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일이 있기 전이나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도망가고 싶어지는 거 정말 어떡하면 고쳐지나. 아니 그냥 다 그런거라서 적응해야 하는 걸까. 누가 기대를 해도 부담이 되고 기대를 아예 안 해도 서럽고 정말 어쩌란 말이냐 나야..... 덜덜 떨면서도 정작 아예 뭘 펑크내거나 망쳐 버린 적은 아직까지는 없는데 이 긴장되는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이러다가 덥석 잠수를 타거나 큰 사고를 낼 것 같은 기분이다. 그도 그럴 게 아무래도 점점 더 큰 곳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 대상으로 뭘 하게 되니까...

프로포절 때 오는 선생님들 리스트 받아들고 떨고 있는 거 맞다. 왜 날 아시는 매번 뵙는 선생님들 외에 플러스 알파가 있는거냐...... 그리고 그 플러스 알파가..... 어휴 떨리니 쓰지도 말자.

일단 넘기면 돼 넘기기만 하면... 넘기고 나서,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도망가고 싶다. 어쨌든 한 학기에 한 번 이상씩은 큰 뭔가가 있는 상황이 되니 이러다가는 이 공간에 트라우마가 생길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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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단단하게 결부되어 있는 기억은 시간을 늘리기도 줄이기도 한다.

얼마 후의 프로포절을 두려워하며 곧 예답변이 있는 일년 선배와 잠시 이야기하다가

만약 내가 저 선배처럼 4년 안에 졸업한다면 학위를 받기까지 겨우 1년 반 가량이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년 반이 얼마나 되나 생각해 봤는데 역시 지난 여름 당신의 모진 표정이 생각났고

그래 그 얼굴을 작게 떨며 받아냈던 일이 벌써 일년 반이나 되었구나 잠깐 소스라치다가,

아니 일년 반은 생각보다 긴 시간인데, 당신을 못 본지도 꽤 된 건가

가끔씩 그 일이 어제같이 다가올 때가 문득문득 있는데,

아니 앞으로 볼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왜 그런 생각을 하지 하는 생각을 또 하다가.

아마 시간축에 깊게 꽂아둔 책갈피 같은 기억이라서

그러니까

아니

하지만 일단 눈 앞의 프로포절을 잘 끝내고

일년 반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야겠다

이번의 일년 반은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오년 반이 될 수도 있으니까,

라고 생각하고는 괜히 허리를 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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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처음 한 이후로 내 mbti는 항상 고정되어 있었다. 친한 언니에게 내 유형을 말해주자 언니는 검색해보더니 이거 그냥 너네! 하고 웃었다. 항상 그거 짜장면이 좋다 선택하면 짜장면을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나오는 테스트 아니냐고 하고 다녔지만 사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라 가끔 찾아볼 일이 있으면 XXXX 성격, XXXX 직업 이런 거 검색하고 다녔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내 유형과 다른 유형들의 궁합표를 봤고, 내 유형은 전체 유형 중 절반 유형과 안 맞는 유형이었다. 그걸 보고 조금은 속이 편해졌다. mbti간의 우열은 존재하지 않아서 네 이 부분이 나쁘니까 고쳐, 라는 말은 말 자체가 되지 않고, 따라서 내가 모 유형인 것에 대해 내가 잘못한 것은 없게 된다. 그냥 이 세상 사람들 중 반 정도는 애초에 성격적으로 서로 맞지 않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거다. 아마 선택을 할 때 기준으로 삼는 가치관이 많이 다르겠지.

반대로 잘 맞는 유형도 나왔는데, 대강 보면 많이 달라 보이는 성격이라 조금 의아했다. 그리고 주변에 그 유형일 것 같은 사람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활발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잘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그냥 갑자기 벼락처럼 누군가가 떠올랐다.

서로 참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참 잘 맞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을 서로에게는 공유할 수 있었다. 가끔씩 장난으로 다른 사람들에 섞여서 서로를 놀릴 때면 으레 너만은 날 이해해줘야지,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는 말을 거침없이 뱉을 수 있던 사이. 부모님에게도 못 하는 말들을 토로할 수 있었고 서로 이해해주던 힘든 시기 내 유일했던 지지자. 나는 상대방이 유난히 이해심이 깊었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빠는 나랑 유독 잘 맞는다는 그 유형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서로의 유형에 잘 맞는 그 특별한 유형을 가진 평범한 지인이었던 걸까. 이미 10년도 지난 이야기이고, 오빠는 내 마지막 질문에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겨울, 포항의 거리에서 발라드를 들으며 걷고 걷고 또 걸어서 바다까지 갔다.

