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로 만든 집
윤성희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예전에 가지고 놀던 레고를 떠올리면, 그 장난감은 조립하면 로보트가 되고, 조립하면 무슨 물건이 되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변형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곧 한 가지만의 절대적인 세상이 아니라 다양성의 세상이라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견고하지가 못해 소설 '레고로 만든 집'의 마지막에서처럼 쉽게 부서질 수 있다.

이 소설은 70년대 태생들, 즉 1990년대에서 2000년대를 살아가는 20대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 20대들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 편의점 등과 같은 친숙한 인물과 공간을 사용하고 있고, 스턴트맨의 일상이나 보험 건을 처리하는 일 등의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는 것들을 장점으로 들 수 있다. 단점으로는 문제 해결에 있어 어설픈 영웅주의도 안 되겠지만 아직 소극적이었다. 또한 슬프긴 하지만 감동이 별로 오지 않고, 문장을 끌고 가는 힘이 부족한 면(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듯 나열식으로 되어 있다)도 있다.

그 중에서 '레고로 만든 집'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문장은 자연스러우며 설명이 아니다. 주인공의 오빠가 "추워"라고 하는 대목이나 '세탁기를 고치는 비용이 중고 세탁기를 사는 만큼 든다는 말에 엄두도 못내고 있다'(p.26) 같은 대목에 의해서 가난에 대해 한탄조가 아니게 잘 묘사해내고 있다.

또한 가족에 대화가 없다는 부분도 전체적으로 세 사람의 대화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집을 날리고 쓰러졌을 때, 아버지가 잃어버린 것은 손과 발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15평 아파트 전세금을 가지고 사라졌을 때, 아버지는 말문을 닫아버렸다'(19쪽)라는 부분도 가족간의 대화가 없다는 것을 잘 드러냈다.

내용적으로 보면 주인공은 냉장고도 있고 세탁기도, 전기밥솥 등도 있는 평범한 집에서 산다. 그러나 넉넉한 집안은 아니며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가 경제적인 능력이 없을뿐더러 가사일이나마도 도와주지 못한다. 즉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집안일을 혼자 다 해가며 정신이상자인 오빠와 지체부자유자인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22쪽과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 아르바이트도 끝나는데'(26쪽)를 보면, 그녀의 이런 고된 삶이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녀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갇혀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일탈을 한다. 복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의 책만 복사해주던 그녀가 자신의 손을 여러 장 복사하기도 하고, 거짓말로 학교에 다니는 척 해야 하는 슬픔에 저항하는 듯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와서 읽으며, 먹이를 주던 어미 없는 새끼 고양이에게 벽돌을 던지고, 오빠가 가지고 놀던 레고까지 밟아 부수어 버리기도 한다. 특히 복사된 얼굴이 불에 타버린다는 것은 과거의 자신을 정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새롭게 재건이 될 전망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점, 아픔은 보이지만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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