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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2 : 1000~1200 - 성당, 기사, 도시의 시대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2
움베르토 에코 기획, 윤종태 옮김, 차용구.박승찬 감수 / 시공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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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 기획의 <중세>는 묵직한 볼륨감으로 인해 이벤트를 통한 서평이나 리뷰를 받기 어려워, 이 책을 좀 더 전문적으로 리뷰를 해 주실 수 있는 분들에게 리뷰를 요청 드렸습니다. 이번 편은 정재웅 경제학 박사님이 작성 해 주셨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책 선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중세”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국왕, 영주, 기사, 교황, 추기경, 고딕 양식의 성당, 흑사병, 마녀사냥, … 대부분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간혹 “왕좌의 게임” 혹은 “반지의 제왕” 같은 드라마나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유럽의 중세에 대해 갖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이러한 “이미지” 들이다. 즉 사람들이 숨쉬고 살아간 총합으로서 역사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된 이미지들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중세”를 대표한다. 그 결과 이미 학계에서 오래전에 폐기된 “중세는 암흑시대”라는 개념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움베르토 에코가 책임 편집한 이 책은 이런 의미에서 신선하다. 우리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거나 혹은 암흑시대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중세를 상세하게 개괄해준다. 이야기 형식이 아니라 역사, 철학, 과학과 기술, 문학 등 “인간 활동”의 각 부문별로 중요한 사건, 인물, 그리고 작품을 짧은 논문 형태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당대의 모습과 그것이 후대에 끼친 영향, 그리고 그것을 현재 우리가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컴퓨터 게임 중에 “크루세이더 킹즈2”라는 게임이 있다. 영국을 정복한 후 정복왕 윌리엄 1세로 즉위하는 노르망디 공작 기욤이 1066년 영국을 침공해 벌이는 헤이스팅스 전투부터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는, 곧 중세가 끝나는 1453년까지 유럽의 유력 귀족 가문들 중 하나를 선정해 가세를 확장하고 작위를 높이며, 높아진 작위를 상속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이다. 게임이지만 중세의 정치적, 역사적 모습을 비교적 잘 재현한 이 게임에서 귀족-영주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영지에서 절대적 권한을 갖고, 전쟁을 수시로 하는 무사집단이 아니다. 오히려 복잡한 주종관계로 얽힌 계서제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가문을 성장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어떻게 보면 현대 대기업의 중간관리자와 유사하다. 이 책에서 나오는 중세의 역사도 이와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세의 역사에 대해 교황권이 황제권에 승리한 카노사의 굴욕, 교황권의 절정이었던 십자군 원정, 아니면 노르만의 정복 등 단편적인 “사건”으로 그것을 알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중세의 역사는 저런 몇몇 단편적인 큰 사건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교황, 황제, 세속 군주들, 성직자들, 시민들 각각의 활동의 총합이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에서 시작되는 호엔슈타우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영향력 확대와 황위 계승에 얽힌 황제와 교황 및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들의 충돌, 혹은 황제권의 강화를 놓고 독일 내부에서 프리드리히 1세와 작센의 사자공 하인리히 그리고 다른 귀족들과의 충돌은 중세가 단선적이고 무미건조한 단색이 아닌, 복합적인 모습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제도로서 봉건제도의 특성은 영토가 넓어질수록 전체 영토 대비 황제의 직할령 비율을 줄어들기 때문에 오히려 황제의 영향력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반대로 유력 귀족, 예컨대 사자공 하인리히 같은 경우는 오히려 황제와 대등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더해 신성로마제국의 내부인 동시에 외부인 이탈리아는 교황령이라는 독특한 정치적 특성과 일치감치 코무네를 만들어 시민 자치를 경험한 북부 도시국가, 그리고 남부의 양시칠리아 왕국이라는 복잡한 형태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그 대표적 예가 프리드리히 1세의 이탈리아 장악 시도에 맞서 북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롬바르디아 동맹을 결성해 맞선 것이나 중세 초기 노르만이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를 정복하여 왕국을 세운 것이다. 이처럼 중세의 역사는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다양한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오히려 르네상스 시기나 그 이후 국민국가가 확립된 근대보다도 오히려 더 역동적이고 현대와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즉 국가권력뿐만 아니라 시민권력, 종교권력, 상인권력 등 다양한 이익추구의 모습이 역동적인 상호관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 경제활동에서 더욱 확실하게 나타나는데, 1,000년 이후 상업이 발달하면서 제노바, 베네치아 등 지중해를 무대로 이슬람과 교역하는 해양 무역 국가가 나타났고, 샹파뉴 정기시로 대표되는 정기시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모습은 “상업혁명”으로 이어졌고, 상업혁명은 제조업의 성장뿐만 아니라 화폐의 활발한 사용과 어음 같은 신용수단의 성장을 촉진시켰고, 더 나아가 아라비아 숫자의 도입과 복식부기의 발명 등 수학과 경영학의 발달로 이어졌다. 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연결되고 이것이 다시 학문과 연결되어 서로 발전을 이루는 이러한 역동성은 중세가 정체된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가 형성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시기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중세 신분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중세의 신분에 대해 “성직자, 귀족, 평민”으로 고정된 신분제도라고만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귀족이나 평민은 언제든지 성직자가 될 수 있었고, 성직자 역시 “백작 주교”라 일컬어지는 고위 성직자가 되어 성직자 겸 귀족이 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민들 중에서 귀족들의 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귀족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즉 상인, 법학자, 의사, 공증인 등은 부르주아가 되어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며, 베네치아나 제노바 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나 뤼베크나 함부르크 같은 독일의 자치도시에서는 도시의 지배계급이 되기도 했다. 