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일 화제가 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이미 이전에 드라마로 한 차례 방영된 적이 있고 영화, 연극으로도 리메이크 된 적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입니다. 21년 만에 TV드라마로 다시 찾아온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마구마구 훔치고 있다는 소식인데요. 실제로 배우들의 대본 리딩 현장에서 막내아들 역할을 맡은 최민호 배우가 리딩 도중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죠. 이제 단 2화만 남겨놓은 지금! 어떤 대사와 연기로 눈물을 쏙 빼놓을지 주말만 기다려집니다.  


가까이에 있어 소중한 줄 몰랐던 가족을 위한 책 4권을 추천합니다. 책을 고르다보니 괜시리 찡해져 가족들 생각이 나네요. 오늘은 사랑하는 내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 한 통 걸어보면 어떨까요?  


며느리, 아내, 엄마가 아닌 ‘나’를 꿈꾸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책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는 순간 이름을 잃어버린 당신.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며느리가 아닌 오로지 내가 되고 싶은 당신에게 추천하는 책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입니다.   


젊은 시절 꿈을 가슴에 묻어둔 채,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프란체스카. 남편과 아이들이 짧은 여행을 떠난 사이,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운명의 사랑이 찾아옵니다. 물 빠진 청바지와 낡은 레드윙 부츠, 손 때 묻은 니콘 카메라와 카멜 담배, 낡은 픽업트럭… 오래된 다리의 사진을 찍겠다며 아이오와 주 시골 마을, 고립된 낡은 도로 같던 그녀의 삶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 남자, 로버트 킨케이드. 머물지 못하는 바람 같던 그의 인생에도 처음으로 놓치고 싶지 않은 이가 생겼고, 프란체스카는 다시 춤을 추고 싶어집니다. 그들은 더 이상 젊지 않고, 첫 무도회의 설레임은 자라날 아이들의 몫이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인간이 나이와 환경을 초월하여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에 주목한다면 이 책을 단순히 가정이 있는 주부와 중년 남성의 가벼운 사랑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실제로 작가 제임스 윌러는 여전히 독자들로부터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의 사랑을 지지하는 펜레터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들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자고요!


내 딸, 내 아내, 내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은 

아버지에게 추천하는 책

《82년생 김지영》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가장 뜨겁고 민감한 주제를 꼽으라면 누구라도 ‘페미니즘’을 떠올릴 겁니다. 여전히 페미니즘을 불편해하는 많은 남성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페미니즘을 불편해하는 여성들도 존재하죠!) 여기서 갈등을 일으키는 가장 큰 오해는 페미니즘을 “여자들은 이렇게 힘들다!” 하는 투정 정도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계층구조를 떠나서 남성, 여성 모두에게 버겁고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남성, 여성 편 가르지 말고 서로 도와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아보자는 의미로 《82년생 김지영》을 선정했습니다.


흔히 사회생활을 정글로 비유하곤 합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연스레 가족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요. 우리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치열한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셨을 겁니다. 그러면서 보지 못했던 것, 놓쳤던 것들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되찾기는 쉽지 않죠. 어쩌면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보고도 모르는 척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내의 외로움과 슬픔을,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들을 말입니다.  


서른네 살 김지영 씨는 어느 날부터 이상 증세를 보입니다. 갑자기 다른 사람들로 빙의해 주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기는데요. 남편이 김지영 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김지영 씨는 그 후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눕니다.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담당 의사가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내가 바로 김지영이다!”를 외치는 여성들의 격렬한 공감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내 딸, 내 아내, 내 어머니, 내 여자친구, 내 누나, 내 여동생 등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하고 다짐해본 적 있는

딸에게 추천하는 책

《엄마, 나 그리고 엄마》


딸과 엄마 사이만큼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가 또 있을까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면서도 마음에 없는 말을 뱉으며 증오하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 끝은 안쓰럽고 찡하기만 하죠.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하고 다짐하지만 사실 딸은 알고 있습니다. 자신은 절대 엄마만큼 살 수 없다는 것을요. 무한한 희생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신 세상의 어머니들께 감사를 보냅니다.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세계인의 영원한 멘토로 불리는 마야 안젤루가 발표한 일곱번째 에세이이자 고인이 되기 전 발표한 마지막 책입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자란 흑인 여성이 어떻게 세계인의 멘토이자 희망의 상징인 ‘마야 안젤루’가 되었는지, 그러기까지 그녀의 어머니 비비언 백스터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제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특별하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마야 안젤루는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사랑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치유하는지,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에서 상상 불가능한 높이까지 오를 수 있도록 돕는지 이야기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습니다. 관계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을 마음속에 간직하고만 있는

