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민의 개념사회 - 바른 언론인의 눈으로 본 불편한 대한민국
신경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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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적절한 대안이 없는 비판에 대하여 굉장히 아쉬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처럼 서로를 긁고 할퀼 뿐이지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적절한 대안'이란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숙고와 비판 의식,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이룩해내야 한다는 끈질긴 집념이 바탕이 될 때에야만 비로소 하나둘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 우리나라를 '개념' 있는 사회, 약자를 배려하고, 민주와 정의가 빛을 발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여러가지 대안을 담은 책이 있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도 없고, 꿈쩍도 않을 것 같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좌절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특별히 전하는 메세지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잘 표현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더욱 느낀다. 게다가 설득력 있게 논리적이고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능력은 돈을 주고서라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제 스피치 훈련 강의를 듣기도 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곪아 터진 부분들을 자각하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길 원하는 기성세대는 많을 줄로 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 딸들에게 언어로 표현하기가 서툴렀던 사람들을 대신하여 저자가 대변한 것이 이 책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냉철하고 깊은 사고와 능숙한 표현력을 꼭 배우고 싶어졌다.

 

책 내용은 인터뷰식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이 시대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에 대해 궁금해할 만한 질문들이 먼저 제시되고 그에 대해 저자가 답변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쉽다. 강연장에 앉아서 듣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답변을 듣다 보면 또 질문이 생긴다. 그런 질문들을 그 다음에 또 제시하고 그에 대해 또 답변하는 식이다.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짚어보면, 가장 먼저 돈에 대한 관점에서 깊은 공감이 되었다. 돈을 벌었을 때, 어떻게 벌었는지를 따지는 사회가 필요하다는 것. 맞는 말이다. 그리고 방송에는 문외한이라서 몰랐는데, 방송과 정치권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이 일부 상세하게 적혀 있다. 어느 날 정치쪽 대변인으로 낯이 익은 사람이 나왔네 싶으면 TV 뉴스를 진행하던 분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기도 했다. 그렇게 시청자 중 한명으로서 무심코 넘어갔던 장면들 뒤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권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언론이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역할을 굳건하게 해나가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저절히 느껴졌다. '원칙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이 숨을 쉬고 먹고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넓혀 주는 것'(p117)이 필요하다는 구절도 인상적이었다. 미국 교육의 현실에 대해서도 다루는 부분이 있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 중에 해외 유학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실행에 옮기기전에 참고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이 책의 압권은 <신경민의 현실 멘토링>메모1,2라고 생각된다. 기자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타성에 빠져들 것을 염려해서, 짤막한 글을 적기 시작한 메모. 다 합해서 몇 페이지 되지 않지만 저자의 가치관, 사고가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비의 명언록, 칸트의 명언록 등은 저리 가라이다. 몇 가지만 가져오면 다음과 같다.

 

 

 

 

이 책에서 한 가지 정말 아쉬운 점이 있었다. 첫 장에 '호남=빨갱이'라는 제목으로 긴 글이 있다. 호남출신과 영남출신이라는 이항대립구조를 지닌,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는 지역차별을 다룬 것이다. 생소한 내용도 있어서 놀랍기도 했고, 저자가 몸소 체험하였던 아픈 우리 사회 병폐를 지적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더욱 나가서 '도시'와 '시골', '서울'과 '비서울('지방'이라고 말하는 용어를 대신해서 '비서울'을 쓰고 싶다)', '서울권'과 '비서울권', '공통어 구사자'와 '사투리 구사자'의 이항대립구조를 통해 소외시키고 타자화하는 현 사회에 대해 빨간 불을 켜주고 싶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하는 기성세대들이 이 시대 젊은이들을 향한 목소리를 담은 이 책을 꼭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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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중학교 혁신학교 도전기 - 우리는 대화한다. 고로 우리는 점프한다. 맘에드림 혁신학교 이야기 4
김삼진 외 지음 / 맘에드림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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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변하고 있다. 이제 10년, 20년 후엔 '학교'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이미지가 세대별로 크게 차이가 날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 학교, 덕양중학교를 나온 아이들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학교', '학교 선생님'과 매우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혁신 학교'라는 명칭은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나도 낯설다. 오히려 존중과 배려, 공존하고 상생하는 학교라는 이런 명칭이 어떨까? '혁신'이라는 말 자체가 기업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많이 쓰이는 용례로 먼저 이미지화가 되다 보니, 그 뒤에 '학교'가 붙은 이 글자, 왠지 인간미가 없고 차갑고 엄격하고 아이들을 혹사시킬 것 같은 느낌, 내 아이를 거기 보내도 돼? 하는 우려가 들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 놀라운 반전이다. 이 학교도 시작은 그저 조용하고 작은 학교에 지나지 않았다. 전교 6학급이 전부이다. 아이들은 어른들 눈치 보느라 자유롭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는 것 조차 교장선생님 눈치를 보느라 자제하였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점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진 학교를 변화시키기를 갈망하는 선생님들의 바람이 커졌다. 그리고 뭉쳤다. 그들의 바람은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실현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만 있었던 것은 아닐테다. 교사들은 아이들처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조심스러웠겠지만, 행복한 학교, 즐거운 학교를 교사들이라고 왜 원하지 않았겠는가.

