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씽커블 - 생존을 위한 재난재해 보고서
아만다 리플리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후에 시릴로는 파트너가 혼란스런 총격전 중에 그의 머리에서 15센티미터 떨어진 곳에다 엽총을 갈겨댔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릴로는 사실 그를 보지도 못했고, 총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모두 일곱 발의 총알이 날아왔지만, 다행히 모두 그들을 피해갔다. 그런데 시릴로의 귀는 그 뒤로도 한동안 들리지 않았다. 그의 뇌는 그가 단순히 총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물리적 영향도 받지 않도록 귀를 막아버렸던 것처럼 보인다.


116쪽

언 씽커블은 재난에 처한 인간의 반응에 대한 책이예요.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은 이러저러하니 이러저러한 훈련을 통해서 재난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죠. 이렇게 쓰고 보니 좀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저는 이 책이 주장하는 훈련을 통해서 자동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정한답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크게
1. 강력한 재난을 만난 사람이 본능적으로 보이는 반응은 무엇인가?
2. 그런 재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로 나눌 수 있어요.

각 장마다 이런 구성으로 나눠져 있는데 제 친구들은 이 책이 재난에 처한 사람의 실제 상황에서 본능적을 보인 반응에 대해 적은 다음에 -> 한참 딴소리 -> 그래서 그 사람이 이렇게 해서 살아 남았다! 는 식으로 구성해서 갑갑한 걸 빼고는 훌륭한 책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하.

전 특히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에 대한 부분이 재밌었어요. 주로 재난영화나 전쟁 영화에서 다뤄지는 모습이긴 한데 제가 그런 극적인 상황에 도달해 본 적은 없어서 한 거리 뒤에서 보게 되더군요. 생각해 보면 꼭 그 정도의 극한의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터널 시야(위기 상황에서 시야가 줄어드는 현상)'이나 일시적으로 귀머거리가 되거나 하는 등의 경험은 저 역시도 겪어 보았다고 해야겠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에게는 위험이나 충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육감의 왜곡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하고는 있지만 평소에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특별히 남일처럼 여겨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책은 지질이나 내구도, 번역 모두 거슬리는 부분 없이 훌륭하며, 원서의 구성(으로 보이는) 권말 부록도 잘 나왔습니다. 저자는 《타임》지의 기자라고 해요. 전 좀 《스티프》의 메리언 로취를 떠올렸죠. 메리언 로취만큼의 유머감각을 갖추진 못했어요. 그런 점에서는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의 로렌 슬레이터도 있는데 이 여자는 잘 쓰다말고 저로서는 도저히 안 궁금한 자기 이야기를 주절주절해서 책을 망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빼두기로 하죠.

이 책을 읽는 도중 저는 우울과 회피, 짜증과 극심한 스트레스 안에 있었어요. 책은 재밌게 읽었지만 좀 멍했으며, 이 책의 많은 장에 책갈피를 끼워두었지만 영 감상문을 쓸 기분은 나질 않네요. 오랜만에 쓰는 감상문이 이래서 죄송해요.



사 실에 따르면, 백인 남성의 약 30퍼센트는 대부분의 위험 상황에서 위험을 거의 보지 않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들이 대부분의 성별 격차와 인종 격차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슬로빅은 이런 백인 남성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미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높은 지위와 위계질서, 권력의 세계를 좋아하죠." 슬로빅은 말했다. 그들은 테크놀로지를 신봉했고, 사람들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다른 어떤 집단보다 강력하게 반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은 대개 백인 남성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보다 중요한 요소는 그들이 세계와 세계에서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었다. 백인 남성이라도 사회에서 차별받거나 소외되었다고 느끼면, 그는 걱정이라는 측면에서 여성들과 소수집단 쪽에 속하는 경향을 보였다.

142쪽
이 인용구의 앞에 다뤄진 내용은 남성에 비해 여성이 공포에 대한 걱정이 더 강하지만, 성별의 차이로 나누려고 할 경우, 흑인 남성 역시 일반 여성만큼이나 공포에 대한 걱정이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여요. 즉 알고 보니 좀 더 권력 지향적이고, 위험을 감수하기 좋아하는 종류의 남자들이 (더 쉽게 위험에 노출되어 사망하므로) 일반적으로 남성이 좀 더 위험을 감수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이야기였어요. 대개 드라마에서 이런 캐릭터들은 늘 일찍 죽죠. 통계적으로 올바른 이야기였네요. :)


현재 갈리아의 소프트웨어는 서른다섯 개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갈리아는 화재 전에, 나아가 건물이 지어지기 전에 자신의 소프트웨어가 사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소프트웨어는 대개 화재 뒤에 조사를 위해 사용된다. 사용 횟수가 가장 많은 (역사 자체가 재난으로 가득한) 나라는 한국이다.(후략)

