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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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리얼리즘이란?

『백년동안의 고독』에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는 마술적 리얼리즘에 입각한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리얼리즘에 기본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전쟁하고 남녀간의 관계로 애를 낳는다. 이런 사이에 종종 마술적인 일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연금술에 심취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미녀 레메디오스는 어느 날 나비가 돼서 날아간다. 그리고 마콘도 마을에 최초로 정착한 호세가 죽인 푸르덴치오 아귈라가 계속 호세에게 귀신으로 나타나면서 늙기까지 하는 것도 그렇다. 또한 필라르 테르네라가 점을 잘 맞추는 것도 리얼리즘보다는 마술적인 것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결말 부분 역시 마술적이다.

 

부엔디아 가문의 성의식

마콘도에 살고 있는 부엔디아 가문의 성의식은 상당히 개방된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근친상간을 하면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가 돼지꼬리가 생길지 모른다는 가족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성장해 꼬리를 잘라내면 된다며 당장의 정욕을 더 중시한다. 또한 자유파인 아우렐리아노는 "자기 어머니하고도 결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우리들이 이렇게 신부님들과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겠나?(171쪽)"라고 말하기도 한다. 근친상간을 하더라도 집안 사람 누구라도 크게 비난하는 사람이 없다.

그 외에도 쌍둥이 형제가 페트라 코테스 한 여성과 관계를 갖기도 하고, 용감한 군인의 애를 갖기 위해 12명의 처녀가 아우렐리아노의 숙소로 가는 것도 흔치 않은 성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백년동안의 고독』이란 제목의 뜻과 이 소설의 의의?

'백년동안의 고독'이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마콘도 마을에 정착해서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그 후손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기르다가 마지막 후손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까지 그들을 지켜보는 우르슬라의 고독이자 우르슬라 후손의 고독을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이 소설은 모든 등장인물들의 고독을 보여준다. 부엔디아 가문의 후손들은 대부분 모두 떠돌이 생활을 하거나(우르슬라의 첫째 아들 호세는 집시들과 여행하다가 돌아왔다) 전쟁하느라 집에 있지 않아도(우르슬라의 둘째 아들 아우렐리아노), 외국에서 공부를 하더라도(우르슬라의 손자 호세와 손녀 레메디오스) 다 마콘도 마을로 돌아온다. 그들 모두 외국 생활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금술에 빠지는 것도 동물모양의 과자를 굽는 것도 전쟁에 참가해 열심히 싸우거나 방에 갇혀 양피지의 글자 해독에 열을 열리고 때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해도 그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일이나 취미에 심지어 사랑에 빠져도 그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무엇일까? 아무리 현대인이라도 마찬가지로 누구나 고독할 것이다. 죽기 전에는.

전체적으로 한 문단이 한 쪽을 넘을 정도로 만연체 서술을 하고 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 보이는 서술에서는 재미도 느끼지만 지루한 부분도 많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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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 제1부
다니엘 디포우 지음, 김병익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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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시대사적 의의

이 소설의 주인공인 로빈슨 크루소는 중간층이다. 12쪽에서 보여지는 바대로 중간층인 로빈슨 크루소는 '하층민이라 가난과 고역, 노동과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며, 상류 계급처럼 오만이나 호사, 야심이나 질투로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그와 반대로 뭔가 얻는 것도 없다.

별 고생없이 살 수 있었던 중류층인 로빈슨 크루소가 27년 동안 해외로 여행하면서 20여 년 간을 섬에서 혼자 살아 남았다는 것은 미개척지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며, 외부 세계로 나아가도록 고무시키고, 곤란에 처하더라도 주인공 로빈슨처럼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침서가 됐을 것이다. 또한 그 당시에는 젊은이들이 배를 타고 해외(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역사에서 서구인들이 제3세계에 행한 바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로빈슨이 처음 그 섬에 갔을 때는 무인도였지만(사실 그가 그 섬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섬은 무인도가 아니다) 나중에는 원주민들이 오자 식인을 한다는 이유로 죽인다. 이는 미국에 정착하면서 인디언들을 강제로 몰아내고 정착해 살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외부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장점을 가진 이 소설의 단점이자 서구인들의 문제점인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이 속하던 문화와 다르면 미개인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 예로 1궈에서 야만인들을 총으로 살상하며 공존할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2권에서 러시아를 설명하면서 '그들의 집과 도시는 우상으로 가득 찼으며, 살아가는 방식은 완전히 야만적이었다.'(293쪽)라고 기술하며 이것은 식민지화 정책으로 발전으로 계기가 됐을 것이다.

