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밀리언셀러 클럽 50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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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감기로 골골거리고 있었어요. 남자친구가 옮긴 감기로, 혹시 신종 플루가 아닌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심한 감기였죠. 하필이면 중간고사 기간에 감기를 옮기다니 나빠요. 물론 감기 핑계로 공부도 안했기 때문에 시험도 당연히 망쳤죠.

뭐 시험을 망친 이야기는 중요한게 아니죠. 어차피 지나간 시험인데 뭐 어쩌겠어요? 하지만 저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에 책을 고르기 정말 까다로웠어요. 제가 잊고 있는 사이 미야베 미유키의 책이 하도 많이 나와서 미야베 미유키만 읽어도 한 달이 가버릴 기세였죠.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를 읽고 싶진 않았어요. 다른 일본 작가의 책도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았어요. 이런 피곤한 상태에서 교고쿠도 시리즈 같은 걸 실수로 또 고른다면 도저히 몸이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더라고요.

일단 일본문학 코너는 패스하고 근처의 중국문학 코너를 서성여 보았어요. 젊은 중국 작가들의 몇몇 책들이 저를 유혹했지만 저는 현대 중국문학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어요. 모험을 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죠. 그렇다고 역사책을 읽고 싶지도 않고, 한국 문학도 안되고, 중남미 것도 안되겠고…….

읽고 싶은 책이 없고 몸이 아프면 집에나 갈 것이지, 신경통 걸린 노인네처럼 구시렁구시렁 불만도 많지요.

마음가짐을 바꿔 보기로 했어요. 시대물과 시리즈물이 아닌 것 중에 아무 거나 골라 보기로 했어요. 그 아무거나가 스티븐 킹이라니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원사운드님이 그린 소개 만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저는 아무 책도 못 고르고 집으로 갔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만화 덕분에 이 책이 "어린 여자애가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서 라디오 너머로 전해지는 야구선수 톰 고든의 활동상으로 용기를 얻는 이야기"라는 정도를 알고 있었어요. 결말은 모르지만 일단 그 여자애가 죽을 것 같지는 않아서 이 책을 집어 들었죠.


이 이야기는 엄청나게 강렬한 심상을 전달하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스티븐 킹이 자주 그리는 미지의 무엇에게 쫓기는 이야기이기는 해도 생각만으로도 뇌가 조여드는 기분이 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를테면 《스켈레톤 크루(상)》에 실린 〈안개〉나 〈뗏목〉같은 거요)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예요. 주인공이 어린 아이이다 보니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해져서 더 긴박한 마음이 드는 것은 있죠. 9살짜리치고 너무 꿋꿋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만으로 따지면 4학년짜리일테니까 그리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아니겠다 싶더군요.

야구선수가 주요 인물(?)이다 보니 호감을 가진 것도 있죠. 이 블로그만 봐서는 알기 힘들겠지만 저는 야구 팬이거든요. :) 물론 해외 야구는 잘 모르기 때문에 톰 고든이 실존하는 선수인지 아닌지도 몰랐지요. 스티븐 킹이 레드삭스의 굉장한 팬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요.

야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책에서 크게 거슬리는 번역은 없지만, 번역자가 야구 중계를 일년에 4, 50 경기 정도 꾸준히 보는 아는 사람에게 원고를 한 번 읽어 달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은 있더라고요. 지금 생각나는 건 "투수의 송구" 같은 건데, 투수가 수비하는 과정에서 공을 잡거나 주워서 다른 수비수에게 던졌다면 송구가 맞겠지만 투수가 타자와 승부할때 던지는 공은 투구라고 하거든요. 이런 자잘하게 어색한 부분을 그 아는 사람이 찾아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야구 팬에게 자기가 사랑하는 야구 선수의 태도가 전하는 교훈이랄까 시사점이 인생자체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은 흔하기 때문에 이 책은 충분히 재밌었습니다. 2007 시즌이 시작하기 직전에 야구로 돌아온 저는 저보다 어린 선수들이 그렇게 열심히 야구를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인생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된 경험도 있기에 더 그렇게 느껴져요. 지금도 김현수 선수나 특히 좋아하는 배장호 선수처럼 스물다섯도 안된 친구들이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무는 걸 볼 때면 놀랍고도 뜨끔하지요. 하하.;


역시 책이라는 것 자신의 경험과 결합하여 공감을 불러 일으킬 때 더 재밌게 느껴지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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