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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함 - 2004년 2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샨티 / 2003년 11월
평점 :
겨울에 벼를 베고 난 자리의 휑하지만 따뜻한 땅의 그 색. 그런 황토색 표지에 잎사귀가 어린 잎을 틔우며 자라고 있는 표지이다. 약간 거칠기도 하면서 한지 느낌이 나는 표지부터가 눈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집어 올렸더니 무지 가볍다. 책 내부 재질도 눈을 피로하지 않게 하는 색에다가 가볍기까지 하다. 대중교통을 늘 이용하는 나에게 가벼운 책은 무척 반가운 존재이다. 이사한다고 짐을 싸도 부담을 던다. 무거운 책들은 버리고 가야 하나, 그래도 데리고 가야 하나 갈등하게 만드는 성가신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인 저자인 만큼 '책읽기'에 다양한 견해를 가진 많은 일본인들의 이름과 책들이 거론된다. '책읽기'를 주제로 한 많은 도서가 있지만,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저자가 쓴 것은 이런 묘미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일본에서 유명한 저자나 '책읽기'에 관한 권위있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 한권으로. 그것도 겨울 대지와 같은 바탕색에 봄의 파릇파릇한 싹을 담은 표지와 가볍고 홀가분하게 느껴지는 중량의 이 책으로 말이다.
가장 많이 와닿았던 것은 '책을 즐기는 사람'이 참 많구나 하는 것이다. 저자도 물론이거니와 책을 읽는 것이 좋아서 정말 매료된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팍 왔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나 역시 책 껍데기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부류다 보니, 반가운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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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를 보기 위해 그리하여 독서가 중단된 것에 나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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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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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지드가 한 말이라고 한다. 여행을 가서도 그 곳 경관보다는 책안에 흠뻑 빠져든 앙드레지드는 유명하다는 동굴 구경을 하러 가서는 '내 생각은 마차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쇼펜하우어에게로 달려갔다'라고 하였다. 실제 쇼펜하우어는 당연히 아니다.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있었던 앙드레지드가 얼마나 책에 몰입해있었냐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읽기와 관련된 많은 구절들 중 기억에 남는 몇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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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과 읽는 것은 서로 많이 닮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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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 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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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 대한 사색을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충분히 한 것인가가 바로 엿보인다. 읽는 것을 먹는 것과 닮았다고 보는 것이다.
책 제목에서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고 해서, 꼭 그것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하루에 1만페이지를 읽거나 1쪽을 1초만에 읽거나 하는 속독파가 아닌 천천히 읽는 그런 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속독파에 대해서도 비판만 하고 있지는 않다. 즉, 이 책을 통해 속독파와 천천히 읽는 파의 양 입장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의 구절이 아마 저자의 생각을 응축하고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운이 남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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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생활에 고유한 시간의 사이클이 있게 마련이다. 생활의 시간 사이클에 의해 책을 읽는 방법은 저절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생활보다 먼저 독서가 있고 생활이 그 뒤를 좇아가는 것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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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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