보면 작품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압축된 작품 바깥에 있는 화가의 풍부한 생각들을 읽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반 고흐, 영혼의 편지》(예담)는 고흐의 삶과 그의 생각들이 편지에 담겨 있다.

이 책에는 고흐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넘는 일화들이 있다. 고흐를 떠올리면 귀를 잘랐으며, 정신병원에 있었고 자살한 것 정도만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으로 고흐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서 추구하는 것을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58쪽)

"<씨 뿌리는 사람>에서 하늘은 황색 1호와 2호를 섞어 칠했는데, 흰색이 약간 섞인 황색 1호 물감으로 색칠한 태양만큼이나 환하네. 그래서 그림 전체가 주로 노란색 계열이라네. 씨 뿌리는 사람의 상의는 파란색이고 바지는 흰색이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25호 캔버스(166쪽)."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감상적이고 나약하게 보이는 농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대상을 찾겠지. 그러나 길게 봤을 때는 농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달콤하게 그리는 것보다, 그들 특유의 거친 속성을 살려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114쪽)

그는 또한 독서도 많이 했다. 고흐가 살았던 시대의 작품들(현재는 고전이 된)을 읽었다. "월요일 아침에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진지한 열의, 절제된 산문, 분석적인 태도 등은 아주 건실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나약해질 때마다 거기 의지할 수 있다. 프랑스 작가들 중에는 발자크와 졸라가 그런 사람이지."(81쪽) 이 외에도 플로베르, 모파상, 콩쿠르 형제, 리슈팽 등의 작품들을 읽기도 했다.

일상에 대한 고찰도 있다. 예를 들어 복권을 사는 모습을 보고 복권을 사는 사람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가 스케치를 하면서 "복권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이 우리 눈에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음식을 사는 데 썼어야 할 돈. 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샀을지도 모르는 복권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그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의 고통과 쓸쓸한 노력을 생각해보렴."(79쪽)

사랑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이성에 대한 사랑에서 결말을 생각하는 계산적인 사랑을 하지 말라고 테오에게 충고해 주기도 하고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24쪽)

작품의 판매에 대한 진실 하나를 알 수 있다. "고흐는 생전에 한 점의 그림만 팔았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유화에만 국한된 이야기다. 그는 화상이던 센트 숙부의 주문을 받고 헤이그 풍경을 담은 열두 점의 스케치를 그려서 20길더를 받았다."(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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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0
에밀리 브론테 지음, 안동민 옮김 / 범우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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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이 언제나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지 못하거나(변심, 짝사랑 등의 이유로) 죽게 되면 그와 관계 맺었던 사람들은 불행해진다.

소설 『폭풍의 언덕』에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이름의 저택에서 3대에 걸친 여러 가지 사랑이 등장하며 그것으로 인해 복잡하게 얽히는 불행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1세대인 캐서린과 힌들리의 아버지인 언쇼 씨는 이름도 없는 가난한 고아를 데려가 키우며 그에게 히스

클리프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가난한 고아를 데려와 기른다는 것은 사랑의 행위라고 할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캐서린, 힌들리, 히스클리프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계기가 된다. 언쇼 씨는 히스클리프에게 애정을 많이 쏟아 힌들리는 그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겼다고 느끼고 원한에 사무치게 된다(51쪽).

언쇼 씨가 죽게 되자 재산을 힌들리가 받게 된다. 그는 히스클리프에게 교육도 시키지 않고 하인만큼 일을 시킴으로써 복수를 한다. 그 와중에도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유년 시절을 함께 야생마처럼 보내면서 서로를 사랑한다. 혼기에 찬 캐서린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히스클리프과 결혼하지 않고 에드거와 결혼하게 된다. 물론 캐서린은 에드거와 결혼해서 히르클리프가 출세하도록 도움으로써 힌들리 오빠로부터 독립을 시켜주려고 의도하지만(106쪽) 히스클리프는 그 얘기를 듣지 못한 채 이미 나가버렸다.

학대받으며 자란 히스클리프에게 캐서린의 사랑이란 절대적이었을 텐데 그녀의 변심은 커다란 폭력을 낳는다. 히스클리프는 마을에서 사라져 3년 만에 돌아와 폭풍의 언덕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린튼의 여동생인 이사벨라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녀와 도망쳐서 결혼한다. 히스클리프는 이사벨라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오빠에게 상처를 줘서 궁극적으로는 캐서린에게 상처를 주기 위함이었다. 이사벨라는 히스클리프의 냉정함과 안락함에서 벗어난 생활 때문에 그에게서 도망해 남자아이를 낳고 죽는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폭풍의 언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힌들리의 아들인 헤어튼에게 자신과 당했던 것과 똑같이 교육도 시키지 않고 거칠게 키우며 일만 시킨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복수가 주인공들을 완전히 집어삼켜 버렸을까?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다. 3대에 이르러서야 그것은 풀리게 된다. 캐시(캐서린의 딸)는 히스클리프의 악마성에도 불구하고 폭풍의 언덕으로 와서 그 저택의 사람들과 지내게 된다. 히스클리프는 더 이상 남들을 괴롭히지 않기로 하고 죽음에 몸을 맡긴다.