무뚝뚝한 아들에게 추천하는 책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실 것만 같고 언제든 곁에 있을 것만 같던 부모님을 자세히 본 적 있나요? 늘어난 주름과 셀 수 없이 많아진 흰머리, 몰라보게 약해진 기력을 보고 있노라면 무심한 세월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말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 수 없습니다. 부끄럽고 망설여진다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지 마세요. 진심을 꺼내는 데 너무 늦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어린 왕자》로 너무나 익숙한 작가 생텍쥐페리의 편지를 엮은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는 우리가 용기를 내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생텍쥐페리가 기숙학교에 다니던 십 대 시절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기 직전까지 어머니에게 보낸 100여 통의 편지를 그의 어머니 마리 드 생텍쥐페리가 직접 책으로 엮은 것인데요. 생텍쥐페리가 실종된 이후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의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차분한 어머니의 모습을 유지하다가 1년 후 자신에게 전해진 아들의 마지막 편지를 받고서야 오열을 터뜨립니다. 십년의 세월이 흐른 1955년, 그녀는 이 마지막 편지를 포함, 생텍쥐페리가 평생 동안 자신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하지요. 


작가가 아닌 평범한 아들이자 청년 생텍쥐페리를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이 편지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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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고 부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소설 3편


평생 가족 뒷바라지만 하다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엄마가 가족과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이야기죠. 21년 만에 TV로 다시 만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방영 소식에 SNS 반응이 뜨겁습니다. 


이미 한 차례 드라마로도 방영되고 영화로 연극으로도 우리를 찾았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지만 이번이 유독 특별한 이유는 노희경 작가가 직접 리메이크하고 '디어 마이 프렌즈'의 홍종찬 연출의 손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2013년 고3 모의고사 독해 지문에 출제되며 시험장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바로 그 이야기가 이번엔 우리에게 어떠한 감동을 안겨줄지 기대하며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만큼 많은 독자의 눈물을 쏟게 만들었던 소설 3편을 소개합니다.



부르면 늘 미안하고 뭉클해지는 이름, 엄마.

엄마라고 부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국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도 번역 소개되어 큰 인기를 얻은 소설입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서울역에서 실종되면서 시작하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입니다.  


실종된 엄마를 찾는 가족들이 그 흔적을 추적하며 자신들의 기억을, 그리고 미처 몰랐었던 엄마의 삶 전체를 복원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힘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엄마의 존재를 새롭게 보게 한다는 데 있답니다. 


늘 우리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줄 것 같았던, 그래서 당연히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던 엄마의 삶. 그 삶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고 맙니다. 



 『이별까지 7일』



좀처럼 집에 오지 않는 큰아들 내외, 당연하다는 듯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 가는 작은 아들, 사업 부진과 주택 대출금 때문에 생활비를 주지 못하는 아버지, 사채로 그 생활비를 충당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작은아들 슌페이에게 생활비를 건네주기 위해 도쿄로 간 엄마는 순간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단순한 건망증이라고 여기며 애써 불안감을 지웠지만 바람과는 달리 뇌종양 판정과 함께 길어야 일주일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제 사랑하는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어머니는 그동안 숨겨왔던 가족에 대한 본심을 순진한 아이가 되어 이야기합니다. 애써 외면해왔던 가족의 문제들이 하나씩 터져 나오며 35년간 유지해 온 한 가정이 끝장나기 일보 직전입니다. 


『엄마를 부탁해』 만큼 애잔하지 않지만, 『이별까지 7일』에는 일본 소설 특유의 웃음기 어린 감동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평생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엄마와 이별을 준비하며 다시 가족이 되는 소설 <이별까지 7일>입니다.



 『물 위의 집』



소설 <물 위의 집>은 뉴욕 변두리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우리네 부모님 모습과 아주 닮아 있습니다. 안정된 가정을 위해 애쓰고 자식들의 나은 미래를 소원하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 말이지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엄마는 ‘자신이 꿈꾸는 집에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입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뜻대로 되던가요. 완벽해 보였던 남편은 더 이상 완벽하지 않았고, 어렵게 얻은 아들도 그녀의 바람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그리고 어느 가정이나 그렇듯, 예상치 못한 큰 시련도 닥칩니다.  


