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
  이날은 정말 일찍 일어나서 호텔을 나서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일어난 것은 6시 8분. 30분에 밥 먹기로 했는데... 단장하다보니 급하게 서두르고 싶지 않아서 천천히 준비하고 밥 먹으러 갔다. 그때가 7시. 일어나서 408호에는 모닝콜을 했는데 414호는 잘 일어났을 것 같아 모닝콜을 안 했었는데 414호 황정란샘은 7시 30분에 식사인 줄 알고 늦게 준비해서 내려왔다. 어제와 비슷한 메뉴들이었지만 우리는 맛있게 최대한 든든히 먹어 두었다. 밥은 물론, 과일, 토스트, 우유, 오렌지주스, 커피까지. 아무튼 오늘도 호텔 출발은 8시였다.
  오늘 일정은 교토에 킨카꾸지, 니죠죠, 키요미츠테라이다. 긴카꾸지도 처음엔 가려 했으나 너무 빡빡한 일정이 될 것 같아 빼버렸다. 오늘 안내자는 김경미선생님. 교토에서의 이동은 버스로 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린 버스를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었던 터라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래도 5명이라 든든했다. 역시 ‘다수’라는 것은 사람을 안정적으로 만든다.
  오늘도 반가운 ‘미나미가따’역에서 출발한다. 이 역에 들어서서 패스권을 끊을 때 오늘 여행이 시작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어제 아침처럼 출근 풍경이 펼쳐져 있다. 바쁘게 혹은 무덤덤하게 출근하는 사람들. 역시 여러 전철이 만나는 ‘우메다’역으로 가서 ‘한큐전철’로 갈아타서 ‘카와라마치’역에 내렸다. 오늘은 전철 안에서 챙겨왔던 책을 꺼내 읽었다. 물론 피곤해서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읽다보니 알장이 쉽게 쉽게 넘어가서 계속 읽혔다. 한참 앉아 있는데 승무원이 우리에게 오더니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무어라고 한다. 내리라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자꾸 옆 칸을 가르킨다. 순간 설마 이 칸까지는 다른 곳으로 가고 그래서 저 칸으로 이동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가다가 중간에서 전철 중간을 떼서 분리하는 것은 아니겠지? 싶었다. 그래서 우린 일단 내렸는데... 혹시나 해서 보니 칸 칸 중간을 어떻게 하고 있었다. 떼내고 있는 것이 맞았다. 그래 우린 옆 칸에 다시 올라 탔고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에 모두 놀라워했다. 노선이 가다 갈라지는데 각 노선을 따로 가는 전철을 따로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갈라지는 부분에서 전철을 분리시켜 각 노선을 가도록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 승무원의 말을 잘 알아들어서 다행이다.
 ‘카와라마치’역에 내려 먼저 킨카꾸지로 가야 한다. 전철에 안내원, 물론 또 나이 지긋하신 노인분이다. 하지만 볼품 없으신 분이 아니다. 단정히 제복을 입으신 깔끔해 보이신다. 우리가 ‘킨카꾸지?’하고 물으니까 ‘앞’이라는 한국어를 쓰시면서 길을 가르쳐주셨다. 감사드리고 5번 출구로 나가니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우린 12번 버스를 탔다. 일본 버스는 우리 버스보다 외형이 특색있고 다양하다. 고풍스럽고 예쁜 것들도 있고. 버스 안도 버스마다 조금 다르지만 이때 탄 버스는 붉은 벨벳이 의자에 씌어져 있고 버스 오른쪽은 우리 버스처럼 앞을 보고 가도록 되어 있고 왼쪽은 지하철좌석처럼 옆으로 앉도록 되어 있으며 뒤쪽은 두 명씩 앉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부저는 버스 벽에 붙은 것이 아니라 의자 손잡이 부분에 달려 있다. 버스 운전사 아저씨도 일본의 전철 승무원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방송을 하고 철저하게 인사한다. 그리고 버스 앞에는 전철 안에 있던 미니 전광판이 달려 있어 다음 정차하는 곳이 어디인지 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새 버스처럼 깔끔하다. 사실 놀랍도록 깨끗하다. 유리창문 사이에 먼지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일본 사람들은 집에 들어가거나 일을 마친 후는 주로 청소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럽기도 했다.
  일본이 얼마나 깔끔하게 해 놓는지를 여기에서 잠시 이야기하자. 일본에 있는 것이 모두 최신식은 아니다. 하지만 항상 깨끗하게 닦아 놓은 느낌이다. 그래서 오히려 후졌다기보다는 알뜰하게 느껴질 정도다. 우리 숙소의 욕실을 봐도 수도꼭지는 조금 옛날식으로 찬물과 더운물 꼭지가 따로 달려 있다. 하지만 너무나 깨끗해서 기꺼이 써 줄 수 있는 정도로 해 놓았다. 일본 공중 화장실을 가보면 우리처럼 최근 유행하는 타일들을 붙여 놓고 새단장해 놓은 듯한 화장실은 아니다. 타일을 보면 누런 타일이 지어진 지 오래되어 보이지만 그런 타일 하나하나도 이제 막 청소한 듯이 광이 난다. 물론 물을 뒤집어 씌어 놓은 듯이 질퍽질퍽하지도 않다. 적당한 물기로 정성들여 닦아 놓은 듯한 느낌이다. (우리나라 화장실은 청소를 하고 난 뒤는 바닥에 물이 흥건해서 그것이 더 불쾌할 때가 있다) 그리고 변기나 거울 모두 깨끗하다. 그리고 휴지는 항상 넉넉히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쓰는 데 아무 불편이 없다. 그리고 일본이 ‘자판기천국’이라고 듣던 대로 길거리엔 온갖 신기한 자판기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하지만 이 자판기들을 누가 관리하는지 먼지하나 없이 깨끗하다. 마치 이제 들여온 자판기처럼. 사실 어떻게 이렇게 관리할 수 있는지 너무 신기하다.
  버스를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하얀 것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먼지가 날리는 줄 알았는데 눈이었다. 햇빛마저 비칠 듯한데 눈이 날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킨카꾸지에 도착했을 때는 꽤 굵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우리는 우산을 숙소에 두고 온 것을 후회했다. 할 수 없이 5명 모두 다 옷에 달고 있는 모자를 쓰기로 했다. 하지만 난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다. 곧 그칠 것 같았고 그리고 어쩌면 다른 계절에 비해 빛을 바랜 겨울 풍경에 눈은 아름다움을 더하는 장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눈 내리는 풍경을 보는 것은 운이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킨카꾸지’의 입장권은 부적같이 생겨 특이하다. 기념품으로 책 속에 곱게 끼워 넣어 두었다. ‘킨카꾸지’는 한자로 ‘금각사’이다. 이 절 안에 있는 3층짜리 누각  2,3층에 금칠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자체가 이것을 대단한 눈요깃거리로 여기게 한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 보지 못해서 실제로 봤을 때는 그런지 누각에 금칠을 하나 하나 했다기보다는  금박지를 붙여놓은 것 같았다. 그것을 지나쳐서 뒤로 난 좁은 길을 가니 조그마한 돌부처 몇 개와 돌그릇이 화단에 박혀 있었고 그 주위에 은색, 동색 동전들이 무수히 떨어져 있었다. 동전을 던져 그 돌그릇에 들어가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승주 언니가 두 번인가 던져 보았는데 그 돌그릇에 동전을 넣는 것이 마음 같지 않았다. 우리 동전은 돌그릇 주위의 동전 속에 같이 묻혀 버렸다. 그곳 관광품 파는 곳에 아기자기 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비단으로 싸인 수첩을 두 개 샀다. 친구들 선물로 주면 좋을 것 같아서.