 

교장공모제를 통해 권위가 아닌 친근함과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는 교장선생님이 오시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과학 선생님은  ‘과학마술교사연구회’에 가입해서 지루한 과학수업에 마술을 섞는다. '와~' 하는 탄성과 함께 과학수업 중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사실 아이들은 모두 다 다르다. 그리고 아이들은 매년 다르다. 같은 아이들은 없다. 따라서 학습도 그에 따라 변화하고 그때그때 적용할 수 있도록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완판 선생님은 생각했다. p65

 

맞는 말이지만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신을 갈고 닦는 게 결코 쉽지 않다. 혼자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이 학교는 같은 꿈을 가진 교사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며 좋은 학교,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완판 선생님은 아이들이 수업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기초학력의 부족보다는 수업을 왜 해야 하는지, 수업을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지에 대한 목표와 희망의 부재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p78

 

이렇게 고민하고 변화를 갈망하는 교사들이 지금 이 시대에 많이 있다. 희망이 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보면 정말 반갑기 그지 없다. 그저 글자로, 지면으로 만났더라도 이토록 반갑고 기쁘다.

 

이 학교에서 배울 점은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결코 혼자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급수가 모두 6학급 밖에 안되는 작한 규모의 학교이고, 교사수는 적지만 과도한 행정업무는 여전히 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결재라인을 줄이는 기발한 발상을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업내용을 따라하기 힘들어 하는 아이가 있으면 또래 친구가 가르쳐 주는 튜터링 제도를 도입한다. 지역 대학교와 MOU를 체결하여 대학생들이 아이들을 매주 일정 시간 만나서 지도해주고 대학생 본인은 봉사경험을 쌓는다. 수업종을 없애고, 배움의 공동체 모형을 참고하여 수업에 활용하기 위해 그 모형의 본고장인 일본에 연수를 가서 직접 현장을 경험하고 온다. 아이들을 얽어매는 규정,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를 묻고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정책을 결정한다. 지방자치가 아닌 학생자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배움의 공동체 수업에서는 ‘만남’과 ‘관계’를 만들어내는 활동, 곧 대화가 교사 일의 중심이 된다고 한다. 적절한 소통의 부재를 절실히 실감하는 요즘, 학급에서도 수업현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대화'의 역할과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학생들 스스로가 존재감을 느끼고, 교사 역시 학교 밖에서가 아닌 학교 안에서 자신의 꿈을 발견하는 학교. 그리고 어떤 문제든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협력하는 문화.

 

강제와 억압, 통제 등 인간을 얽어매고 소외시키는 학교를 없애라고 했던 탈학교론자들도 이런 학교의 출현에는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덕양중학교와 같은 아름다운 기적과 연합이 전국 곳곳에서 많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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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천도 - 도쿄의 서울 이전 계획과 조선인 축출공작
도요카와 젠요 지음, 김현경 옮김, 전경일 감수 / 다빈치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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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34년 일본인 저자가 펴낸 이 책은 현재와 단지 80년 가까운 시차만 존재할 뿐인다. 하지만 내용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입이 벌어지게 했다. 그만큼 지난 80년간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해박한 지식인으로 보이는 저자는 온간 이론, 철학, 사상을 동원하여 일본의 제국주의 사상을 실천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논을 펼친다.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동양평화의 보전'을 위해서다.

