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이다. 항상 새해를 맞을 때마다 느끼지만 이 숫자도 아직은 많이 낯설다. 2003년도 아직 낯선데...2004년이라니.. 과연 몇년쯤은 되어야 2000이란 숫자가 익숙해질까?

사실은 세월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같아 당황스럽다. 그래서 이렇게 2000이란 숫자가 부담스러운 것같다. 

어느새 날들이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요 몇해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긴 시간들에 비해 그렇게 내세울 기억들이 없다. 기억을 하고 싶지 않은 것같기도 하고... 휴학을 하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2년을 더 공부하고... 이제보니 ^^ 별로 성공한 것이 별로 없는 때라서 그런가보다. 실패의 느낌만이 전해져온다. 그게 마음 아파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저 흘러버린 듯한 요몇년이 지금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그렇게 순탄하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었고,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있고,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함을 느끼고, 남들과 휩쓸려 넘어갈 수 없게 되면서 나 혼자 서게 되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누군가에 대한 깊은 믿음이 깨어지고 그와 함께 나 자신도 가벼워져 이제는 그리 남에게, 나 자신에게 조차 믿음을 주지 못하고... 

물론 이런 기억들이 결국은 나를 크게 하고 많은 것을 배우게도 했다는 것에서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분명 작고 행복한 일들도 많았는데 왜 이렇게 우울했던 것만 기억하는지 새해부터... 내일은 행복했던 일들을 떠올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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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학예제... 정말 화장실 한번 가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점심시간에 바자회를 했었는데 우리반은 아이들이 물건을 많이 가져왔다.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한 몫을 챙기려하는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얼마나 열성적으로 파는지... 특히 유미가 모든 일에 적극적인 것은 알았지만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데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의 양식을 쌓을 수 있다는 둥 마음이 착해지고 넓어진다는 둥^^

  마칠 때 보니 또 복도에 여러 아이들이 꿇어앉아 있다.  몰랐는데 오전에 콜라텍에서 아이들이 서로 밀가루를 뿌리고 욕을 하면서 싸웠단다. 말로만 듣던 삼학년의 '씹년파'들이었다. (열명인데 본인들이 '십년'도 아니고 '씹년'이라고 부르고 쓴단다) 그 유명한 애들이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다가도 그 애들이랑 눈마주치기도 내심 겁이났다^^  그래서 윤아샘이 점심때 여교사 휴게실에 들어누워있었구나...

윤아샘은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정말 우리 아이들이 TV에서나 보던 그 불량소녀들 같았다고... 세상을 얼마나 겪고 얼마나 상처를 받았다고 악에 받쳐 그렇게 미워하고 모질게 욕을 퍼붇는지

하지만 어쩌면 아이들이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그런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어려서 , 힘 센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라기 보다는 우리 사회 자체가 힘의 논리를 아이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런거라는 생각도 든다. 가깝게는 학교에서 왕왕 쓰이는, 문제아들에 대한 선생님들의 폭력에 가까운 체벌(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렇지 않지만 몇몇 선생님들은 그걸 선도의 방법이라고 확고히 믿고 있다. ) 조금 더 넓게는 사회나 정치 등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식이나 힘으로 밀어부치기 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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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3-12-25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잘 했어요~! 따뜻한 예수님의 마음이 선생님께도 전해져서 힘이 들때 위로가 되기를... 학교가 힘의 논리를 가르치기 때문이라...음미해 볼 지적이군요. 즐거운 성탄입니다.
 

내일이 학예제, 모레는 크리스마스 이브로 영화관람... 이벤트가 있는 특별한 날들이다.

반마다 학예제를 위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도록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까만 전지 바탕은 깊은 밤이 되고 밑에 나즈막힌 오려붙인 흰 전지는 눈덮힌 언덕이 되었다. 한쪽은 종이로 접혀진 집과 사람들, 한쪽에선 산타가 루돌프 썰매를 타고 마을로 내려 오고 있다.  밤하늘 위로 신문지 넣은 부직포별이 총총히 박혀 있다. 아래엔 흰 휴지가 말린 빨간 부직포양말들이 걸려있다. 

아이들의 솜씨가 이렇게 좋았구나... 사실 감탄스럽다.  무엇보다 시간 안에 계획을 짜서 각자 역할을  맡아 하나씩 완성해내는 것이 놀라웠다. 학기초 4월 교실게시판을 꾸밀 때 아이들이 얼마나 어설펐었는지... 마감날까지도 완성이 안되어 거의 나 혼자 동동거리며 아홉시까지 교실에 남아 했었는데... 그 사이 아이들이 컸나보다... 대견하기도 하고 조금 뿌듯도 하고, 하지만 한켠엔 아쉬움과 서운함이... 마치 좋은 영화가 끝나갈 때 즐거움과 동시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처럼...