 ‘킨카꾸지’를 나와 다음 코스인 ‘니죠죠’로 향했다. 바로 앞에서 12번 버스를 다시 탔다. 창 밖의 도시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짬짬히 내어 읽는 책맛도 괜찮았다. 20분쯤 달려 니죠죠성앞에 도착했다.니죠죠성도 토꾸가와 이에야스가 1626년에 완공된 것이고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주된 건물은 ‘니노마루고뗀’이다. 이 곳도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신고 들어가도록 했다. 이 곳은 전형적인 일본 쇼군과 무사들의 집으로 6개의 건물이 지그재그 형식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그 곳을 둘러 보니 대략 그 당시 어떻게 생활했을지 그려볼 수 있었다. 쇼군의 침실, 쇼군 아래 무사들이 모여 기거했던 넓은 방, 암살자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발을 디딜 때마다 새 울음소리가 나게 만든 복도(우구이스바리, 휘파람 새 마루) 등. 일생이 부와 권력을 위한 적과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그 건물을 본 후 잘 손질된 니노마루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성을 나왔다. 우리 외에 모델같은 8등신은 족히 넘을 것 같은 금발의 미녀와 그녀의 남친, 다정한 외국인 커플이 있었다. 그리고 외국인 남자 2명도 있었고. 그 들의 눈에 일본의 문화재는 어떤 눈으로 비췰까? 신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사람들은 일본의 무사도에 대해 동경과 신비로움을 갖는다고 하니...
  이제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다. 하지만 니죠죠 성 주위에는 특별하게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린 다음 코스로 이동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버스 타는 곳으로 갔다. 다음 코스는 ‘키요미츠테라’이다. 우린 가는 방법을 몰라 먼저 교또역으로 가기로 했다. 거긴 먹을 곳도 있고 여러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있을 것이 분명하므로. 101번 버스를 탔다. 도쿄역에 내려 우리에게 만만한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거긴 우리가 흡족해할 만큼 선택할 수 있는 식당들이 꽤 있었다. 우린 또 진열대 음식 모형과 가격을 보고 적당한 식당을 골랐다. 메밀과 스시 집.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맛이 있는 집인가? 앉아 기다리는 자리에 우리 뒤에 오신 할머니 두 분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스미마생’이라며 감사해하시고 무어라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어서 ‘칸코쿠’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러냐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신기해하셨다. 잘 차려 입으신 깔끔하신 할머니. 손엔 만화에서나 보던 레이스에 풍성한 양감의 우산을 들고 계셨다. 마치 하울의 할머니를 보는 듯했다. 때론 옆에서 들려오는 말하는 목소리들이 일본 만화에서 들었던 듯이 그대로 들려올 때가 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숨넘어가듯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투로 말하는 것. 일본 만화에서 봤던 것이 그대로 펼쳐지는 것같았다. 드디어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었다. 맛이 있는 것도 있고 먹기 좀 그런 것도 있고, 하지만 이때까지 그랬든 남김없이 깔끔히 다~ 먹었다. 지하도를 나와 버스노선도를 보고 연구한 후 100번 버스를 타고 청수사로 향했다.
 100번 버스는 좁은 골목길에 우리를 내려 놓고 떠났다. 청수사로 올라가는 길도 좁은 골목길이었다. 한참 올라가다 보니 기념품 파는 곳과 떡인지 과자인지 알 수 없는 음식들을 파는 곳들이 즐비하게 절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붉게 단청을 입힌 문과 탑이 우뚝 눈 앞에 서 있었다. 이 절은 연간 참배객이 300만이 넘는 유명한 절이라고 한다. 이 절은 778년에 세워졌다. 청수사라는 말 대로 곳곳에 약수가 흘러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전에 마실 것으로 기대를 잔뜩하고 갔던 ‘오또와토따끼’ (황금수 또는 연명수라고도 한다.)의 물을 먹으려고 일부러 다른 물은 먹지 않았다. 왠지 하나에 올인해야 더 효험이 있을 듯한 근거없는 믿음으로... 15미터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본당 무대, 교토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이는 듯 탁 트여 있어 시원했다. 이어진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 가니 우리가 고대하고 왔던 ‘오또와토따끼’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위에서 떨어지는 세 줄기의 물을 손잡이가 1미터인 바가지로 받아 마셔야 한다. 그런데 이 세 줄기의 물은 각각 불(佛), 법(法), 승(僧)으로 귀의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는 건강, 학업, 연애의 성공을 보장하는 성수로 통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세 물줄기를 욕심내서 모두 마시면 오히려 효험이 사라진다고 한다. 우린 모두 연애을 의미하는 물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물 줄기가 떨어지는 곳 위에 불, 법, 승이라는 글자가 쓰여졌을 법한테 지워졌는지 희미해 보이지 않아 어느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린 당황해하며 쉽게 물을 골라 마시지 못했다. 심사숙고 끝에 나와 경미, 정란은 세 번째 물줄기를 받아 마셨고 승주 언니와 경란은 가운데 물줄기를 받아 마셨다. 각자 자기들이 마신 것이 연애운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근데 그 절을 돌아 나오면서 경란이 아침에는 너무 피곤했는데 갑자기 힘이 느껴진다고 했다. 우린 모두 놀라 경란을 돌아보며 가운데 물이 건강물인가보다며 놀렸다. 그랬더니 승주언니가 그럴 리가 없다며 갑자기 여기저기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는 건강해야 공부도 사랑도 할 수 있는거라나~^^ 아무튼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그 절을 빠져 나오는데 기모노를 입고 마이꼬 분장을 한 여인 2명이 사람들에 붙들려 사진을 함께 찍고 있었다. 우리도 이런 기회가 없을 것같아 간곡히 부탁해서 사진을 찍었다. 근데 아무리 찾아도 정란이 보이지 않아 우리만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 마이꼬들은 다른 관광객들에게도 붙들려 계속 모델이 되어줘야 했다. 좀 미안했다. 뒤늦게 어디선가 나타난 정란도 찍고 싶어 했다. 그래 미안함을 무릅쓰고 다시 부탁했다. 그 분들은 난처해하면서도 거절하진 못했다. 그래서 그 분들 사이에 정란이 끼여 사진을 찍었다. 그 분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붙들릴까 종종 걸음으로 바삐 갔다. 그 분들은 진짜 마이꼬가 아닌 1일 체험을 하는 관광객들일뿐인데 우리가 조금 심했나? ^^ 버스를 타러 내려오면서 기념품 파는 가게에 들러 이것 저것을 구경하고 형부 줄 복고양이 핸드폰 줄을 하나 샀다.
  우린 다시 교토역으로 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눈을 드니 책에서 봤던 볼링핀처럼 생긴 교토타워가 보인다. 일본의 버스정류장에는 몇 번 버스가 지금 어느 곳쯤 오고 있는지 표시가 된다. 또는 몇 번 버스가 몇 분에 오는지 정확하게 뜨고 그 시간에 정확하게 버스가 온다. 정확하고 세심하고 철저한 일본... 여기서도 느낀다. 버스를 타고 카와라마치로 갔다. 그 곳도 교토에서의 쇼핑가라고 해서 우린 또 둘러 보았다. 모두 선물을 사가야 한다는 즐거운 부담감을 가지고... 사실 둘러봐도 그렇게 살 만한 것들은 없다. 이미 봐 왔던 것과 비슷비슷하고 비싸서 살 것이 별로 없으므로. 교토에서는 화과자가 유명하다는데 어디에 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나가다 보니 화과자는 아닌데 팥에 잣, 호두, 밤, 녹차가루 등을 얹져 먹음직스럽게 만든 먹거리가 있었다. 맛을 살짝 보니 너무 달지도 않고 괜찮아 선물하면 좋겠다 싶어 우린 여기서도 하나씩 샀다. 화과자는 백화점에 들어가야 있을 것 같은데 다시 백화점을 찾아가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기도 해서... 언니랑 조카들 먹으면 좋아할 것 같다.