벗어나고 싶던 부모님의 삶이지만 <물 위의 집>을 읽고 나면, 항상 부족해 보이고 원망만 하던 부모님의 삶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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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세트 - 전3권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특별한 재능을 펼치기엔 

너무 작은 세상에 태어난 우리의 이야기


추운 계절이 시작됐습니다. 전국 곳곳에 눈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겨울잠을 준비하고, 학생들은 방학에 돌입하겠죠. 곧 크리스마스 시즌이 될 것이고, 우리 모두는 한 살을 더 먹을 거예요!

그리고 또 얼마 뒤엔 아무렇지도 않게 봄이 와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새 생명을 싹틔울 겁니다. 다시 이 땅 위엔 따뜻한 온기와, 푸른색의 잎사귀들과, 유혹적인 빛깔의 꽃들이 찾아올 것이고요. 만물은 이렇게 계절의 오고감을 따라 소멸과 성장을 거듭합니다. 우리들은 한 해 한 해 늙어가지만, 또 다시 꽃을 닮은 아이들이 자라나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겠죠.


어슐러 K. 르 귄의 <서부해안 연대기>를 알고 계시나요? 『기프트』, 『보이스』, 『파워』까지 총 세 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춥고 거친 세상 속에서 열심히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려내는 판타지 성장 문학이라 불립니다. 그 아이들은 봄을 닮았고, 자라나는 잎사귀를 닮았고, 꽃을 닮았습니다. 1929년생으로 이미 1970년대에 세계적인 작가가 된 그녀가, 비교적 최근이랄 수 있는 2000년대에 새롭게 내놓은 시리즈입니다. 


'서부 해안'이라고 하는 동일한 상상계를 배경으로,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세 인물이 세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이 작품들은 하나의 궤도로 이어져 있습니다. 1권 『기프트』의 주인공이었던 오렉은 자신만의 성장의 진통을 겪은 후 어른이 되고, 『보이스』의 메메르와 『파워』의 가비르의 길을 안내합니다. 두 아이들의 성장통은 오렉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먼저 그 길을 힘껏 통과해 냈던 오렉은 둘의 구원을 도울 수 있습니다.


세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고 그 자신 SF 소설가로 활동 중이기도 한 이수현 번역가는 『파워』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말해 줍니다.


"주인공들의 여정에 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도 정답이나 완벽한 대안은 없다. 틀을 전복시키는 사고 실험도 없다. 길을 이끌어줄 현자도 없다. 영웅도 구원도 없다. 그 대신 한 사람의 구원은 존재한다. 한 사람의 꿈. 한 사람의 출발. 한 사람의 성장. 어쩌면 희망은 언제나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서부해안 연대기>에는 마치 할머니가 자신의 손자와 손녀에게 들려주듯, 조곤조곤하며 평화로운 느낌으로 가득합니다. 연대기의 세 작품은 '잘못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들이 혼돈의 시기를 거쳐 자신의 능력이 가진 진정한 의미와 그 쓰일 곳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요. 『기프트』의 오렉은 시를 쓰고 노래하는 재능을, 『보이스』의 메메르는 책의 이야기를 듣는 재능을, 그리고 『파워』의 가비르는 읽은 것을 기억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힘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모두 책과 언어, 그리고 기억에 관한 재능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폭력과 억압, 독재로 얼룩진 서부 해안에서 이런 재능들은 전혀 환영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재능이, 누군가를 지배하고 파괴하는 힘보다 이 세상을 분명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리라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어슐러 르 귄은 누구보다 그런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젠 정말로 할머니가 되어 버린 노작가는, 『보이스』의 수장 어르신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메메르, 어둠 속에 들어가야 한다면, 저 어둠은 그저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해주려는 어머니이자 할머니라는 걸 생각하렴. 네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언어를 쓰긴 하지만, 그건 배울 수 있어. 나도 저기 들어가야 했을 때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지."


