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지음, 박상준 옮김 / 옹기장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SF보다 판타지에 더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저를 이 길(장르)로 인도한 건 SF였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렸을 때에도 가정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고,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조르는 성격도 못 되어서 책 더 읽고 싶다, 더 사달라 이런 말은 결코 못 했어요. 사실 책이라는 걸 그렇게 쉽게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지도 않았구요.

이때는 가지고 있는 책을 대여섯 번, 많게는 순서대로 문장을 다 외울 정도로 읽었죠. 그러다 보니 《어린이 자유》를 가장 좋아했지요. 나중에는 《신 통일》같은 것도 들어오기 시작해서 더 좋았어요. 월간지였거든요. 달마다 새 책이 학교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일은 그것 말고는 없었으니까요. 아마 학교에서 그 책 읽고 있었던 건 저 하나뿐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제목 확인하며 보니 제가 이 잡지들의 마지막 세대더군요.

당시 어린이라는 단어에는 반드시 ‘공상과학소설’이 따라다니고 있었고, 과학이니 우주니 해양이니 하는 단어가 어린이라는 단어와 늘 함께 했어요. 저도 그 혜택 속에 있었고요.반공 잡지에도 SF소설이 실리곤 했으니 오죽했겠어요?

학교에 잘 들어오는 책 중에도 ‘공상과학소설’이 참 많이 있었구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랐기 때문에 지금은 그때 읽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도 힘들지만, 당시의 알려지지 않은 많은 ‘공상과학소설’ 작가들께 감사드립니다.

SF라는 장르가 2008년에 와서 이렇게나 멀고도 낯설게 느껴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죠. 전 아직도 SF를 읽을 때면 아이들이 다 가고 없는 교실에 앉아서 《어린이 자유》를 읽던 때를 떠올려요. 출석 번호는 5번, 비척 마른 데다가 전학한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책만 읽던 여자애. 외롭다고 생각했지만, 심심하진 않았어요.

당시에는 하인라인이 쓴 책들을 많이 읽었고, 그 이후로 미하엘 엔데와 어슐러 르귄을 읽게 되었어요. 아서 클라크는 이제서야 겨우 읽게 되었네요. 역시 좋습니다. 왜 지금 읽었나 후회가 될 정도로 좋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그때를 기억해 내고는 즐거워졌습니다. 공상과학소녀였던 80년대, SF가 번성했던 70년대. 참 따뜻한 색깔로 칠해져 있네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이 책은 지금 읽어도 전혀 낡은 느낌이 없습니다. 어쩌면 73년에 이런 글을 다 썼지? 하는 신기함은 전성기 SF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요.

구체적인 구상에는 약하다 보니 라마의 내부를 뚜렷하게 상상해낼 수 없는 게 아쉽네요. 상상도가 있긴 합니다만, 봐도 잘 모르겠어요. 어, 그게 이런 거였나? 싶고요. 《유년기의 끝》도 어서 구해 보고 싶은데 언제쯤 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라마와의 랑데부는 2009년 개봉을 예정으로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감독은 데이빗 핀처, 캐스팅은 모건 프리먼 한 명만 공표되어 있습니다. 노튼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소설 속의 노튼은 56세 정도로 기억 나는군요. 노튼이 흑인이라는 묘사는 없었지만 흑인이라도 별로 상관없긴 한데, 나이가 좀 차이가 나는군요. 위원회의 멤버 중 한 명이려나요? 내년이 기대됩니다. 아, 《유년기의 끝》도 영화로 제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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