  한참 돌아다니다 보니 어둑어둑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밥 때가 돌아오는 법... 밥 먹을 데를 찾아보니 딱히 없어 지하철 지하상가를 떠올리며 내려가봤는데 바로 지하철타는 곳이 나타났다. 우린 다시 올라갈 힘도 없어 어~ 이게 아닌데 하고 지하철을 타버렸다. 이걸 타면 다시 30분쯤 꼼짝않고 우메다까지 가야한다. 이번에 탄 지하철은 마치 기차 같았다. 두 명씩 않도록 되어 있는... 우리 샘들은 자리에만 앉으면 자동으로 고개 끄떡이며 눈을 붙인다. 난 또 책을 읽었다. 이러다 한 권 다 읽겠다. 우메다 역에 내리니 지하상가들이 문을 많이 닫았다. 7시도 안 되었는데... 좀 둘러보니 한큐백화점 지하 음식점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 그 곳에 들어갔다. 맛있어 보이는 것은 많으나 앉아서 먹을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서 먹고 있었다. 자리를 제공하지 않으니 그 만큼 음식은 더 싸지는 거겠지만... 우린 좀 편안히 앉아 먹고 싶었는데... 또 낙담하여 그 곳을 나왔다. 맥도날드라도 가려니 거기도 마찮가지로 서서 먹고 있었다. 우린 또 낙담했다. 할 수 없이 숙소로 가서 편의점에서 이것저것을 사 가서 먹기로 했다. 이젠 익숙한 하지만 아직도 이름은 외울 수 없는 ‘미나미가따’역에 내렸다. 편의점에 들러 우동과 김밥, 맥주 2캔 과자 등등을 사서 숙소로 갔다. 오늘은 정란샘방 414에서 회담. 이 시간도 마음 편하고 너무 좋다. 우린 배불리 먹고 일찌감치(?) 10시에는 잠들 수 있었다. 이렇게 3일간의 여행을 스스로들 잘 해냈다. 그리고 내일은 공항에  9시 30분까지는 가야하므로 8시에 숙소를 나가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1월 20일
 7시에 밥을 먹으로 갔다. 여기서 먹는 마지막 아침... 한 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는 창문 앞 자기 3일 계속 우린 여기 앉아 먹었다. 마지막 날이라 창 밖 풍경을 음미하듯 느긋이 식사를 했다. 역시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 먹고.
8시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왔다. 마지막으로 ‘미나미가따’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남바’역으로 갔다. 그리고 정신없이 공항으로 가는 기차을 타러 갔다. 좀 헤매다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공항급행 난카이센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여기서도 한 시간쯤 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난 어제 읽던 책을 읽다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창밖 풍경을 눈여겨보기도 했다. 그러다 정란샘이 ‘언니, 우리 중간에서 갈아타야하는 거 아니예요?’라고 물었다. 우리가 올 때 한 번 갈아 탔어서 그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탈 때 승무원이 특별한 말이 없어서 그냥 가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정란샘이 승무원에게 가서 공항까지 바로 가냐고 물었다. 하지만 승무원은 우리말을 알아 들었는지 아닌지 아니라고 했다. 그래 우린 내려야하는 줄 알고 다음 역에서 우르르 내렸다. 그랬더니 승무원이 next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린 여기가 아니고 다음 역인가보다하고 또 우르르 탔다. 다음 정차역에서 또 우르르 내리니 승무원이 또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우린 또 우르르 탔다. 그제서야 알았다. 그 승무원의 next는 바로 다음이 아니고 다음 그 언젠가라는 것을... 그냥 우린 승무원이 내리라고 말할 때까지 앉아 있기로 했다. 결국은 승무원이 내리라고 해서 내린 곳은 공항이었다. 그 승무원은 정란샘의 질문을 공항에 가려면 지금 내려야 해요?라는 말로 알아 들은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 아니라고 했던 것 같다. 그것도 모르고 그냥 계속 앉아 있으면 될 걸 내렸다 탔다를 반복했으니... 그 승무원도 답답했을 것이다. 영어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가는 내내 고민했을 것이다. 우린 내린 후 그 승무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때까지 본 승무원 중에서 가장 잘 생긴 것 같다고... 나만 그랬나? 가장 가까이서 본 정란은 지진희 스타일이라는데 난 얼핏 한석규 스타일로 봤다. 점잖은 모습도 보기 좋았고.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것이 대충 9시 40분쯤 .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티켓팅을 하고 나서 우린 기념품 가게에서 남은 잔돈을 없애기 위해 이것저것 샀다. 난 아버지에게 줄 네모난 유리 안에 복고양이가 조그맣게 들어가 있는 핸드폰줄과 노란 복고양이가 두 개 달린 내 핸드폰줄을 하나 샀다.
 11시쯤 비행기로 이동해 올랐다. 이번엔 e자리. 가운데 자리. 내 옆 통로쪽 자리에 경란샘. 창가쪽은 낯선 아주머니... 또 기내식을 맛있게 먹고 1시간 30분 뒤 1시쯤 공항에 도착했다. 드디어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 옆에 지나가시는 아주머니께서 ‘우리나라가 역시 더 좋다~’라고 하셨다. 글쎄... 이번은 왜 그런 생각이 덜 한지... 우리나라는 우리나라고 다른 나라는 다른 나라고 각각 별개의 장단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이 너무 좋게만 기억되어서 그런 건가? 짐을 찾고 환전을 하고 우린 201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정란샘은 그런 초췌한 모습으로 서면을 지나쳐갈 순 없다며 305번 버스를 꿋꿋히 기다리겠다고 했다. 아무튼 귀여운 쌤^^  아무튼 3박 4일간의 여행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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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5시 50분 알람은 울리는 소리는 들었고 승주언니가 껐으나 아무도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일어나기 싫어서 계속 잠을 청했다. 언니가 먼저 일어나기로 했는데 기척이 없어 이래서 안되겠다 싶어 벌떡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6시 18분이었다. 큰일났다 싶어 나 먼저 부랴부랴 머리를 감고, 나와서 다른 방 선생님들이 일어났는지 전화했다. 정란샘은 일어나 있었고 경미샘방은 내 전화에 깬 것 같았다. 7시쯤에 밥을 먹으러 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7시에 나가 정란샘방을 두드리니 샘이 나왔는데 경미샘방은 좀 있다가 가겠단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오늘 관광 담당자는 경란샘이고 경란샘이 7시쯤에는 나가야 한다고 말했는데 정작 자신이 늦게 일어나다니... 이 사람 안 되겠네~^^  2층에 내려가니 조그마하게 뷔페식으로 아침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침인데 소시지에 감자튀김에... 술안주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보다 조금 끈기없는 밥이 전기밥솥에 들어 있고 우리보다 가늘게 자려진 김이 있었다. 또 자기들이 먹는 반찬거리들이 조금 있었는데 별로 먹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레몬 비슷한 것 등 과일도 있었다. 한쪽에는 식빵과 잘려진 바케트빵과 버터와 딸기쨈, 커피와 우유, 오렌지 주스가 놓여 있었다. 식빵은 옆에 놓여진 토스트기로 적당히 구워먹을 수 있었고 커피는 원두도, 자판기식으로 된 카푸치노 비슷한 커피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그렇게 푸짐하게 차려놓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갖추었고 깔끔하며 먹는대로 먹을만했다. 예전에 중국호텔 아침 뷔페는 차려놓은 것은 정말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였으나 먹을 수 있는 것은 그리 없었던 기억이 난다. 비위에 안 맞는 음식들도 있고 우리와 극복할 수 없는 입맛의 차이로 요리된 음식들... 대충 때웠었다. 그에 비하면 너무 만족스러워서 든든히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오고 갈 때 인사하는 여직원들... 항상 빠지지 않는다.