 

잘 맞는다는 건 서로를 착각하기 쉽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와 잘 맞는다는 그 유형임을 아는 건, 상대방을 상황에 따라 아주 특별하게도 아주 평범하게도 한다. 물론 그 특별함과 평범함은 보통 희극과 비극으로 각각 연결된다. 아니 인생은 기니까, 상황과 마음이 변해가면서 특별함이 평범함이 되고, 어떨 땐 평범함이 특별함이 되면서, 처음에는 희극이다가 나중엔 비극으로 끝날 수도,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아, 나는 항상 INFJ가 나오고, 오빠는 매우 전형적인 ENTP였다.

이 글을 쓰면서 역시 누군가와 성격이 천성적으로 잘 맞는다는 건 행운이지만 역시 그게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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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으로 순식간에 돌아가게 하는 노래들이 있다. 그 무렵 처음으로+지겹게 들었고 나중엔 무려 실험실 브금이었던 각종 ccm과 찬송가들[학부시절엔 공부밖에 한 게 없고 그래서 들으면 뭔가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찬송가 의문의 노동요행..]. 성시경의 노래 몇 개. 스피츠와 스가시카오. 그리고...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 모르겠는데 20대 초반에, 정확히 말하면 딱 스무 살 때 엄청나게 듣던 클래지콰이 노래들. Instant Pig 음반 하나를 닳도록 듣고 들어서 아무 노래의 전주만 나와도 그 때로 돌아가게 된다. 그때는 어색했고 외로웠고 공부 말고 딴짓을 하고 싶었지만 뭘 해야 할지도 몰랐지...

 

어느날 문득 우연한 날에
눈을 떠 보면 낯설어진 얼굴들
흔한 얘기들 흔한 오해들
그렇게 흘러 가버린 내 기억들


무슨 말이든 찾고 싶어도 유치한 몇 마디밖에는 없어서
오랫동안 난 얼마나 너를 잊으려 애를 썼는지
넌 내 목소리마저 잊어 가겠지

 

오늘도 제 때 자기는 글렀으니 저 음반 랜덤으로 돌려 놓고 제일 좋아하는 노래 세 번 나올 때까지 안자고 노닥거리기 놀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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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은 골목길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것이다. 걷는 걸 좋아하다 보니 폰이랑 지갑만 달랑달랑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는데, 당연하지만 모든 도시가 주는 느낌이 다 달라서 그걸 하나하나 짚어보다 보면 새삼 재미있다.

이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제일 먼저는 인도네시아에 있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 때 해야 할 일[=초중고 특별활동 수업]은 항상 정오경이면 끝났기 때문에 우리는 긴긴 적도 부근의 오후-저녁을 보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보통 점심을 학교 근처에서 사먹고 오후는 아무 버스나 타서 아무데서나 내려서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 여섯시쯤 되면 저녁을 또 먹고 집에 돌아가서 각자의 저녁시간을 보내곤 했다. 6개월을 매일같이 돌아다니다 보니 정말 그 도시에서 안 가본 골목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녔고 구글맵에 틀린 부분이 꽤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구글맵이 아무래도 진짜 다 가볼 수는 없으니까 위성사진을 찍어서 대충 길처럼 생긴 곳은 다 길로 표시하는 것 같은데, 연결되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끊겨 있던 길을 두어 곳 발견하고 주변 주민들에게 원래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고 나니 정말 그런 시스템같다...

내가 있던 도시에서 제일 좋아하던 곳은 빠당불란이었다. 인니어로 달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먼저 우리가 살던 집에서 멀지 않았고, 대학가라서 자취하는 대학생들이 많았고, 그리고 대학가라서 먹을 게 많았다[...그래 결국 이거지] 우리는 여자 넷이 살았는데 내 산책을 빙자한 탐험의 파트너로 잡힌 건 주로 한 살 위의 M언니였고 우리는 팔짱을 꼭 끼고 물통이 든 가방을 든 채 온 빠당불란을 쏘다녔다.