서양인들의 이 신세계 개척에서 발전한 식민지화 정책에는 근본적으로 정신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종교로 인한 정당성 확보(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경에 나온 대로 살지 않는 곳은 식민지화해도 된다는), 그리고 과학을 통해 살아남았음을 알 수 있다(여기서 과학이란 총과 같은 무기, 농사법 등을 말한다).

 

 

현재에도 계속 변형된 작품이 나오며 현대인이 읽는 이유

『로빈슨 크루소』의 후일담 격인 소설 『방드르디』, 『포』나 로빈슨 크루소의 변형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노빈손 어드벤처』시리즈나 영화 『캐스트 어웨이』 등이 나오는 이유는 조난당했을 때 살아남는 방법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새로운 시도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난파선에서 필요한 물건을 꺼내 섬에서 사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우주에서 우주인들이 살아가기 위해 물품을 이용하는 것과 닮아 있다.

굳이 해외나 우주 같은 먼 곳으로 가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청년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새로운 모험에 던질 수 있게 한다. 누군가 집에서 떨어져 독립하게 되도 최소한의 생필품만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이직을 하더라도 자신이 갖고 있는 지혜로 적응할 수 있으리라는 용기를 심어준다.

별 넷 반을 주고 싶은 소설이다. 중간에 좀 지루한 설명이 있어서 다섯 개를 주기에는 약간 뭣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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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를 죽이시오!
정효찬 지음 / 이가서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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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엽기강사의 '미술의 이해' 시험문제를 접하면서 재미는 있지만 쓸데없는 문제도 많다고 생각했다. 그 강사가 대학에서 파문을 당하고 다시 한양대에서 강의를 하고 그 강사 참 특이하게 산다고 생각했다.

뭔가에 위로받고 싶어서 그저 따뜻한 강의 일기 정도로 생각하고 『백설공주를 죽이시오』를 펴들었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 책의 주된 구성은 강사의 학생들의 발표를 중심으로 객관적인 평가, 미술과 예술 나아가 문화에 대한 신선한 시각이다.

예를 들어 이집트 벽화 미술에 보면 몸은 정면을 향하고 고개는 왼쪽을 보는 것을 학생에게 직접 시켜봄으로써 사실감을 더한다. 하지만 벽화와 똑같은 포즈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이집트 미술이 '관념의 미술'임을 몸소 가르쳐준다(29쪽-30쪽). 라는 실제적인 수업을 한다.
인류와 문화의 진화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예를 들어 34쪽을 보면

인류는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진정한 진화일까.

문명이 발달한 나라와 무력(현대에선 경제럭과 동일시된다)이 강한 나라의 충돌에서 문명이 발달한 나라가 패배한 역사는 많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현재는 과연 올바르게 진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이 질문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겠지만, 나는 긍정적인 답을 할 수가 없다. 문화적으로 우수한 나라가 무력이나 경제력이 강한 나라와의 충돌에서 살아남은 예가 훨씬 많았다면 지금 인류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뒤, 우리는 문명의 패배는 곧 인류의 패배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면서 경제 원리에 밀려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에 꽤 진지하고도 경건한 마음으로 아쉬워하면서 문화의 힘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랐다.

놀이에 치어서 지치고 허망해지는 소비적인 놀이 말고 말이다. 돈을 벌더라도 '어떻게 버느냐'에만 신경 쓰지 말고 어떻게 쓸 것인가, 즉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를 생각하자.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사느냐 아니냐의 갈림길의 하나일 수 있다.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고흐가 남긴 불후의 명작들은 왜 그때 당시에는 아무도 사지 않았던 것일까. 지금 그의 작품이 천문학적인 가격에 유통되고 있는 것이 비하면 고흐의 생전엔 정말 어처구니없는 가격이었을 텐데. 그렇다면 예술을 바라보는 안목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인가? 그럼 왜 우리는 아직도 고흐의 작품을 걸작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인정하는 것일까? 예술의 영원불변함을 어떤 기준으로 인정하는 것일까?

우리는 예술 자체의 의미와 예술을 구매할 사람들의 의지가 맞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짐작해 보았다. 고흐의 작품 자체는 별다른 의미를 가질 수 없지만 거기에 '그의 삶을 더함으로써 모든 것이 완성되어진 건 아닐까'하는 것이다.

