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뢰즈의 존재론을 다시 읽으려고는 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들뢰지앵을 자처하시는 분들 특유의 '재기 발랄함'(?)이 나와는 맞지 않다고 여기는 편이다. 철저하게 진단하고, 처절하게 현실에 발 딛고 출발하기보다는 너무 쉽게, 자주 '혁명'을 운위하는 낙관주의가 어떤 면에서는 무책임하고 관념적이라고 느낀다. 리좀(rhizome), 기계(machine), 되기(devenir)와 같은 들뢰즈의 개념이나 비유들을 너무 여기저기다 갖다붙이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천 개의 고원』 역자 서문에 나오는 경고문 그대로이다. "(...) 특히 이 책을 읽을 때는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만 알아보고 기존의 작은 자기 지식에 연결시키는 나쁜 습관!").
아트앤스터디에서 지은이의 『시네마』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책을 1부까지만 읽었을 때는 BTS와 들뢰즈를 다소 무리하게 엮고, 비약하셨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세바시' 등 여러 매체에서 나온 지은이의 BTS 관련 강연 클립을 본 적도 있고, 또 책을 뒤늦게 읽은 탓인지 BTS 현상에 대한 조명도 이제는 그리 신선하지 않다(그러나 영문판을 내주신 것은 참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I-ARMY들이 알라딘에까지 와서 서평을 달아두었다).
내가 오히려 인상깊게 읽은 것은 BTS에 의지하지 않고 저자 자신의 이론을 펼친 2부 2장 "네트워크-이미지와 공유가치"와, 이를 상술한 부록 "들뢰즈의 시간-이미지 너머: 네트워크-이미지"이다. 제목 그대로인데, '운동-이미지', '시간-이미지'에 이은 세 번째 이미지로서 '네트워크-이미지'의 도래, '의식가치', '전시가치'에 이은 21세기 예술의 가치로서 '공유가치'에 관한 서술이 흥미로웠다. 논지가 더 심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어쨌든 책의 뒷부분에서 회복된 인상에 힘입어 별점을 세 개에서 하나 더한다(처음부터 1부와 2부의 순서를 바꿨으면 어땠을까? 학술서라면 당연히 그러한 편제를 택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BTS에 편승하는 느낌은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 독자를 멀어지게 하였을 것이기에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요즘 읽은 책들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데, 뒤늦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