  8시 20분쯤 출발했다. 오늘 행선지는 히메이지와 코베의 이진칸과 난킨마찌, 포트아일랜드, 고베시청전망대이다. 이제는 익숙한 우리 숙소 앞 지하철역, 이름도 긴 니시나까지마 미나미까따 역. 이 이름... 마지막까지도 외우긴 힘들 것 같다. ^^ 아침 지하철역은 어제 봤던 모습과 달리 엄청난 출근객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꽉꽉 차서 출발하는 지하철... 아침 출근길의 이런 모습은 일본에도 있구나 싶었다. 전철을 하나 보내고 다음 것을 탈 수 있었다. 아침 지하철 안, 침묵하고 앞만 보며 각자 무언가를 열심히 생각하는 사람, 잠시 눈을 부치고 그나마 잠을 보충하고 있는 사람, 아이라인 그리고 화장을 곱게 하고 있는 여인네들, 신문 읽는 사람... 우리 아침 출근길도 저랬지 않았을까 새삼 생각했다. 여기가 오사카 일본 두 번째 도시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매우 세련됐다. 여자들의 모습은 앞서 말한 것처럼 세련되었고 남자들도 이에 못지 않다. 하나같이 왁스를 발라 머리를 다듬었고 양복 위에 긴 롱코트를 갖추어 입고 목도리까지 곱게 둘렀다. 저마다 나름대로 스타일이 있었다. 나이드신 분들도 깔끔하니 차려입었다. 그런 것에서 뭔가 우리보다 차원이 조금 한 단계 위라는 것을 느낀다. 아니면 생활의 차원이 더 나아서라기보다는 이 나라 사람들 자체가 워낙이 깔끔하고 다듬는 것과 갖추는 것을 좋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우메다역에 내려 한큐․한신 전철 타는 곳을 찾아갔다. 그때가 8시 40분쯤... 우메다역은 책자에 설명되어있던 그대로 여러 전철 노선들이 모인 곳이라 정말 복잡했다. 아침 출근길에 그것이 더 확연히 눈에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어디론가 몰려간다. 우리도 그 무리에 휩쓸리듯 한큐전철 타는 곳을 찾아갔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했을 때 곧 출발하는 한큐전철 히메이지 특급행이 있었다. 한큐전철은 자주색이다. 1시간 30분쯤을 갔다. 피곤했던 우리는 거의 눈을 붙이고 앉은 채로 초췌하도록 잤다. 나도 정신없이 자다가 창밖을 내다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이럴 때 읽으려고 책을 한 권 챙겨왔었는데 그걸 숙소에 두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상하게도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지하철을 타면 매번 제일 앞칸 아니면 뒤칸에 앉게 되었다. 아무래도 승무원아저씨에게 행선지를 확인하고 나서 타느라 그렇게 된 것 같다. 승무원아저씨가 보이는 곳에...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도록... 그래서 승무원 아저씨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이때 승무원아저씨는 목소리가 먼저 귀에 들어왔다. 차분하면서도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얼굴을 보니 뿔테를 낀 모범생 스타일의 승무원아저씨였다. 일본의 지하철과 전철도 한 전철을 한 승무원이 운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하철은 운전석이 있는 칸과 승객들이 타는 칸은 완전히 담이 쌓여져 있고 승무원아저씨는 앉아서 혹은 서서(안을 잘 보지 못하니 앉았는지 섰는지 알 수 없다.) 운전만 한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녹음된 안내방송이 있기 때문에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을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일본 지하철과 전철의 승무원은 끊임없이 방송한다. ‘다음역은 어디입니다. 어디로 갈 사람은 다음역에서 내려주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 등등. 그리고 수시로 운전석칸 문을 열고 나와 뒤칸까지 가서 무언가를 열심히 체크한다. 그리고 다시 운전석칸에 들어가기 전에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목례를 정중히 하고 들어간다. 절대로 졸음이 오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일을 일을 하는 듯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복 또는 유니폼과 모자를 갖추어 입고 절도 있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히메이지역에 내려 물을 사러 편의점에 들어갔더니 배용준 사진이 붙어 있고 이병헌, 권상우, 배용준, 박용하 등의 얼굴이 들어간 열쇠고리가 걸려있었다. 정말 일본에 우리나라 배우들이 인기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걸 보고 우리가 신기해하니 편의점 아주머니께서 쑥스러워하시며 웃으셨다. 난 히메이지성이 산 중간쯤 높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평지에 있었고 도시 가운에 우뚝 솟아 있었다. 역에서 얼마 나가지 않아 멀리 히메이지성의 텐슈까꾸(天守閣)가 보였다. 히메이지성 주위도 오사카성처럼 공원처럼 꾸며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동물원이 있었다. 이상하다. 창덕궁에 동물원을 만든 건 일본인이었다. 일본인이 왕이 사는 궁궐에 동물을 들여놓은 것은 우리 왕실과 궁궐을 비하하기 위해서였다고 알고 있었는데 자기들 성 옆에도 동물원이 있다니... 자기 성의 격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아닐 것인데... 성의 주인 즐거우라는 것인가, 아님 아무런 의미없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하기 위함일까... 알 수 없다. 히메이지는 1581년에 토요또미 히데요시가 처음 축성하기 시작했고 토꾸가와 이에야스의 사위 이께다 데루마사가 완성시킨 성이다. 텐슈까꾸에는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신고 들어가도록 했다. 신발을 벗는 곳을 지키고 있으신 분도 지긋한 나이의 노인분... 신발은 그곳에 있는 하얀 비닐봉지에 넣도록 되어 있는데 그 비닐봉지는 새것이 아니라 이미 몇 명일지 모를 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관람을 끝내고 다시 주면 그것을 그 노인분이 정성스럽게 다시 펴서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 정성때문인지 그런 것이 전혀 궁상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알뜰하게 느껴졌다. 일본 성 중에서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몇 개 안되는 성 중의 하나다. 텐슈까꾸에 들어서니 오사카성과는 확실히 달랐다. 옛 일본 막부 쇼균과 무사들이 살았었을 듯한 모습 그대로였다. 6층건물인데 곳곳마다 벽에는 무사의 칼을 거는 곳과 적이 쳐들어왔을 때 안에서 싸울 수 있도록 된 화살과 조총쏘는 곳들이 있었다. 그리고 6층 높이라 밖이 훤히 보인다. 거기서 누군가는 적이 쳐들어오지나 않는지 눈을 떼지 않고 지키고 있었겠지. 이 성도 오사카성도 마찬가지로 호수가 성을 둘러싸고 있다. 적의 침입을 어렵게 만들기 위함이다. 권력을 쥐었지만 항상 적을 의식하고 긴장하며 살아야했던 그들... 행복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텐슈까꾸를 나와 성을 천천히 빠져 나왔다. 뒤돌아보니 면과 모서리가 평평하게 혹은 모서리가 각이 지도록 다듬은 성벽이 보인다. 오사카성도 마찬가지였는데... 우리는 돌을 있는 그대로 쌓는데 반해 일본인들은 항상 반듯반듯하게 각을 만든다. 어떻게 생각하면 되게 인위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성을 보고 나오니 12시쯤... 점심을 먹어 줄 때가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많던 식당이 꼭 밥 먹으려고 찾으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걸어 먹을 만한 식당을 찾는다. 길을 건널 때 건널목마다 안내원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신호들이 없는 건널목에 서서 차의 운행과 사람의 보행을 돕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신지 아니면 고용된 분들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대부분 나이드신 노인분들이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침등교시간에 학교 앞에서나 자원봉사자들이 서 계신다. 그런데 여기는 학교 앞도 아니고, 12시의 한산한 거리였다. 일본이 안전한 나라라는 것이 저런 것인가 싶었다. 우리가 고심 끝에 들어간 음식점은 스파게티와 피자를 만들어주는 겉모습이 아기자기 예쁜 곳이었다. 우리가 그곳을 들어간 가장 큰 이유는 진열대의 음식과 값이 괜찮아서이지만... 그 곳은 조명이 약간 어두웠지만 아늑함이 느껴졌다. 우린 파스타와 스파게티, 피자 2판(조그만)을 시켰다. 음식은 모양도 예쁘고 그 집만의 맛이 있었다. 모두 맛있게 잘 먹고 나왔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나와 그 음식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음식점 아르바이트생이 쫓아 나왔다. 정란샘이 오늘 일정을 적어 놓은 종이를 흘리고 나왔는데 그걸 가져다주러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우리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 가라며 수줍어하며 인사했다. 친절한 아르바이트생...
