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를 죽이시오!
정효찬 지음 / 이가서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엽기강사의 '미술의 이해' 시험문제를 접하면서 재미는 있지만 쓸데없는 문제도 많다고 생각했다. 그 강사가 대학에서 파문을 당하고 다시 한양대에서 강의를 하고 그 강사 참 특이하게 산다고 생각했다.

뭔가에 위로받고 싶어서 그저 따뜻한 강의 일기 정도로 생각하고 『백설공주를 죽이시오』를 펴들었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 책의 주된 구성은 강사의 학생들의 발표를 중심으로 객관적인 평가, 미술과 예술 나아가 문화에 대한 신선한 시각이다.

예를 들어 이집트 벽화 미술에 보면 몸은 정면을 향하고 고개는 왼쪽을 보는 것을 학생에게 직접 시켜봄으로써 사실감을 더한다. 하지만 벽화와 똑같은 포즈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이집트 미술이 '관념의 미술'임을 몸소 가르쳐준다(29쪽-30쪽). 라는 실제적인 수업을 한다.
인류와 문화의 진화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예를 들어 34쪽을 보면

인류는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진정한 진화일까.

문명이 발달한 나라와 무력(현대에선 경제럭과 동일시된다)이 강한 나라의 충돌에서 문명이 발달한 나라가 패배한 역사는 많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현재는 과연 올바르게 진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이 질문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겠지만, 나는 긍정적인 답을 할 수가 없다. 문화적으로 우수한 나라가 무력이나 경제력이 강한 나라와의 충돌에서 살아남은 예가 훨씬 많았다면 지금 인류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뒤, 우리는 문명의 패배는 곧 인류의 패배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면서 경제 원리에 밀려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에 꽤 진지하고도 경건한 마음으로 아쉬워하면서 문화의 힘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랐다.

놀이에 치어서 지치고 허망해지는 소비적인 놀이 말고 말이다. 돈을 벌더라도 '어떻게 버느냐'에만 신경 쓰지 말고 어떻게 쓸 것인가, 즉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를 생각하자.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사느냐 아니냐의 갈림길의 하나일 수 있다.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고흐가 남긴 불후의 명작들은 왜 그때 당시에는 아무도 사지 않았던 것일까. 지금 그의 작품이 천문학적인 가격에 유통되고 있는 것이 비하면 고흐의 생전엔 정말 어처구니없는 가격이었을 텐데. 그렇다면 예술을 바라보는 안목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인가? 그럼 왜 우리는 아직도 고흐의 작품을 걸작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인정하는 것일까? 예술의 영원불변함을 어떤 기준으로 인정하는 것일까?

우리는 예술 자체의 의미와 예술을 구매할 사람들의 의지가 맞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짐작해 보았다. 고흐의 작품 자체는 별다른 의미를 가질 수 없지만 거기에 '그의 삶을 더함으로써 모든 것이 완성되어진 건 아닐까'하는 것이다.

(중략) 그의 그림이 엄청난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은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그의 인생을 마케팅한 화랑가의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 놀라운 예술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 작품은 훌륭한 것이다'라는 인증서를 만들어주기 전까지 우리는 그 예술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매스컴에서 떠들어댈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75-76쪽

저자이자 대학강사로서 학생들에게 애정이 많음을 보여준다. 예술에 대해 정석으로 준비한 학생은 정공법으로 준비했다고 칭찬하고, 어눌한 발표에는 잘 정리한 리포트 제출에 대한 언급을 빼놓지 않는다. 단점 지적이라야 1학년이 많아서 준비가 미흡했던 학생들에게는 고학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끝낸다. 또한 기대와 우려도 빼놓지 않는다. 미술치료에 대한 발표에서는 상투성을 벗어난 것을 부각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려고 노력한다.

인상파라는 명칭이 모네의 「해돋이 인상」에서 따왔다고 한다. 회화가 실내에서 주로 제작되었던 것에 반해 인상파 사람들은 야외로 나와서 실제 햇빛이 주는 강렬한 인상들을 표현하기 시작했다(76쪽).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이런 수업은 대학에서나 가능하지 작금의 현실에 중고등학교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강사(혹은 선생)의 일방적인 수업이 아닌 학생들의 가능성을 확장시켜주는 수업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수업 참여에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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