중세의 역사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지닌 다양한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진행되었고, 그 결과 현대를 형성하는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나타나서 무르익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철학에 있어서는 기독교가 중심에 있었던 시기이니 만큼 기독교 철학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성경에 반하는 것은 모두 이단” 식의 꽉 막힌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컨대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의 본질이 변화하는가를 놓고 벌어진 투르의 베렌가리우스와 파비아의 란프랑쿠스 사이 논쟁은 기독교 교리의 철학적 해석에 있어 얼마나 자유로움이 보장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를 통해 플라톤 철학이 재발견되기도 했고, 이슬람과의 교류 및 수도원에서의 학문 연구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연구인 유클리드의 『원론』이나 프톨레마이오스의 『구체 평면도』 같은 저작들이 라틴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이러한 학문적 연구는 다시 파리 혹은 볼로냐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되었다. 과학에 있어서는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슬람 수학자 알 콰리즈미가 계산 방식에 대해 저술한 『알 자브르』를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유럽의 수학이 발달할 수 있었고, 알 콰리즈미는 현재 “알고리듬”의 어원이 되고, 알 자브르는 “알제브라” 즉 대수학이 되었다. 공학 및 기술 측면에 있어서는 생산력 증대를 위한 수력 방아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잉글랜드 정복왕 윌리엄 1세 때 작성된 『둠즈데이 북』에는 5,264개의 물레방아의 존재가 언급되어 있었다. 철학, 과학, 공학 등 학문 영역에 있어서도 유럽은 자체적으로 혹은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여 끊임없는 발전과 혁신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성과 역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세가 암흑시대가 아니라, 현대가 나올 수 있는 요람이었음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는 이 시기에 라틴어가 아닌 유럽 언어 즉 로망스어로 쓰인 최초의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것은 프랑스에서 연대기 작가인 니타르트가 그의 저서 『역사』에서 인용한 <스트라스부르 서약>이다. 그러나 최초의 문학 관련 문헌들은 1,100년 이후에 등장하는데 이 시기부터 점진적으로 유럽은 라틴어가 아닌 자신의 지역 언어로 문학을 서술하는 것이 증가한다. 또한 이 시기는 기독교가 우세했던 것과는 상반되게도 환상문학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시기다. 11세기 초에 기록된 『베어울프』의 필사본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고, 『니벨룽겐의 노래』는 파사우의 주교인 볼프거 폰 에우라가 주문하여 12세기에 중세 고지독일어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물론 성인들의 행장을 기록한 성인전은 이것보다 더 활발하게 기록되고 출판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로망스어로 기록된 문학과 환상문학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은 『반지의 제왕』 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로 대표되는 현대 유럽의 환상문학이 이미 1,000년경에 나타난 환상문학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건축에 있어서는 피사 대성당으로 대표되는 로마네스크 양식이 이 시기 대표적인 건축양식인데, 이것의 특징은 창문과 문에 아치를 많이 쓰고, 건물 내부를 지탱하기 위해 원통형 볼트와 교차 볼트를 사용한 것, 그리고 아치로 인해 생긴 밖으로 미는 힘을 지탱하기 위한 창문이 거의 없는 두꺼운 벽이다. 이는 나중에 고딕양식으로 계승된다. 이를 통해 성당은 웅장한 형태를 갖게 되는데, 이는 성당이 하느님의 집이자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터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건축은 현대 건축과의 연속성이 떨어지지만, 그렇더라도 로마네스크 양식이 이후 건축 양식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하고 각 분야별 학자들이 저술에 참여한 『중세』 시리즈는 이야기 형태의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전문가들의 짧은 논문을 통해 중세 각 분야에 대해 개괄하고 추가적인 독서를 할 수 있는 힌트를 주는 일종의 백과사전식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중세에 대해 개론서가 그렇게 많이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역사 전공자 혹은 역사 애호가가 아닌 이상 책을 읽는데 다소간의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중세의 역사를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종합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이 책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듯하다. 역사를 바탕으로 종횡으로 당대의 각 분야별 이슈를 엮어나가는 것이나, 각 분야별로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 업적을 난해하지 않게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한 것은 단연 탁월하기 때문이다. 무르익어가는 중세, 1200년부터 1400년까지 성, 상인, 무역의 시대를 다룰 다음권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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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2 : 1000~1200 - 성당, 기사, 도시의 시대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2
움베르토 에코 기획, 윤종태 옮김, 차용구.박승찬 감수 / 시공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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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 기획의 <중세>는 묵직한 볼륨감으로 인해 이벤트를 통한 서평이나 리뷰를 받기 어려워, 이 책을 좀 더 전문적으로  리뷰를 해 주실 수 있는 분들에게 리뷰를 요청 드렸습니다. 이번 편은 중세 1의 리뷰를 진행하셨던 유대칠 오캄연구소장님이 작성 해 주셨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책 선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중세, 결코 조용하지 않은 인간의 이야기