빠당불란에 있는 대학은 수마트라에서 제일 좋다는 USU였는데 [하지만 중문과 커리큘럼은 나를 매우 실망시켰다] 후문으로 가면 과일을 깎아 파는 리어카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골목을 돌아가면 두리안과 팥과 코코넛을 넣은 기묘한 빙수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바나나 튀김이나 두부 튀김, 만두 튀김 등등 여러가지를 튀기는 냄새, 빨대를 그대로 꽂아 먹는 코코넛 열매 냄새, 각종 과일들을 즉석에서 갈아 주는 생과일주스 냄새들이 온 빠당불란의 골목마다 묘하게 달착지근하게 배어 있었다. 물론 두리안 파는 가게 근처에 가면 두리안 냄새가 나머지 모든 냄새를 잡아먹는다. 적도 근처의 햇살은 거의 수직으로 내리쬐었고, 그런 가게들 앞에는 으레 큰 파라솔이 있었다. 그리고 파라솔 그림자의 경계쯤엔 고양이들이 드러누워 학생들이 던져 주는 생선토막들을 받아먹으며 배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즐기곤 했다.

 

산책을 한다는 느낌이 없어서 그렇지 곳곳을 돌아다닌 경험으로 계산하면 포항을 쏘다닌 경험도 만만찮다. 창포동의 사회복지관에서 꽤 오래 이것저것 도왔고 그런 데가 항상 그렇듯 여기저기 일손이 부족해서, 처음에 이야기했던 가벼운 사무업무 외에 몸을 쓰는 일도 많이 해야 했다.

그 중 제일 맡기를 두려워하면서도 제일 좋아했던 일이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대상으로 점심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왜 두려웠냐면 당연히 국통이... 무거우니까요....... 보통 남자 봉사자가 당일펑크를 낼 때 어쩔 수 없이 내가 떠맡았는데 배달용 구루마[...] 같은 게 있어서 엄청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 복지관을 출발할 때는 혼자 밀기엔 꽤 무거웠다.. 그리고 왜 좋아했냐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내가 가면 엄청 반가워하시고 이것저것 말 거시고 가끔씩 삶은 계란이나 호박이나 고구마 같은 걸 막 내 주머니에 넣어주시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또 먹는 이야기지 나 배고픈가봐 계란삶아야지... 아무튼 그 때 어르신들의 주소가 적힌 에이포용지 한 장 들고 끙끙거리며 밥을 배달하곤 했는데 그 때 다니던 구루마 끌기 힘들게 약간 굽고 경사진 그 골목길들, 창포주공이니 창포아이파크니 하던 아파트들의 주소들이 기억난다. 밥보다 날 더 반가워해 주시던 따뜻한 어르신들 다 건강히 잘 계셨으면 좋겠다. 포항 지진 소식을 들었을 때 ㄹ선생님께 안부메일을 드리면서 그 어르신들도 같이 생각났는데, 그 분들의 함자도 얼굴도 흐릿한데 어찌 지내실지 알 길은 더더욱 없다.

아 복지관 가는 길도 참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마 변했겠지만, 11년에서 14년 전만 해도[...] 그 길 주변엔 해바라기들이 피어 있었고 아마 동네 주민이 키우던 닭이 병아리들을 데리고 발톱으로 흙을 헤집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나갈 때마다 해바라기가 얼마나 컸는지, 병아리는 얼마나 자랐는지 보는 게 소소한 재미였다. 가는 길에 창포하와이라고 큰 목욕탕이 있었는데, 1층은 통유리로 되어 있었고 내가 지나가는 시간에 항상 밸리댄스니 에어로빅이니 요가같은 수업을 했다. 그래선지 밸리댄스 하는 장면을 보면 그 속에서 목욕탕 증기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어느날 일을 마치고 돌아가다가, 유독 파란 하늘에 해바라기가 높게 피어 있었고 닭들 몇 마리가 그 근처에서 어정거리고 있었고 고개를 돌리면 흥겨운 음악과 함께 아주머니들이 에어로빅을 하고 있었다. 문득 뿌듯하면서도 허기져서 어떤 할머니가 또 주머니에 넣어주신 삶은 호박 반 쪽을 먹었다. 길은 골목길치고는 조금 넓었지만, 해는 쨍쨍했고 지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가끔씩 바다 냄새가 나는 바람만 불었다. 세상도 마음도 모두 평화로웠다.

 

요즘은 북경의 길들을 계속 걷고 있다. 처음 여기 왔을 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까마득했는데, 이것저것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덧 6년이 넘게 지나버렸고, 여유 있게 이곳을 둘러볼 날들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전을 생각하면서, 이곳저곳, 역사적 가치도 유명한 건물도 없는 그냥 평범한 사람 사는 골목들을, 마냥 걷는다. 

지내온 도시들이 대부분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는 곳이었다는 건, 계속 가족을 떠나 혼자 살아온 사람에게는 크나큰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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