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24일
내가 교단에 정식으로 입문한지도 어느덧 반년이 다 지나간다. 처음으로 내가 보살펴야 할'반' 아이들을 만났고 그럭저럭 생활하여 방학을 맞았다. 그동안 내가 아이들을 올바르게 대하고 있는지 순간순간 고민되고 내 자신에 실망스럽기도 했으며 보람 있기도 했었다.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순간에 느꼈던 것을 기억하고 싶어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가져왔었지만 막상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았었다. 현재 직무연수를 받고 있다. 물론 수업내용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임용을 공부하던 내게 크게 생소하거나 영 새로운 것은 없으나 공부했던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도 경력이라고 무뎌지려고 하는 나의 교단생활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나를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같다.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예전에 하려고 했던 것들을 다시 불쑥불쑥 떠올리며 빨리 해보아야겠다고 마음이 급해진다. 그 중 하나가 교단일기를 오늘부터라도 꾸준히 써나가야겠다는 것이다. 이에 급하게 쓰는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지만 첫머리를 열어본다.
연수를 받으면서 드는 질문 ! 교사... 국어교사.... 국어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커리큘럼이 없다면, 아니면 그러한 것을 제쳐두고 나에게 무한한 자율권을 준다면,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국어교사로서 가르쳐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이제까지 국어교사로서 나 자신이 중심이 서지 않은 채 교과서에 의존한 채, 시험준비를 하느라 급급했던 것같다. 국어교사.... 무엇이 먼저일까?
2003년 7월 26일 토요일
윤경이... 직무연수 재택과제의 주제가 '교실에서의 문제행동 수정'이다. ABC행동수정이론에 근거해서 학생의 실제 문제 행동을 예를 들어 진단하고 처방책을 생각해보는 과제이다. ABC행동수정 이론을 읽으면서 어떤 식으로 글을 써야할 지 찬찬히 생각해본다. 먼저 교실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문제행동에는 어떤 것이 있었나? 지각하는것, 과제를 충실하게 해오지 않는 것, 수업시간에 짝지랑 귓속말하는 것, 자는 것, 큰 소리로 혼자 대답하는 것, 떠드는 것, 친구에게 말시키면서 건드리는 것, 낙서하는 것 등등 그러면서 각 행동에 해당하는 특정 아이들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이런 것을 두고 낙인을 찍는다는 건가? 어쩌면 나는 이미 이 아이들을 이런 아이들로 규정하고 그렇게 대우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를 항상 조심하고 아이들을 선입견없이 대하려고 노력은 해왔었지만 100% 그렇게 대우했었다고는 말하기에는 자신이 없다.
그러면서 오늘 집중적으로 생각한 사람은 윤경이이다. 나와 학급아이들과의 관계는 그런대로 괜찮다고 내 나름대로는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그래도 순진하고 착한 것같고 귀엽다. 아이들도 내 혼자 생각에 그래도 나에게 적대적이지는 않다. 내가 아이들을 아끼는 마음을 알고 그들도 나를 아껴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 마음속에 묵직하게 들어있는 아이가 윤경이다. 윤경이를 생각하면 좀 마음이 불편하다. 외모도 무뚝뚝하고 무섭게 생겼으며 덩치는 이미 나보다 크다. 입이 거칠고 난폭한 행동들을 가끔 한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나나 반장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할 때가 있다. 수업시간에 수업흐름을 끊는 엉뚱한 행동을 한다. 잘못을 했을 때 야단을 치면 잘 수긍하지 않았다. 몇 번 불러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그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겉으로나마 호의적인 관계를 형성했고 나를 보면 미소를 살짝 지을 줄 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윤경이가 교사의 기준으로 볼 때 문제적인 행동(청소시간에 다른 반에 가서 논다든지, 엉뚱한 행동을 하고 다니는 것등)을 많이 하고 나는 그것에 대해 야단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야단을 많이 친다... 결코 웃으면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번 두 번 큰 소리를 치게 되고 인상을 찌뿌리게 된다. 학기 초 서로가 서로에게 서먹한 상태에서 이런 행동들은 아무래도 서로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게 할 수 밖에 없다. 윤경이와의 사이에 풀어야 할 얽힌 실타래가 있음을 느끼고 불러 이야기를 했다. 나는 우선 선생님으로서 문제를 찝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을 설명했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과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별개의 일임을 분명히 했다. 