(중략) 그의 그림이 엄청난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은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그의 인생을 마케팅한 화랑가의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 놀라운 예술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 작품은 훌륭한 것이다'라는 인증서를 만들어주기 전까지 우리는 그 예술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매스컴에서 떠들어댈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75-76쪽

저자이자 대학강사로서 학생들에게 애정이 많음을 보여준다. 예술에 대해 정석으로 준비한 학생은 정공법으로 준비했다고 칭찬하고, 어눌한 발표에는 잘 정리한 리포트 제출에 대한 언급을 빼놓지 않는다. 단점 지적이라야 1학년이 많아서 준비가 미흡했던 학생들에게는 고학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끝낸다. 또한 기대와 우려도 빼놓지 않는다. 미술치료에 대한 발표에서는 상투성을 벗어난 것을 부각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려고 노력한다.

인상파라는 명칭이 모네의 「해돋이 인상」에서 따왔다고 한다. 회화가 실내에서 주로 제작되었던 것에 반해 인상파 사람들은 야외로 나와서 실제 햇빛이 주는 강렬한 인상들을 표현하기 시작했다(76쪽).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이런 수업은 대학에서나 가능하지 작금의 현실에 중고등학교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강사(혹은 선생)의 일방적인 수업이 아닌 학생들의 가능성을 확장시켜주는 수업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수업 참여에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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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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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의 소설은 이 소설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에서 그리 뛰어나진 않은 듯 싶다.

이 소설은 안정되고 잘 읽히는 문장과 빛나는 몇몇 표현, 풍부한 자료 조사, 그리고 전반부는 엄마의 시점에서 후반부는 딸의 시점에서 씌여졌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인물에 대해서는 설득되지 않았다.

여주인공 신우는 40,50대처럼 마음이 넓은데 딸의 나이가 2021년일 때 17살이었고, 신우가 31살에 딸을 났으니 대략 1972년생 쯤 된다. 물론 모든 70년대생이 개인주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지나치게 이타적이다.

신우는 돈도 벌어다주지 못하며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네팔 출신 가난한 노동자 카밀에 대한 사랑은 거의 변함없다. 끊임없이 사비나를 생각하는 카밀이 그렇게 좋을 수 있을까. 지나친 이해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 아닐까.

그리고 그녀는 한국사에 대해 굉장히 해박하다.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말이다. 그녀는 의류공장에서 일하다가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일을 하면서도 한국의 역사, 사회지식에 풍부하다. 의류업에 있는 사람은 그런 걸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큰 흑자를 내며 옷가게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박식할수록 이기적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녀는 카밀이 그녀의 나가라는 말 한마디에 참아주지 나가버렸는데 그러고도 그렇게 헌신적인 여자는 없을 듯하다.

그리고 작가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신우가 아이를 서른 살 여름에 임신을 해서 30살에 애를 낳는다. 육삭둥이가 아닌 이상 31살에 낳는다(육삭둥이는 아니었다).

카밀 역시 2003년 25살을 사는 젊은이답지 않다. 그리고 너무 인생의 변화가 급격하기만 하다. 네팔에 있을 때 고등학교 때 몇 년 간을 오토바이족과 강간공범까지 한 남자가 20대 전후에 카펫장사를 하고 21살쯤 한국에 온다.

그런데 그는 자국의 신화에 굉장히 해박하다.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그 후로는 몇 년 동안 장사하고 언어도 다른 국가인 한국에서 살면서 언제 자국신화까지 공부했을까.

한국말을 잘 한다고 하지만 그가 말더듬이처럼 느껴졌다. 예를 들어 "우리 할, 할아버지, 나무, 목재일, 잘했어요. 목, 목……."(24쪽), "두고 보세요. 특별한 파, 파티를 하려구요."(36쪽) 같은 부분이 부지기수인데 네팔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설정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글자를 반복해서 말하면 정신이나 신체에 이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오히려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편견같다.

그리고 카펫장사에 성공한 그가 사랑 찾으러 한국에 왔다지만 처음에는 겨우 100만원, 그리고 나중에는 65만원씩 벌며 살 수 있을까. 이 소설의 가장 큰 오류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이것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사랑 때문에 살 수 있다면 정말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면서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현실감이 부족한 사랑엔 공감할 수 없다.

그리고 신우와 카밀의 딸 이름은 '애린(愛隣)'이다. 그렇게 남편 카밀을 사랑한다면 이렇게 한국적 정서가 강하게 배인 한자 이름을 쓰는 대신 네팔 이름이나 최소한 신우와 카밀을 합친 이름인, '밀우'나, '신밀' 정도의 이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더 황당한 것은 애린의 태도다. 배다른 동생을 임신한 여자에게 어떻게 아빠를 떠났다고 원망할 수 있을까. 오히려 잘 됐다고 하진 않을까. 최소한 원망하기 전에 설득할만한 과정이 있던가.