겨울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성장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앞에 놓인 어둠은 한없이 깊고 무겁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혹독한 나날이 이어진다 하더라도, 봄은 반드시 옵니다. 우린 모두 남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때때로 사악하고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시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며, 과거의 잘못과 아픔을 기억하는 어른들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믿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끔씩 우리 삶과 이 세계가 좀 막막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어른이든 아이이든, 어슐러 르 귄의 <서부 해안 연대기>가 작은 힘이 되어줄 거라고 믿습니다. 오렉의 아내인 그라이의 말처럼 “뭔가를 품은 사람만이 그걸 찾는 법”이라면, 문학이란 언제나 그 ‘뭔가’를 말해주는 가장 좋은 안내서일 게 분명하니까요.



SF 판타지 문학의 거장 
어슐러 K. 르 귄의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올해로 작가 경력 55년을 맞이하는 SF 판타지 문학의 거장 어슐러 K. 르 귄의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기프트》, 《보이스》, 《파워》 수록)이 국내 출간 1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가격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32,000원->22,400원 정가 대비 30% 할인)

10여 차례의 휴고상, 네뷸러상 수상, 전미 SF 판타지 작가협회 선정 ‘그랜드 마스터’, 세계환상문학상과 카프카상, 필그림상 수상 등 SF와 판타지를 아우르는 화려한 수상 경력과 ‘SF 작가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단연 1순위’라며 누구나 인정하는 독보적인 문학성, 무엇보다 반세기 이상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선보여온 다양하고도 충실한 이야기로 매번 독자들을 설레게 하는 르 귄. 잘못된 재능을 갖고 태어났지만 책과 이야기, 그리고 시에 대한 사랑으로 힘겨운 시기를 이겨내는 특별한 아이들의 성장담을 그린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은 헤인/에큐먼과 어스시의 세계를 벗어난 새로운 판타지 성장소설로서 독자와 문학계에 인상적인 궤를 남기며 르 귄의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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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 : 언어가 사라진 세상
앨리너 그래이든 지음, 황근하 옮김 / 검은숲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조지 오웰의 『1984』를 현대판 스릴러로 만나다

_신간 『밈: 언어가 사라진 세상』에 대해


“언어는 언어가 없다면 증발해버렸을 망자들의 생각을 우리에게 묶어주는 유일한 끈이다. 역사의 청명한 울림을 듣게 해주고 우리 자신의 시대라는 고리를 그 장구한 연속에 이어준다.”


― 『밈: 언어가 사라진 세상』 141페이지 중에서


세계는 무서울 만큼 빠르게 변해갑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이 이처럼 대중들의 화젯거리가 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첨단 과학 기술이 우리 곁에 성큼성큼 다가오는 걸 의식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그 기술을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 거기에 절박하게 매달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마트폰 없는 하루, 아니 불과 반나절을 생각하더라도 이젠 거의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인간의 미래에 관한 디스토피아적 전망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물질적으로는 이미 전 세계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어야 마땅할 만큼 진보했지만, 우린 그 진보된 환경에서 전혀 느긋한 안정감이나 행복을 누리지 못하니까요. 오히려 과거보다 더 불행하고. 쫓기며, 미래를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는 편리함과 안락함을 찾아 여기까지 왔는데, 여전히 대량 실업과 전쟁, 테러 따위의 ‘전근대적인’ 공포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류의 디스토피아에 관한 최고의 문학 작품 중 하나는 조지 오웰의 『1984』입니다. 1949년 발표된 이 작품은 인간의 개인적인 삶과 사상이 말살되어버린 전체주의적 미래를 음산하게 묘사해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되자 미국과 영국 및 유럽 각국에서 이 책이 불티나게 팔려 화제가 되기도 했죠. 당의 진리부에서 기록 조작 일을 하던 윈스턴 스미스가 어느 순간 자신을 둘러싼 억압과 부조리를 깨닫고 자유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이 소설에서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여러 제도적·기술적 장치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진리부의 신어(新語)에 대한 내용은 의미심장합니다. 언어는 인간의 정신을 성숙하게 하고, 날카롭게 만드는 문화적 유산입니다. 우리는 언어를 가짐으로써 비로소 동물과 구별되는 운명을 개척할 수 있었고, 수만 년의 역사에 걸친 공동체의 지혜를 계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정신을 복종하기 쉽고 무디게 만들기 위해선 그들에게서 ‘말’을 빼앗는 일은 필수적입니다. 『1984』의 진리부에서 신어의 사전 작업을 맡은 동료 사임은 윈스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단어들을 파괴하고 있어. 매일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씩 말이야. 단어를 뼛속까지 잘라 내고 있지. 제11판에는 2050년 이전에 쓸모없어질 단어는 단 한 개도 들어 있지 않을 거야. 단어를 없앤다는 것은 멋진 일이야. 물론 가장 쓸모없는 말은 동사와 형용사에 많이 있지만 없애야 할 명사도 수백 개에 이르지. (…) 해를 거듭할수록 단어는 자꾸 줄어들고 의식의 범위도 좁아지게 될 테지. 신어가 다 완성되면 동시에 혁명도 완수되는 거지.”