  다시 한큐 전철을 한 시간쯤 타고 산노미아역에 내려 이진칸(외국인의 집)을 찾아갔다. 이진칸에는 외국 여러나라풍의 예쁜 집들이 즐비했다. 옛 일본 개화기에 외국인들이 들어와 이곳에 모여 살면서 지은 집들이다. 물론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은 거의 없고 레스토랑이나 관광품 파는 곳으로 개조되었다. 예쁜 집들 앞에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중간에 빵집에 들러 딸기와 스트로베리가 고명처럼 올려진 빵 2개를 샀다. 너무 예쁘고 먹음직한 빵이라 안 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고베의 빵은 맛있기로 유명하다. 우리는 당장에 앉아 먹을 곳이 없어 적당히 앉을 수 있는 곳에 도착하면 먹도록 했다. 결국은 숙소까지 그 빵을 가지고 갔고 그 동안 빵은 너무 혹사를 당하여 거의 녹아버렸다는... 그래서 우린 부스러기진 그 빵을...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는....^^
 다음 코스는 중국인거리인 난낀마치이다. 이 곳은 우리 계획에는 시내버스인 시티루프를 타고 가는 것이었다. 시티루프는 또다른 낯선 것. 어디에 서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몰랐다. 오늘의 안내자 이경란이 건널목에 서 있는 여자분에게 ‘시티루프, 시티루프’라며 물어보았다. 그 여자분은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같았다. 황정란샘이 나섰다. 그래서 영어로 시티루프타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난낀마치를 가려고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여자분은 ‘아~, 아~’ 감탄사에 가까운 대답을 하며 한창 듣고 있었다. 우리 말을 잘 못알아 듣는 것같기도 하고, 한참 뒤에 ‘시티루프를 타고 난낀마치를 타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영어는 유창했다. 우리가 만난 사람 중에 호텔 지배인님 다음으로 유창했다. 그 여자분은 시티루프타는 것이 좀 번거롭다며 자신이 가는 방향이랑 비슷하니 같이 가자고 했다. 감사했다. 정란샘과 그 여자분은 영어로 말을 간혹 던지며 갔다. 난 그렇다고 그 여자분이랑 정란샘만 붙여두면 뻘쭘할까봐 대화에 끼진 않아도 그 옆에 붙어 갔다. 지나가다 보니 오사카에서 봤던 건물들이 또 있었다. 다이마루, 오빠, Left 등 분점인가보다. 오사카의 다이마루 건물도 아름다웠는데 고베의 다이마루 건물도 아름다웠다. 한창을 골목길로, 큰 대로로 가더니 저 곳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이런 길이니 설명하기가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또 너무나 감사해하며 인사했다. 그 여자분도 답인사를 하시더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우리를 위해 더 내려와 준 것이었다. 그 여자분이 가신 후 우리는 또 그 유창한 영어에 우아하고 세련된 여자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낀마치는 들어서는 문부터 중국다웠다. 붉고 용이 휘감고 올라가는 커다란 문. 입구부터 김이 모락모락나는 왕만두나 튀김과 꼬지를 파는 집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식사할 곳을 찾았다. 조금 들어가니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만두집들이 두곳 붙어 있었다. 간판을 보니 여행책자에 소개되어 있던 ‘로쇼끼’집이었다. 한번 먹어보고 싶었지만 줄이 너무 길고 안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싸들고 가는 곳이라 사먹을 순 없었다. 아쉽지만 포기하고 입구쪽 즐비했던 만두집 중 한 곳에 들어갔다. 메뉴를 보고는 무슨 음식인지 알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와 직접 요것 조것 찍어서 달라고 했다. 순박하고 친절한 아주머니는 알았다고 하셨다. 조금 기다리니 만두 등이 나왔다. 난 사실 고기만두를 좋아하지 않고 중국 만두는 더욱 느끼할 것 같았지만 맛있게 생각하고 먹었다. 만두집을 나와 피곤했던 선생님들은 바로 포트아일랜드로 가자고 했다. 난 많이 걸어 도착한 곳인데 그냥 가는 것이 아쉬워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자고 했다. 선생님들 마지못해 따라오셨다. 하지만 더 들어가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비슷비슷한 만두가게들과 관광품파는 가게들. 또 즐비하게 놓여진 튀김과 꼬지를 안 먹어보고 가는 것도 아쉬워 춘권하나와 우리나라 도깨비방망이 감자튀김과 비슷하게 생긴 꼬지 하나를 사서 먹어보았다. 춘권은 바삭바삭한 피 안에 고기가 맛있게 양념되어 들어가있을 줄 알았는데 한입 무니 말린 무같은 것이 씹혔다. 별로 맛없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먹은 꼬지는 겉은 감자에 안에는 새우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 내가 먹자고 우겼는데 그거 하나라도 맛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낀마치를 나와 산노미아역쪽으로 걸어갔다. 이미 날은 어둑어둑했졌고 여기저기 네온싸인이 켜졌다. 찬바람이 제법 불어왔다. 일본은 낮과 밤에 기온차가 좀 나는 듯 했다.
 경란샘이 앞장 서서 우리를 포트라인 타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지하철 상점가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먹는 와플집이 있었다.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간 여러 가지 색의 와플이 먹음직하게 보였다. 우린 2개를 샀다. 또 언제 먹게 될 진 알 수 없지만... 포트아일랜드는 바다를 매워 만든 인공섬으로 거의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어 없는 것이 없는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포트라인은 산노미아역을 출발해서 포트아일랜드를 한바퀴 돌아서 다시 산노미아역으로 오는 전철이다. 우린 정말 신기한 것을 보는 것처럼 전철 유리창에 5명이 얼굴을 대고 밖을 봤다. 전철 안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가 신기했을 것이다. 옆에서는 좀 전에 샀던 와플이 전철 가득 냄새를 피워대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책자에서 봤던 고베 야경이 펼쳐졌다. 불은 빛으로 빛나는 횃불 모양의 108미터 포트타워, 그 앞 하얀 빛으로 빛나는 범선의 돛과 파도를 상징하는 해양박물관(내 눈에는 그물이 쳐진 듯한 모양으로 보이지만... ), 모자이크 쇼핑센터에 세워진 동그란 관람차는 자주빛으로 빛났다. 백만불짜리라는 고베의 야경이 저것이었다. 하지만 포트아일랜드로 가는 전철 안에서 그 야경은 너무 멀어서 마치 그림 속 풍경인 것만 같았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포트아일랜드는 그냥 사람들이 사는 도시였다. 물론 매립해 세운 인공섬에 저렇게 대단위의 도시가 들어선 것은 인간의 위대한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만 관광객인 우리가 볼 것은 딱히 없는 듯했다. 20분쯤 타고 있으니 산노미아역 원점으로 돌아왔다. 
  우린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인 코베시청 전망대로 향했다. 지하철 안을 헤매고 다니니 코베시청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왔다. 입구로 나가니 한 건물과 연결되었고 그 곳에 안내원에게 영어로 ‘코베시청전망대’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안내원이 직접 우리를 데리고 그 건물 밖으로 나와 어디로 가라고 해줬다. 영어로 설명을 못하겠던지 직접 안내를 한 것이다. 다시 밖... 찬 바람을 맞으며 우리 여인 5명은 또 걸었다. 조금 더 가니 진짜 시청건물이 나왔다. 전체적으로 불이 꺼지고 1층 로비만 훤했다. 그 곳에도 역시 안내원이 있었다. 물론 나이 지긋하신 노인분. 그 분은 우리를 엘리베이터에 태워서 24층을 눌러 주셨다. 모든 것을 준비해서 항시 대기하고 있는 친절한 일본인들. 나에게 그들은 그런 느낌이었다. 속 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전망대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사실 난 이런 전망은 너무나 많이 봐 왔었기에 그렇게 감동스럽지도, 그렇게 예쁘지도 않았다. 우리 부산의 황령산 위에서 보는 야경도 아름답다. 그리고 중국의 2백 몇층에서 본 상해의 환상적인 야경을 본 터라 고베의 야경이 그렇게 예쁘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 유명한 고베의 야경을 봤다는데 의의!!
  드디어 숙소로 향했다. 30분 가량 한큐전철을 타고 우메다역. 다시 미도스지센으로... 마치 힘든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미나미가따’역이 너무 친근하고 편안하게 와 닿았다. 우린 편의점에 들렀다. 그냥 갈 순 없다. 너무 서운한 일이다. 그래서 김밥과 삿뽀르 맥주 1캔 등등을 사서 들어갔다. 또 10시 30분 우리방 회담. 그리고 꿈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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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일본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그동안 이 여행을 가기 위해 같이 가는 사람들끼리 많이 모여 의논하고 일본여행에 대한 책자도 읽고 했었는데 드디어 떠나는 것이다. 가이드도 없이 항공권과 숙소만 해결해 놓고 순전히 우리 힘으로 하기로 한 해외여행이라 걱정을 많이 했었다. 더군다나 우린 영어도 일어도 잘 못하는 사람들이라... 하지만 막상 당일 아침에 짐을 들고 출발하면서는 여느 여행을 떠나듯이 담담했다.
 새벽 5시 50분쯤 캐리어를 동네방네 덜덜덜 거리면서 끌고 큰 길가로 나가 201번 버스를 기다렸다. 아직 어둑어둑한 길거리, 사람들이 아직 깨지 않은 거리에 서게 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있어 먼길을 갈 때뿐이다. 여행처럼 특별한 일... 201번 버스 배차 간격이 30분인데 다행히 10분 정도 기다리니 왔고 35분쯤 달려 김해 공항 국제선에 닿았다. 다행히 약속 시간 전에 도착했다. 늦는 거보다는 일찍이 도착하는 것이 뿌듯하고 안심된다.
