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영이랑 금산 보리암에 다녀왔다. 처음엔 정동진으로 일출을 보러 가려고 가차표도 예매해 두었었는데 주위에서 볼것이 별로 없다고 했다. 지영이 시간이 이번처럼 나는 때가 없을 것같은데 거기까지 가서 달랑 해만 보고 오기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리암... 항상 먼 산과 들을 볼 수 있는 여행은 크든 작든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잘 모르는 낯선 곳을 찾아 갈 때 더욱 그렇다. 이곳도 책에서 이름만 듣고 문득 떠올린 곳이다. 이름만 들었었는데 그 실체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 기대되었다. (물론 그렇게 거창하고 으리으리한 무엇도 아니지만...^^)

여덟시 남해읍 버스를 아슬아슬하게 잡아 탔다. 부산-마산 간의 익숙한 풍경이 아니라 처음 보는 지명이 쓰인 간판의 새로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 향할 때면 어김없이 시야가 넓어지며 낮은 산들과 넓은 논밭, 스레트 지붕의 농촌가가 나타난다. 작년 봄 전라도를 가보고 개인적으로는 아직 드넓은 들,논밭,푸른 색 일색인 것이 무척 사랑스러웠었다. 하지만 전라도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제껏 소외되어 있었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해도 그렇고 부산도 그랬고 바다와 육지는 서로 명확히 나뉘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육지, 여기부터는  바다... 하지만 남해에는 바다와 육지가 혼합되어 있었다. 바다 여기저기 푸른 숲을 머리에 인 섬들이 불쑥불쑥 솟아있었고 바닷물이 마을 어귀를 감싸고 들어갔다 나갔다 하고 있었다. 바다가 마을을 감싸안아 주는 건지, 마을이 바다를 감싸안아 주고 있는 건지...바다와 마을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보며 아 이런 곳이 어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마을은 뒤에 바로 산을 등지고 있었고 그 산은 어김없이 층층히 평평하게 깎여 논이나 밭으로 쓰이고 있었다. 저런 논을 뭐라고 했더라? 옛날 학교 다닐 때 들었던 것같은데... 아무튼 이런 모습은 남해의 특징적인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남해읍에 내려 '미조'행의 표를 끊었다. 버스에 올랐을 땐 승객이 몇명 없었다. 운전사 아저씨께 보리암 가는 차 맞냐고 여쭈었는데 아저씨께서는 '아가씨들이 거긴 왜? 거긴 얘기 못 낳는 아줌마들이 가는 곳인디?'하신다. 확실히 영험하다고 소문난 기도처가 맞는가보다. 그래서 '그거 말고 다른 거 빌러가는데요'하니 '뭐 남자 만나게 해 달라고 빌러가는감?'하신다. 우리는 웃으며 '그것도 좋네요'^^한다. 아저씨는 작년 따님이 친구 몇명을 데리고 금산에 올라갔었는데 그친구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 하시며 넌지시 따님이 부산의 모 초등학교교사임을 흘리신다. 남자친구 이야기도 하시고...물론 은근한 자랑스러움이 배어있다. 아마도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처음이 아닐 것이다. 우리와 같은 또래의 아가씨들이 탈 때마다 이 말씀을 하시겠지... 버스를 타고 항상 같은 노선을 달리며 똑같이 지루한 일상에 시달리시는 아저씨에게 아마도 자랑스러운 따님은 아저씨의 수고로움을 잊게 하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우리 아버지도 다르지 않겠지?.... 

버스는 전혀 버스 정류장같지 않은 곳에 우리를 내려두고 떠났다. 일직선의 차도 옆으로 휘어져 조금 경사진 도로가 하나 더 나있다. 그리로 가야 할 것같다. 지영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다 문득 눈을 드니 산중턱에 기이한 모양의 육중한 바위들이 보였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것들이 그대로 거기 있는 것이었다. '저게 무슨 바위더라? 무얼 닮았지?' 이름을 떠올리려 해도 앞날 급하게 보아서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아는만큼 보인다!' 다음에는 좀 더 준비를 하고 와야겠다. 금산은 유독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가득히 박혀 있어 볼거리가 있는 산이다. 더군다나 정상에 오르면 한려수도가 눈앞에 들어오니 더욱 그렇다. 전체적으로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은 산이지만 아기자기하게 꽉들어찬 매우 알찬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분쯤 걸어 들어가니 주차장과 입장권을 끊는 곳이 나왔다. 입산하는데 1600원 문화재관람권 1000원 결국은 2600원... 널려있는 산에 올라가는 것도 공짜가 아니구나~

그런데 거기에서 보리암까지 차도가 닦여 있고 운행버스도 있었다. 운행버스는 출발시간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고 타려는 사람이 20명 정도 모이면 출발한다고 했다. 차비는 1000원. 우리는 당연히 걸어 오르려고 마음먹고 왔는데 운행버스가 있는 것을 보고 꽤 당황스러웠다. 저걸 꼭 타야만 하는걸까? 근데 얼마나 멀길래 운행버스가 있는 걸까? 버스운행하시는 분들은 걸어올라가기 힘들다고 꽤 멀다고 하셨다. 그 말에 우리처럼 처음오신 것처럼 보이는 분들은 석연치않은 표정으로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신다. 지영이와 나는 저걸 타고 오르면 이 여행이 영 싱거울 것같아 걸어오르기로 결심했다. 매점 아주머니께 나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올라갔다.