학생들이 완전해야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불완전하니 학생이고 선생님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모든 아이들을 꼭같이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학생의 잘못된 고쳐야 할 행동들을 지적하는 것뿐이라고. 윤경이의 재치와 듬직함을 좋아한다고 윤경이가 선생님을 보고 웃어주는 것이 선생님은 좋다고. 그러나 나의 말들은 윤경이의 귀에 쉽사리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지적하는 윤경이의 행동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윤경이는 인정하지 않았다. 윤경이는 선생님이 자기만을 미워해서 계속 야단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가장 답답한 일은 윤경이는 내가 야단을 칠 때 아예 대꾸를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리는 것이다. 서로가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는 서로 의견을 절충할 수 없다. 오히려 감정 썩힌 말로 더 많은 오해의 소지만 남길 뿐이다. 감정이 가라앉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주일 간 시간을 주었다. 일주일 후 다시 이야기하자고 . 선생님도 다시 너와 나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오겠으니 윤경이도 찬찬히 생각해 보았으면 하고 다음에는 윤경이가 선생님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달라고 . 일주일 후 윤경이를 불렀다. 감정이 많이 풀려있었다. 비록 스스로 나에게 이야기를 풀어놓지는 못했어도 선생님이 밉지 않다며 내 말에 '네' '네'라고 수줍게 대답하며 배시시 웃는다. 그 후 그럭저럭 날들이 지나갔다. 그 후 윤경이와 다시 한번 충돌했었다. 윤경이는 미리내에 대해 알 수 없는 감정 나는 윤경이와 어느정도 호의적인 관계룰 맺었고 협조적으로 행동하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받아내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윤경이의 행동이 어떻게 해서 형성된 것인지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경험많은 선생님들은 항상 이야기한다. 문제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다 그 원인이 있다고. 대부분 결손가정인 경우가 많고 아니면 부모님의 잘못된 교육방식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윤경이의 경우는 딱히 이렇다할 원인을 찾지 못했었다. 결손가정도 아니고, 부모님과 전화통화를 해보았지만 부모님은 윤경이가 별 문제없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윤경이의 자기소개서에 봐도 가정의 문제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윤경이와 어떻게 그럭저럭 지내게 되면서 그냥 이선에서 만족하자는 마음이 커서 더이상 원인을 알아보려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상 마음은 찜찜했었다. 근본 원인을 파헤쳐 제거하지 못하고 그냥 덮어버렸다는 ....
2003년 8월 9일 아침 아홉시
어제 일을 빨리 정리해 적어야 할 것같아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방학 중에 우리반 아이들끼리 조를 만들어 하루씩 '선생님 만나는 날'을 정했었는데 어제가 만남 첫 날이었다. 12시 대영 시네마 유나, 차영, 수진이 ... 늦을까 부랴부랴 택시까지 잡아타고 갔는데 얘들은 조금 늦네^^ 20분쯤 후에 쬐그만한 애 3명이 서로서로 팔장을 끼고 두리번 거리며 나타났다. 변함없는 모습.. 자 무슨 영화를 볼까? 일곱 조나 되고 모든 조가 다 영화를 보자고 했었기에 난 같은 영화를 몇번씩 봐야 할 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굳게 다지고 왔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는 '여고괴담-여우계단'아니면 '4인용 식탁' '터미네이터3' 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근데...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들의 말에 내가 아이들에 대해 규정짓던 틀이 다시 한번 깨지는 느낌... '선생님, 차영이가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보고 싶데요!' 그 순간 속으로 '아니 그건 초등학교 수준이잖아?'라는 생각이 얻듯 지나갔지만 겉으로 내색은 않고 그냥 '그래? 그거보고 싶어? 수진이랑 유나도? 그러면 그거 보자'라고 말했다. 새삼 아이들이 아직 얼마나 어린가, 얼마나 순수한가라는 생각을 하며 내가 이제껏 아이들의 눈높이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아이들 그들만의 세상을 몰랐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표를 끊고 아이들과 햄버거집을 들어갔다. 막상 점심을 먹기 위해 거리로 나왔지만 어디로 데려가야 할 지 막막했다. 가장 만만한 곳이 햄버거집이었다. 오늘 만난다는 것에 설레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는 차영이. 연신 방긋방긋 웃는 유나에게 계속 소곤소곤... 수진이는 딴 곳을 보고 멍하니 있거나 말을 하지 않아 답답하게 하는 건 여전했다. 그러고서는 미안한지 가끔 '선생님, 왜 그러세요?'하는 투로 눈을 둥그렇게 뜨고 본다. 