 승주 언니는 나보다도 일찍 왔고 곧 정란샘도 곧 왔다. 경란샘과 경미샘은 늦게 올 것 같았다. 먼저 온 사람들은 먼저 환전을 했다. 19만 5천 얼마를 주니 2만 2천 엔을 주었다. 환율이 100원에 889엔이었다. 처음보는 일본돈...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개화기 때의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낯설었지만 푸르스름하게 기름 먹은 듯이 뻑뻑한 외화는 이제 조금 익숙하다. 
 경미샘과 경란샘이 왔다. 우린 핀잔을 줄려고 한껏 벼르고 있었는데 막상 샘들 얼굴을 보니 말이 슬~들어갔다. 오는 길이 힘들었는지 선생님들 얼굴이 굳어 있어서... 이 사람들이 강하게 나오네. 비굴한 우리들^^  늦게 온 샘들은 환전을 하고 우리는 티켓팅을 했다. 내 캐리어는 크기가 커서 부치도록 했다. 규정에 보니 가로*세로*폭의 합이 115센티미터 이내가 기내 반입이었다. 무게는 10kg을 넘지 않을 것.
 티켓팅 후 1층으로 내려갔다. 우리가 내려갔을 때가 8시쯤... 아직 1시간이나 남았다. 면제점에서 선물을 몇 가지 사고 배고픔을 달래려 오뜨를 사서 하나씩 까먹으며 비행기 타는 것을 기다렸다. 8시 30분쯤 비행기로 향했다. 비행기에 올라 좌석 34A에 앉았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창문가 자리. 운이 좋았다. 깔끔하고 그런대로 먹을 만한 샌드위치 기내식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창 밖의 구름 구경도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 10시 30분쯤 칸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부터 우리와 다른 것이 많았다. 잔뜩 쓰인 알아볼 수 없는 일본어가 우리가 일본에 왔다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행기와 공항 사이에 버스로 연결하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어떤 통로가 비행기에 바로 연결되고 또 모노레일이라는 전기로 가는 칸막이차를 타고 이동했다. 입국심사대에는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한국인 관광객들이 북쩍거려 시간이 꽤 걸렸다.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며 뭐라하는 사람들... 심사대의 사람들... 일본인들이 가득 있었다. 정말 일본이란 나라에 들어왔구나 싶었다.
 공항 건물을 벗어나 육교로 연결된 철도역으로 가서 빨간색 난카이센을 탔다. 여행책자대로 하나하나 나타나는 것이 신기했다. 처음으로 칸사이 스롯트 패스를 개시했다. 일본여행책자에는 남바역에서 내려 미도스지센으로 갈아타고 ‘니시나까지마 미나미가따’역에서 내리라고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남바역 전에 한번 더 갈아타도록 되어 있었다. ‘니시나까지마 미나미가따’역은 ‘신오사까’역 전에 조그마한 역이었다. 우리로 치면 ‘서면’역이 크고 복잡한 곳이라면 ‘개금’역이 단촐하고 조용한 동네역인 것처럼. 2번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건널목을 건너 쭉 걸어올라가니 입구에 ‘新大阪신오사카’라는 글귀가 크게 붙어 있는 호텔이 나왔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우리 선생님들이 그래도 기본은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준비를 많이 하고 와서 그런지 마치 아는 동네인 양 잘 찾아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가 1시쯤으로 아직 체크인이 되지 않아 짐만 맡겨 두었다. 당연히 현지인과의 의사소통은 무조건 정란샘 몫이었다. 일본인들은 몇 개의 단어를 알아들었고 성심성의껏 대해주었다. 외국에 나와 보니 영어를 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안에 있을 때에는 별로 영어를 배워야한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역시 당장에 필요한 것이어야 절실해지나 보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 지금 당장 공부하는 것들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으니 필요 없게 느껴지는 것이겠지...
  호텔을 나와 다시 지하철로 향했다. 오늘 관광을 맡은 사람은 나이기 때문에 내가 앞장 섰다. 잘 찾아서 인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묵직하게^^ 우리가 처음으로 관광할 곳은 ‘오사카죠, 오사카성’이다. 가는 방법은 ‘홈마찌’역에서 내려 ‘주오센(중앙선)’으로 갈아 타고 ‘타니마찌욘쬬메’역에서 내린다.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서 찾는데 그리 어려움은 없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책에서 봤던 ‘오사까역사박물관’과 ‘BK플라자’가 그대로 있었다. 매번 여행에서 준비하면서 책자에서 봤던 것을 그대로 실제 눈으로 볼 때 너무나 반갑고 신기함을 느낀다. 박물관답지 않게 고층에 우뚝 솟은 현대적인 건물. 마치 특급 호텔처럼 보인다. 20분쯤 걸어가니 ‘오사카성’으로 들어서는 문이 나왔다. 오사카성 주변에는 공원이 있는데 지금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그 곳에 말을 타고 있는 소녀(소년?) 동상이 서 있었는데 승주 언니가 “저 손에 들고 있는 거 바나나아이가?”한다. 자세히 보니 평화의 상징 비둘기인데... 우리 모두 배가 많이 고픈가보다. 오사카 성의 성벽은 거대한 돌을 그대로 짜맞추어 놓은 듯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양식을 코라이몬(고려문)이라고 한단다. 물론 고려에서 도입된 양식이다. ‘오데몬’을 지나 ‘사꾸라몬’을 통해 드디어 중심 건물인 ‘텐슈까꾸(천수각)’ 앞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600엔인데 스롯트 패스권으로 할인 받아 500엔을 냈다. ‘텐슈까꾸’ 올라가는 곳에 깃발이 계속 세워져 있었는데 흰 바탕에 국화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꽃, 화투에 그려지면 딱 맞을 법한 풍의 꽃이 찍혀져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건 우리나라를 쳐들어왔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문의 문양이란다. 그래서 그 문양이 그려져 있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랑 관련있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랜 시간이 지났고 내가 직접 겪은 당사자도 아니고 이젠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분노가 무뎌지긴 했지만 그래도 썩 기분 좋지는 않다. ‘텐슈까꾸’는 내부 총 8층 건물이다. 멀리서 보면 그럴 듯이 멋있지만 막상 가까이서 보면 꼭 전체적으로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고 중간 중간에 검은색 페인트로 띠를 둘러 칠해놓고 금박무늬를 박아 놓고 잘 단장해 놓은 새 집 같았다. 그리고 안에는 현대식으로 개조해 엘리베이터까지 갖추어져 있었고 모든 층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까와 이에야스에 대한 이야기와 물품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처럼 되어 있다. 진짜 옛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세월의 때가 묵어 있는 성의 모습을 기대했던 우리는 적잖이 실망했다. 이건 유물(遺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걸 것이 이 성은 진짜가 아니라 1665년 벼락을 맞아 불타버린 것을 1931년에 철근 콘크리트 공법으로 재건축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전쟁광이자 원흉인 사람이 일본인들에겐 영웅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불쾌했다. 일본 전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사람이니 그들에겐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텐슈까꾸를 나와 뒷길로 해서 오사카성을 빠져 나왔다. 손에 움켜쥐고 싶은 은빛 조각 같은 트윈 21 빌딩을 배경으로 다리 위에서 지나가시는 아저씨께 부탁해서 5명이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아저씨께서는 적극적으로 자리를 바꾸어서 다른 배경으로 찍도록까지 해 주셨다. 감사했다. 하지만 찍힌 사진이 괜찮았냐하면 꼭 그건 아니었다.