- <중세>2를 읽고


흔히 ‘중세’라면 조용하고 조금은 어두운 공간을 생각한다. 검은 차림의 수사들이 줄을 지어 성당을 향해 걷는다. 거대한 대리석 기둥으로 만들어진 높디 높은 성당은 키작은 집으로 가득한 마을 중심에 하늘 높이 세워져있다. 조용하고 어둔 배경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 성가가 흘러나온다. 우리네 인간의 공간이라기 보다 무엇인가 우리 인간에게 어색한 그런 느낌이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가슴뛰는 만남도 없고, 서로를 향한 사랑의 노래도 없을 듯 하다. 그저 신을 향한 노래와 기도만 가득한 곳이라 생각한다. 우리 인간에겐 어색한 곳, 그저 하늘을 향해 살아가는 지상에 있지만, 지상에 어울리지 않은 곳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틀렸다. 아니다. 중세는 그렇지 않다. 조용하지 않다. 우리 인간에게 어색한 공간도 아니다. 이런 저런 온갖 인간들의 이야기들로 가득한 조용하지 않은 시간이다. 움베르토 에코 기획의 <중세>2를 읽고 든 첫 생각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세 역시 우리 인간이 살아간 인간의 시간이었다. 성당도 우리네 인간으로 가득하며, 기사도 그저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도시도 흔하디 흔한 우리 인간의 삶으로 가득했다. 이상하게 중세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남녀의 사랑과 그 사랑를 노래한 달콤한 음악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저 믿기만 하던 신앙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인간이란 이성적 동물의 이해하는 신앙을 위한 애씀이 있던 시간이기도 했다. 중세란 이렇게 인간의 시간이었다.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살아가고 고민하고 해결하며 웃고 울던 그런 인간의 시간이었다. <중세>2가 보여주는 중세의 인간은 남성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왠지 중세라는 역사의 주변부에 있을 것 같은 여인들의 철학과 권력 그리고 사랑과 그 사랑의 찬가들 역시 중세를 채우고 있다. <중세>2가 보여주는 중세는 오직 유럽인의 중세에 한정되지 않는다. 역사 속 중세는 유럽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슬람과 동유럽 그리고 중국 등의 중세 역시 분명한 중세다. 그 역시 조용하지 않다. 이슬람엔 천재 학자인 이븐 시나가 있었고, 그의 치열함으로 만들어진 그의 의학과 철학은 중세 무슬림 사회를 넘어 유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을 흥분하고 들뜨게 만들었다. 조용하지 않다. 수도원과 성당이 세워지지만 그 역시 인간 삶 속의 일부로 존재하던 시기다. 그 가운데 고민되던 철학과 신학도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온갖 논쟁으로 가득했다. 그 열정적인 시끄러움이 중세를 채웠다. 중세의 활기가 되었다. 조용하고 어둡다는 분위기와 달리 인간으로 가득한 축제와 연극 그리고 예술가의 열정으로 가득한 공간, 그것이 바로 중세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살던 ‘진짜’ 중세다.


중세란 수많은 인간의 삶으로 이루어진 삶의 총체다. 조용할 수 없다. 신을 향한 사랑만큼 연인을 향한 사랑도 당연했다. 신앙에 의한 영혼의 치유만이 아니라, 의학이란 인간 이성을 통한 질병의 치유가 당연한 시기였다. 천국을 향한 열망과 함께 물건을 더 팔기 위해 상인의 애씀 또한 당연했다. 풍년을 향한 농사꾼의 애씀과 예술가의 예술혼도 당연했다. <중세>2는 바로 그러한 중세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 인간에게 어색하지 않은 중세 말이다.


조용하지 않은 중세 1000-1200년

중세는 결코 조용하지 않다. <중세>2에 담긴 그 진짜 중세는 절대 조용한 공간이 아니다. 인간은 보다 더 선명하게 자신의 눈으로 신과 우주 그리고 인간 자신을 보려 했다, 예수 승천 이후 서서히 내려앉은 그리스도교는 이제 유럽의 종교가 되었다. 비록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이 있었지만, 유럽이 그리스도교의 공간이란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중해의 또 다른 곳엔 이슬람교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중세 많은 학자들은 자신들이 신앙을 두고 고민하였다. 신앙 자체에 대한 회의라기 보다 자기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하여 보다 더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기 시작했다. 당연하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성으로 신앙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신앙을 자신의 논리 속에 담아 말하려는 노력의 첫 걸음이다. 이러한 첫 걸음은 이성적 동물인 인간이 신을 향한 첫 걸음이기도 하다. 이러한 첫 걸음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이란 종착지를 향한 인간의 헛된 첫 걸음이 아닌 인간이란 존재가 처한 환경에서 최대한 신에게 다가가려는 신앙의 첫 걸음이기도 했다. 이제 그저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며 믿으려 했다. 이것이 참 신앙이라 생각했다. 중세라면 떠오르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 혹은 이성화된 신앙은 모두 바로 이러한 이야기다.


이쯤에서 안셀무스(Anselmus)를 만날 수 있다. 참으로 훌륭한 신앙인이었다. 어쩌면 그는 신의 존재를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자신의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논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유명한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이다. 이러한 증명으로 신의 존재를 완전히 규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로 신의 존재에 대하여 논하기 시작했다. 그의 증명은 이성을 가진 이라면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안셀무스의 증명이 실패했으며, 대안이 되는 새로운 증명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렇게 두 개의 서로 다른 합리성이 서로를 마주하게 되면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이 때 논리학과 문법학이 필요하다. 성체성혈성사에 대한 합리화의 경우도 그렇다. 성체성혈성사에서 빵과 포도주가 과연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피로 실체적으로 변화하였는가를 두고 논쟁한다.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이성으로 어떻게 왜 그리스도의 몸이고 피인지를 궁리했다. 이 역시 서로 다른 입장들 등장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 논쟁한다. 이때다. 논리학과 문법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보다 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직하기 위해 논리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1000년에서 1200년 사이 중세논리학은 큰 발전을 이룬다. 이유 없는 발전이 아니다. 서로 다른 견해들, 즉 이성 대 이성의 논쟁에서 논리성은 각자 자신의 이론을 더욱 더 단단하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그렇게 중세는 논리학으로 무장한 논쟁으로 가득한 조용하지 않은 이성적 동물들의 공간이었다.