아이들은 그런 수진이를 탓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언제나 먼저 수진이의 뜻을 해석해주고 도와준다. 감싸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삼 아이들의 고운 마음에 내 마음까지 젖어든다. 항상 느꼈던 것이지만... 잊고 있었다. 그러면서 수진이의 저 상태를 그냥 감싸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수진이를 도와주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말문을 열도록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 방법에는 여러가지이다. 다그치거나, 체계적인 방법을 강구하거나, 감싸주고 이해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열리기까지 기다리거나 ..... 나는 이제까지 세번째였던 것같은데 효과는 ... 글쎄... 극장에 들어가서 '갈갈이패밀리와 드라큐라'를 보며 연신 웃는 아이들을 보며 내 어린시절 '우뢰매'를 보며 즐거워하던 나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나를 억누르던 어른의 선입견과 권위를 벗어던지고 오랜만에 순수하게 개그맨들의 말장난 하나에, 동작 하나에 즐겁게 웃었다. '차영아, 니 덕에 오늘 좋은 영화봤다'
2003년 8월 9일 오후 열한시 오십분
오늘 방학중 우리 반 모임을 두 번째로 가졌다. 멤버는 윤경이랑, 소임이랑, 나영이 영화는 '여우계단'. 우리 반 아이들 중 사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방학전에 걱정했었다. 방학을 보내면서 아주 나쁜 방향으로 변하면 어쩌나... 다행히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윤경이는 이제 나에게 잘 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어렵나 보다. 조금 나를 대하는 태도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애써 웃어주고 신경써서 대답하고. 더 많이 , 내가 먼저 사랑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나영이가 문제다. 나에게 아직 마음이 안 열려있다. 어색해한다. 어찌 모든 학생들이 다 나를 친구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으랴만은...
2003년 8월 10일
우리반 모임 세번째. 혜란이, 성미, 혜림이, 승희... 영화는 '여우계단'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공포영화를 두번째보는 일은 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다음에 무슨 장면이 나올지 , 다음이 무서운 장면이란 것을 알고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은 앞에 봤던 장면을 더욱 뚜렷히 부각시키면서 배는 더 무섭게 느껴지게 했다. 혜란이는 여전히 나를 어려움없이 놀려대며 까불까불.. 그러기에 혜란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편하다. 성미도 숨을 한번 꾹 넘기면서 '근데,선생님 있잖아여~'하며 이 얘기 저 얘기한다. 혜림이는 참하고 착하지만 나에게 아직 마음을 열고 편히 대하지는 않는 것같다. 승희도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형이고 먼저 다가와 말문을 트는 아이는 아니다.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특별히 더 할 일을 만들지 않고 헤어졌다. 어정쩡하니 같이 있는 것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 것같았으므로. 이미 아이들의 방학 생활을 다 파악해버린 후이므로 특별히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난감하다. 첫만남의 설레임이 오늘은 조금 준 느낌이었다^^...
2003년 8월 16일 토요일 오후 아홉시 오십분
우리반 모임 네번째 . 송희랑, 은혜 남포동대영시네마에서 보았다. 영화는 '갈갈이'... 이 만남이 이제 조금 허무하게 느껴진다. 처음 취지는 아이들과 편히 , 한가롭게 만나서 서로에 대한 조금은 속깊은 이야기들을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이부러 친한 아이들끼리 조를 짜도록 했다. 일곱조나 나왔고 그것은 내가 칠일은 매일같이 애들을 봐야한다는 것을 의미함에도 감수하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 조 , 한 조 만날 때마다 생각보다 속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고 어색하기만 해서 아이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숙제는 다 해가나?' '학원 갔다 왔니?' '휴가는 다녀왔니?' 이런 뻔한 질문을 하고 나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할 지 감이 안온다. 모임이 갈수록 허술하게만 느껴지는 죄책감을 조금 덜고자, 모임을 의미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작동을 해서 헤어질 때 한마디 붙인다. '방학동안 생각보다 집에서 심심해하고 있을 것같아서 이렇게 영화라도 보는 이벤트를 만들어본 것이라고. 재미있었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괜히 너희들을 불러낸 것은 아니지? 귀찮아하면서 나온 것은 아니지? 내일은 민지, 진화, 민영이, 유진이 등 일곱명을 만난다. 왜 이리 부담스럽게 느껴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