 

저자가 일본인의 시점에서 아시아권을 바라보는 시선을 볼 때마다, 한나 아렌트의 말이 생각났다. ‘한 고양이한테 다른 고양이는 항상 같은 고양이인데, 한 인간에게 다른 인간은 같은 인간이 아니다’(임지현·사카이 나오키, 『오만과 편견』, p38) 

 

서양인이 동양인을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귀화할 수 없는 유색인종으로 차별대우한다. 세계의 앞날에 있어 가장 큰 화근은 바로 이 인종적, 문화적 차별관에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도 마르크스의 변증법도 이 문제만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p23

 

서양열강에게 일본인이 우스꽝스러운 원숭이 취급을 당한 아픈 기억을 이렇게 서술한 것일 테다. 그런데 그 다음 문장이 가관이다.

 

결국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무는 일본에게 있다 하겠다. 왜냐하면 일본은 한편으로는 동양문화의 대표자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문화의 대표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동서양의 중간에 서서 이지적 또는 감정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 이 역시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pp.23-24

 

청나라, 러시아, 당시 강대국들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였던 일본이 얼마나 어깨에 힘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다음에는 ‘알렉산더 대왕이나 쇼토쿠 태자의 위업을 완성해야만 한다’는 말이 나온다. 도쿄에서 경성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일에 과거 역사적인 인물의 이름까지 대며 이것을 달성하는 것이 ‘위업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동서문화의 융합을 위해서 경성천도를 해야 하다는 것이다.

 

서양인이 동양인을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분개하면서, 일본인은 조선인, 중국인 등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권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열등하고 구제해주어야 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내버려 두면 동양평화가 보존되기 힘들다고 논한다. 이 점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보는 독특한 시각에도 잘 나타난다.

 

청일전쟁은 중국이 일본을 너무 우습게 본 나머지 일어난 전쟁으로 일본의 진의가 아니었다. 러일전쟁은 일본이 중국의 무력함을 동정하여 중국을 위해 러시아를 치고 마지막에는 러시아의 침략지를 빼앗아 중국에게 돌려준 전쟁이다. p106

 

러일전쟁은 만주에 침입한 러시아군을 막기 위해 일본이 중국 대신 일으킨 의로운 전쟁 p34

 

이러한 저자의 시각은 비단 한사람만의 관점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저자가 당시 교육자였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경성천도는 단기간 고민한 생각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낸 이후로 줄곧 치밀하게 연구하고 숙고하여 저술한 것이 이 책이다. 중국 고전은 물론 성경구절까지 인용한 것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저자는 마치 나쓰메소세키의 소설 '산시로'에 나오는 '사사키 요지로'를 연상시켰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학문을 연구하고 논문을 쓰지만 세상사람들에게는 곱게 보이지 않았던,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던 인생이 닮아 보였다.

 

이 책으로 당시 일본 정세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주변국들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일본인의 제국주의적 사상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꼭 읽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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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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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제목이 섬뜩했다. 표지도 보이는 것 처럼, 칼같이 차갑고 서늘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표지를 넘기면 저자의 사인과 사진이 보이는데, 흑과 백의 명암차이를 살린 한장의 사진 안에서 저자는 정면을 바라보고 안경을 올리고 있다. 이마는 번쩍~빛이 나고, 뿔테 안경 속의 눈빛이 나를 압도하는 것만 같다.

'섬뜩하는 책인가보다. 책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저자가 칼을 갈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안들 수가 없다.

 

그런데 내용은? 반전이다. 이러한 반전이 있을 수가 없다. 저자는 책읽기를 통해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어떤 사물을 보든 온몸으로 반응하는 촉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신록에 몸을 떨었고, 빗방울의 연주에 흥이 났다. 남들의 행동에 좀 더 관대해졌고, 늘어나는 주름살이 편안해졌다.p7

 

저자는 아이들의 동심어린 시선에 까르르 배를 잡고 웃으며 감동을 받고, 서양과 동양의 철학이 대립되는 가운데서 얻어지는 '통찰'에서 탁 무릎을 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저자의 인문학 강독회를 말이 아닌 글로 종이위에 옮겨놓은 것이다보니, 이해하기가 쉬웠고 마치 나 역시 그 강독회 한 구석 의자위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또한 저자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에 '울림'을 주었던 많은 책들의 구절들을 인용하고, 저자의 말로 해석과 감동까지 곁들여 있어서 죽을 때까지 몰랐을 수 있는 작가들의 이름과 그들의 명구를 접할 수 있는 것이 장점 중 하나라고 꼽고 싶다.

