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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첫인상? 제목이 섬뜩했다. 표지도 보이는 것 처럼, 칼같이 차갑고 서늘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표지를 넘기면 저자의 사인과 사진이 보이는데, 흑과 백의 명암차이를 살린 한장의 사진 안에서 저자는 정면을 바라보고 안경을 올리고 있다. 이마는 번쩍~빛이 나고, 뿔테 안경 속의 눈빛이 나를 압도하는 것만 같다.
'섬뜩하는 책인가보다. 책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저자가 칼을 갈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안들 수가 없다.
그런데 내용은? 반전이다. 이러한 반전이 있을 수가 없다. 저자는 책읽기를 통해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어떤 사물을 보든 온몸으로 반응하는 촉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신록에 몸을 떨었고, 빗방울의 연주에 흥이 났다. 남들의 행동에 좀 더 관대해졌고, 늘어나는 주름살이 편안해졌다.p7
저자는 아이들의 동심어린 시선에 까르르 배를 잡고 웃으며 감동을 받고, 서양과 동양의 철학이 대립되는 가운데서 얻어지는 '통찰'에서 탁 무릎을 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저자의 인문학 강독회를 말이 아닌 글로 종이위에 옮겨놓은 것이다보니, 이해하기가 쉬웠고 마치 나 역시 그 강독회 한 구석 의자위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또한 저자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에 '울림'을 주었던 많은 책들의 구절들을 인용하고, 저자의 말로 해석과 감동까지 곁들여 있어서 죽을 때까지 몰랐을 수 있는 작가들의 이름과 그들의 명구를 접할 수 있는 것이 장점 중 하나라고 꼽고 싶다.
책읽기의 즐거움과 더불어, 우리의 메마른 감성과 굳은 생각에 탁! 하고 도끼로 찍어 깨어버리듯이 충격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읽기의 놀라운 효과. 책을 읽으라는 권유보다 이 책을 한번 보라는 권유만 하면, 자연히 책읽기에 대한 동경과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가까이 있는 소소한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감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짧은 시인 '하이쿠'를 잠시 배웠을 때 느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잠시 짬을 내서 잠잠히 생각해보고 짧은 시를 짓는 경험을 통해, 이런 감동하는 마음, 관심을 가지는 마음이 생기는게 느껴져서 특히 노인들에게 치매예방에도 도움된다는 의미를 이해한 적이 있다.그런데 '책읽기'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고 기쁨으로 다가온다.