<중세>2에선 아벨라르두스를 여러번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그는 1000년에서 1200년을 살아간 수많은 중세 학자들 가운데 가장 중세인다운 중세인일지 모른다. 분명 자신의 이성을 통하여 신을 향하여 치열하게 고민한 신앙인이었다.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 중세 가장 유명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엘로이즈와의 사랑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가문의 반대와 사제지간의 사랑이란 점 그리고 많은 나이 차이와 비극적인 종말로 끝났다는 점은 지금 읽어도 안타깝고 슬픈 사랑이다. 과연 현실에 있었을까 생각하게 하는 그런 사랑이다. 중세인 아벨라르두스는 사랑 만큼이나 철학도 강렬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신앙을 두고 고민했다. 그냥 받아드리지 않았다. 권위로 받아드려지던 교부들의 가르침도 그냥 수용하지 않았다. 서로 모순되는 교부들의 여러 견해들을 ‘찬’과 ‘반’으로 나누고 이 모순을 종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방법론은 이후 중세 교육에 큰 영향을 주며, 이후 등장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의 논의 구조에 영향을 준다. 누구보다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길 원했다. 정과 반의 모순을 종합함에 있어 중요한 수단은 바로 인간의 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논리학에 집중한 것은 당연하다. 중세 대표 논쟁인 보편논쟁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결실을 낳았다. 이 과정에서 자기 스승과의 논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철학에 비추어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스승이라도 논박하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그리스도교가 아닌 다른 종교의 철학자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도가 아닌 철학자들이라도 해도 합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그의 이성에 대한 신뢰는 그리스도교에 한정되어 사유한 이들에게 이단이란 공격을 받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인간을 신뢰했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했다. 그 이성은 신이 선물한 가장 소중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본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에서 아벨라르두스는 신앙의 문제에서도 이성을 충분히 활용했다. 이는 시대 정신이 되어 당시 많은 학자들이 삼위일체를 비롯한 많은 신앙의 문제들을 자신들의 이성으로 고민했다. 이것을 비신앙적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중세, 이성은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많은 중세철학사는 남성 철학자 중심의 철학자였다. 아니, 그런 말을 하기도 힘들다. 아예 여성의 자리가 없었다. 서점에서 접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중세철학사에서 여성 철학자의 자리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중세>2는 여성 철학자를 놓치지 않았다. 아벨라르두스의 연인이며 스스로도 독자적인 사상가인 엘로이즈를 비롯하여 빙엔의 힐데가르트 그리고 마르게리트의 포레트와 피장의 크리티안 등 많은 중세 여성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이성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일구었다. 그녀들 중 누군가는 성녀가 되고 누군가는 화형이란 비극적 상황에 빠지게 되었지만, 물러섬 없이 그 시대의 시대적 고민 앞에서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 고민들은 그녀들의 철학이 되었다. 특히 <중세>2는 빙엔의 힐데가르트의 음악에서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과를 소개하고 있다.


인간 이성은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이슬람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도뿐 아니라, 이슬람교 역시 중세의 인간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철학과 의학 그리고 자연학의 발전은 실로 대단했다. 의학의 영역에서 이븐 시나의 <의학 정전>과 아부 알 카심 알 자라위의 외과 수술 교본 등은 유럽 의학계에 큰 영향을 준다. 이러한 영향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세 무슬림 철학자들의 결실은 라틴어로 번역되며 유럽에 소개되었다. 이는 중세 철학에 큰 영향을 준다. 토마스 아퀴나스, 둔스 스코투스와 같은 유럽의 중세 철학자들은 하나같이 중세 무슬림 철학자의 영향을 받는다. 유럽을 떠나 오랜 시간 근동 지방에서 번역 연구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중세 무슬림 철학자의 영향력을 배경으로 서유럽으로 다시 돌아온다. 예수의 존재조차 몰라던 철학자이지만 수많은 중세 철학자들에게 철학자의 모범으로 있던 아리스토렐레스의 모든 저작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중세>2는 이 장면은 소개한다. 이렇게 유입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유럽의 수많은 중세 철학자들에게 있어 학문적 사유의 이성적 도구가 된다. 이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중세>2의 중세는 결코 조용하지 않은 인간의 이야기들도 가득하다. 연인의 사랑으로 가득했고, 그 사랑을 담은 노래로 가득했다. 교실에선 아벨라르두스와 같은 스승에게 배우는 학생들의 열정이 가득했고, 서로 입장이 다른 학자들 사이에선 논쟁의 소리로 가독했다. 번역가들의 번역에 대한 열정과 그 번역을 가지고 연구하는 이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시장과 들판엔 상인과 농부의 열심히 가득했다. 조용하고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엄숙함으로 왠지 우리 인간에게 익숙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중세, <중세>2는 그러한 중세가 아닌 현실적인 참 중세, 다양한 인간들의 열심히 가득한 조용하지 않은 중세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유대칠 오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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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1 : 476~1000 - 야만인,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의 시대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1
움베르토 에코 기획, 김효정 외 옮김, 차용구 외 감수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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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 기획의 <중세>는 묵직한 볼륨감으로 인해 이벤트를 통한 서평이나 리뷰를 받기 어려워, 이 책을 관심가지고 살펴 볼 수 있는 작가, 철학자, 독자 이렇게 3명에게 리뷰를 요청하여, 리뷰를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세번째 리뷰는 오캄연구소의 유대칠 박사님의 리뷰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책 선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중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구매와 상관없이 꼭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중세> 1, 현대의 모태 중세, 그 억울함을 풀다!


중세는 억울하다. 중세는 결코 이성(理性)이 잠들어버린 어둠의 시기가 아니었다. 광신에 빠진 이들이 여기저기에서 마녀사냥과 화형을 즐기는 차디찬 겨울과 같은 시기도 아니었다. 현실에 대한 관심 없이 초현실적인 것만으로 추구하며 살아간 시기도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유산인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성과를 무시한 채, 그저 신앙만을 외친 시기도 아니었다. 이런 눈으로 중세를 본다면, 중세는 정말 억울하다. 만일 중세가 이러한 시기라면, 중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암울한 차디찬 어둠의 겨울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세는 그렇지 않다. 결과적으로 중세는 현재의 모태(母胎)였다.