 ‘쯔루미료꾸지센’의 ‘오사카비지네스파꾸’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우리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는 지하철노선(센)이다. 거기서 ‘신사이바시’역에서 하차, ‘미도스지센’으로 갈아타고 ‘남바’로 갔다. 거기서부터는 위로 걸어 올라가면서 쇼핑만 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 배가 너무 고팠다. 사실 아침도 못 먹고 비행기 기내식으로 오후 4시까지 견디고 있는 거였기 때문이다. 먹거리가 많은 곳이 ‘도똠보리’라고 하는데 우리는 지하철의 안내판을 보고 어디를 통해 나가서 어디로 둘러보며 봐야할지 궁리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나타나 ‘한국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어 보시는 한 아주머니. 한국분이었다. 지나가시다가 한국말이 들려 돌아보니 여인네들이 안내판에 붙어서서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우리랑 한참 안내판을 보며 무얼 할 거면 어디로 가는 것이 좋고, 무얼 할 거면 어디로 가는 것이 좋다고 조근조근 말씀해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꽤 긴 시간을 우리에게 할애해주신 것이다. 또 너무 감사했다. 그 친절한 마음씨가... 어디에서든 우리를 도와주는 수호천사 같으신 분들이 짠 하고 나타나시니, 우리가 운이 좋은 것인가? 그 아주머니가 가시고 나서 우리 모두 동의한 것은 아주머니가 참 친절하시고 피부가 참 좋다는 것이었다. 나이는 30대 후반으로 보이시는데 정말 잡티하나 없는 윤기있는 맑은 얼굴이었다. 역시 여자인 우리는 어쩔 수 없다.^^
 우린 일단 100엔샵을 지나 도똠보리로 올라가기로 했다. 100엔샵... 우리 돈으로 1000원 정도이다. 우리나라에도 1000냥 마트가 많은데 그런 것도 일본에서 들어온 것인가? 하지만 우리나라 1000냥보다 다양한 종류로 괜찮은 것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살림도구 장만할 것도 아니고, 일본여행기념할 만한 것들로 살 것은 딱히 없어 그냥 튀김용 기~인 젓가락하나를 사고 나왔다. 명절 때 튀김할 때 쓰면 좋을 것 같아서... 샘들은 흉기같다나... 나와서 도똠보리로 나왔다. 주린 배를 진정시키며 위로 계속 걸어 올라가니 또 여행책자에서 봤던 커다란 게가 10개의 다리를 흔들면서 간판 위에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카니도라꾸 가게의 간판이다. 우리나라에도 얼마전부터 게요리집 간판에 저런 큼지막한 게가 붙어 있더니 저걸 본떠온 걸까? 아무튼 유명한 집들이 모인 거리에 도착한 것 같았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쿠이다오레따로 인형이 느릿느릿 양철북을 두드리고 있었고 쿠리꼬 간판도 보였다. 그리고 커다란 용머리가 눈에 띄는 킨류라멘집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그마하지만 손님들이 가득 앉아있는 듯한 스시집에 들어갔다. 스시.. 우리에게 친숙하고 또 진열대에 가격이 꽤 싸게 느껴졌기 때문에 더 선뜻 들어갔다. 그리고 일본에는 가게마다 진열대에 음식 모형을 두는 것이 추세인 것 같았다. 대부분의 가게 앞에 음식 모형과 가격표가 진열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포장된 과자도 그 위에 과자 모형과 가격표가 그대로, 커피, 조각케이크 모두 다 그런 식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그 모형이 더 맛스러워 보이고 모형자체가 너무 예뻐 하나 갖고 싶었다. 스시집에 들어가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고는 당황했다. 스시가 접시 당 파는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가 120엔씩으로 우리가 메뉴판을 보고 요리사에게 찍어주면 요리사는 그때그때 만들어 하나씩 내어주는 식이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우리는 정말 말 못하는 거나 마찮가지였다. 그래서 소심하게 말 걸지 못하고 정란샘을 통해서 이것 저것 시켜달라고 했다. 다시 한번 외국에서는 영어를 할 줄 알면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리사는 영어는 할 줄 몰라도 눈치껏 시원시원한 대답으로 우리를 기분좋게 해 주었다. 스시맛은 꽤 좋았다. 그리고 골라먹는 재미도... 그리고 우리나라 음식점에 비하면 싼 편이고... 내 기억에 해운대에 있던 일식집에서는 접시 하나에 2000원에서부터 5000원, 10000원까지도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부담스러운 가격이 아닐 수 없다. 거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앞에 접시는 쌓여 가고... 우린 우리가 ‘말 못하는 돼지들’이라고 생각했다. 잘 먹고 나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타꼬야끼를 팔고 있었다. 일본에서 먹어봐야 하는 것이 이것이라든데... 그래서 우리는 호두과자크기같은 10개를 사서 잔뜩 기대하면 하나씩 집어 입에 넣었다. 안에는 문어 다리 도막이 살짝 익혀져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하나를 먹고 선생님들은 더 안 먹으로고 했다. 그렇게 맛있는지는... 글쎄? 그래 아까워서 나도 한 개 더 먹고 몇 명이 더 먹어 다 없애긴 했다. 타꼬야끼 맛을 봤다는데 의의를 두자. 우린 다시 남바쪽으로 내려와 쇼핑을 하기로 했다. ‘비꾸 카메라’라는 쇼핑센터로 갔다. 하지만 우린 의기소침했다. 8층에 100엔샵도 있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딱히 살 것이 없었고 그 외 괜찮은 것은 우리나라에 비해 너무 비쌌다. 우리 돈으로 10000원 이상... 여행자에게 10000원은 큰 돈이다. 우린 거기를 나와 ‘신사이바시’의 쇼핑센터로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한 잔 했다. 처음 커피를 마시기 위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곳, 맥도날드, 도토루에 들어갔다. 그런데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 담배 냄새와 연기가 너무 지독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아는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곳이라 당황했고 문화적인 차이를 느꼈다. 그래 그 곳을 나와 지나가다 보니 벽이 없이 트인 스타벅스가 나왔다. 일단 담배냄새가 날 것 같지 않아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우리를 기분좋게 했던 것은 커피값이 너무 싸다는 것이다. 우리 돈으로 거의 2천 얼마 돈이었다. 우린 너무 행복한 기분으로 커피를 두 잔 시켜 나눠 먹었다. 행복했다. 몇 일간 주어진 선물 같은 시간... 우리나라를 벗어나 낯설지만 신기하기만 한 것들에 감탄하기만 해도 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함께 해서 더 좋고, 거기서 자유를 만끽하며 먹는 커피 맛이란... 맛있는 커피에 힘을 얻어 ‘신사이바시’를 찾아갔다. 조금 헤매기도 했지만 물어 물어서 무사히 정상 괘도를 찾아... 누가 일본인이 영어 못한다고 했는가? 우리만큼은 하는 것 같던데... 먼저 간 곳은 ‘다이마루’라는 백화점. 이 백화점은 19세기 말에 지어진 유서깊은 곳이라는데 그 만큼 외관이 고풍스럽고 우아했으며 이 건물 자체가 역사적 의의가 있을 듯했다. 하지만 역시 너무 비싸서... 우리나라 백화점보다도 더 비싸니... 다 그림의 떡이었다. 예쁘지만 우린 아무 것도 살 수 없었으므로 가볍게 무기력함을 느끼며 빨리 그 건물을 나왔다. 그리고는 파르코 거리에 Loft로 갔다. 우리나라의 미니몰과 비슷한 곳이었다. 하지만 비싸긴 마찬가지... 하지만 화장품 값은 우리나라보다 싼 것 같았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고가로 팔리는 메이커 화장품은 우리보다 훨씬 싼 것 같았다. ‘부르조아’ 화장품은 립글로즈가 우리나라에서 얼마인지 잘 모르겠지만 면세점에서 15000원하던 것이 거기서도 같은 가격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일반 백화점보다는 싸다. 그곳에서 메모지 꼽는 것을 하나 샀다. 여러 동물모양이 있었는데 목이 긴 것이 마음에 들어 기린을 골랐다. 350엔. 일본에서는 아직 비닐봉지를 그냥 끼워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50원씩 받는데... 우리나라에서 공짜로 안 주는데 익숙해있다 여기서는 그냥 끼워주니 그것도 너무 인정스러웠다. 내가 너무 좋게만 생각하는지... 계산할 때 내 손에 짐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것까지도 비닐봉지에 넣어주겠다고 먼저 이야기했다. 손님의 상태 하나하나까지 살피고 배려해 주는 마음씀씀이에 사실 감동했다.