 

책읽기의 즐거움과 더불어, 우리의 메마른 감성과 굳은 생각에 탁! 하고 도끼로 찍어 깨어버리듯이 충격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읽기의 놀라운 효과. 책을 읽으라는 권유보다 이 책을 한번 보라는 권유만 하면, 자연히 책읽기에 대한 동경과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가까이 있는 소소한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감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짧은 시인 '하이쿠'를 잠시 배웠을 때 느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잠시 짬을 내서 잠잠히 생각해보고 짧은 시를 짓는 경험을 통해, 이런 감동하는 마음, 관심을 가지는 마음이 생기는게 느껴져서 특히 노인들에게 치매예방에도 도움된다는 의미를 이해한 적이 있다.그런데 '책읽기'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고 기쁨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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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함 - 2004년 2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샨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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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벼를 베고 난 자리의 휑하지만 따뜻한 땅의 그 색. 그런 황토색 표지에 잎사귀가 어린 잎을 틔우며 자라고 있는 표지이다. 약간 거칠기도 하면서 한지 느낌이 나는 표지부터가 눈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집어 올렸더니 무지 가볍다. 책 내부 재질도 눈을 피로하지 않게 하는 색에다가 가볍기까지 하다. 대중교통을 늘 이용하는 나에게 가벼운 책은 무척 반가운 존재이다. 이사한다고 짐을 싸도 부담을 던다. 무거운 책들은 버리고 가야 하나, 그래도 데리고 가야 하나 갈등하게 만드는 성가신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인 저자인 만큼 '책읽기'에 다양한 견해를 가진 많은 일본인들의 이름과 책들이 거론된다. '책읽기'를 주제로 한 많은 도서가 있지만,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저자가 쓴 것은 이런 묘미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일본에서 유명한 저자나 '책읽기'에 관한 권위있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 한권으로. 그것도 겨울 대지와 같은 바탕색에 봄의 파릇파릇한 싹을 담은 표지와 가볍고 홀가분하게 느껴지는 중량의 이 책으로 말이다.

 

가장 많이 와닿았던 것은 '책을 즐기는 사람'이 참 많구나 하는 것이다. 저자도 물론이거니와 책을 읽는 것이 좋아서 정말 매료된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팍 왔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나 역시 책 껍데기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부류다 보니, 반가운 이야기들이었다.

 

경치를 보기 위해 그리하여 독서가 중단된 것에 나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페이지 : 66

 

 앙드레지드가 한 말이라고 한다. 여행을 가서도 그 곳 경관보다는 책안에 흠뻑 빠져든 앙드레지드는 유명하다는 동굴 구경을 하러 가서는 '내 생각은 마차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쇼펜하우어에게로 달려갔다'라고 하였다. 실제 쇼펜하우어는 당연히 아니다.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있었던 앙드레지드가 얼마나 책에 몰입해있었냐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읽기와 관련된 많은 구절들 중 기억에 남는 몇가지가 있다.

 

먹는 것과 읽는 것은 서로 많이 닮았다
페이지 : 90

 

책읽기에 대한 사색을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충분히 한 것인가가 바로 엿보인다. 읽는 것을 먹는 것과 닮았다고 보는 것이다. 

 

책 제목에서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고 해서, 꼭 그것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하루에 1만페이지를 읽거나 1쪽을 1초만에 읽거나 하는 속독파가 아닌 천천히 읽는 그런 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속독파에 대해서도 비판만 하고 있지는 않다. 즉, 이 책을 통해 속독파와 천천히 읽는 파의 양 입장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의 구절이 아마 저자의 생각을 응축하고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운이 남는 구절이다.

누구나 자기 생활에 고유한 시간의 사이클이 있게 마련이다. 생활의 시간 사이클에 의해 책을 읽는 방법은 저절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생활보다 먼저 독서가 있고 생활이 그 뒤를 좇아가는 것이 아니다.
페이지 :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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