오히려 중세는 이성을 중시한 시기다. 수많은 근대의 결실은 사실 중세 이성의 씨앗에 결실이다. 씨앗 없는 결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중세의 이성은 근대 이성의 씨앗이다. 어느 시대가 그렇듯이 중세 역시 돌림병이 있었다. 하지만 돌림병만으로 중세를 이해해선 안 된다. 이미 중세 이슬람은 백내장과 두개골 절개 수술을 할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중세에 말이다. 중세 유럽 역시 돌림병에 무력하게 당하기만 한 시대가 아니다. 병원을 세우기도하며 의학을 연구한 시기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의 유산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중세 지중해 곳곳에선 종교를 넘어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 할 것 없이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남긴 유산을 활용하고 연구하였다. 이들을 무시하고, 이들이 다시 인정받기 위해선 르네상스시대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억울한 누명이다. 오히려 중세는 서로의 결실을 인정하고 수용하였다. 이슬람을 야만이라 부르지 않았고, 신앙 없이 이성으로 이루어진 고대 그리스의 성과를 비신앙적이라 거절하지도 않았다. 이슬람교와 유대교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이성이란 공간에서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것이 중세다. 아비켄나(Avicenna)와 아베로에스(Averroes) 없이 중세 스콜라 철학은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을 수 없었다. 그들 없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철학이 그와 같을 수 없었고,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도 그와 같을 수 없었다. 중세 이슬람 철학자들은 <꾸란>만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이성에 근거하여 고대 그리스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고 그 결실 위에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일구었다. 그리고 그 성과는 이슬람교뿐 아니라, 중세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에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중세는 고대의 유산을 무시하지 않았고, 자신만의 종교적 틀 속에서 있지도 않았다. 학위 제도를 가진 역사상 첫 대학은 중세 이슬람인에 의하여 세워진 알-카라윈 대학이다. 이슬람 신학을 연구한 이곳은 이슬람 사상의 대가들이 양성되기도 했지만, 오직 이슬람에 한정되지는 않았다. 1003년까지 교황으로 재임했던 실베스터 2세가 수학과 자연과학을 배우기 위해 선택한 곳도 바로 이곳 이슬람인에 의하여 세워진 대학 알-카라윈 대학이었다. 이것이 바로 중세다. 중세는 이성적 결실을 위하여 다른 종교를 가진 이에게도 귀를 기울이고 제자가 되었다. 신앙을 수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성적 결실을 배우기 위해서 말이다. 이처럼 이성에 기반 한 학구열을 불태우던 중세를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 시기라고 한다면 정말 억울하다. 그저 돌림병의 시기도 하고, 신앙의 가치 위에 모든 것을 무시하던 시기도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정말 억울하다.


그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했다. 호위징아(J. Huizinga)는 <중세의 가을>에서 중세를 차디찬 겨울이 아닌 ‘가을’이라 했다. 질송(E. Gilson)은 중세철학 연구를 통해 중세의 합리성을 보여주었다. 드 리베라(A. De Libera)는 오직 서유럽 중신의 중세철학이 아닌 서유럽, 동유럽, 이슬람과 유대교 등의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서 이루는 복수 화 된 중세철학‘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도 제법 많이 알려진 자끄 르 고프(Jacques Le Goff)는 중세를 암흑이 아닌 '위대한 천년'이라 규정하며, 중세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에 맞섰다. 중세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제법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것은 각 개별 학자들은 자신들이 전공한 분야만을 중심으로 중세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 뿐이다. 철학사를 전공한 이에게 의학사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중세 예술사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이에게 자연학과 수학에서의 억울함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이렇게 중세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노력은 다양했고, 나름의 결실이 있었지만, 동시에 아쉬운 한계가 있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를 중심으로 모인 다수의 중세 전문가들에 의하여 쓰인 <증세> 시리즈는 분명 매우 의미 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 역시 중세 전문가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에 대한 저서를 남겼으며, 소설 <장미의 이름>에선 중세 후기 철학자 ‘윌리엄 오캄’을 주인공인 윌리엄 신부로 출연시키기도 했다. 그런 에코를 중심으로 중세의 오랜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중세 정치학, 철학, 문학, 의학, 수학, 자연학 등 거의 모든 중세학의 분야를 아우르는 수많은 전문가에 의한 수 백 편의 글들로 각 분야에서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있다. 단 한 명이 단 하나의 전공 분야를 중심으로 적은 그런 책과 다른 장점이다.


