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 [dts]
박진표 감독, 박치규 외 출연 / 대경DVD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케이블 티비에서 박진표 감독, 이순예, 박치규 주연의 '죽어도 좋아'를 봤습니다.

몇 년 전 이 영화가 심의 통과 문제로 한참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을 때입니다. 제가 몸  담고 있던 어느 홈페이지에 어떤 분이 이런 글을 쓰셨지요.

동국대에서 죽어도 좋아를 상영했는데 관객이 많아서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고. 겉으로는 도덕적인 체하면서 관람객 수는 상당히 많았다며 사람들이 이중적이라고 했지요.

저는 그 글을 읽고 이렇게 답글을 달았지요. 내 생각에는 그것보다는 심의에 문제가 있다고. 저는 영화를 볼지 말지는 소비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했지요. 입소문, 비평, 포스터 등을 보고 그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좋지, 기관에서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게다가 심의위원들은 그 영화를 봐도 되고(이미 봤고) 소비자들에게 열어 놓지 않은 것은 닫힌 엘리트주의라고. 게다가 제 부모님이나 앞으로 결혼하게 되면 시댁 부모님에게 좋은 성교육 영화가 될 수도 있으니 적극 추천하겠다고 했지요.

저는 그 영화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제한상영이나 노년의 성생활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감독이 왜 하필 '다큐멘터리'로 찍었는가가 궁금했습니다. 다큐멘터리로 찍으면 ㅋ방송사의 '이것이 인생이다'와 비슷할 위험도 있고, 노인들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 궁금증은 영화를 보면서 풀렸습니다. 영화 내용이 진행되는 내내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사람의 대화가 싸울 때를 제외하고는 낮은 목소리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 박치규 할아버지가 이순예 할머니에게 작업(?)을 들어갈 때의 목소리 크기는 자막처리까지 하는 웅얼거림에 가까울 정도의 작은 소리였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청춘가'를 가르쳐 주거나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한글쓰기를 가르쳐 줄 때 그 목소리는 집중하지 않으면 잘 못 알아들을 정도로 작더군요. 그리고 노부부가 처음 성관계를 갖고 나서 새벽 거리는 그저 평범하게 차와 오토바이가 다니는 극히 일상적인 장면이었지요. 결국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노인들의 성생활이란 별로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지만 일상적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은 미화된 혹은 이상화된 각본보다는 다큐멘터리에 잘 맞는다며 감독의 전략(^^)에 감탄했지요.

이 부부가 유일하게 큰 목소리를 낼 때는 싸움이 벌어지고 나서입니다. 이순예 할머니가 밤늦게까지 놀다 집에 들어오자 걱정에 지친 할아버지가 화를 내지요. 저는 그것을 보면서 70대가 되도 희로애락애오욕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했지요. 연애하는 기쁨에서 결혼하는 욕망을 실현하고도 할머니가 밤늦게 들어왔다고 할아버지가 "며칠 더 있다 오지 그랬어."에서 발전해 "몇 년 더 있다가 오지."라고 비아냥거릴 때는 참 사소한 것으로 감정 상하면서 오래 싸운다라고 생각했지요(사소한 것에서 큰 상처를 받습니다만). 저는 70대가 되면 지금 갖고 있는 모든 번뇌를 다 초월해서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구나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중년 이상의 어른들에게 갖고 있던 동경심도 그저 막연한 것이었을 뿐 그들도 지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깨달으며 부러움은 스러지고 이해심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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