그리고 결말 역시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반항으로 불에 타죽는 설정은 전태일을 연상시켰을 뿐이다.

작가는 동남아시아 근로자들의 고통에 대해 크게 감싸는 한 인물(신우)을 만들고 싶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성이 떨어질 때는 그만큼 울리지 않는다.

주제에 별 두 개 반, 잘 읽히는 문장과 빛나는 몇몇 표현(손차양)에 별 셋 반, 그래서 총 별 세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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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즈 2005-08-0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으며 카르마와 바르도의 깨달음보다는 소설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것만 보신분 같군요...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일들은 ‹š론 이해하지 못하는것도, 그런일은 일어날수없는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죠... 신우의 카밀에 대한 사랑도 그렇죠, 이 소설에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사랑을 뜻하는게 아닙니다. 카밀에 대한 사랑 그 이상으로서 카르마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바르도를 이해하는것, 깨닫는것, 깨달음에의 사랑을 상징하죠....조언을 하나 드리자면, 이성의 잣대와, 수치의 잣대와, 사실성의 잣대로 세상을 보다보면, 결국 자신도 이성과 수치와 사실속에 갇히게 된다는것입니다. 그냥 지나치려했으나, 안타까워서, 감히 말씀드려봅니다.
 
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 라틴여성문학소설선집
이사벨 아옌데 외 지음, 송병선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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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여성의 삶은 우리나라 여성과 얼마나 다를까?

《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생각의 나무)를 보면 전체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상상력만 다를 뿐 지리적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보편적인 고민이 공감간다.

이 작품은 이사벨 아옌데,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안드레아 마투라나 등 13명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는 기회를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한 가족으로서 사는 것에 대한 고민,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해 고됨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꼽을 수 있다.

「새집」의 어린 주인공은 부모님과 함께 구템베르그 지역에 간다. 전에 살던 산라파엘의 집은 사생활도 보장되지 않고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구템베르그에 있는 새 집은 다른 누이와 함께 방을 쓰지 않아도 되고 화장실에서 물도 잘 나온다. 그런데 갑자기 그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아빠는 복권이 당첨돼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집이라고 얘기해 준다.

표지 제목이기도 한 안드레아 마투라나의 「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얘기한 소설이다. 가령 "엄마는 여자지만 아랫배가 불쑥 튀어나온 뚱보다. 나는 그런 이유로 아빠가 집을 떠났고, 엄마를 혼자 놔두었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들은 금발의 여자처럼 예쁜 여자들이다"(153쪽). 또한 차나가 뛰다가 원피스 밑으로 피가 가득 묻은 헝겊 쪼가리가 떨어진다. 그녀는 울게 되고 나머지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웃으며,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이 작품은 여자가 된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2차 성징 이후 엄마가 되었을 때는 더 힘들다. 아나 마리아 슈아의 「훌륭한 어머니처럼」에서 세 아이의 엄마인 주인공은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는 내용이다. 엄마는 톰이 아기의 입과 코에 배를 대고 있는 것을 본 후 아기를 자주 돌보게 된다. 씻을 일이 있어서 화장실에 가니 아이들이 바닥을 온통 비눗물 투성이로 만들어 놓았다. 그걸 치우다가 아기의 방에 가니 두 아이가 아기를 못살게 굴어서 아기를 데리고 화장실에 안고 뛰어 들어가니 아기의 오른쪽 둘째 손가락이 엄마의 눈 안으로 들어와 각막에 심한 상처를 입힌다.

이런 여성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고단함에 대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정치에 대해 비판하는 소설도 있다.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의 「독립 영웅」은 말을 타고 있는 영웅 조각상이 말에서 내려 신문을 읽는다. '그는 길모퉁이에서 신문을 샀지만, 글을 읽자 토할 것만 같았다. 그는 경찰이란 노인들이 길을 건널 때 도와주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신문에는 경찰이 학생을 곤봉으로 때리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85쪽)

그는 광장에 가서 청년을 만난다. 영웅이 왜 광장에 탱크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청년은 '질서를 지키기 위해 감시한다'고 말한다. 또한 "불법적인 정부는 항상 몇몇 사람에게만 득이 되지요."(89쪽)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아라비안나이트》를 변용한 「독이 있는 이야기」와 '오늘 이후로 당신을 좋아하는 남자 팬들 목록에서 내 이름을 지워야 합니다'로 시작하는 수감자가 여배우에게 편지를 보내는 그로테스크한 소설인 「시네 프라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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