에코를 중심으로 모인 수많은 학자들이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하나의 집단 지성이 구성한 셈이다. 그 집단 지성을 구성하는 각각의 작은 글들은 <중세> 시리즈 전체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중세의 억울함을 풀어가고 있다. 이렇게 전체가 흘러가다 보니, 한 명의 학자가 평생을 걸고 집중하여도 이루기 힘든 깊이와 유려(流麗)한 설명들은 진정 <중세> 시리즈의 큰 장점이다. 그리고 각각의 작은 단위를 전체 속에 부분이지만, 그 단위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완결된 글의 형태를 가진다는 것도 장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중세 철학은 암흑기라는 억울함에 대한 글을 읽고 싶다면, 에코가 적은 중세 철학 일반에 대한 소개글을 읽어 보는 것이 좋다.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글이다. 하지만 더욱 더 구체적으로 에코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선 레나토 데 필리피스가 소개하는 보에티우스에 대한 글로 이어져 읽는 것도 좋다. 아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가게 되어 있다. 철학사에서 보에티우스뿐 아니라, 음악에서의 보에티우스가 고대와 중세를 매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체칠리아 판티가 소개하는 음악이론가 보에티우스에 대한 글로 흘러가면 된다. 또 더 근본적으로 고대와 중세의 매개로 보에티우스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면, 파트리치아 스토파치의 보에티우스에 대한 글을 읽으면 된다. 이와 같이 이렇게 굳이 처음부터 차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어느 한 부분을 잡고 읽기 시작해도 결국은 전체를 읽게 된다. 보에티우스 한 사람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전문가의 다양한 설명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 즉 하나의 사태에 대해서도 집단 지성을 구성하는 여러 단위의 설명을 통하여 조금은 입체적으로 접근하여 중세의 억울함을 풀어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이 시리즈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또, 에코가 기획한 <중세>는 서유럽만의 중세가 아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세 이슬람과 중세 비잔틴의 성과가 중세 서유럽과 병행된다. 매우 입체적이다. 이제까지 <중세> 시리즈와 유사한 작업들은 대체로 서유럽의 중세만을 중세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476년에서 1000년을 다루는 <중세>1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중세>1은 서로마제국이 패망한 476년부터 1000년까지 다양한 중세의 모습들을 소개한다. 이 시기 중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 시기 중세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우구스티누스와 보에티우스를 보는 것이다. 이 둘은 철저하게 합리적이며 동시에 신앙적이다. 흔히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란 중세 사상사의 대명제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수많은 교부들과 스콜라학자들에게 모두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말이다. 우선 보에티우스를 보자. 그는 고대 그리스의 유산을 철저하게 수용한다. 심지어 그리스어로 된 저작을 라틴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이렇게 번역하고 연구함으로 얻은 고대의 유산에 대한 지식이란 이성의 수단을 가지고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조금 더 온전히 이해하고자 시도한다. 즉,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준다. 삼위일체(三位一體)에 대한 고민과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와 신의 예지력(豫知力) 사이에 일어나는 논리적 모순에 대한 고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고민 앞에서 그냥 믿으라는 말은 하진 않는다. 비록 인간 이성으로 이 답을 완벽하게 구할 순 없지만, 최대한 이성을 활용하여 알아들으려 노력한다. 보에티우스는 이성의 독단과 신앙의 독선을 막기 위해 이렇게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통하여 상생의 길을 모색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광신이나 비합리는 그저 억울한 누명일 뿐이다.


보에티우스의 태도, 즉 고대의 수용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란 태도는 다른 영역에서도 확인된다. 자연 과학에서도 중세는 고대의 성과를 버리지 않았다. 책이나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제의 용구에서도 중세는 고대와 무관하지 않았다. 음악에서도 이들은 고대의 성과를 무시하지 않았다. 보에티우스는 음악에 대한 고대의 피타고라스학자의 성과를 수용했다. 그리고 그 수용 위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성과를 더함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이론을 만든 인물이다. 이렇게 중세. 특히 476년 이후 초기의 중세는 고대와의 강한 단절보다는 연속성 속에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더하려 하였다. 이 모든 과정들이 <중세>1은 음악, 철학, 문학, 제의 용구, 자연 과학 등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간결하면서 차분히 소개하고 있다.


<중세>1에서 다루어지는 476년 이후, 무엇인가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과거 박해의 시기를 보내던 그리스도교는 유럽의 국가 종교가 되었다. 다른 지위의 종교가 된 셈이다. 아랍 지방은 전에 없던 새로운 종교인 이슬람교가 등장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확장되어갔다. 유럽은 서유럽과 동유럽으로 구분되어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고 그 다름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동일한 신앙이지만, 서로 다른 이성의 이해 방식에 따라 서서히 달라진다. 보에티우스 등에서 확인되는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은 하나의 신앙이지만, 서로 다른 이해의 방식에 따라서 다른 길로 가게 만들었다. 신학과 철학에서 다른 길을 가게 되고, 종교 예술에서도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동유럽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게 서유럽과 동유럽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의 구분이 이때 서서히 모습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현대 유럽의 사상적 혹은 종교적 지형도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셈이다. 고대 로마의 적통(嫡統)인 동유럽의 비잔틴제국가 있었고, 고대 로마인에게 야만인이 불리던 게르만족이 중심이 된 서유럽은 야만에서 벗어난 문명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다. 마찬가지로 유목민으로 사막 생활을 하던 이슬람 역시 문명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자신들의 신학과 철학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이 바로 476년 이후 1000년까지 지중해 연안 중세의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슬람의 정체성, 661년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4대 칼리프였던 알리의 암살사건으로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나눔이 일어난 이후, 지금도 유지되는 이슬람 내부의 다름과 같음의 정체성이 서서히 확립되어 간다. 즉 이슬람도 지금과 같은 모습의 사상적 혹은 종교적 지형도를 드러내기 시작한 셈이다.


476년 이후 새로운 시대를 향한 노력들은 결국 현대 지중해 연안을 구성하는 여러 주체들의 정체성에 있어서 일종의 모태가 되었다. 유럽은 동서유럽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이해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설명하였다. 같은 것도 있지만 서로 다르다. 이해의 방식이 다른 이 둘이 유럽에 공존하게 되었다. <중세>1 그리스도교의 도상 프로그램에서 우린 이 둘이 서로 다른 길로 나아감을 확인할 수 있다. 시아파와 수니파 역시 동일한 신앙에 대한 서로 다른 시야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유럽에서와 같이 이들도 이해 방식이 다른 둘이 아랍에 공존하게 되었다. 21세기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동서유럽의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갈등, 그리고 이슬람교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갈등의 씨앗이 심어진 시기가 바로 이 때다. 476년 이후에서 1000년 사이다.