  우리는 다시 그곳을 나올 때가 8시 정도쯤. 피곤이 몰려왔다. 오후에는 쇼핑하며 둘러만 봤는데도 꽤 피곤했다. 몇 명은 숙소로 가고 싶어 했고 몇 명은 쇼핑하면서 솔직히 산 것이 없어 서운해서 몇 군데를 더 둘러 봤으면 했다. 우린 여기까지 왔으니 몇 군데 더 둘러보기로 했다. 그래서 맞은편 ‘오빠(OPA)’를 갔다가 ‘토뀨한즈’, 옆 상가들을 둘러봤다. 특별히 살 건 없었다. 고만고만한 것들은 우리나라에도 다 있고 우리보다 더 비싸 굳이 살 필요가 없고 괜찮은 것들은 역시나 값이 나가 살 수가 없는 것들이라서... 그리고 일본에서는 7시만 조금 넘어도 상가들이 문을 닫았다. 원래 그런 것인지 혹시 불경기라 그런 것인지... 그래서 우리가 다닐 때도 불이 꺼진 상가가 많았다.
  그런데 다니면 다닐수록 우리 곁을 지나가는 세련된 오사카인과 우리가 비교되면서 우리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네들은 이미 봄인 양 가볍게 입고 거의 모든 사람이 부츠를 신고 정성들여 아이라이너, 마스카라를 필수로 해서 화장하고 살짝 염색하고 웨이브진 머리는 금방 미용실에 갔다온 듯했다. 반면 우리는 절대로 춥지 않도록 두터운 외투를 골라 입고 왔으며 얼굴은 바람에 화장기가 사라진 지 오래이며 장시간 걸어나니느라 다 피곤한 얼굴에 눈까지 충혈되고, 머리는 못 빗어 엉클어진 채였다. 우리는 우리가 마치 중국관광객 같다고 느꼈다.
  최대한 많이 둘러 보고 난 후에야 우린 숙소로 돌아왔다. 그냥 들어가기가 서운해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이랑 컵우동을 샀다. 거기도 롯데제품이 있었다. 우리나라랑 똑같은 과자가 일본이름을 달고 있는 게 신기했다. 계산대... 정말 깍뜻하고 친절한 일본인들... 다시 느낀다. 숙소에 들어와 체크인을 하고 짐을 찾았다. 지배인님인지 나이가 조금 지긋하신 분이 프론트에 있으셨는데 정란샘이 나중에 하는 말, “영어 발음이 장난이 아니예요.” 누가 일본인이 영어 못한다고 했어... 정란샘은 혼자 방을 쓰도록 되어 있었고 우린 아침 공항에서 승주언니랑 나, 경미랑 경란이 같은 방을 쓰기로 ‘뗀~찌’로 정했었다. 경미와 경란이 408호, 승주언니랑 나는 411호, 정란은 414호. 각자 숙소에 들어가 씻고 408호에 모여 좀 먹고 내일 6시 30분에 밥을 먹기로 하고 방으로 돌아와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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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받은 편지를 이제야 확인했다. 그 내용. 

 


떠듦

  수업 시간에 떠들 아이들은 어떻게든 떠든다고 봐요. 중학교는 아이들이 한창 말 많을 때라 교사가 억지로 못 떠들게 할 수도 없죠. 그리고 전 모둠별 협동학습을 통해 영어 수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수업 중에 아이들이 말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더라구요. 우선 저는 단순한 잡담과 수업과 관련된 대화 사이의 차이점을 구분해 줍니다. 모둠 친구들과 수업 내용을 가지고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설사 좀 시끄러워도 뭐라 하지 않지만, 그게 잡담이라고 할 수 있을 때에는 떠들어선 안 된다고 못 박습니다. 떠들다 걸리면 처음 두 번은 주의를 주고선 그냥 넘어가지만, 세 번째 걸리면 고무실로 데리고 가서 주의를 줍니다.(김대성, 울산 성안중 교사)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방해하는 행동을 하면, 일단 넌지시 쳐다보며 웃어 줍니다. 그러다 또 떠들면 쳐다보고 웃는 걸 반복합니다. 이를테면 눈치 주기죠. 저는 떠드는 아이 스스로 자신이 수업을 방해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아이가 문제임을 알아차리지 못 하거나 고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죠. 그럴 경우에 저는 그저 “조용히 해”라고 윽박지르는 명령조를 취하지 않고, “너 때문에 수업하는 데 방해가 되어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라며 차근차근 일러 줍니다. (김용만, 경남 마산중 교사)


화장실

  저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굳이 제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아이들 맘대로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게 놔두는 게 조금 불안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게 두려워 아이들 보고 생리적 현상을 참으라고 하는 건 비인간적인 행위지요. 게다가 용변이 급해 괜히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나,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화장실 갔다 올게요”라면서 수업의 맥을 끊는 게 더 큰 문제죠. 화장실을 가고 싶은 학생은 먼저 화장실 간 친구가 교실에 돌아왔을 때 알아서 가면 됩니다. (송승훈, 경기 남양주 광동고 교사)


준비물

  저는 첫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가능한 한 수업은 재미있고, 따분하지 않도록 하겠다. 숙제 역시 가능한 한 적게 내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선 아이들로부터 두 가지를 약속 받습니다. 숙제를 적게 내는 대신에 내준 숙제는 확실히 해 왔으면 한다, 수업시간에 준비물을 꼭 챙겼으면 한다. 이 두 가지 약속은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합니다. 한편, 아이들이 이 두 가지 약속을 어길 경우에는 보통 두 번 정도까지는 용서를 하지만, 다음에는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고 다시 약속을 받습니다. (최원석, 경북 김천 중앙고 교사)


과제물

  반드시 수업과 관계된 것은 아니지만, 저는 평소 아이들에게 책을 사라고 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수업시간에서 배우는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죠. 매달 교육이나, 청소년, 성장, 가난 같은 주제를 정해서 읽을 만한 책 목록을 제시해 주죠. 그리고는 깊게 읽고 세상과 자신을 연관시키면서 자기 생각을 점검해 보는 글을 제출하게 합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글을 꼬박꼬박 잘 쓰는 건 아니에요. 글을 제출하지 않으면 두 번 정도는 기한을 연기해 줘요. 세 번째 정도부터는 하루 날을 잡아서 방과 후에 남겨 놓고 글을 쓰게 합니다. 물론 아이들은 도망가려 하죠. 그래서 전 아이들을 남기는 날엔 아예 종례가 끝나기 전에 그 학급에 가서 기다립니다.(송승훈, 경기 남양주 광동고 교사)


핸드폰

  아이들이 핸드폰을 수업시간에 사용하다 걸리면 일단 압수합니다. 그리고는 아이의 부모님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아이에게 부모님 도장을 받아오도록 합니다. 사실 핸드폰을 아예 사용 못 하게 하는 건 쉽지 않아요. 통제하려 들면 오히려 어긋날 뿐이죠. 게다가 핸드폰은 아이와 부모 간에 의사소통을 위해 쓰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또한 부모님들이 일단 핸드폰을 개통시켜 주고 대개 요금도 내주시잖아요. 그럴수록 부모님들이 핸드폰 사용에 대한 교육을 아이에게 손수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핸드폰 사용을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봐요. ( 장진실, 서울 고명중 교사)


  핸드폰은 학교에서, 특히 수업시간에는 꺼져 있어야 정상이잖아요. 저는 첫 시간에 휴대폰에 대해서 켜 있는 상태로 발견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래도 적발이 되면 처음에는 일주일, 두 번째는 한 달, 세 번째는 한 학기동안 압수합니다. 이렇게 하겠다고 미리 설명을 해 주고, 약속해 달라고 요구하면 아이들도 웬만하면 다 받아들여 줘요. 약속한 뒤로는 기한 전에 찾아와서 돌려달라는 아이가 있어도, “네가 그런 식으로 먼저 달라고 하면 다른 아이들도 다 그런다”라고 일러 주면서 일관성을 지킵니다.(윤상희, 경기 부천 성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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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만의 역사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길로 들어선다.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사람만이
물결의 세기를 알 수 있다.


- 쇼펜하우어의《희망에 대하여》중에서 -


* 강물에 몸을 맡기고 흐르는대로 사는 인생도
멋이 있습니다. 그러나 늘 그렇게 흐르는대로만
살면 '겉멋'만 남고 알맹이는 빠지게 됩니다.
인생은 때때로 강을 거슬러 올라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희망을 가진 사람만이 거슬러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용기와 체력이 필요합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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