― 조지 오웰, 『1984』 중에서


언어를 통해 사상의 범위를 좁히고 마침내 인간을 노예화 한다는 발상은 이미 『1984』와 함께 디스토피아 소설의 효시로 잘 알려진 『멋진 신세계』에도 등장합니다. 1932년 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이 작품에선 ‘런던 중앙 인공부화 및 조절국’의 국장의 입을 빌려, “선량하고 행복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려면 되도록 일반적인 개념을 적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인 개념은 사회의 악이며, 철학자는 세상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혼자 책을 읽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며 셰익스피어와 파스칼 따위는 먼지를 털어내듯 소멸시켜 버렸다는 것이죠.



“사람들이 왜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우리는 다른 이들의 마음에 연결되려고 책을 읽는 거야. 하지만 제 삶의 번드르르한 잡동사니들을 묘사하느라, 소위 '글을 쓰느라' 바쁜데 왜 책을 읽겠어? 자기가 뭘 먹는지, 얼마나 추운지, 글쎄 모르겠구나, 축구경기가 져서 속상하다고 강박적으로 하나하나 기록하는 것. 모두의 귀로 흘러들어가는, 그러나 또 누구에게도 흘러들어가지 않는 그 끊임없는 홍수 현재를 따라가기도 힘든데 누가 구태여 과거를 들여다보겠니? 그러나 우리에겐 과거가 필요하단다. 하루보다 더 길게 갈 것들이….”


― 『밈: 언어가 사라진 세상』 141페이지 중에서


2020년을 목전에 둔 지금, 세상은 『1984』와 『멋진 신세계』의 전망과는 꽤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떤 사회도 텔레스크린을 통하여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고 세뇌하지 않고, 태어나자마자 수면교육이나 행동조절을 당하면서 포르노 영화와 환각제에 취할 것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점점 더 무엇인가에 예속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를 더 편리하고 ‘직관적으로’ 거부할 수 없게끔 만들어주는 테크놀로지에 말이죠. 우린 누가 막지 않더라도 더 이상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지 않고, 그 대신 1시간에도 몇 번씩 인터넷에 접속하기 바쁩니다. SNS는 마약처럼 우리를 붙잡아두고요.


이는 20세기 초반에 살았던 오웰과 헉슬리가 미처 예기치 못했던 부분입니다. 미국 작가 앨레나 그레이든은 바로 이런 부분에 주목하며, 『밈: 언어가 사라진 세상』에서 두 선배를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으로 되살려 냅니다. 


작품의 주인공 애너는 머지않은 미래. 책, 서류, 하다못해 손으로 쓴 일기장까지 과거의 유물이 된 세상에살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4년이 됐고, 미술가의 꿈을 버리지 않은 채 사전 편찬 회사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인 애너 존슨.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활자의 힘’을 믿는 『북미영어대사전』 편집주간 더글라스 존슨입니다. 『1984』의 진리부 사무실을 연상시키는 복고풍의 무대에서, 두 부녀(父女)는 세상의 문화적 대유행, 사람들이 스스로 복종하는 ‘빅 브라더’에 대항하여 위험한 모험을 시작합니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전체주의의 폭력이 아니라, ‘언어’와 ‘활자’가 사라진 세상입니다. 사람들이 ‘밈’이라는 차세대 초소형 스마트기기에 빠져 대다수의 시간을 보내고, 그 ‘밈’ 안의 언어들이 언젠가부터 아주 교묘하게 뒤틀려져 결국은 파국을 불러오는 세상입니다. 밈은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돕고, 신경 정보와 생체 정보를 이용해서 쇼핑에서부터 교통, 음식 주문과 배달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생활의 전 분야를 돕는 필수품입니다 “자동완성기능” 등으로 우리의 언어 사용의 에너지를 줄여주려 애쓰고, 개인정보를 활용한 “알고리즘”으로 “자동화 된 추천”을 쉼 않고 보내는 지금 이 “스마트한 디지털 세상”의 최종 목적지랄까요?