중세는 억울하다. 중세 초기인 476년에서 1000년을 걸치면서 서서히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중해 연안의 세계가 형성되어져갔다.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은 지중해 연안에 전체적으로 진행된 중세 초기의 일반적 모습이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신앙을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서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다. 서유럽과 동유럽이 같은 신앙에 서로 다른 이해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서로 다른 길로 나아간 이들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현대 지중해 연안을 구성하는 여러 주체들에 있어 정체성의 모태가 된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 중세가 억울했다.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으로 5000만 명이 죽었다. 그러나 20세기를 돌림병의 시대라고 하지 않는다. 근대도 역시 그렇다. 다른 종교와 인종이란 이유로 수많은 이들을 죽였다. 그렇다고 근대를 광신이나 비합리성의 시대라 하지 않는다. 중세 역시 돌림병이 있고, 광신도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중세는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정말 억울하다. 화형! 그것 역시 억울하다. 그 유명한 브루노(Bruno)의 화형은 1600년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의 종교 재판 역시 근대다. 마녀 사냥과 관련된 안내서인 <마녀들의 망치>(Malleus Malefixrum)는 1486년 나왔다. 엄밀하게 중세가 아니다. 중세의 끝이다. 그런데 중세를 화형과 광신 그리고 비합리의 시대로 보았다. 중세는 억울했다. <중세> 시리즈는 이러한 억울함을 풀어줄 좋은 중세의 변호인이 될 수 있어 보인다. 특히 그 시작인 <중세> 1은 중세의 태동기이면서 동시에 서서히 현대의 지중해 연안의 모습이 만들어져가는 그 발아기의 지중해 연안을 확인하게 해 준다. 돌림병의 중세도 광신과 비합리의 중세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그 지중해 연안의 모습들이 탄생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서유럽, 동유럽, 이슬람교 등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는 그 출발점을 보여준다. 너무나 합리적이며 포용적인 중세에게 주어진 억울함을 풀어주고 우리의 현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중세> 1의 일독! 단순한 과거 지식을 넘어선 현실 삶의 지혜를 얻을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유대칠(오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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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1 : 476~1000 - 야만인,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의 시대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1
움베르토 에코 기획, 김효정 외 옮김, 차용구 외 감수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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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 기획의 <중세>는 묵직한 볼륨감으로 인해 이벤트를 통한 서평이나 리뷰를 받기 어려워, 이 책을 관심가지고 살펴 볼 수 있는 작가, 철학자, 독자 이렇게 3명에게 리뷰를 요청하여, 리뷰를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그 두번째는 남성들이 열광하는 모 사이트에서 도서 소개를 재미있게 올려주시는 30대 남성의 리뷰 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책 선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사진이 함께한 리뷰는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중세는 암흑의 시기가 아니다_ 움베르토 에코"



 중세(中世, the Middle Ages)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이미지는 언제나 부정적이고 어두운 이미지 뿐입니다. 흑사병과 마녀사냥, 부패한 카톨릭과 억압적인 사회, 연금술의 현혹과 여자에 대한 차별, 엄격주의자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대학살이 끊임없이 자행된 시대…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알려진 중세 시대. 그러나 최신의 역사학계 연구와 해석에 따르면 결코 그렇게 어두운 시대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들 대부분이 그 시대에 비로소 완성 되었으며 오늘날 유럽이라고 일컬어지는 세계관, 여러 제도와 발명품들… 이를테면 신용장과 수표, 은행, 병원 제도 등이 바로 중세 시대에 이룩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중세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해 < 장미의 이름으로 > 소설을쓴 소설가이자 철학자이며 사상가인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트 에코가 펜을 들었습니다.



 이 책은 대분류 안의 소주제별로 각기 다른 학자들이 자신이 맡은 분야의 글을 집필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명망 있는 수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하여 심도있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전체적 깊이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꼭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볼 필요가 없다


내용이 소주제별로 나뉘었지만 또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상호보완을 하면서전체적인 내용을 완성해가는 방식의 편집입니다. 덕분에 이 책이 근 천 페이지를 넘보는 엄청난 두께의 책이라 하더라도 꼭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볼 필요가 없다는 이점이 생깁니다. 보고 싶은 주제, 보고 싶은 이슈 단위로 두고두고 보노라면 그렇게 얻은 지식들이 서로간의 보완을 이루어 내어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 주제 하나하나가 전문 학자가 아닌 이상 일반인으로서는 자세히 알기 어려웠던 것들이 많아 중세에 흥미를 갖고 있던 분으로서는 굉장히 즐겁게 읽을 내용들이 많습니다.



중세 시대 문화와 기술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통한 접근은 새로운 해석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이를테면 기존의 역사관으로는 그저 물욕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한 신비주의로만 취급, 폄하되던 연금술에 대해서도 <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학문 > 이란 개념선에서 접근하고 그러한 연금술이 어떤 사상적 기반 하에서 나름의 이론 체계를 확립하게 되었는가까지를 편견없이 안내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지나치게 기존의 역사관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무리한 재해석의 시도는 철저히 거르고 있어 보는 이에게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 노력의 흔적이 엿보입니다.아울러 그러한 한 시대의 시도가 유럽은 물론 이웃한 아랍의 금속학과 광물학, 철학 및 실험을 중심으로 한 연구 문화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도 여러 꼭지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러한 < 넓은 > 시선은 그 주제 하나하나마다의 깊이와 함께 중세라는 시대를 우리가 보다 본격적이고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역사, 철학, 건축 및 시각예술 그리고 음악까지


중세에 대한 접근은 항상 역사 또는 철학, 건축 및 시각예술, 기술적 접근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음악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대분류 하나를 통째로 할애하고 있습니다.특히 중세의 음악과 현대의 음악의 확연한 차이점-근대의 음악이 감정의 표현에 중점을 둔다면 중세의 음악은 종교, 과학 및 수학적 접근에 그 방점이 찍혀있다는 점 등-과 중세 시대의 음악적 발전 양상 등은 시대에 따른 단순한 변화를 넘어서서, 거대한 역사의 한 장이 넘어가는 것이 사회와 사람들의 의식에 얼마나 큰 차이를 갖게 하는가를 새삼 느끼게 합니다.