요즘 우리반 칭찬을 많이 듣는다. 아이들이 참 좋다고... 괜히 내가 으쓱한다. 자식농사를 잘 지은 부모님 마음의 만분의 일이 이렇지 않을까한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아이들을 만나서 내가 너무나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고.. 정식으로 교단에 발을 들어 놓은 첫해 ,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리고 선생님인 나보다도 더 넓은 마음으로 사랑을 해준 아이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어느새 아이들과 내가 서로에게 길들여졌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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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수가 내일은 학교를 나올 수 있을까? 일주일 째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문병을 갔을 때는 약 부작용인지 얼굴이며 손이며 퉁퉁 부어있고 빨간 점들이 올라 있었다. 그 나이때는 얼굴 상하는 데 제일 민감한 때인데 혜수도 몸 안좋은 것보다 얼굴 부은 게 더 속상한 듯했다.

내가 버스타고 지나다니는 길에  커다란 백병원 표지판이 보이는 데 나는 그곳에 백병원이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버스 내려서 금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버스 내려서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다. 백병원 순환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마을 버스를 타거나 해야하는 건데...   아이들이랑 걸어서 올라가는데 바람이 불고 꽤 추웠다. 또 내려올 때도 순환버스가 끊겨서 버스타는 곳까지 한참을 걸어내려 갔다. 다 내려오고 나서 아이들에게 쫌 미안했다. 괜히 고생시킨 듯해서. . 하지만 아이들은 '내일 우리가 병나겠어요~'하면서도 재미있어하고 씩씩하게 군다. 

꼭 나랑이 아니어도 아이들이 두세번 문병을 자기들이 알아서 다녀온다. 병원까지 가는 길이 꽤 멀고 고생스러운데도 , 학원도 가야하고 바쁘면서도 자발적으로 즐거워하면서 다녀오는 아이들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혜수는 볼이 통통하고 입을 오물거리며 말한다. 눈은 옆으로 가늘게 작다. 언젠가 혜수에게 나는 혜수가 나를 보고 웃어주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그후로부터 나를 보며 이야기할 때 항상 씩 웃어준다. 그리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혜수야 얼른 나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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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눈을 떴을 때가 일곱시 사십분이었다. 그것도 카풀을 하는 부장님께서 전화를 해주셔서 일어난 것이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아마 세상 모르고 계속 잤을지도 모른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 갔더니 평소 잘 올라 오시지도 않던 교장선생님이 내 자리 주변에 서 계셨다. 다행히 뒤로 돌아 계셔서 조용히 가방을 자리에 두고 살짝 교무실을 빠져 나왔다. 우리반에는 3교시나 되어서야 처음으로 시험 감독하러 들어 갔다.  아이들이 '선생님 아침에 왜 안 들어오셨어요? 에~ 지각하셨지요?^^"한다. 나는 들킨 것같아 부끄러워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자못 정색을 하고 "너희는 내가 꼭 있어야 하나?" 애매하게 답한다.그러고는 시험지를 바로 나누어 주었다. 꼭 무슨  일이 있는 사람처럼^^ 하지만 아이들도 알았을 것이다. 어설픈 내 속마음을.... ^^ 

어쩌다 지각할 수도 있는 거지 하다가도 이때까지 지각했다고 나에게 야단맞았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습관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마음에 또는 지각은 절대 해선 안된다는 것을 반전체 아이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매번 따로 불러서 지각한 이유를 다그쳐 묻고 다시는 지각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곤 했다. 나는 되고 아이들은 절대 안 된다....  정말 아이들말대로 '에이, 그런 게 어디있어요~'다. ^^  그 아이들도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 물론 습관성인 아이가 몇몇 있지만. 아무튼 너무 당연하게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어제 감기약을 먹고 자서 그랬을까? 사실 요즘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척 힘이 든다. 좀 무기력하기도 하고. 그리 즐거운 일이 없어서일까?

오늘로서 기말고사가 끝이 났다. 아이들이 무척 홀가분해한다. 이제 선생님들이 처리할 일만 남았다. 수행평가 점수 내고 성적 확인하고 ..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다. 겨울방학 준비도 조금씩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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