우리가 걸어 올라가는 동안 연신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그 경사진 길을 쌩 ~올라 갔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사진도 찍고 새소리도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올라갔다. 오히려 걷는 사람은 우리뿐이라 한적하니 더욱 좋은 것같았다. 보리암부근에 도착을 하여 시간을 보니 1시간 반정도? 피~ 이것밖에 안걸리는데 사람들이 엄살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버스운행하시는 분들이 이윤을 생각해서 한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그러셨다는 생각도 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이 목적이 아니라 기도가 목적이었던 것같다.

소원을 하나씩 빌려고 오면서 포장된 길을 자가용 또는 버스를 타고 8분 정도에 올라가 세번 절을 하고 내려온다. 그러면서 영험한 곳에 빌었으니 소원이 이루어질거라고 흡족해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득 요즘 사람들 너무 편하게 쉽게 하는 것같다. 옛날 사람들은 포장도 안 된 길을 못해도 반 나절이 걸려 올라갔을텐데... 이 지방 사람이 아니라면 그 먼길을 걸어서 왔을테고... 그 수고로움도 모자란 것같아 백일기도, 삼백배, 팔백배 절을  하였을텐데... 그런 치성이 눈물겨워 부처님이 소원을 안들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심혈을 기울인 심도있는 과정없이 즉석복권처럼 즉각적이고 대단한 결과만을 바라는 것같다.

보리암에 올라갔을 때 겨울안개로 바다를 내려다 보지는 못했다. 신전과 해수관음상, 수로왕의 부인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으로 쌓았다는 작은 삼층석탑. 모두다 책에서 봤던 것과 똑~같이 있었다. 지영이와 함께 어색함을 무릅쓰고 못하는 절을 했다. 지영이는 이렇게 절하는 것 처음이라며 나를 따라 했다. 나도 못하는데^^

'보리'는 '깨달아 도를 이루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성계가 여기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 조선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고마움의 표시로 이성계가 이 산에 비단 (금)자를 써서 '금산'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한다. 그 뒤로 이 곳이 영험하다고 소문이 났고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 기도처의 하나이다. 이곳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해수관음상(우리나라에만 있는 관음보살이다)은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내려왔을때도 보리암까지 가려는 자가용이 삼십분이상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모두 다 기도가 목적이다. (차를 마음대로 올라가게 하면 산이 전부 주차장이 되어 이 금산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 극성에 아마 일년이면 다 훼손될껄? 그래서 정상부근의 주차장에 차 수를 파악해서 아래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자가용수를 통제하고 있었다. 이 마땅한 사실에 놀랐다. 이 고장사람들이 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에...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아래에서 기다리는 자가용분들은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에 불만이 가득했다. 통제하시는 분께 욕을 하며...싸움날 뻔했다. 그러고 올라가면 부처님이소원을 들어주실까?)

삼십분 가량 기다려 남해읍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승객은 우리 둘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가용을 이용하므로. 아저씨는 아내분이 마산사람이라며 다음에는 이 길쪽 말고 반대쪽 상주에서 올라가보라고 하셨다. 포장도 안 되어 있어 정말 등산하는 것같고 풍경이 더 좋다고... 이런 것이 조금 고생은 해도 버스로 여행할 때 그 고장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낄 수 있는 맛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의 짧은 여행.. 금산은 작지만 알찬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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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교사 2004-01-16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우리반 카페에 올렸었는데 우리반 아이들의 반응><

신아름 와...다못 읽겠어요.... 진짜 짧은여행은 아닌것 같아요... [2004/01/06]

김유나 저는 정동진 갔다 왔어요..배같이 생긴 호텔이 있던데요, [2004/01/06]

이소임 글제목색 검정으로 수정해주세요,오늘안으로 안되면 삭제됩니다, [2004/01/06]

이소임 다 읽는다고 힘들었어요 ㅠ 재밌었겠다는 생각이 .. [2004/01/06]

김미리내 재미있으셨겠네요, 글이 많아요^^.. [2004/01/06]

주민영 선생님 ㅡㅡa 민영이가 읽기에는 그냥 못 읽겠네요.. ㅎㅎ [2004/01/06]

이소임 글제목색 제가 그냥 수정했어요,도저히 삭제는 못하겠더라구요,아프로 조심해주세요'ㅇ^ [2004/01/07]

고나영 ●선생님 넘길어요, 방학끝나면 아주아주짧게 말해주세요오,,● [2004/01/08]

천진화 길어서 안읽음...ㅡㅡ;; [2004/01/08]

김민지 선생님, 처음글귀랑 마지막 글귀만 봤어요, 지영이라는 사람이랑 등산?ㅎㅎ 그리고 밑에서 세번째줄에 등산하는 것같고 가 아니라 등산하는 것 같고 예요(띄워쓰기,)<쌤이 꼬집지 말라고한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