출처=위키피디아


# 중세, 후대의 폭발적발전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된 시기


인류 문명사에 있어서, 중세가 어두운 암흑기가 아니라 오히려 후대의 폭발적발전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된 시기라는 긍정의 해석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중세를 그저 부정적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무엇보다 흑사병의 창궐과 종교에 대한 과도한 몰입으로 사회의 발전 속도가 더뎌진 시기였음에도 그 안에서 꽃피워 낸 많은 과학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을 보며 근현대의 여러 분야가 그 < 중세 >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아울러 한 사람이 무언가에 대하여 오랜 기간 쌓아온 부정적 인식을 씻어내고 객관적 시선을 갖게 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감안하면 중세에 대한 오해를 벗고 그 시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한 이 책의 완성도와 노고에 깊은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8만원이라는 거금이 오히려 책의 가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경제적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또 기획자 그 본인이 세계적인 석학이면서, 수백 명의 집필자들과 함께 만든 이 중세에 대한 완벽한 컬렉션을 보며 이번 1권 이후의 2,3,4 권도 얼른 빨리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무조건 소장하고 싶은, 책상 책꽂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싶은 그런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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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1 : 476~1000 - 야만인,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의 시대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1
움베르토 에코 기획, 김효정 외 옮김, 차용구 외 감수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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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 기획의 <중세>는 묵직한 볼륨감으로 인해 이벤트를 통한 서평이나 리뷰를 받기 어려워, 이 책을 관심가지고 살펴 볼 수 있는 작가, 철학자, 독자 이렇게 3명에게 리뷰를 요청하여, 리뷰를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그 첫번째는 <조선의 명탐정들> <바실라> 등 국내 역사 소설을 집필하시고 있는 소설가 정명섭님의 리뷰 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책 선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디까지 준비해야 하는 가?


역사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고증을 해야 하느냐다. 강연이나 인터뷰에서도 빠지지 않는 질문 내용이기도 하다. 소설은 명백한 작가의 창작물이다. 하지만 역사소설이라면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작가는 자기가 쓴 글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 불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에 넣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작가는 배경이 되는 역사적 지식들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만 글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오류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무이기도 하고 도전이기도 한 이 고민 덕분에 역설적으로 작가는 써야 하는 글 이상으로 책을 읽고 배워야만 한다. 그런 의무를 포기하는 순간, 작가로서는 실격이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중세는 암흑시대?


오랫동안 유럽의 중세는 암흑시대(Dark Ages)로 알려졌다. 찬란한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이 야만인들의 침략으로 무너지면서 무법과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인식되어 온 것이다. 광신적인 종교적 믿음 덕분에 과학과 기술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애꿎은 사람들을 마녀라는 명목으로 처형한 시기라고 말이다. 이런 오해들은 오랫동안 중세를 어둠의 시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번 책에서는 그런 통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비록 그리스 로마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중세 시대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과 전진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이 책은 거기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방대한 중세 사전




자! 이제 책을 살펴보자. 일단 아령으로 써도 될 만큼 묵직하다. 요즘 유행하는 벽돌 책을 넘어서서 시멘트 블록 급의 무게를 자랑한다. 서문부터 연표까지 무려 992페이지를 자랑하고 있다. 일단 카페에 들고 가서 편안하게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미의 이름 속편이나 쓰시지 뭣 하러 이런 걸 만들었냐는 가벼운 불평과 함께 책을 넘겼다. 서문에는 오늘날의 유럽을 만든 시작이 바로 중세인데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기획했다는 그의 얘기가 담겨있다. 책은 역사서 보다는 중세를 설명하는 사전에 가깝다. 과학기술이나 역사, 문학 같은 분야로 나눠져 있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도와 연표는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충해준다. 사전 같지만 사전보다는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이다. 한 사람이 아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이야기들은 일목요연하면서도 몰랐던 부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992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긴 여정은 중세가 암흑기라는 편견을 없애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책이라는 매개체가 가진 장점이 십분 발휘한다. 이런 방대하고 전문적인 지식은 인터넷을 비롯한 다른 매개체를 통해서는 절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책을 분권하지 않은 것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중세 시대에 무엇이 발전하고 변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고대에 비해서 고삐의 형태가 바뀌고, 편자가 발명되면서 말과 소는 더 많은 짐을 끌 수 있게 되었고, 돛의 형태가 바뀌면서 배들은 더 빨리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의학 역시 해부를 시작 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었다는 식이다. 첫 장부터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중세는 반드시 암흑시대여야 한다는 고정관념만 버린다면 이 책을 좀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목차를 보고 관심이 가는 분야부터 읽어도 좋고, 아니면 나처럼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는 것도 괜찮다. 만약 내가 중세를 배경으로 소설을 써야만 한다면 가장 먼저 펼쳐야 할 게 바로 이 책이다. 다양한 정보를 모아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중세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오해를 어떻게 벗어나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해줬기 때문이다.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는 결국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면서 탄생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파편처럼 흩어진 중세의 지식들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 소설은 통설을 따라가는 척 하면서 반대로 가야만 묘기를 부려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필요한 존재다. 책의 뒷면에는 다른 책들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중세의 결정판이라는 카피를 적었다. 오만해 보이지만 이 책의 무게감을 생각한다면 동의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적어도 한글로 나온 중세 관련 서적 중에서는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니까 말이다. 책을 써 본 입장에서는 이 엄청난 기획을 밀어붙이고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중세인가?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중세라는 곳에 문명이라는 빛이 있었다. 폐허로 변한 로마의 잔해 위에서 새로운 문명이 어떻게 빛을 발하게 되었는지 보면서 애잔함과 함께 인간이 가진 힘을 느꼈다. 중세는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발전을 해왔고, 그것이 오늘날의 유럽의 시작이 되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무대가 된 유럽이 오늘날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가능했던 것 역시 중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끈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유럽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문명을 공유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시작점이 바로 중세라고 할 수 있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웃나라들과 역사를 두고 끊임없이 다투는 우리들에게도 좋은 가르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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