187쪽
lol


하 지만 마침내 런던 상공에서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예상과는 전혀 달리 침착하게 행동했다. 몰리 팬터-다운스는 전쟁이 시작된 후, 『뉴요커』에 주목할 만한 특전을 보내 런던 시민들의 대담한 침착성을 묘사했다. "영국인은 세상에서 가장 차분하거나 아니면 가장 멍청한 사람들이다." 정보부 장관은 국민적인 유머 감각에 호소하며,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올바른 영국인적 행동"을 묘사하는 재치 있는 일련의 선전을 시작했다. "공습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공황에 빠지지는 않을 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지. '그런 건 우리의 친구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거야.' 등등." (등등이라는 말의 태연스런 쓰임에 주의하라.) 4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최초의 대규모 공습 이후, 열차 통근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얼마나 큰 폭탄 구멍이 났는지 자랑하곤 했다. 팬터-다운스에 따르면, 그들은 "평화로운 여름날, 그들 지역에서 재배한 장미와 호박을 자랑하듯" 했다.

223-224쪽
강조는 원문 강조
이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영국인 관련 농담인데(;) 실제로는 사람들이 공황에 잘 빠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황에 빠지는 상황이 몹시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생각보다는 그렇게 쉽게 공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아주 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왜 그런지는 직접 읽어 보시는게 좋을 거예요.


2005년 1월 갈리아는 그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실험을 계획했다. 브라질인은 어떨까? 그들은 불시의 화재 경보에 영국인과 똑같이 반응할 것인가? (중략)
우 선 갈리아는 영국인을 테스트했다. 그는 학기 초에 그리니치 대학교의 도서관에서 예고 없는 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은 매우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 그 뒤 갈리아는 브라질로 날아갔다. 그는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 브라질 당국이 자신의 동료들만큼 그들 국민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훈련(화재 안전 의식이 투철한 영국에서와 달리 브라질에서는 화재 훈련이 이상한 일이었다)이 군중 사이에서 공황을 야기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이 너무 불안해했기 때문에, 갈리아는 실험을 거의 취소할 뻔 했다. 어떤 고위 관료는 실제로 사람들이 혀를 깨물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수십 명의 죄 없는 사람들이 잘린 혀를 바닥에 내뱉고 도서관에서 혼비백산하여 달려가는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데 그게 단지 연구를 위해서라니! 어쨌든 갈리아는 도서관에서 예고 없는 훈련을 실시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실험 결과, 브라질인은 영국인만큼 이성적으로 질서 있게 행동했다.(하략)

225쪽
역시 공황반응에 대해 다룬 챕터에서 나오는 이야기여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흔히 생각하는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는 정부와 시민의 믿음 관계, 시민과 시민의 믿음 관계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나라가 더 후진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정부에 가지는 믿음과 우리가 우리 사이에 갖고 있는 믿음의 희박함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죠. 물론 후진국과 선진국이 있다고 한다면 말이죠.


콰란텔리의 결론에 따르면, 공황은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일어난다. 첫째, 사람들이 한곳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야 한다. 완전히 갇혀버렸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잠수함 사고 때, 예컨대 2000년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 호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공황을 일으키지 않았다. 승무원들은 탈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잠수함이 있는 바다 깊이를 감안하면, 해치(hatch)를 열고 헤엄쳐나간다 하더라도 아무도 살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쩌면 갇힐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공황이 촉발될 수 있다. 심지어 넓은 빈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쟁 난민들은 넓은 평지에서 기총 소사를 가해오는 비행기를 만나면,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갑자기 느낄 수 있다. 빌딩 안의 사람들이 지진 때 모든 출구가 잔해와 파편으로 막혀 버릴지 모른다고 두려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콰란텔리는 그렇게 썼다.

226쪽
강조는 원문 강조
두 번째, 세 번째 조건은 직접 읽어보셔요. '~'


(전략)또 레이크 워비건 효과(레이크 워비건은 개리슨 케일러가 지어낸, 평균 이상의 사람들이 사는 가상의 마을 이름이다)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운이 좋은 축에 들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227쪽
이건 별 것 아닌 인용문인데, 이 책 앞부분에서 또 본 건지 아니면 다른 책에서 본 건지 최근 한 달 사이 레이크 워비건 효과에 대해서 두 번이나 읽었어요. 신기해서 인용해 봅니다.


그 밖에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오천석의 《스승》, 《밤을 사냥하는 자들》, 《동아시아의 영혼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이어요. 이 중 가장 빨리 읽어야 하는 책은 반납이 임박한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이네요. 보면 볼수록 한숨나오는 책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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