비록 히스클리프가 제대로 양육한 것은 아니지만 알콜중독자에 일찍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키워진 헤어튼이 히스클리프의 장례식에서도 애도함으로써 3대에 이르러서야 폭풍은 물러간다.

이 작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상당히 많이 잃는다. 우선 언쇼 씨의 아내가 어린 히스클리프를 데리고 오자 얼마 되지 않아 죽었으며, 그 뒤를 이어 언쇼 씨가 죽었으며 캐서린도 죽어 히스클리프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다. 이사벨라도 죽음으로써 에드거 린튼도 곧이어 죽게 된다.

언쇼 씨가 죽음으로써 히스클리프는 더 이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고 캐서린이 죽음으로써 히스클리프와 에드거 린튼은 큰 고통을 받는다. 이사벨라의 죽음은 에드거 린튼을 그녀가 죽은 지 6개월 만에 죽게 될 정도가 되고 그녀의 아들인 히스클리프 2세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와 살게 된다.

소설 말미에서 보여주듯 죽음이 나쁜 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히스클리프가 죽고 나자 "저기 저 산기슭에 히스클리프 씨와 웬 여자가 있어요."라고 꼬마가 말(417쪽)한 것처럼 비록 삶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 죽음을 통해서 완성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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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로 만든 집
윤성희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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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에 가지고 놀던 레고를 떠올리면, 그 장난감은 조립하면 로보트가 되고, 조립하면 무슨 물건이 되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변형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곧 한 가지만의 절대적인 세상이 아니라 다양성의 세상이라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견고하지가 못해 소설 '레고로 만든 집'의 마지막에서처럼 쉽게 부서질 수 있다.

이 소설은 70년대 태생들, 즉 1990년대에서 2000년대를 살아가는 20대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 20대들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 편의점 등과 같은 친숙한 인물과 공간을 사용하고 있고, 스턴트맨의 일상이나 보험 건을 처리하는 일 등의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는 것들을 장점으로 들 수 있다. 단점으로는 문제 해결에 있어 어설픈 영웅주의도 안 되겠지만 아직 소극적이었다. 또한 슬프긴 하지만 감동이 별로 오지 않고, 문장을 끌고 가는 힘이 부족한 면(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듯 나열식으로 되어 있다)도 있다.

그 중에서 '레고로 만든 집'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문장은 자연스러우며 설명이 아니다. 주인공의 오빠가 "추워"라고 하는 대목이나 '세탁기를 고치는 비용이 중고 세탁기를 사는 만큼 든다는 말에 엄두도 못내고 있다'(p.26) 같은 대목에 의해서 가난에 대해 한탄조가 아니게 잘 묘사해내고 있다.

또한 가족에 대화가 없다는 부분도 전체적으로 세 사람의 대화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집을 날리고 쓰러졌을 때, 아버지가 잃어버린 것은 손과 발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15평 아파트 전세금을 가지고 사라졌을 때, 아버지는 말문을 닫아버렸다'(19쪽)라는 부분도 가족간의 대화가 없다는 것을 잘 드러냈다.

내용적으로 보면 주인공은 냉장고도 있고 세탁기도, 전기밥솥 등도 있는 평범한 집에서 산다. 그러나 넉넉한 집안은 아니며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가 경제적인 능력이 없을뿐더러 가사일이나마도 도와주지 못한다. 즉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집안일을 혼자 다 해가며 정신이상자인 오빠와 지체부자유자인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22쪽과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 아르바이트도 끝나는데'(26쪽)를 보면, 그녀의 이런 고된 삶이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녀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갇혀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일탈을 한다. 복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의 책만 복사해주던 그녀가 자신의 손을 여러 장 복사하기도 하고, 거짓말로 학교에 다니는 척 해야 하는 슬픔에 저항하는 듯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와서 읽으며, 먹이를 주던 어미 없는 새끼 고양이에게 벽돌을 던지고, 오빠가 가지고 놀던 레고까지 밟아 부수어 버리기도 한다. 특히 복사된 얼굴이 불에 타버린다는 것은 과거의 자신을 정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새롭게 재건이 될 전망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점, 아픔은 보이지만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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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 [dts]
박진표 감독, 박치규 외 출연 / 대경DVD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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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티비에서 박진표 감독, 이순예, 박치규 주연의 '죽어도 좋아'를 봤습니다.

몇 년 전 이 영화가 심의 통과 문제로 한참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을 때입니다. 제가 몸  담고 있던 어느 홈페이지에 어떤 분이 이런 글을 쓰셨지요.

동국대에서 죽어도 좋아를 상영했는데 관객이 많아서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고. 겉으로는 도덕적인 체하면서 관람객 수는 상당히 많았다며 사람들이 이중적이라고 했지요.