서른아홉의 나이로 ‘오른쪽 발목에 정맥류성 궤양을 앓고 있는 남성 지식인’인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와 다르게, 『밈: 언어가 사라진 세상』의 주인공 애너 존슨은 아직 세상을 다 알지 못하고, 완전히 독립하지도 못했으며, 갈팡질팡 방황하면서 실수를 저지르는 젊은 여성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약점이 있는 만큼, 반대로 그녀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가족과 연인이 줄 수 있는 사랑과 헌신의 힘을 믿는 존재이죠. 


애너 존슨은 윈스턴처럼 가까운 관계들로부터 완전히 절연된 채 절망적인 싸움을 진행하는 고독한 인물이 아닙니다. 이 소설의 “언어가 사라진 세상”은 타인에 대한 진정한 공감과 이해, 사랑이 결여된 세상이기도 합니다. 그런 세상과 싸워나가는 주인공은 『1984』나 『멋진 신세계』의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도 자신 안에서 먼저 타인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발견해 나가는 ‘성장하는 인물’이어야 할 테니까요.


『밈: 언어가 사라진 세상』은 차근차근 플롯을 따라가다 보면 눈 깜짝할 새 마지막 장에 도달하는 스릴러 소설입니다. 그러면서도 언어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교양 소설의 성격도 갖고 있습니다. 『헝거게임』과 영화 <블레이드 러너>, <메멘토>, <인셉션> 등을 계승할 지적인 스릴러소설이자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일 거예요. 올 겨울, 스마트폰을 잠시 놓아두고 읽기 시작한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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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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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가 『인간실격』을 읽는 9가지 이유

외롭고 절망적이어서 감동적인 소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가장 널리 읽히는 일본 소설로 손꼽힙니다. 1948년 출간된 이 소설에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때로는 혼자, 때로는 함께 모여서 읽으며, 그 독서의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한국에서 사랑 받는 일본 작가를 묻는 순위에서 자주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를 다투는데, 그의 대표작인 『인간실격』이 없었다면 이런 인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그만큼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 부쳐진 찬사는 화려하고도 우뚝한데, 예컨대 전후 일본 문학사에서 1,000만부 판매된 기록, 20세기 일본을 강타한 데카당스 문학의 정수, 일본 문학의 신(神)이 낳은 위대한 자전소설…. 등등이 있습니다. 후대의 문학,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서도 『인간실격』의 모티브는 끝없이 반복 재생산되는 중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다자이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 작가라는 식의 이야기도 많이 언급됩니다. 아무튼 굉장한 작가요,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거창한 헌사들과 다자이의 『인간실격』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인간실격』은 이런 문학적 열광과 다소 거리가 있는 '외로운' 작품입니다. 『인간실격』은 열광이 아니라 회의의 결실이고, 연대가 아니라 고립의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탈고한 후 결국 자살해 버린 다자이가 이런 후세의 열광을 어떻게 생각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어쨌든 1인칭 시점의 수기 세 편과, 이 수기를 보충하는 짤막한 머리말과 후기로 구성된 이 길지 않은 소설은, 작가의 기구하고도 극적인 삶과 맞물려 거의 '신화'와 같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수천 만 명이 읽은 '위대한 문학 작품'이라는 사실 이전에, 우리들은 왜 여전히 『인간실격』을 읽고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렬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걸까요? 그 이유를 9가지로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인간 실격 ㅣ 다자이 오사무 지음 ㅣ 양윤옥 옮김




1. 솔직하다, 경이로울 만큼


문학은 모든 작가의 자전적인 기록이며, 내밀한 자기 고백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소설은 그야말로 '솔직함의 끝'을 보여 줍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앞에서는, 세계문학사의 위대한 성취로 회자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나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도 (어느 정도는) 작가 자신의 허영과 자의식으로 장식된 느낌을 줍니다. 『인간실격』은 다릅니다. 자신의 영혼을 내던지면서 썼다는 게 분명해서, 오히려 작가에게 연민까지 느끼게 하는 소설입니다.



