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코너스톤 초판본 리커버
헤르만 헤세 지음, 강영옥 옮김, 김욱동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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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너스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싯다르타

내면의 성장을 돕는 인생의 여정

"사랑과 행함"

헤르만 헤세는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유리알 유희> 등 익히 유명한 작품들을 많고, 세세하고 섬세한 자아 성찰의 특색이 담겨 있다.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뇌와 맞닿아 있어 마음 속에서 솟아오르는 위로와 공감을 얻는다.

헤르만 헤세가 인도를 여행하고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싯다르타>는 이미 오래도록 사람들의 추천을 받는 고전이다. 내가 소설 속의 <싯다르타>가 되어 마치 새로운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고, 싯다르타의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하며 그가 느꼈을 번뇌와 고뇌의 중심에 함께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의 삶에 대해 뒤돌아 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싯다르타>는 다양한 출판사에서 수많은 번역을 통해 각기의 새로운 매력을 담아 출간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싯다르타>는 강영옥 옮김의 코너스톤 출판사 책이다. 어느 출판사의 책을 선택하든 상관없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코너스톤의 고급스러운 벨벳 양장과 초판본의 심플한 멋이 담긴 표지가 참 마음에 들었다.




숨으로 가서 사문이 되거라. 숲에서 열락이 무엇인지 깨닫거든 내게 와서 가르쳐 주려무나. 실망하거든 다시 돌아와 함께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자. 어머니에게 가서 입맞춤하고 네가 어디로 가는지 말씀드리거라. 첫 목욕재게 시간이니 이제 나는 강으로 가야 한다.

p20

싯다르타는 브라만의 아들이다. 브라만은 힌두교 카스트 제도의 최상위 계층으로 힌두교 사제들이 배출되는 계급이다. 모범적인 아들이었던 싯다르타는 경전의 암송, 제사 의식과 스승들의 가르침을 통해 힌두교 사제가 될 운명이었으나 이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바로 친구 고빈다와 함께 출가의 길, 고행자의 길, 수행자가 되는 길 즉, 사문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물론 문화적, 시대적 배경이 다르긴 하지만 현대에 적용하자면 재벌 2세가 기업을 물려받기를 거부하고 수행의 길을 가겠다고 공언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사제 혹은 승려가 되겠다고 하니 부모의 입장에서 상당히 당황스러울 것이다. 싯다르타의 부모 역시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으나 강경한 싯다르타의 의견을 받아들이게 된다.

불세존, 존귀한 분이시여, 저는 해탈이 가르침을 통해 이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존귀하신 당신이 무엇을 직접 체험했는지, 수만 명의 사람 가운데서 홀로 무엇을 체험했는지에 대한 비밀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P46

가우타마를 만나고 고빈다는 가우타마의 제자로 귀의한다. 그에 반해 싯다르타는 가우타마의 가르침이 고귀하고 분명 충분한 가치가 있을지라도 자신이 직접 경험과 체험을 통해 얻는 깨달음이 있지 않다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고 판단한다. 가우타마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솔직하게 전하고 고빈다와 가우타마와의 이별하며 새로운 길을 떠난다.


붓다로 인해, 위대한 앎으로 인해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어. 나는 다시 떠났고, 카말라에게서 사랑이 주는 쾌락을 배웠고, 카마스바미에게서 장사하는 법을, 돈을 모으는 법을, 돈을 탕진하는 법을 배웠고, (중략) 이 길은 정말 훌륭했고, 내 가슴속의 새도 죽지 않았어. 하지만 이런 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p117

카말라와 카마스바미와 보낸 오랜 시간 싯다르타는 속세의 삶을 살았다. 쾌락의 삶을 보냈으며 장사를 통해 큰 돈을 벌기도 했고 많은 돈을 탕진한다. 그러다 문득 꿈에서 죽은 새를 보고 자신의 현재에서 떠나기를 결심한다. 그렇게 뱃사공 바수데바와 만나게 된다.

카말라와 그녀의 아들(싯다르타와의 사이에서 나온 자식)은 붓다(가우타마)의 입멸(열반)로 순례길에 오른다. 그러다 카말라가 뱀에게 물려 뱃사공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카말라와 싯다르타는 재회한다. 뱀에 의해 카말라는 죽고 그의 아들을 맡게 된다. 아들은 부유한 삶에 젖어 싯다르타의 현재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떠난다.

지식은 전할 수 있지만 지혜는 전할 수 없지. 인간은 지혜를 찾을 수 있고, 지혜 가운데 살 수 있고, 지혜에 의지해 살 수 있고, 지혜의 경이로움으로 살 수 있네. 하지만 지혜를 말로 표현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지.

p172

바수데바는 평범하게 뱃사공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의 삶 자체가 수행과도 같다. 싯다르타에게 어떠한 조언이나 가르치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의 말을 듣기만 한다. 강을 바라보며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를 돕는다. 싯다르타에게는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스승과도 같은 존재다. 그렇게 뱃사공 바수데바와의 시간을 통해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는다.

나에게는 세상을 사랑할 수 있고, 세상을 경멸하지 않고, 세상과 나를 증오하지 않고, 세상과 나, 모든 본질을 사랑과 경이와 존경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 중요하네.

p178

고빈다와 싯다르타의 대화 중에서 싯다르타의 첫번째 깨달음에 대한 내용이다.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바로 모든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예수가 전하고자 했던 그 사랑을 싯다르타에서도 가장 중요한 본질로 여기도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모든 종교나 가르침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는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자네의 위대한 스승에게도 사물이 말보다 중요하고, 자신의 설법보다 행함과 삶이 중요하고, 자신의 의견보다 손짓이 중요해. 나는 설법이나 그의 사상이 아닌, 오직 행함과 삶에서만 그의 위대함을 보네

p179

그리고 바로 두번째 깨달음이다. 바로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상이나 설법은 중요치 않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사는 듯 하다. 아무리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한들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직 행함과 삶에서만 그 위대함을 본다는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싯다르타와 고빈다의 모습이 대비된다. 자신이 생각했던 방향과 다를 때 싯다르타는 과감하게 방향을 전환한다. 자신의 생각에 확고함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방향의 길에서 최선의 노력을 통해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자발적이며 진취적으로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싯다르타를 볼 수 있다. 반면 고빈다는 가우타마(붓다)의 가르침에 정진한다.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고빈다와 많이 닮아 있음을 느낀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답하기엔 쉽지 않겠으나 어쩌면 우리는 싯다르타의 방식처럼 도전해보는 삶의 행동이 깨달음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지름길인지도 들어 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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