저는 그 글을 읽고 이렇게 답글을 달았지요. 내 생각에는 그것보다는 심의에 문제가 있다고. 저는 영화를 볼지 말지는 소비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했지요. 입소문, 비평, 포스터 등을 보고 그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좋지, 기관에서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게다가 심의위원들은 그 영화를 봐도 되고(이미 봤고) 소비자들에게 열어 놓지 않은 것은 닫힌 엘리트주의라고. 게다가 제 부모님이나 앞으로 결혼하게 되면 시댁 부모님에게 좋은 성교육 영화가 될 수도 있으니 적극 추천하겠다고 했지요.

저는 그 영화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제한상영이나 노년의 성생활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감독이 왜 하필 '다큐멘터리'로 찍었는가가 궁금했습니다. 다큐멘터리로 찍으면 ㅋ방송사의 '이것이 인생이다'와 비슷할 위험도 있고, 노인들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 궁금증은 영화를 보면서 풀렸습니다. 영화 내용이 진행되는 내내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사람의 대화가 싸울 때를 제외하고는 낮은 목소리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 박치규 할아버지가 이순예 할머니에게 작업(?)을 들어갈 때의 목소리 크기는 자막처리까지 하는 웅얼거림에 가까울 정도의 작은 소리였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청춘가'를 가르쳐 주거나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한글쓰기를 가르쳐 줄 때 그 목소리는 집중하지 않으면 잘 못 알아들을 정도로 작더군요. 그리고 노부부가 처음 성관계를 갖고 나서 새벽 거리는 그저 평범하게 차와 오토바이가 다니는 극히 일상적인 장면이었지요. 결국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노인들의 성생활이란 별로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지만 일상적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은 미화된 혹은 이상화된 각본보다는 다큐멘터리에 잘 맞는다며 감독의 전략(^^)에 감탄했지요.

이 부부가 유일하게 큰 목소리를 낼 때는 싸움이 벌어지고 나서입니다. 이순예 할머니가 밤늦게까지 놀다 집에 들어오자 걱정에 지친 할아버지가 화를 내지요. 저는 그것을 보면서 70대가 되도 희로애락애오욕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했지요. 연애하는 기쁨에서 결혼하는 욕망을 실현하고도 할머니가 밤늦게 들어왔다고 할아버지가 "며칠 더 있다 오지 그랬어."에서 발전해 "몇 년 더 있다가 오지."라고 비아냥거릴 때는 참 사소한 것으로 감정 상하면서 오래 싸운다라고 생각했지요(사소한 것에서 큰 상처를 받습니다만). 저는 70대가 되면 지금 갖고 있는 모든 번뇌를 다 초월해서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구나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중년 이상의 어른들에게 갖고 있던 동경심도 그저 막연한 것이었을 뿐 그들도 지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깨달으며 부러움은 스러지고 이해심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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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 [할인행사]
바흐만 고바디 감독, 아웁 아마디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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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의 일이지만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 꿈은 접어야 하기 때문에 그 기회를 포기했다. 아직도 그 기회가 머릿속에서 불쑥 고개를 들 때가 있다. 그리고 병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신체적 문제도 없지만 거울을 보면서 외모가 더 뛰어났으면 할 때가 있다. 이런 내 경제 상태와 외모에 대한 고민이 사치라고 말하는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이 영화는 한 소녀가 자신의 가족 소개로 시작한다. 소녀의 형제자매는 5명인데 한 명은 장애인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다리나 팔이 아픈거겠지 했던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불치병에 걸려 있다. 장애인인 마디의 나이는 15살인데 키는 10살 정도 되는 여동생 키의 반이 조금 넘고 죽음을 목전에 두었는데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 등 치료비가 많이 든다.

이들의 엄마는 없고 아빠가 사고로 죽는다. 집안의 장남인 아윱은 아빠를 대신해 돈을 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도끼로 찍어 땔감을 만들고, 어른들도 버거워하는 노새로 국경너머 이라크까지 타이어 나르는 일을 한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시각적으로도 아픈 영화지만 청각적으로도 아픈 영화다. 이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은 소녀는 10살 쯤이다. 비록 쿠르드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사고로 죽은 아빠, 장애인 오빠로 시작되는 가족의 슬픈 배경과 가난을 말하는 소녀의 목소리는 말하기도 벅찬 듯 간신히 이어진다. 술에 취해 눈에 누워도 일어나지 못하며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노새들도 안타깝다. 마지막에 아윱이 장애인 동생을 업고 노새를 끄는 장면에서는 차갑기만 한 바람소리가 끊임없이 휑하니 메아리친다. 그의 삶은 계속 추울 거라는 듯.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그 냉혹한 삶을 대하는 아윱의 태도다. 그는 가족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단 한 마디 불평도 없다. 그가 "왜 내게 이런 일이?"라는 원망이 담긴 근원적인 질문이나 "힘들고 괴로워"라는 넋두리 없이 일을 하는 모습에서 삶의 고귀함을 본다. 세상에 어떤 찬바람이 불어도 삶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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