2. 인간이라는 보편성


그러나 단지 솔직하기만 해선 위대한 문학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패배를 직감하면서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키워드를 끝까지 붙들고 매달립니다. 다자이 평생의 인간론이 이 작품 안에 촘촘하게 형상화 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인간을 바라보고 묘파하는 독자적인 관점과 문체가 인간의 보편성과 맞물려 소설을 수놓고 있는데, 『인간실격』 첫 번째 수기의 그 유명한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실격』 13페이지)



3. 전복의 미학


일본은 국가적으로 '올인'했던 세계 2차대전에 장렬히 패배했습니다.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고,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던가? 이 질문에 아무도 답할 수 없던 전후의 일본이었고,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 윤리적 기초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다자이는 전후 무뢰파(無賴派) 문인을 대표하면서 기성 사회를 믿지 말라, 아무것도 믿지 말라고 다그쳤고, 당시의 청년들은 그에게 열광했습니다. 『인간실격』에도 바로 그러한 불신의 흔적들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신은 어느 특정 시대와 국가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4. 나르시시즘을 밀고 가려면 이 정도로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무라카미 하루키를 싸잡아 '일본 문학의 3대 나르시스트'라고 비판해서 화제가 되었죠. 그런데, 나르시스트면 어떻습니까? 다자이 오사무 자신도 분명 스스로에게 매혹되어 있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상처까지 너무나 사랑해버린 불행한 예술가였습니다.


“그 상처는 점점 내 피와 살보다 더 친해져서, 상처가 주는 고통이 아예 상처의 살아 있는 감정, 또는 애정의 속삭임으로까지 느껴졌습니다.” 

(『인간실격』 51페이지)



5. '개인'의 잠재력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다


"하지만 그때 이래로 나는 이른바 '세상이라는 건 어느 한 개인이다'라는 철학 같은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실격』 94페이지)


『인간실격』의 오바 요조는 사회나 공동체, 협력, 연대, 우정, 인간성 따위의 말들을 믿지 않는 인간입니다. 그에게 모든 세상사는 오직 개인들의 영혼이 맞부딪치는 치열한 현장입니다. 물론, 요조는 좌절합니다. 그러나 결국 개인으로서 이 험한 세계를 살아가야 할 우리는 다시금 자세를 고쳐 앉게 됩니다. 다자이는 『인간실격』을 통해 독자에게 기묘한 방식으로 '너 한 사람부터 더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채찍질을 하는 것이죠.



6. 인간의 순선함에 대한 애정이 배어 있다


요조와 다자이는 인간에게 철저하게 절망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순결한 영혼에 대한 믿음의 다른 표현입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을 믿습니다. 그는 인간을 미워하는 그 순간에도 인간성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순선한 인간성이 짓밟힌 비겁하고 인색하고 거짓된 세상을 묘사하는 『인간실격』이 그만큼 애처롭고 정다운 건 이 때문입니다.



7. 동시에, '절망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인간실격』 속의 인간 군상들과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사회는 얼마나 다를까요? 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는 찾기 힘들고, 모든 인간이 자신의 음침한 욕망을 시시각각 내보이며, 넙치처럼 적당히 예의를 차리며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소시민이 주위에 가득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인간실격』을 읽는 건 역시 어떤 절망적인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인간이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어디나 다 그렇고 그런 존재라는 걸 깨닫고, 다시금 이 험한 삶을 살아갈 위안을 얻게 됩니다.



8. 세련되고 담백한 문체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들은 낡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고전 근대문학에 배어 있는 다소 점잖고 교훈적인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와의 차이점일 것 같습니다.) 『인간실격』 속에서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듯 느껴지는 친근한 경어체의 문장은, 언제든 우리를 요조의 가장 가까운 벗이 되게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일본문학 번역가인 양윤옥 선생님의 번역도 큰 몫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9. 삶과 문학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작가의 삶과 문학은 100퍼센트 일치하진 않습니다. 예술 작품은 작가 개인의 체험이나 발자취 등과는 별도로 그 자체만으로 평가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작가의 전인격적인 삶이 ‘저절로’ 그 자신의 작품 속에 걸어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투명하고도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그런 작품을 읽을 때…, 우린 문학과 그 문학을 창조한 ‘작가의 영혼’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실격』이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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