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추파춥스 키드
최옥정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의 제목이 『안녕, 추파춥스 키드』라고 되어 있기에 안녕을 빼고 나면 「추파춥스 키드」에 대한 이야기로 인식되어 그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추파춥스 키드」와 관련된 내용이 주된 내용이라 생각되었는데 소설을 읽다 보니 그와의 사랑얘기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의 생각과 삶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니 안녕에 대한 의미가 새롭게 와 닿는다. 책 속에서도 ‘안녕’이라는 말이 ‘안녕하니?’라는 안부와 ‘안녕해야 돼!’라는 기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해설을 보면서 소설의 제목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 본다. 흔히들 “안녕”하면 안녕 다음에 “?”와 “!”에 따라 처음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사용하고 의미하듯이 「추파춥스 키드」와 연관 된 사랑과 헤어짐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과정의 얘기를 하면서 성장소설이라는 느낌이 든다.


     26세의 젊은 여성이 추파춥스라는 사탕에 연상되는 또래의 젊은 청년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겪는 연애소설의 내용인데 그 과정에서 가족사에 대한 얘기, 직업여성으로서의 사회상, 남녀의 사랑에 대한 얘기를 재미있게 엮어 내고 있다. 또한 소설에는 많은 노래와 영화,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여 얘기하고 있다. 이런 소재는 소설 속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주인공 이희수와 추파춥스와 연관이 된 애인 성대희의 사랑얘기를 꾸며주고 있다. 대표적인 내용으로 U2의 「조수아 트리」에 대한 노래, 영화 「화양연화」, 그리고 「자작나무」가 암시하는 많은 내용이 소설의 느낌을 돋보이게 한다. 이런 노래와 영화는 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내용인데 이 소설을 보면서 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다.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얘기하기는 어려운데 이들에서 느껴져 오는 감성이 소설 속의 희수가 느끼는 감성을 어렴풋하게 느끼게 한다.


     「추파춥스 키드」는 여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애인 성대희의 애칭인데 추파춥스라는 사탕이 의미하는 느낌이 대희를 잘 표현한다는 느낌이 든다. 초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가고, 이어지는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엄마를 홀로 기다리는 유년기와 동양인으로 백인사회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이민1.5세대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추파춥스는 이런 대희의 성장 과정에서 백인사회에 섞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얻어진 하나의 습관으로 대희를 대변하고 있다. 한국사회에도 미국사회에도 섞일 수 없는 대희의 모습과 이를 애인으로 지켜보는 희수의 사랑얘기는 너무도 애달픈 느낌을 준다. 결국은 돌연하면서도 무책임한 대희의 행동에 마음 아파하지만 그에 굴하여 지저분하지 않고 나름 쿨하게 사랑의 아픔을 극복해 가는 희수의 사랑얘기는 한편으로 산뜻한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조금은 소원했던 가족과의 관계가 더운 곤고해지는 느낌을 후반부에서 느끼게 한다. 가족이라고 해봐야 할머니, 엄마, 딸인 희수 이렇게 단촐한 3식구에서 소설의 끝에는 할머니의 죽음이 그려지면서 희수의 마음의 성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사랑하는 애인과의 실연과 할머니의 죽음이 맞물리면서 더욱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성장소설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해준다고 생각된다.


     20대의 젊은 여성의 생각과 삶의 모습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내용을 간접적으로나마 조금 느껴 보게 해준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의 삶의 배경과 과정은 나와는 전혀 다르고 생각의 방법 또한 다른 상황인데 여느 TV드라마에서 봐 왔던 내용과는 사뭇 다르게 사랑의 아픔을 해쳐가는 주인공 희수의 사랑 얘기는 신선하게 와 닿는다. 사랑의 아픔—대희와의 헤어짐이나, 할머니와의 사별—이 더욱 어른으로 성장하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대희를 찾아가는 일본여행에 대한 과정과 내용은 여행을 하게하는 이유를 너무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 아픈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하는 듯 하다. 통속적인 사랑 얘기가 아닌 젊은 여성의 건강한 삶의 모습을 봤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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