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1 : 476~1000 - 야만인,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의 시대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1
움베르토 에코 기획, 김효정 외 옮김, 차용구 외 감수 / 시공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움베르토 에코 기획의 <중세>는 묵직한 볼륨감으로 인해 이벤트를 통한 서평이나 리뷰를 받기 어려워, 이 책을 관심가지고 살펴 볼 수 있는 작가, 철학자, 독자 이렇게 3명에게 리뷰를 요청하여, 리뷰를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그 첫번째는 <조선의 명탐정들> <바실라> 등 국내 역사 소설을 집필하시고 있는 소설가 정명섭님의 리뷰 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책 선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디까지 준비해야 하는 가?


역사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고증을 해야 하느냐다. 강연이나 인터뷰에서도 빠지지 않는 질문 내용이기도 하다. 소설은 명백한 작가의 창작물이다. 하지만 역사소설이라면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작가는 자기가 쓴 글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 불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에 넣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작가는 배경이 되는 역사적 지식들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만 글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오류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무이기도 하고 도전이기도 한 이 고민 덕분에 역설적으로 작가는 써야 하는 글 이상으로 책을 읽고 배워야만 한다. 그런 의무를 포기하는 순간, 작가로서는 실격이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중세는 암흑시대?


오랫동안 유럽의 중세는 암흑시대(Dark Ages)로 알려졌다. 찬란한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이 야만인들의 침략으로 무너지면서 무법과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인식되어 온 것이다. 광신적인 종교적 믿음 덕분에 과학과 기술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애꿎은 사람들을 마녀라는 명목으로 처형한 시기라고 말이다. 이런 오해들은 오랫동안 중세를 어둠의 시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번 책에서는 그런 통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비록 그리스 로마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중세 시대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과 전진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이 책은 거기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방대한 중세 사전




자! 이제 책을 살펴보자. 일단 아령으로 써도 될 만큼 묵직하다. 요즘 유행하는 벽돌 책을 넘어서서 시멘트 블록 급의 무게를 자랑한다. 서문부터 연표까지 무려 992페이지를 자랑하고 있다. 일단 카페에 들고 가서 편안하게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미의 이름 속편이나 쓰시지 뭣 하러 이런 걸 만들었냐는 가벼운 불평과 함께 책을 넘겼다. 서문에는 오늘날의 유럽을 만든 시작이 바로 중세인데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기획했다는 그의 얘기가 담겨있다. 책은 역사서 보다는 중세를 설명하는 사전에 가깝다. 과학기술이나 역사, 문학 같은 분야로 나눠져 있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도와 연표는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충해준다. 사전 같지만 사전보다는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이다. 한 사람이 아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이야기들은 일목요연하면서도 몰랐던 부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992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긴 여정은 중세가 암흑기라는 편견을 없애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책이라는 매개체가 가진 장점이 십분 발휘한다. 이런 방대하고 전문적인 지식은 인터넷을 비롯한 다른 매개체를 통해서는 절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책을 분권하지 않은 것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중세 시대에 무엇이 발전하고 변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고대에 비해서 고삐의 형태가 바뀌고, 편자가 발명되면서 말과 소는 더 많은 짐을 끌 수 있게 되었고, 돛의 형태가 바뀌면서 배들은 더 빨리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의학 역시 해부를 시작 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었다는 식이다. 첫 장부터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중세는 반드시 암흑시대여야 한다는 고정관념만 버린다면 이 책을 좀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목차를 보고 관심이 가는 분야부터 읽어도 좋고, 아니면 나처럼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는 것도 괜찮다. 만약 내가 중세를 배경으로 소설을 써야만 한다면 가장 먼저 펼쳐야 할 게 바로 이 책이다. 다양한 정보를 모아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중세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오해를 어떻게 벗어나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해줬기 때문이다.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는 결국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면서 탄생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파편처럼 흩어진 중세의 지식들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 소설은 통설을 따라가는 척 하면서 반대로 가야만 묘기를 부려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필요한 존재다. 책의 뒷면에는 다른 책들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중세의 결정판이라는 카피를 적었다. 오만해 보이지만 이 책의 무게감을 생각한다면 동의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적어도 한글로 나온 중세 관련 서적 중에서는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니까 말이다. 책을 써 본 입장에서는 이 엄청난 기획을 밀어붙이고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중세인가?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중세라는 곳에 문명이라는 빛이 있었다. 폐허로 변한 로마의 잔해 위에서 새로운 문명이 어떻게 빛을 발하게 되었는지 보면서 애잔함과 함께 인간이 가진 힘을 느꼈다. 중세는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발전을 해왔고, 그것이 오늘날의 유럽의 시작이 되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무대가 된 유럽이 오늘날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가능했던 것 역시 중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끈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유럽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문명을 공유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시작점이 바로 중세라고 할 수 있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웃나라들과 역사를 두고 끊임없이 다투는 우리들에게도 좋은 가르침이 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