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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 [할인행사]
바흐만 고바디 감독, 아웁 아마디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몇 달 전의 일이지만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 꿈은 접어야 하기 때문에 그 기회를 포기했다. 아직도 그 기회가 머릿속에서 불쑥 고개를 들 때가 있다. 그리고 병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신체적 문제도 없지만 거울을 보면서 외모가 더 뛰어났으면 할 때가 있다. 이런 내 경제 상태와 외모에 대한 고민이 사치라고 말하는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이 영화는 한 소녀가 자신의 가족 소개로 시작한다. 소녀의 형제자매는 5명인데 한 명은 장애인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다리나 팔이 아픈거겠지 했던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불치병에 걸려 있다. 장애인인 마디의 나이는 15살인데 키는 10살 정도 되는 여동생 키의 반이 조금 넘고 죽음을 목전에 두었는데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 등 치료비가 많이 든다.
이들의 엄마는 없고 아빠가 사고로 죽는다. 집안의 장남인 아윱은 아빠를 대신해 돈을 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도끼로 찍어 땔감을 만들고, 어른들도 버거워하는 노새로 국경너머 이라크까지 타이어 나르는 일을 한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시각적으로도 아픈 영화지만 청각적으로도 아픈 영화다. 이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은 소녀는 10살 쯤이다. 비록 쿠르드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사고로 죽은 아빠, 장애인 오빠로 시작되는 가족의 슬픈 배경과 가난을 말하는 소녀의 목소리는 말하기도 벅찬 듯 간신히 이어진다. 술에 취해 눈에 누워도 일어나지 못하며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노새들도 안타깝다. 마지막에 아윱이 장애인 동생을 업고 노새를 끄는 장면에서는 차갑기만 한 바람소리가 끊임없이 휑하니 메아리친다. 그의 삶은 계속 추울 거라는 듯.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그 냉혹한 삶을 대하는 아윱의 태도다. 그는 가족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단 한 마디 불평도 없다. 그가 "왜 내게 이런 일이?"라는 원망이 담긴 근원적인 질문이나 "힘들고 괴로워"라는 넋두리 없이 일을 하는 모습에서 삶의 고귀함을 본다. 세상에 어떤 찬바람이 불어도 삶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